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2월14일 목새 산믿음

페이지 정보

본문

23121440(누가 복은 17장 5-6절)
제목: 산 믿음
본문:누가 복은 17장 5-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들어 뿌리가 뽑혀 바다의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오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할 때 주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하면, 이렇게  뽕나무가 뿌리가 뽑혀 바다까지 옮겨지고 바다의 심기우라 해도 그것이 순종했을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무엇인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 하는 것은 작은 믿음이라는 말이 아니라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은 산 믿음이란 말입니다. 산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는 말인데 산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하는 것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신구약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성경을 알고 성경대로 행하는 것을 말하는가? 성경대로 행하는 것은 자기가 성경을 알고 성경대로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주관 신앙입니다. 능동 신앙입니다. 자기가 성구를 선택해서 아무리 살아도 거기에는 전능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언제든지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거기에 그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영감으로 역사하시고 진리로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이 영감으로 역사하시고 영감으로 역사하신 역사가 이제 진리가 그것을 시공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감으로 역사하시고 역사를 따라서 진리가 그대로 순종에서 창조한 것입니다. 신구약성경 말씀은 진리요 참된 이치요 이 말씀은 우주를 창조한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이나 인격이 없는 참된 이치의 말씀입니다. 참된 이치입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고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성경으로 사는 것인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영감대로 사는 그것이 바로 됐는지 바로 되지 않았는지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성경을 가지고 따져보면 이것은 하나님이 영감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이 명료하신 것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그러면 명령대로 순종하면 거기에 전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그런 주관 행위에 인간의 능동 행위에 이런 역사가 나타난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에 피동되어지는 요 행위를 두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사람이 자기가 자 볼펜을 하나 가지고 들고 쓰면 볼펜이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볼펜을 잡고 쓰는 사람의 능력으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피동이 되어서 움직여지는 요 행위가 되어야 고 산 믿음이 됩니다.
이렇게 볼펜은 인격이 없는 하나의 물건이지만 우리 사람은 인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인격이 있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영감시켜 주시는 영감을 따라 내가 움직이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것을 참 설명하고 여기에 대해서 깨달아 가는 것이 참 너무 어려워요 참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영감시켜 주시고 영감시켜주신 그 영감을 우리가 받아서 그대로 피동되어지는 연습한다는 것이 이게 정말 참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때 그냥 출애굽을 시킬 이것이 아닙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서 바로에게 고해라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가서 고하니까 어떻게 왕에게 가서 내 백성을 내보내라 그렇게 한다고 해서 왕이 상대해 줄 만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고만 왕이 죽여버리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왕과 그런 백성과의 그런 관계 정도인데 왕에게 가서 하나님이 내 백성을 내보내라고 했다. 이렇게 말을 해도 왕이 죽이지 안 하고 대화하고 또 약속을 어겼지만 어겼지만은 그래 보내주겠다. 이렇게 가거라 여러 가지 그렇게 말한 것을 가만 보면 모세가 하나님에게 피동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걸음을 걸어간 것입니다.
또 재앙이 내렸을 때도 하나님이 모세야 내가 이렇게 기도해라 하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기도하니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모세는 피동이 되어졌고 하나님이 하시지마는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뜻이 모세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이런 역사가 있어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모세의 말만 모세의 생각이요. 모세의 뜻이오 모세가 말하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완전 피동된 그 연습을 열 가지 재앙으로 연습을 해 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능치 못함이 없는 말씀이라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고 이렇게 나가니까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는데 홍해 바다를 만나도 또 거기에 먹을 것이 없어도 또 물이 나빠진 그런 일이 있어도 다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러느냐 전부 믿음으로 해 나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기에 가르쳐주는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 하나님에게 피동된 믿음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요 행위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이 내게 영감시켜 주시기를 이렇게 하라고 했다.
해도 그것이 참 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모른단 말이오 이러니까 그것을 검사해 보려고 하면, 참 하나님의 명령이냐 명령이 아니냐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실 때는 성경범위를 벗어나서 명령하지 않습니다. 성경범위 안에 성경 안에 있는 진리대로 이렇게 우리에게 명하는 것이니까.
요것은 진리에 어긋나지 아니한 진리대로의 명령이구나 하면 그것을 놓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면 거기에서 전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자 어제도 여기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했지마는 이것을 연습하는 것이 참 중요할 것 같아요. 우리 앞에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지금이오 우리 앞에 닥쳐올 환란은 얼마나 큰 무서운 환란이 찾아올는지 모릅니다.
