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10월31일 화새 산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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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120(요한 계시록 1장1-3절)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본문:요한 계시록 1장1-3절
 예수 그리스도에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수 그리스도에 계시라 신구약 성경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계시라 하는 것은 예수의 계시요.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세상에 오신 그 분이 왜 사람 되어 세상에 오셨느냐? 그것을 우리에게 성경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시고자 하는 이유가 그저 인간이 불쌍해서 불쌍한 멸망받는 불쌍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이 사람 되어 왔는가 우리가 불쌍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영원전 하나님의 목적으로 인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이 세상에 오셨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타락시키시고 죄 가운데 살게 하시고 그런 가운데서 우리를 불러서 구원하시는 이 일을 하신 이것을 가만 보면서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을 정하셨으면 그냥 하나님 형상대로 우리를 사람을 만들어서 그냥 영생하도록 이렇게 하면 될 것인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도록 고통을 당하도록 어렵고 힘든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도록 이렇게 하셨는가 우리가 이것을 바로 깨닫도록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마귀를 당신이 만드시고 죄를 만드시고 이 사망을 만들어서 이런 속에 우리를 이끌어 살게 하셨는가?  이것을 바로 깨달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죄 짓는 죄 속에 나를 살게 하시고, 또 왜 죄를 지었나 책망하시고 심판한다고 하시고 이렇게 하신 여기에 대해서 참 감사가 나옵니다. 감사와 찬송이 나올 수가 있어요.
이 목적을 우리가 바로 알고 나면 세상 어떤 어려움의 어떤 입장 처지에서도 우리는 담대하게 이 계시의 말씀을 받아서 계시로 사는 그런 우리의 걸음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 다 기록해 주신 것이라 해서 이 신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에 계시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에 계시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서 우리를 완전히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죄 없는 영원히 완전히 죄가 없는 이런 자 되도록 하시려고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은혜를 그냥 우리가 사죄를 입었으니까. 회개만 하면 되겠다.
하고 회개하고 그렇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알고 이 공로를 의지해서 주님 앞에 자기의 잘못된 그런 인생 걸음을 걸었던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자복하면서 이 죄를 사해 주신 그 은혜를 깨달아서 감사하는 여기에서 사죄를 받게 됩니다.  그 죄가 있고 또 죄를 자기가 지었고 죄에 대해서 사함을 입혀주시는 이런 과정이 없다고 하면은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 억지로 하나님에게 순종한다고 이렇게 할지라도 하나님이 필요하다 참 하나님이 좋다.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을 전부로 삼아야 삼아서 살아야 되겠다. 이 사람이 안 됩니다. 뭐 하나님으로서도 내가 망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 필요합니까? 하나님 필요가 없어요. 내 힘으로 살지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데 죄가 있고 마귀가 있고 사망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나는 주님 오시면 안 되겠습니다. 하고 주님에게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이런 관계를 깨달아 알고 나면 정말로 주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두고 죄 있는 것에 은혜가 돼 있다. 죄가 있는데, 죄가 있으면 망하는 것밖에 없는데 은혜가 더 있다는 말은 그게 무슨 말이냐 죄가 있다고 어떻게 은혜가 더 있겠나 그말씀씀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라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기 때문에 죄로 인해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 수 있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이런 자기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가운데 내가 하나님을 닮아가야 되겠다. 하나님과 같은 내가 돼야 되겠다. 그런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런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예수님이 사람 되어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 오셔서 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왔으니까.
얼마든지 말씀을 잘 순종하고 얼마든지 이 당신 생각대로 하면 되니까. 그렇게 했겠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가 되셨다 그래 말씀했습니다. 인자가 되셨다는 말은 창조주의 권세를 다 내려놓은 겁니다. 주권자의 권세를 다 내려놓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참 사람이 됐다. 그렇게 말합니다. 자꾸 인제 그래서 요한복음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가 참 포도나무라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확실히 알고 믿는데 왜 당신이 또 당신을 보고 나는 참 포도나무요 그렇게  말씀했을까?
