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2월7일 목새 주님의 노를 푸는 길

페이지 정보

본문

23120740(고린도 후서 5장 8-10절)
제목: 주의 노를 푸는 길
본문: 고린도 후서 5장 8-10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 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뻐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빛을 받기 전에는 담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반대할 수 없는 것은 세상에 많은 사람의 협조가 있어야 되겠고 수많은 사람의 도움과 많은 사람들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붙들리고 저 사람에게 붙들리고 단체에 붙들리고 회사에 붙들려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을 받은 이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창조주요 주권자요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이분이 영원 자존하시고 불변하신 이분이 계시고 이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난 이후에는 우리는 밤이고 낮이고 다른 것을 바라볼 리도 없고 사모할 이도 없고 위할 리도 없고 다른 어떤 것을 기쁘게 할리도 주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는 주님 한 분만 사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비유만 맞추어 살아야 할 우리지 다른 어떤 것도 비유를 맞출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할 때나 모든 것을 접할 때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주님 법에 맞추어서 이렇게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뻐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고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담대 한 자 몸을 떠나서 이런저런 제재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재를 받지 않는 이런 자로 천군 천사도 호령치고 다스릴 수 있는 이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주님과 동거동행이 되는 이것이 우리 소원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한 분 외에 더 원할 것이 없고 주님 한 분 외에 더 기쁘게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먹을 것이 있던지 없던지 어쨌든지 우리는 주님 한 분만 기쁘게 하는 이것이 가치지 이 외에 다른 것은 우리가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들어 나 선악간에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심사를 하는 것을 여기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선과 악을 가지고 심사한다고 했으니 선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선이오 악은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 악인 것입니다. 주님이 창조 주요 주권자인데 자기가 마치 창조주 주권자처럼 날뛰는 그것이 악이라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것이 악이요.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요 주님이 창조주요 주권자인 줄 알고 주님 위주로 주님 중심으로 사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히브리스에 말씀하시길 두세 증인이 있으면 이 사람은 죄인입니다. 이렇게 확실히 증거를 했기 때문에 증인이 있으면 죽여도 된다. 했는데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와 피로된 이것을 업신여기는 자는 그 받을 형별이 얼마냐 얼마나 크겠느냐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피를 속된 것으로 여기는 것 주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주으셨지마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며 우리를 어떻게 회복하겠느냐 해서 이것을 힘입어 살려고 하지 않는 이것은 전부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참주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것을 크게 느껴서 이것을 입고 이것을 벗지 않으려고 하는 이것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대해서 길이 참으시지마는 우리가 어떤 죄를 주님이 담당했는데 담당한 그 죄를 내가 알고도 내가 범한 어떤 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주님이 다 담당하여 사하여 주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주님이 죽기까지 하여 죄의 형별을 다 담당해서 우리를 그 죄의 형벌에서 죄에서 구출해 놓았는데 이제는 우리를 구원해냈기 때문에 이제 죄가 우리를 왕노릇 못하고 사망이 마귀가 왕노릇 할 수 없는 그런 우리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사해 주었으면 내가 어떤 죄를 지었으며 어떤 형을 받아서 멸망한 나에게 어떤 사죄를 입혀 주었느냐 하는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 감격하고 감사하고 이 은혜를 느껴 살아야 할 것인데 주님의 피를 속된 것으로 여기는 이것이 진노가 얼마나 크겠느냐 구약 시대에 대표적으로 짐승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면서 죄를 속함을 받는 이 일을 하도록 했는데 그만 이것을 속된 것으로 참 어리석게 이런 인간들이 죄지은 것을 이 짐승을 잡아가지고.
제사 들이놓고 죄사함을 받았다. 하고 안심하고 있는 참 그렇게 재물을 가지고 오면 우리는 고기 잘 먹고 살 수 있고 이러니까 나중에는 제사를 지내기 전부터 고기를 내놔라 내가 먹겠다. 안 주면 빼앗아 가겠다.
그렇게 하던 엘리의 자녀들은 그 이스라엘 백성의 그 제사장의 아들들이 그래 하다가 블레스의 사람과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속된 것으로 여긴 그런 종들은 다 여기에서 죽고 망하고 절단 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노여워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의 죄에 형벌을 대신해서 부요도 다 내어놓으시고 존귀도 내놓고 권세도 내놓고 영광도 다 내놓고 마지막 죽기까지 해서 죄의 형별을 받아서 우리에게 사죄를 입혀 주셨는데 그만 여기에 대해서 감각 없는 주님의 피를 업신여기는 이것 때문에 주님을 노하게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또 우리는 순종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전지자 전능자가 법을 정해 놓은 것이 있는데, 이 법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명령하고 있는 이것이 어떻게 됐는가 우리가 하나도 행하지 못한 것을 주님이 대신 순종해서 완성하신 이 순종 그래서 주님이 종처럼 창조주요 주권자요 왕이 왕이 되신 주님이 종처럼 순종했다.
그랬어요. 세상에서도 그렇게 할라 하면 그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주님이 이렇게 종처럼 사람 되어 와서 순종의 걸음을 걸어 의를 이루신 이 의라는 것을 우리가 느껴서 감사하고 이 은혜를 입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오늘 나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는 주님이 다 행하신 의요.
이제 그 의를 내가 힘입어서 내 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오늘 주님이 말씀을 읽고 들을 때 깨닫게 해주시는 깨달음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깨달음을 우리가 버리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이 깨달음 주셨다 주여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자기가 그대로 사는 것이 힘이 드니까 힘이 드니까 힘이 드니까 힘들다고 불평하는 마음 그대로 살기 싫은 마음 이것은 주님을 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순종에서 이룬 의인되 그 의을 자기가 지금 만드는 것처럼 느껴서 그만 업신여기는 사람이 되어 있다.
말이오 주님이 완전히 순종하여 완성한 의를 내게 입혀 주어서 그 의를 입고 살도록 그가 하나님의 어떤 무한의 은혜를 힘입을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의 축복을 다 받아 가질 수 있는 그런 말씀인가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만 말씀대로 사는 것을 무시하고 어리석게 생각하는 그것은 다 주님을 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이 의에 대해서 깊이 깨달아 감사하고 순종하고자 애를 쓰는 그런 우리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지옥불에 살을려고 작정하시고 영멸시키는 것이 하나님이오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가 된 그런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지 못하고 하나님은 우리 없이 안 된다고 우리를 당신의 기업으로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이 큰 은혜를 생각하고 나는 주님의 지체로 살겠습니다.
지혜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주님의 것되어서 주로 인하여 사는 자기가 되려고 하는 주님과 하나 되어서 주님 따라 동하고 정하는 이 자기가 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노하게 하는 것은 세 가지 사죄와 칭의와 화친 요 세 가지를 추님이 대신 담당하여 죽기까지 하여 고난당하시므로 완성하여 입혀 주신 이것을 모르고 이것을 무시하고 이것을 도리어 어리석게 뭐 그까지까지야 여기에 대해서 귀 너머 듣는 이것이 주님을 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주님을 노하게 하느냐 오늘 믿는 사람이 아니냐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가 이 대속의 수고를 이 크심을 깨달아 가야 할 것인데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주의 대속에 대해서는 크게 느끼질 못하는 이것이 주님을 노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님의 노를 푸는 이런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주님이 하신 세 가지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완성하여 주신 이것을 깨달아 감사하고 이것을 입고 벗지 않고 이것을 입고 사는 자기가 될 때에 이것을 나타내는 자기가 될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