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2월13일 수새 산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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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330(누가 복음 17장 5-6절)
제목: 산 믿음
본문:누가 복음 17장 5-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의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오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여러 시간 계속해서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이 말씀을 듣고 바로 깨달아서 실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도들이 주님께 말씀하기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할 때 예수님께서 겨자씨 비유로 이 말씀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로 가르쳐 주신 말씀은 겨자씨이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세 가지 역사 뽑는 역사 옮기는 역사 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니까. 그다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뽑히라 심겨져라 옮겨줘라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산 믿음이 아니라 하는 말이죠. 그러면 장정 여덟 아름이 되는 뽕나무가 뽑히라 옮겨져라 심겨져라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신없는 사람 아니겠소 어떻게 장정 여덟 아름되는 그런 나무를 보고 뽑히라 말을 하고 옮겨져라 하고 심겨져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정신없는 사람 아니고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겨자씨 믿음 한 알만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말은 그것은 산 믿음이다. 거기에는 뽑히는 역사 옮겨지는 역사 심겨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이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 속에도 고쳐야 될 요소 이 뽑아야 될 요소가 얼마나 많은데도 자기가 고쳐보려고 애를 써 보면 고쳐지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 이것은 참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내게 뽑아야 할  생각 속에도 욕심 속에도 성질 속에도 습관 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고쳐야 되겠다. 그랬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내가 습관이 잘못되어서 그러니까 이 습관을 좀 고쳐야겠다. 그래서 습관을 고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또 우리는 세상에서 옮겨야 될 그런 것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땅에 소망만 가지고 살고 있었는데, 하늘의 소망도 좀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자기에게 소망이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사는 이런 자기가 되지 않습니다. 소망이 옮겨주지 않습니다. 자기는 세상의 지위나 명예는 소망은 해도 영원 무궁 세계에 그런 지위나 그런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점점 썩어져서 못 쓸 것인데 썩지 아니할 것을 좀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는데 썩지 아니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거기로 옮기려고 해도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우리가 늘 죽고 저주받을 그런 일 거기에서 옮겨야 됩니다.
자기가 한 행동하는 한 행동하면서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더 멀어지고 자기가 그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는 그 길 어서 벗어나서 이제는 생명이 자라가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로 옮겨갔으면 좋겠는데 이 옮기는 것도 참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잠깐 있다가 갈 잠깐 누릴 향락이나 몹쓸 그런 취미나 습관이나 이런 욕심에서 옮겨가서 영원히 기쁠 예수님은 십자가 넘어 있는 그  기쁨을 보고 십자가를 참았다 했습니다.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사신 것이죠.
그게 우리는 어떤 취미에 빠져 사느냐 어떤 욕심에 빠져 사느냐 옮기는 이 문제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도 지금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이런 아이가 되어야 되겠는데 늘 오락이나 하고 거기에는 관심이 없는 이 아이를 볼 때 이 아이의 마음이 공부하는 대로 좀 옮겨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옮기려고 해도 그것이 잘 안 됩니다.
땅에 소망 땅에 속한 것도 이렇게 옮기려고 해도 잘 안 되는데 땅에 소망 속한 소망을 하늘에 속한 소망으로 옮기고 삐뚤어진 데 빠진 자기를 올바른 데로 옮기려고 하는 이런 소망을 이루려고 해도 이것이 그저 소망만 가지고 탐심만 가졌지 참 이 일을 이루지를 못하고 있는 그런 우리들입니다.
무엇이든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기에게 수입이 오고 결실에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바라면 그만큼 거기에 대한 투자를 해야 되는 것이지. 투자를 하지 않고 얼마든지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생을 이루고 영원한 쾌락을 누리고 평강을 누리려고 하면, 이것을 심어야 됩니다.
썩을 것을 심고 욕된 것을 심고 유한한 것을 심고 죽을 것을 심어서 다시 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자 이것을 우리 마음에 영원한 것이 있어야 되겠고 최고의 기쁨이 있어야 되겠고 이런 기능도 있어야 되겠고 이런 지식도 있어야 되는데 이거 다 심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심을 것 생각에 심을 것 행동에 심을 것 뭐 이렇게 심을 것을 찾으려고 해도 이 심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 가지 면으로 이렇게 가르쳐 주셨는데 뽑을 것이 많고 옮길 것이 많고 심을 것이 있는데, 뽑고 옮기고 심을 이런 기회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룰 수 있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일을 하지 못하면 이 결실을 이런 수입을 우리는 영원히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만 살다가 죽어 그만이 아니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그런 우리기 때문에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면서 앞으로 이 아이가 어떻게 살 건가 어떤 결실을 이룰 수 있는 삶을 살 것은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서 습관을 고치도록도 하고 좋은 습관을 기르도록도 하고 또 속에 좋은 요소가 생겨져 가도록 할려고 애를 써 갑니다. 이러니까 그 자녀에게 삐뚤어진 요소는 가만 보면 자기 속에 삐뚤어진 요소입니다.