 그것이 나는 참사람이다. 나는 참사람이다. 신으로서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참 사람이다. 그래 참 사람인데 참 사람이 되어서 영과 마음과 몸이 있는 대로의 참사람으로서 이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내 생명이 되고, 내 주인이 되고, 나는 하나님에 것되어서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내가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 인제 그것을 두고 인자가 됐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야 하나님이신데, 얼마든지 그래 하지만은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리 삽니까 우리는 그래 못 사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못 살 일을 당신이 자꾸 이렇게 살아라 하면 그거 어떻게 됩니까? 그 말이야. 맞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쉽고 어렵지 않지만은 우리보고 자꾸 이 말씀대로 살으라고 하면은 그거는 맞지 않는 거 아닙니까 이래 할 수 있지만은 그게 아니라, 하나님은 그래서 인자가 되셨다 그랬어요. 인자가 되셨다 그게 인자가 되셔서 우리 대신 완전 순종해 가지고 이제 이것을 우리에게 입혀줘서 우리로 이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으니까. 우리도 할 수 있단 말이다.
우리도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이 그리 사셨으니까. 우리도 주님을 내 속에 모시고 나는 주의 것되고 주님의 지체가 되어서 이렇게 살려고 하면, 살 수 있고 이렇게 살면 이제 주님이 상속받은 모든 소유를 이제 우리에게 유업으로 상속시켜 주시고 이러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거부가 되어서 살 수 있는 영무궁토록 우리는 온 세상을 다 차지한 그런 거부로서 살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계시라는 것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이 계시의 말씀을 가르쳐 준 것이니까.
성경을 읽을 때 뭘 깨달으려고 해야 되느냐 뭘 알려고 해야 되느냐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그런 것만 소망하는 사람은 정말로 이 구원과는 천리 만리로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예수 믿는 일에 초보의 그런 걸음입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에는 예수의 계시가 있다. 다시 말해서, 죄를 사함받는 죄가 하나님 하나도 없는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우리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냐 예수님이 대신 형을 받아서 사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자기가 자기 속에 죄가 보입니다. 또 보니까, 내 속에 또 비뚤어진 게 보고 난 다른 사람에게 참 말을 못 하는데 다른 사람은 보고 야 사람 참 깨끗한 사람이다. 의인이다. 이렇게 보여져도 자기가 자기를 보면 자꾸 더러운 곳이 보입니다. 자꾸 삐뚤어진 게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노경에 가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입니다. 그렇게 자복을 해야 돼요.
왜 자꾸 꼭 그런 게 보이도록 그랬느냐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잘못된 것을 일생 동안 다 그것을 깨달아 알고 사유함을 받아서 그것을  그 사함을 받아버리니까 죄가 이제 없는 자기죠 죄만 없는 자기가 되는 거리 것이 아니고 죄 짓던 자기가 완전히 죽어버리는 겁니다. 완전히 죽은 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죄짓는 행동하든 죄 짓는 기능을 가졌던 죄 짓던 기능은 완전히 다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어버리니까 자기 속에 기능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죠 죄를 지을 수 있는 기능이 없어지고 맙니다. 근데 이것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 가야 됩니다. 계속해서 이 사죄의 은혜를 힘입고 그러면 어찌 됩니까? 살아가면서 죄가 깨달아지니까 주요 이제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었습니까? 하면서 은혜에 대한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고 주여 다시는 그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런 죄를 을 짓는 자로 살지 않겠습니다. 주님 용사하여 주옵소서 뭐 계속해서 그렇게 했는데 또 돌아보니까, 또 나오고 그걸 또 찾아서 얘기하고 이래 하니까 자기는 주님과 삐뚤어진 것은 하나도 없는 완전히 깨끗한 자로 이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삐뚤어진 것이 없도록 완전히 삐뚤어진 것이 없이 딱 하나가 될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을 느끼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참 어떤 때는 이렇게 가다가 보니까, 내 속에 또 이런 죄가 나오고 이런 죄가 나오고 그러니까 주여 참 주님 앞에 얼굴 들 수가 없습니다. 참 이 나는 철면피입니다. 완전히 철판을 깔고 주님 앞에 또 구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참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서는 주님 앞에 구할라 하니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아이고 내가 이렇게까지 죄인인데 내가 어떻게 구하겠노 내가 참 하나님 앞에 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한 내가 됐다. 하고 낙망을 하고 있다가 그래도 그것도 다 주님이 대속해 준 것을 내가 깨닫고 여기에 감사하고 그만큼 주님이 없으면 안 되는 이거 이런 자기가 되도록 하시는 주님의 사랑인 것을 깨닫고는 주여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런 죄를 깨닫게 하고 이런 죄를 사함받게 해 주십니까 이러면서 이 감사하는 그런 자기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에 예수 그리스도에 계시라 신구약 성경을 우리가 읽 연구하고 또 설교 말씀을 듣고 이런 가운데에 누가 깨달아집니까 종된 자만 깨달아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 목사님은 뭐 설교를 한다. 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말또 하고,  한 말또 하고, 지금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앞도 뒤도 없는 그런 말만 하고 있네 난 도무지 모르겠다. 은혜 값은 내가 여 못 있겠다. 이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아무리 설교를 몬하는 사람이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종이 되어 있으면 자기 귀에 들립니다.
