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2월8일 목새 데려감을 당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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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840(마태복음 24장 40-44절)
제목:데려감을 당하는 길
본문:마태복음 24장 40-44절
 그때의 두 사람이 밭에 있음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오 두 여자가 하나는 데려 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두 사람이 밭에 있음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오 두 사람이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음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똑같은 입장 처지 환경이지만 구원 얻고 하나는 구원을 놓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을까? 똑같은 입장 처지요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이렇게 하나는 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했을까? 그 사람 속에 어떤 사람이 일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택한 받은 모든 성도 속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인격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새 사람이요. 옛사람는 입니다. 새 사람은 교회의 종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종자인 것입니다.
옛사람은 악령에게서 나오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서 나온 이 종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아도 피동적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신을 따라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종자를 따라 사는 것이 있고 악영과 악성과 악습의 종자를 따라 사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종류 속에 있는 우리인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데려감을 당하고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버려둠을 당하게 됩니다.
세 사람을 따라 살던지 옛사람을 따라 살던지 우리 영의 기능이나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이 영생을 이루던지 영멸을 이루던지 이것이 세 사람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것이든지 옛사람으로 인하여 움직이던 것이든지 여기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한 자리에 같이 있어도 같이 일어나고 자고 일을 해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하는 것은 새 사람에게 속한 기능은 데려감을 당하고 옛사람에게 속한 기능은 버려둠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둘째, 아담과 결합된 자도 있고 첫째, 아담과 결합된 자도 있으니 땅에 속한 형체를 가진 자가 있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를 가진 자가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세 사람으로 인해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변화가 되어질 때에 구원을 이루게 되고 옛사람으로 인하여 심신의 기능이 변화가 되면 멸망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사람의 생활 하나님이 우리를 낳았을 때 새로 낳아설 때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왔으니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요한 일서 5장에 보면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한 진리이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셋이 우리 속에 와서 이 셋은 하나님의 요소인데 이 셋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에게 증거할 때에 이 증거를 받아 가지고 사는 우리가 될 때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사는 자기가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모든 행동의 근원은 이 셋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요 새 생명으로 새로 출생한 자기입니다. 이것을 성경에 표현하기로 베드로 전서 1장에 너희들이 거듭나기는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됐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 관계가 어떤 관계냐 하나님은 남편 되고 우리는 하나님에 것되고 신부 되는 그런 것과 같은 그런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피가 증거하고 영감이 증거하고 진리가 증거할 때에 이 증거를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이오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과 몸을 심신의 기능을 주관하는 것이 주님의 피요 성령이요. 진리가 주장하는 자기가 될 때 그 사람이 새 사람이 됩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지만 새 사람으로 그 일을 할 수도 있고 옛사람으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그 일을 할 때에 중심이 자기중심이 되어서 그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일은 내게 유익하기 때문에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자기가 일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없지요 자기에게 필요하고 자기에게 유익되고 자기에게 많아지고 자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되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새 사람 중심된 새 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진리이기 때문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을 위하는 길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요 주님이 시키시는 명령이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그렇게 순종해 가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는 자기 위해 살고 하나는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이 됩니다. 이러니까 두 사람이 우리 안에 있는데, 하나는 옛사람이오 하나는 새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사람이오 옛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람입니다.
똑같은 환경 똑같은 입장 똑같은 처지지만 자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다. 말입니다. 얼른 생각하기는 내가 여기서 왜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될 이유가 뭐있느냐 내가 날 위해서 살아야지 누가 날 위해 주겠느냐 이렇게 생각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혼인해서 주님과 하나되어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은 나는 주의 것되고 나는 주님 위해서 살 자기요 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 자기입니다. 그러면은 그 일이 자기는 하나도 유익이 안 되고 손해만 보는가 아닙니다.
나는 완전히 주의 것 되고 주님 위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주님은 나를 다 책임지시고 나는 주의 것을 다 쓸 수 있고 나는 주의 영광을 다 쓸 수 있는 주님의 권세를 다 쓸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 사는 것은 자기 만난 현실의 현실마다 주님에 것되어 사는 연습을 하고 주님에 것되어 사는 실력을 길러가고 주님의 것으로 사는 자기가 되어지는 이 연습 이 실력을 길러가는 것이 자기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현실은 주님의 것으로 살기 좋은 주님의 것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조성하여 주신 그러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만나는 현실에서 자기와 주의 것으로만 살면 자기에게 모든 어려움이 해결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주의 것이 되지 아니하니까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려고 하니까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병든 것도 자기야 책임지고 삐뚤어진 것도 자기가 책임지고 잘난 것도 자기가 책임지고 모두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고 사는 그런 걸음이 있고 자기 현실에서 자기의 못난 것도 자기의 더러운 것도 자기의 삐뚤어진 것도 자기의 무지무능도 다 주님이 책임져 주실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주의 것되어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생명되고 내 머리 되고 주인 되어서 나를 주장하시고 나는 주님의 것되어 사는 자기만 되면 사람이요. 피조물이요. 무지무능한 사람이라도 내게서 나오는 모든 언행 심사는 전지요 전능이요 완전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이 실력을 길러가도록 합시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제힘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요 주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내가 힘 다 들여서 참 골 빠지게 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해 주시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도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주님에 것되어서 주님 중심으로 주님 위에서 주님 뜻대로 사는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요소가 와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피가 와 있고 성령이 와 있고 진리가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모든 언행 심사를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이것은 우리가 깨달은 대로 성경으로 사는 것이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인지를 우리가 배워서 압니다.
그러므로, 자기 현실에서 나는 여기에서 이 일을 할 때에 성경대로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더라 하고 하나님의 뜻이 당신의 뜻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 하나님이 성경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이것을 믿고 성경으로 살고 성경으로 언행 심사합니다.
성경으로 사는 것은 성경이 진리기 때문에 내 주장이나 내 생각이나 깨달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따라 사니까 자기는 진리와 하나 되고 진리와 하나 되니까. 영감과 하나 됩니다.
이렇게 진리와 영감과 하나되어 사니까 그 사람의 생활은 예수님에 피로 사는 생활이오 그 사람의 생활은 죄 없는 생활이오 하나님 중심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로운 생활이오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생활이오 영원 무궁 세계를 바라보는 소망의 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기능은 이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자기가 똑같은 일을 하지만 그 일을 영감으로 진리로 피로하게 되면은 거기에서 영생을 이룹니다.
똑같이 교회 일을 한다고 열심히 해도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할 때가 있고 주님의 피가 중심이 되고 성령이 중심되고 진리가 중심되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똑같이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일을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데는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새 사람으로 하는 사람이냐 옛사람으로 하는 사람이냐 하는 데 따라서 두 가지 이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입장 처지에 있든지 내 속에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옛사람이오 하나는 새 사람이니 내가 여기서 새 사람으로 살아야 되겠다. 하고 새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이 실력을 길러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고집이나 성질이나 자기 지식이나 감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성경으로 사는 것이요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진리로 사는 것이요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영감으로 사는 것이요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 대속으로 사는 이 결실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영생의 길이라 하는 것을 알고 여기에서 우리 심신의 기능이 데려감을 당하는 영생을 이룰 수 있는 이 기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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