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1월18일 토새 신앙생활의 법칙

페이지 정보

본문

본문:이사야 34장 16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었고 하나도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습이라.

 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봐라 이 세상은 어두운 세상이라 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이란 말은 인생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마귀에 붙들려 사는 이런 인생이 되어졌기 때문에  옳은 도의 길을 알 수 없는 이런 세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이 여호와의 책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 66권에 이 모든 말씀을 두고 말씀합니다.

자 세상에는 수많은 피조물들이 다 살고 있지마는 모든 피조물들은 다 피조물 하나하나 자체가 사는 길이 있고 죽는 길이 있고 점점 자라가는 길도 있고 그것이 커지고 존영해져 갈 수 있는 법칙이 다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그 존재마다 존재에게 속한 이치 있습니다. 그러면 식물이 나고 또 자라고 또 왕성하게 커져갈 수 있고 또 식물이 죽고 이렇게 되는 법칙이 다 있습니다. 동물도 그러하고 또 우리 사람도 법칙이 다 거기에 있습니다.

그 법칙을 어기면 반드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이 존재들은 각각 법칙이 있단 말이죠. 법칙 따라서 이루어지니까.

이러니까 그 모든 존재마다 노력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 법칙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이제 그것을 숙달시키고 또 연단 연승을 시켜서 법칙대로 잘 살려고 애를 써가는 겁니다.

그 모든 존재는 세상에 생겨졌으면 존재는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잘 자라갈 수 있느냐 왕성하게 될 수 있느냐 그것을 이치를 알고 그이치에 능숙하고 숙달되어지고 이렇게 되려고 애를 써 갑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하면 자체가 죽고 말기 때문에 그 사는 법칙을 살지 아니하면 안 되는 그런 것이란 말이죠.

이것이 모든 자연계시로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이것입니다. 그 우리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해서 생겨진 우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이 만드시고 그냥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너희 좋아하는 대로 너거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이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참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이끌어 살게 하시면서 너는 이 에덴 동산에서 살아라 그래 말씀했고 이 에덴 동산에서 다스리고 지키고 선악과은 놓지 말고 일반과를 먹고 이렇게 살아라 그런 법칙을 사는 법칙 행복되어질 수 있는 법칙 존귀해질 수 있는 법칙 실력 있는 자 될 수 있는 그런 법칙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데 인생이 이것을 무시하고 이 법칙을 어김으로 인해서 그만 영멸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출생하자마자 그때부터 죽어가서 완전히 영원히 죽어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불상히 여겨서 하나님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하시고 불러 구속한 성도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 준 이런 성도에게 다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 하나님이 내신 이 법칙을 바로 지켜서 살아봐라 이 법칙을 따라 살면 너희들이 살고 점점 부강해지고, 점점 존귀해지고, 점점 실력이 있는 이런 우리가 되어질 수 있을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타락한 이후에 이 법칙을 찾아서 이 법칙을 깨달아서 이 법칙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아니하고 세상 많은 사람들이 알고 듣고 배운 인간 지식을 따라 살면 성공될 줄 알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인간 지식이라 하는 것은 그것을 하나의 이치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법칙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인간지식을 과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다른 말로는 문화라 또 통계나 그 경험이나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오랫동안 경험을 한다. 그래서 참 한의학은 그러합니다.

경험 치료 방법이 한의학은 경험치료라고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이렇게 하니까 치료가 되더라 그것을 경험한 것을 가지고 모아놓은 것이 에 한의학이 때문에 왜 그러냐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느냐 그것은 모릅니다. 몰라도 옛날부터 그리 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리하면 그것이 치료되어지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찾아서 이렇게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으로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그와 같이 그런 오랜 경험을 기록해 놓은 것이 인간 지식이라 해서 통계라 경험이나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누리고 있는 것을 그런 문화라 또 이것을 과학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것을 많이 아는 사람이 지성인이라  해서 그런 교수를 그런 박사를 많은 지식을 가진 그 사람이 이건 이렇다 저렇다 하니까 참으로 그것이 옳은 줄로 알고 믿고 사는 이 걸음을 걷고 있는 오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 영멸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창조주가 내신 창조주가 정한 법칙을 맞추어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존재는 존재의 법칙이 있단 말이에요.

우리 사람도 저절로 생겨진 게 아니고 우리를 지은 창조주가 있기 때문에 창조주가 내신 사는 법칙 존귀해지는 법칙 부유해지는 법칙 커지는 법칙을 우리가 깨달아서 거기에 맞추어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어야 우리가 사는 길로 걸어갈 수 있고 커지는 길로 걸어갈 수 있고 부유해질 수가 있고 우리는 존귀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법칙들을 이치를 신구약 성경에 빠진 것이 없이 다 기록하고 있다.