종이 되어 있으며 그래서 늘 제가 과거에 좀 부러워한 사람이 있는 것은 송종관 목사님이  그 나보고도 오늘은 이 선생 설교 좀 해라 주일 학교 설교해라 이렇게 해라 시켜다 말이야. 그래 놓고는 목사님이 필기장 딱 들고 와서 앉았고 그것도 딱 꿀어앉아 가지고. 받아 적고 있네 이러니까 이 설교하는  뭐 얼마나 힘드는데 그래 여기도 은혜 받을 수 있다. 이런 반사가 설교를 해도 나는 은혜 받을 수 있다. 하고 착 앉아서 듣는 거예요.
그거는 내가 잘 안 되는데 참 존경이 된다. 어떻게 저렇게 은혜 받으려고 했을까? 그게 참 그게 될까 또 말씀을 듣고 난 뒤 맞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나도 요번에 은혜 받았습니다. 그런 내가 회개를 합니다. 이러면서 이렇께 말씀을 듣고 하시는 그런 것을 가만 보면서 느껴야 이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종된 자 종된 자가 되면은 어떤 말씀을 해도 거기에서 자기가 은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또 그리고 교역자가 전하는 데는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해야 되지 그거 아닌 다른 거를 아무리 전해봐야 그 전하는 것은 설교는 헛일입니다. 그래서 설교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있는 설교를 해야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있는 그런 설교를 하지 아니하면 그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의 그런 책들을 읽고 신문 쪼가리를 보고 뭐 자 성경 한문 한 문장 읽어 놓고 이런 거 저런 거 가져와 가지고 이렇게 아주 멋지게 설교를 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없었으면 그 설교는 엉터리 설교입니다. 그러니까 심판받을 설교가 되었습니다.
심판받을 설교 이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있는 설교란 말은 죄를 벗을 수 있는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것을 가로쳐 줘야 된단 말이여  설교를 듣고 또 교인들은 아이고 목사님도 날 저주하네 내 죄를 어떻게 자꾸 드러내서 날 보고 이렇게 공격합니까? 이런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은 종이 되지 않으니까. 말씀을 바로 듣지를 못해서 그렇습니까? 참 답답한 일이죠. 사람을 공격할 이유가 없는데 설교를 참 바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입을 딱 붙들고 이렇게 당신이 증거하게 하시는데 제 마음대로 증거가 안 됩니다.
말을 할려고 하다가 엉뚱한 말을 할라 하면 입이 그만 말이 안 돌아가 버려요 말이 안 나와요. 안 나와요. 이런데 하나님이 붙들고 역사에서 가르쳐주는 그런 말씀인데도 자기가 종이 되지 않아서 그러는데 그게 아 이 말씀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이렇게 해 가지고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는 것은 참 잘못인 것입니다. 그래서 증거하려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해야 됩니다. 예수의 증거는 사죄를 증가하는 것이오 둘째로는 칭의를 증가하는 것입니다.
칭의를 증가하는 그러면 성경을 66권을 읽어 보고 들으면 거기에서 주님의 속성을 알려주고 주님이 어떤 분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나 그것을 다 알려주고 있는 말씀이라 말이에요. 그래서 어떤 분은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이 역사서를 얘기해 주니까 재미가 있다. 하는 사람도 있고 뭐 이렇고 저렇고 얘기를 한 그것만 있으니까. 거기에 진리를 발견하기 어렵다 하고 잘 모르겠다. 하고 이렇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에 읽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이 옳은 이치인가 옳은 진리가 무엇인가 그것을 알려주시려고 어떤 이치를 알려주려고 그렇게 하고 있다. 하는 것을 거기에서 깨달아 가야 됩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복음을 정할 전하면서 이제  어린아이에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신 일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예수님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했는가 그게 아니란 말이야. 이게 역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어린아이 하나가 거기에는 그게 다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가 먹을 것 가져오시 있으면 좀 가져오라고 해 봐라 이렇게 얘기할 때에 지금 식사 때가는 됐는데 자기 먹을 걸 그때는 먹을 게 귀한 그런 땐데 그걸 달라 하니까 그럼 자기는 굶는단 말이오 예수님이 먹을 걸 달라 하니까 아이고 예수님이 말씀을 증가하고 나니까 시장하신가보다 이렇게 생각을 해도 그 도시락을 많은 사람 중에 도시락 가져온 사람도 있고 안 가져온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데 자기 도시락을 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없고 어린아이 한 사람은 내 도시락 이것 드리십시오. 이렇게 예수님에게 바쳤단 말이에요.