그런 환란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그것은 산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기가 되면 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시대도 지나갔고 6.25 동란의 시기도 지나갔습니다.
 그럴 때에 어떤 사람은 이 구원이 실패가 된 사람도 있고 아주 고난을 당하면서 이렇게 통과한 사람이 있고 아무 고난도 없이 평안하게 통과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성경에 보면, 다니엘이 왕에게만 기도하고,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기도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에 다니엘은 왕이 명령하는 명령은 절대 복종입니다. 아주 순종 잘하고 또 일을 아주 능력 있게 행하고 이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아주 사랑하고 아끼는 그런 다니엘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맡기면 능력있게 행하고 고 말을 아주 잘 순종을 했단 말이야. 이런데 다른 신에게 기도하지 말아라 왕만섬기라 하는 명령을 하니까 죽어도 그 말은 안 듣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왕을 통해서 다니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틀리지 아니한 그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명령으로 알고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서 순종하는 순종으로 걸어가니까 다니엘은 그런 지혜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명령은 왕에게 기도하고, 왕만 섬기고 다른 어떤 신도 섬기지 말아라 하는 것은 틀린 명령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명령은 절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을 죽이려고 사자굴에 집어넣었지만은 사자도 삼키지 않습니다. 사자굴 그래서 하룻밤 평안하게 자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다니엘만 그랬느냐 아닙니다.
후세대 사람들도 하나님에게 완전 피동으로 사는 걸음을 걸어갈 때 외로운 걸음이오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 길 따라가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고 자기가 혼자 가는 그런 외로운 그런 길이라도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연습 그 실력을 가지고 사는 걸음을 걸어가는 데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어떤 대적도 그를 해하지 못했고 평안하게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말세지 말로 마지막 때의 환란은 아주 심한 환란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어떻게 변해질는지 참 알기 어려운 그런 지금 세계의 현상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아무리 어려운 환란이 와도 환란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 예수님의 재림에서 모든 것이 불에 타서 풀어지는데 그 사람은 하나도 불타지 않고 아무 일이 없듯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어떤 길이냐 그 길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걸음입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 걸음을 걷는 이 연습을 해 놓으면 우리는 이 모든 환란을 다 이길 수 있는 우리가 되고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도 주님의 재림이 지금 당장 오지 않았다. 해도 우리가 산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피동된 믿음으로 이렇게 살아갈 때에 참 우리가 고쳐지지 않는 자기 속에 그런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뽑혀 나갈 수가 있다. 뽑혀 나갈 수가 있다.
또 우리에게 영생이라는 것이 심겨질 수가 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본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는 이 연습을 좀 해야 되겠습니다.
이 실력을 길러가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연습 그래서 과거 백영희 목사님은 당신이 실력이 있고 이렇게 잘 알고 가르치시는 분인데도 언제든지 물어보면서 이 어떻게 하는 게 좋습니까? 물어보면서 모르면 가르쳐줘서 좋은 것을 옳은 것을 말하도록 해서 나도 너 말대로 그렇게 해야 되겠다.
실은 당신이 알고 옳은 것을 가르쳐 주고 거기에 따라 가도록 이렇게 해 놓고, 당신이 순종의 연습을 많이 그렇게 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자꾸 순종을 연습해보려고 순종해보려고 이렇게 순종을 연습한 사람은 순종을 연습해 본 사람은 여기에서 큰 수입이 있습니다.
그래 우리가 순종을 연습하지 아니한 사람이면 어디든지 자기 주장대로 해야 되지 자기 주장대로 하지 않고 자기는 순종하는 것은 완전히 자기가 꺾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순종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는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순종을 연습하는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자꾸 순종해 보려고 옳은 것에 순종해 볼려고 이렇게 애를 써서 하나님에게 피동될 수 있는 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 진리인 것을 알고 그 진리에 자기가 피동이 되어서 진리대로 살 수 있는 자기가 되려고 이렇게 피동되는 연습을 좀 많이 해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산 믿음을 가지고 사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작은 일에서 이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말씀대로 하니까 되더라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지니까.
되더라  이것을 연습을 많이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홍해 바다를 앞두고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다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우리가 한번 구경해 봅시다 얼마나 넘넘하고 예 여유가 있고 어떻해 당장 그만 다른 사람은 겁이 나서 기절할 만큼 되어 있는데도 그렇게 여유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에게 피동된 사람으로서의 그런 실력을 길러서 그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살 수 있는 이 실력을 길러서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하나님이여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니까 내가 너희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해 주시는 인도 따라고 따라가라고 했지 않느냐 두말없이 바다 속이라도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데로 걸어가니까 거기에 전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이 우리에게 영감으로 알려주시는 그 영감 따라 진리를 따라서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도록 이 실력을 길러갈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