그랬어요. 빠진 것이 없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어 이 말씀으로 우리는 생애 법칙으로 삼아가는 그런 우리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지식과는 다릅니다.

세상 지식은 유명한 학자가 박사가 말했으면 그 말씀들은 박사가 있을 때는 논리적으로 이렇다 이렇게 하니까 맞는 것처럼 보이고 또 이런 정치가가 권세자가 이렇게 해라 이래야 사는 길이다. 그러니까 참 그게 사는 길인 것처럼 보이지만은 그 말한 사람이 없어지고 나면 그 말한 말은 죽은 말이 되고 맙니다. 또 사람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할지라도 사람의 권위가 이제 왕의 지위에 있다가 쫓겨나버리면 말의 권위는 하나도 없어 아무리  학자요 박사라 해도 이제 거기에서 쫓겨난 이런 사람이 되면 말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무능한 말로 다른 사람의 기억에도 없고 또 실제로 그런 말을 했지만, 말하는 그것이 실제 역사하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고 듣고 배우고 있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된 이치요 이것은 참된 이치란 말은 창조주의 뜻이라는 말이에요. 진리란 말은 대주재자의 뜻이오 이 말씀 배후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 내재해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처음 기록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이 말씀 속에 진리가 내재해 있고 그 진리 속에 영감이 내재해 있고 영감 속에 하나님이 내재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상고할 때 이 말씀을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이 말씀을 대우하는 것은 이 말씀 속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구약 성경을 이 세상 책과 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없는 가운데 모든 물질계를 창조했고 물질계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영물들도 피조물입니다.

영물들도 다 창조한 그 말씀입니다.  창조하신 그 말씀이 이제 창조하신 것을 심판해서 멸하시기도 하고, 보호하고 양육하고 크게도 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심판해서 불로 태우기도 물에 침몰시키기도 세계 민족들을 멸하기도 하고, 번식도 시키고 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패전하기도 하고, 복되게도 하고, 황무지가 되게도 합니다. 이 전쟁에서 이 나라가 왜 패전했느냐 이 사람들이 왜 전하느냐 이것이 다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없어질 변동될 것을 1차적으로 창조해 놓으시고 이 창조해 놓은 것을 이 차적으로 완전하게 영원하게 불변의 것으로 다시 재창조하기 위해서 나타난 이 말씀입니다.

이렇게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에 우주를 만든 능력을 가진 이런 말씀이 얼마나 크고 군위 있고 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바로 우리가 인식을 가지고 살려고 해야 합니다. 신구약성경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전능의 말씀입니다. 전지의 말씀입니다. 전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재창조하기 위해서 죽을 것을 죽지 아니할 것으로 재창조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존재들이 어떻게 행하느냐 그 행함을 따라 심판하는 말씀입니다. 심판해서 그대로 보응하시고 섭리하는 말씀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을 따라 이 말씀에 맞추어서 사는 그런 우리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죽을 것을 죽지 않도록 썩을 것을 썩지 않도록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역사하고 있는 이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알고 이 말씀에 맞추어서 이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로 살면 우리는 여기에서 얼마든지 우리가 살고 우리가 자라고 우리가 존귀한 자가 되고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부지런해서 부요한 자가 되는 것 아닙니다.

사람이 부지런 하면 부유해지는 이런 자기가 될 줄 알고 부지런히 일합니다. 그러나 부지런함으로 빨리 망하고 크게 망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맙니다. 자기가 부요해지려고 하면, 부요해지는 법칙을 따라 살면 부요해지게 됩니다. 자기가 커지는 법칙을 따라 살면 커지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주가 내신 법칙입니다.

죽고 망하는 이치에 있으면 약만 먹으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 법칙은 생각지 않고 살면 약을 아무리 먹어도 사는 길이 없습니다.

사는 길은 사는 법칙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하는 법칙 가르쳐준 이 법칙을 무시하지 말고 이 법칙을 깨달아서 이 이치를 따라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힘을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우리가 힘을 쓰면 된다. 부지런하면 된다. 절약하면 된다. 아무리 그래도 부요해지는 법칙을 지키지 않고는 부요해질 수가 없고 커지는 법칙을 지키지 않고는 커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3대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대로 이 절기를 바로 지키는 데서 우리는 살고 부강해지고, 가치 있어지고 우리는 보호를 입을 수 있고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를 보호해 주어도 이걸 믿지 않고 힘입지 않는 자는 이 보호를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 40년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이 보호를 기념하는 기념으로 너희가 3대 절기를 지키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이 장막절의 기념은 하나님이 우리는 죄와 사망과 마귀가 우리를 망치고 우리를 멸망시키고 우리를 해치는 역사를 합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입혀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이 사실을 깨달아 알고 믿는 사람이 되면 이걸 벗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는 자유 하시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