게 그게 중요한데 그것은 간단하게 이렇게 어린아이가 도시락을 내놨다 그러니까 강제로 빼앗아 왔는가 그리 빼앗아 올 수가 없지 않겠소 도시락을 갖다 준 것을 보면 예수님에게 갖다 준 것을 보면 예수님이 누가 도시락 가져온 게 없나 아이고 배가 고프네 식사 때가 됐는데 이렇게 했다고 볼 수가 있지 않겠소 그러니까 도시락을 아이고 내 도시락 선생님에게 이걸 갖다 드리십시오.
그러니까 선생님 그걸 가지고 축사하시고 난 다음에 나눠주라 이렇게 자기에게 적은 요소인데 주를 위해서 주님 위해서 바치니까 그것이 여러 수십 배 수만 배로 확대가 되어진 것을 그걸 가르쳐주고 있는 이치가 그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들은 뭘 좀 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쓰라고 하면, 아까워가지고 못 내는 거예요. 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은 자기가 주를 위해서 바치면 자기는 손해인 것 같지만 손해가 아니고 자기에게 자기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자기가 아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단 말이에요.
자기가 필요한 걸 다 구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필요한 걸 다 넉넉하게 줄 수 있는 이런 일이 되어진다 그런 거 같으면 이 이치를 깨닫게 해 주시려고 이 속에서 이걸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한 사건이지만은 신구양 66권의 이 말씀 속에서는 여기에서 가르쳐주는 그런 이치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원하시는 그것이 무엇이며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 어떤 성질의 하나님이신가 어떤 요소를 가진 당신인가 그런 것을 다 알 수가 있는 이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을 힘입을 수 있는 것이 여기에 다 들어있단 말이에요.
그래 이런 심정을 가지고 이 마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니까 읽어보자 게 한참 나도 성경을 읽어버리면 이건 무슨 말이지 왜 이 말을 했느냐 그래 어떤 때는 그래요. 족보를 읽으면서 누가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이렇게 계속 적어 놓은 거예요.
이건 무엇 때문에 여기에 무슨 진리가 있노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굴 낳고 그렇게 있다가 죽었더라 누구를 낳고 있다가 죽었더라 그건 뭐 거기에는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종되지 않고 내가 잘못되어서 못 알아먹고 있는데, 말씀 또 말씀 속에 있는 것을 가지고 목사님이 이제 설교를 이렇게 탁 하는데 그때 들으니 그때 가서 거기 가서 들으니까. 깨달아지리야 야 이 촉보가 중요한 이 촉보가 바로 이것 때문에 가르쳐준 거구나 그런데 나는 캄캄하니까 종이 되지 않으니까. 말씀을 읽어도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모르는 거예요. 그게 종이 되어져야 거기에 대한 위치를 깨달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낙망하지 마라 결국 자기가 종이 돼야 됩니다. 그것을 두고 백 목사님은 실행해 봐라 실행해 봐라 실행해 봐라 실행해 봐라 니가 말씀을 알라고 깨달으려고 배울라고 이렇게 다르게 할 거 없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은 그것을 실행하면 깨달을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종되라 말이야. 종이 돼라 내가 말씀을 듣고 구경하고 넘어가지 말고 종이 되어져 있을 때에 또 새로 깨달아지고 새로 깨달아지고 그런 것이지.
네가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왜 어떻게 하나님이 말씀을 깨닫게 해주느냐 이거 그래 자기가 요번에 요것을 깨닫게 해주셨으니 내가 잊어버리지 않고 이 말씀을 잡고 내가 살겠습니다. 하고 이렇게 순종하고 또 순종하려고 이렇게 보면 깨달아지고 이렇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은 의를 입는 계시라 옳은 이치 주님이 어떤 분인가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가는 힘입을 수 있는 길들을 가르쳐주고 있는 그런 이치라 또 하나는 이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 수 있는 그 계시라 그러니까 이 계시를 그 받아본 사람은 이 계시를 받아본 사람은 느낍니다.
