2024년4월27일 토새 하나님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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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60(로마서 1장 17절)
제목:하나님의 의란
본문: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어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제일 소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이 의를 만들 때에 이 의는 보배로운 의만 자존자 하나님이 이  의로 만족을 합니.다 이 의 외에 더 요구할 것도 없고 이 의로 만족을 합니다. 이것이 당신의 소원을 완전히 이룬 것입니다. 이 의를 만든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합작해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합작해서 만드는데 하나님은 무한 자요. 사람은 유한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요 인생은 죄가 없다 할지라도 피조물 중에 하나니까 하나님과 그 인생에 차이라는 것은 인간 지식이 측량 못할 그런 가치 차이도 능력 차이도 지혜 차이도 거룩의 차이도 무한히 차이가 납니다.  이 의는 하나님과 사람이 이  둘이 합작해서 이룬 의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어떻게 합작이 되었을까 그것을 가르쳐서 마태복음 1장 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경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 성령으로 잉태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지극히 크신 분인데 피조물 중에 하나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입고 나타난 것은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분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존하신 분이 천안 인간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났다 하는 말을 도성 인신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로는 쉽고 입으로는 쉽게 하지마는 도성인신이라는 이것이 하나님의 얼마나 큰 사랑인가? 도성 인신이라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큰 희생인가 얼마나 하나님의 큰 포부인가 하는 것을 인간 지식으로는 참 청량 못할 인간 지식을 초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이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의 사람을 입고 나타났을까 그렇게 자존하신 분인데 천한 인간이 되어 나타났을까 왜 그렇게 희생하시고 당신이 어떤 포부가 있어서 그렇게 했을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 둘이 합작해서 만들었는데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된 신성과 인성 양 격위로 된 것이 아니고 신성과 인성 양 격의가 한 격의를 이루어서 하나님은 성부의 격위도 있고 성자의 격위도 있고 성령의 격위도 있는데 하나님과 사람이 한 격위를 이루어 나타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격위를 이루었다는 것은 거기에 대한 모든 책임과 의무와 지위가 거기에 있는 것인데 그저 이렇게 그냥 동행으로 하나가 된 것이 아니고 한 인격체가 되어서 이 일을 이루었다는 것은 우리 지식을 초월한 참 굉장한 그런 일입니다.
 이러니까 많은 성자들은 하나님이 도성 인신하신 여기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그 크심의 그 사랑과 희생의 놀라 기절하고 이렇게 신인 양성 일위가 되기까지 해서 이룬 그 사랑의 진실성 그 사랑의 변치 않는 영원성 그 사랑에 견고성 그 사랑의 신실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참 기절해서 이런 큰 사람 사랑을 주신 도성인신하신 주님인 것을 깨닫고 이제는 완전히 변화된  이 의로 살기로 작정한 그런 많은 성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 되어서 신인양성 일위가 되어서 이 의를 이룬 이것은 지극히 존귀한 일입니다 큰 언대 하나님의 큰 뜻을 완성했기 때문에 이 의가 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큰 뜻이 무엇이냐 이 이 의는 하나님의 큰 뜻이요 하나님이 제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요 제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뜻은 하나님은 창조주요 완전자인데 완전자에게 대한 피조물의 삐뚤어진 것 완전자가 창조해 놓은 피조물이  이 피조물에게 삐뚤어진 것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는데 하나님과 삐뚤어진 이것은 그만 하나님이 심판에서 멸해 버리면 되는데 하나님이 심판해서 멸해 버리면 일은 수월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것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서 멸하지를 못합니다. 멸할 수도 없고 멸함은 쉬운데 안 멸하고 그냥 두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용납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것을 죄라 말합니다.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멸해 버리면 되는데 멸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서 멸할 수도 없고 그대로 두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속성이 다 절단 나 버리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르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 고통증에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피조물에 삐뚤어진 것을 하나님이 완전히 해결해서 도말해 버렸습니다.
 이 삐뚤어진 것을 없애는 데는 삐뚤어진 것은 고칠 수도 없고 삐뚤어진 것을 도말하는 데는 삐뚤어진 값을 받아서 사망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것을 다 도말하려고 하면 그 대가로 천명이면 천명 만 명이면 만 명 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죽었으면 끝났으니까 그냥 소용이 없습니다. 사망이라야 해결되는데 삐뚤어진 값은 사망이니까 사망으로 해결됩니다. 그건 사망하면 다 끝이 나고 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대신 책임을 지으려고 하면 피도물이 삐뚤어진 것인데 하나님이 대신 책인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삐뚤어진 것은 피조물이 책임을 져야지 피조물이 삐뚤어졌는데 왜 하나님이 대신 책임을 지겠습니까?
 이러니까 부득이 하나님이 피조물의 인성을 입고 사람 되어 와서 이 삐뚤어진 대가를 무한하신 당신이 대신 사망의 벌을 받아서  이 삐뚤어진 것을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모든 피조물에 비뚤어진 것을 완전히 치료하고 수술해서 삐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도록 이렇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소원이었는데 신인양성 일위가 대형으로 이 일을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4가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소원은 완전자 자존자가 명령하고 움직이는 데에  이 피조물이 완전자에게 완전 복종하면 되는데 완전자를 따라 움직이면 영생이 되는데 피조물이 완전자에게 피동 되는 완전 피동자로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다음으로 제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인간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무한하신 분이 법을 정했는데 완전하시고 전지하신 분이 법을 정한 것인데 어떻게 유한하고 무지한 인생이 완전 순종하여 움직일 수가 있겠습니까? 피조물이 당신의 전지전능에 만족될 수 있는 그런 순종을 하는 것이 당신의 소원입니다. 이런 순종을 할 자가 아무도 없다이 말입니다. 이런 순종을 해야 하나님의 무한의 뜻을 다 줄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영생이 되게 되는데 완전 순종해서 순종을 완성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신인양성 일위로 우리를 대신해서 완전 순종하여 이룬 것이 하나님의 의 네 가지입니다. 자  요  네 가지 네 가지 여덟 가지 여기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서 이  의를 완성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므로 우리가 의인이 됐고  이 어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조금도 해 하지 않고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이 의를 입고 이 의로 인하여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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