그 이것을 보면서 자꾸 그것을 치료해 보려고 애를 쓰고 또 좋은 자리로 옮겨가서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고 싶고 새로운 요소를 속에 심어서 결실을 이루도록 하고 싶은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도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만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 무궁세계를 보고 살기 때문에 나도 그러하고 내게 속한 사람도 영원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 이것을 뽑아야 되겠다. 이걸 옮겨야 되겠다. 이걸 심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있지마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우리도 하늘나라에 가서 좀 좋은 자리에 앉고 싶고 부요해지고, 싶고 무공세계를 생각하면서 이런 욕망이 자기 속에 생겨서 선생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구한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으면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뽑을 수 있고 옮길 수 있고 심을 수 있는데, 그렇게 되어지도록 내가 명령했을 것이다. 명령하면 그대로 순종하여 순종할 것이다. 순종할 것이다. 어떻게 여덟 아름 되는 뽕나무가 뽑히고 옮겨지고 숨겨지겠습니까? 이건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안 되는 일이지만은 겨자씨 믿음으로 하면은 이것이 이루어진다 말을 했을 것이다. 말을 하려고 해도 자기가 그것이 될런지 안 될런지 어찌 압니까 아무리 봐도 그것은 안 될 일인데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참 정신없는 사람 아닙니까 안 될 일인데 우리는 이 경험이 좀 생겨져야 됩니다.
겨자씨 믿음을 가져서 안 될 일인데 이 일이 이루어지는 전능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이것이 우리 속에 생겨져야 됩니다. 이 전능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면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명령하는 일을 반드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뽑히라 옮기나 심겨지라 말을 할려고 해도 자기 마음에 될까 안 될까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그런 행위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은 거기에 그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겨자씨 믿음이라 하는 것은 작은 씨라는 말만 아니고 그것은 생명 있는 믿음이라 말입니다. 산 믿음이라 말입니다.
산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이라 말은 자기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아는 요 믿음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아는 믿음이라 말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대로 아는 그대로 나도 아는 요것이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알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자 하느냐 하는 그대로 내가 하는 것을 두고 산 믿음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 산 믿음을 가지며 산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입니다. 자기 욕망대로 자기 생각대로의 그런 믿음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들어서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영감시켜 주시는 그 영감을 두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영감시켜 주셔서 하나님이 내게 내가 이 일은 이렇게 해라 이게 문제다 여기서는 내가 행동을 이렇게해야 된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영감시켜 주시는 그 영감을 받아서 그 영감대로 자기가 믿고 고대로 행하는 요것이 산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주시는 영감이라고 하면, 그 영감을 받으려고 하면, 우리는 우리 마음이 깨끗해져 가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영감을 접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데는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되는데 이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고대로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고대로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행위가 산 믿음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산 믿음이 바로 됐느냐 틀리게 됐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는 성경을 찾아보고 성경대로 되었느냐 하는 것을 보고 성경대로 되었으면 그것은 바로 된 산 믿음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는데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자기가 주관대로 성경 말씀을 선택해 가지고 지키는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것은 산 믿음이 되지 아니하고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다 행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죽은 믿음이 됩니다.
산믿음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직접 이렇게 해라 하고 알려주는 하나님의 직접 명령에 그 명령을 깨달아서 실행하는 행위가 될 때에 그 믿음은 산 믿음이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신구약 성경대로 한다고 해서 그것은 산 믿음이 되는 것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형편 처지대로 요 성구 저성구 선택에서 실행한 그 믿음은 자기가 행할 성구를 선택한 자기주장대로 한 행위지 하나님에게 피동한 그런 순종의 행위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주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데서 우리는 뽑고 옮기는 심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에 말씀 속에는 진리가 들었고 또 그 속에는 성령이 들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우주를 창조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를 창조한 전능의 능력을 가진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인격이 있느냐 인격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인격이 없는 참된 이치입니다.
전지의 지혜와 전능의 능력을 가진 진리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대로 행하라고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고 명령 하나님의 뜻이 요 신구약 성경 범위 안에 명령이요.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실 때에 이 성경대로의 그런 명령으로 자기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성경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따라 순종하는데 영감 따라 순종하는 그것이 성령을 따라 순종한 것과 똑같이 요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지 않는데 성구를 선택해서 고대로 행했다고 그것은 산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죽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고 명령 현실에서 하나님이 요렇게 해라 그런 생각이 났지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하신 명령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말이에요. 명령인데 명령을 가지고 성경에 비추어 보면 성경대로의 고 명령이라면 안심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맞다. 하고 요렇게 순종해 가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확실히 구별해 볼 수 있는 방편으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하나님이 알려주신 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산 믿음이 됩니다.
요 산 믿음으로 살게 우리 속에 뽑고 옮기고 심는 이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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