성경을 신구약 성경을 읽고 듣고 자기가 종되어 살려고 애를 써 본 사람은 이제 뭘 일어나는 것도 보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려고 하는구나 그래 알게 되어져가지고. 그 전에 교육자회 때 제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강 목사님이 강행수 목사님이 우리 기도해야 됩니다. 주일날 시험치는 것 이건 못하도록 달 날 시험치도록 이렇게 기도해야 안 되겠습니까? 하고 한 번 얘기하고 두 번 얘기하고 몇 번 얘기했어. 나 그래 하면  듣고 목사님 이제 그거 그만 합시다. 그거 있어야 안 됩니까? 주일날 시험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놔야 됩니다.
그래야 그거는 그걸 있게 한 것은 우리를 길러가게 하기 위한 당신의 역사인데 왜 그걸 가지고 우리가 자꾸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까? 우리가 시험에 이기면 다 이기면 그거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없애버리고 고쳐주실 것인데 현실 주신 그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이 있어서 하신 것인데 그걸 막을라고 이를 악물고 온 나라 이렇게 유명한 사람 실력 있는 사람 다 동원해서 그걸 막으려고 애를 써갑니다. 헛일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 아시려고 한 것은 우리를 길러가기 위해서 당신이 이렇게 하셨는데 그걸 그릴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 뻔히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일을 하실려고 하고 있는 게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 이런 전쟁을 보면서 가만 보면서 이 뭐 하마스 편을 들기도 하고, 러시아 편을 드는 사람도 있고 우크라이나 편을 드는 사람들이고 그러지만은 우리는 그런 것을 보면서 그걸 하라고 한 게 아니거든요. 거기에서 오늘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 사건이 우리 귀에 들리게 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준비하라고 이렇게 하고 계시는가 그걸 알아가야 돼요. 우리에게 크고 작은 모든 일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당신이 주권을 가지고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이 지금 이거 하실려고 하고 있구나 그걸 깨달아서 주님 나도 그거 하겠습니다. 내가 거기에서 요 의를 하겠습니다. 난 주님 따라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이 당신이 왕으로서 당신이 주권자로서 주재자라서 당신이 하시는 역사에 나도 하나가 되어서 하나가 되어서 움직이는 연습을 내가 해야 됩니다. 게 그거 연습을 해야 되는 것은 앞으로 내가 왕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왕이 되기 때문에 이 실력을 길른 사람은 길러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왕으로서의 일을 할 수 있지만은 그렇지 못하면 자기는 왕으로서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세상에 살 때에 모든 일을 하는 데서 가만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라고 하는구나 하나님 나도 그래 하겠습니다. 그 일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의하고 따르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 걸어가는 연습을 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은 자기 것을 내놓고 내 것을 하나님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받아줘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것은 내 것은 완전히 죽여버리고 하나님만 내 안에 와서 나를 주장하고 나는 하나님에 것되어서. 주님과 하나 되어서 주로 인하여 움직여 가는 그 자기가 되는 것이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은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않고 당신은 완전히 죽고 당신 안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이 자기가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은 자기는 완전히 죽고 자기는 완전히 죽고 자기 안에 하나님이 생명되고 주인 되고 머리 되고 이래서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단 말은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려고 하는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려고 애를 써 가야 합니다.
이렇게 순종하려고 할 때 이 구원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요. 그래서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예수의 계시를 받아서 사죄를 입을 사지를 입을 수 있는 이 은혜를 입어야 되겠고 칭의를 입을 이런 은혜를 입어야 되겠고 화친을 입을 이런 화목을 화목의 은혜를 입어야 되겠고 이 은혜를 입어서 이제는 우리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실력을 길러가야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사는 것은 우리가 제사장으로 사는 것이오 선지자로 사는 것이오 왕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 사는 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 모든 사람이나 모든 만물에 대해서 죄 없는 자 되어지도록 죄 없는 세계가 되어지도록 죄 없는 피조물이 되도록 만드는 이 일을 내가 해야 됩니다.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모든 사람이 되게 하고 만물이 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따라서 동하고 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이 일을 내가 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예수로 살아서 그리스도가 되어져 가는 이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되어서 가는 이 길은 자기가 제사장이 되어서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 줘야 됩니다. 왜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주면 주님이 우리 죄를 사해주신다고 그랬지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줘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뭐 신부처럼 고해성사를 받고 그래서 너 이제 죄 없다. 이렇게 만들어 줘야 되는 거 아니오. 그렇게 해서는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되느냐 뭐 내가 죽으면 것이되는데  그러는데 뭐 어떻게 죄를 사해줄 수 있단 말이오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은 주는 것은 주님의 대형을 입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역자가 교회에 가면 교인들의 죄를 벗겨줄 수 있는 교역자가 돼야 되는데 이게 어렵습니다. 말하면 우리 집 나를 정죄한다. 하고 나 공경한다고 하고 도망가기 때문에 도로 싫어하고 이래 하기 때문에 말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죄다 이게 죄다 말씀을 증거하는 가운데 자기 속에 삐뚤어진 것이 드러나고 보이고 그 죄를 자기가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받는 이런 성도가 되게 만드는 이 사람이 되는 것이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교역자로 인해서 자기는 죄를 사함받는 이런 걸음을 걷게 되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를 사함받고 또 교역자에게 옳은 이치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고 이것을 힘입을 수 있도록 이게 옳은 진리다 옳은 이치라 이것을 가르쳐 주어서 이걸 힘 입게 만들어 주니까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백영희 목사님이 말씀을 잘 가르치니까 전국에서 사람들이 자꾸 거기로 모여듭니다. 그분에게 가야 옳은 이치를 배울 수 있다. 이게 자꾸 모여들어 우리는 종으로서 참 요새 뭐 이런 진리를 가르쳐주면 듣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참 옛날과 다르다 하는 그런 것도 많이 느낍니다.
이 도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거는 참 여기에 대해서 이게 무엇인지 모르니까 이 도로 사는 것이 이게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이걸 모르는 그러니까 여기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지를 않아요. 그래서 참 이 도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나면 이런 길을 걷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데 우리는 아무튼 종이 되어 사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 길을 걸어야 참 이것을 깨달아 알 수 있고 게 여기에  사도 요하는 종이 되어서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천사를 보내어 알려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종이 되면 성령을 보내어서 알게 해 주십니다. 새롭게 깨달아지고 느껴지고 감사하고 이 말씀대로 따라 살고 싶어 가는 그것은 그가 종이 되었기 때문에 종으로 살다가 이 말씀이 깨달아지고 요대로 지켜 살고 싶은 심정이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 이러니까 예수로 우리는 살아서 예수의 은혜를 힘입어 예수의 계시를 받고 예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는 제사상 노릇을 잘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우리는 선지 노릇을 해야 됩니다. 선지 노릇 하는 것은 모든 교인들이 볼 때에 우리 목사님이 무엇같이 보여줘야 되느냐 예수같이 보여져야 됩니다. 오늘 우리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안 믿는 모든 사람이 볼 때 예수같이 보여야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쟁이라고 말을 듣습니다. 예수를 져여줄 수 있어야 돼요. 예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자기가 돼야 됩니다.
게 이렇게 되어져 가면 교인들은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면, 목사님 얼굴만 쳐다보면 옳고 그른 것이 환하게 보여질 수 있는 그런 걸음을 걷는 것이 교역자의 걸음인 것입니다.  벌써 목사님만 척 보면 그래야 어떤 사람은 목사님 보고 보면 다 아니까 다 알고 자기 양심의 끄리낌을 하게 되니까. 그만 목사님이 보고할 필요도 없다. 살짝 도망가자 살짝 이렇게 하자 이렇게도 많이 해요.  벌써 목사님에게 말하면 말하자마자 자기 벌써 목사님과 말하자마자 자기 마음이 와버리는 거야.
환하게 열려가지고  이거 틀렸다 저거 틀렸다 이게 옳다 이게 판정이 나버려 게 그런 연습은 제법 해봤어요. 나도 교육자 앞에 가서 뭐 물으니까. 뭐 목사님 뭐 이런 이렇게 하는데 얘기하는데 벌써 나한테 답이 와버렸는데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지 알았습니다. 그러면 돌아오게 되죠. 그 벌거 벌써 밝은 사람한테 가니까 자기도 밝아져 버려요 그게 선지자 노릇을 바로 하면은 선지자로서의 그런 대우를 받게 되어지죠 이 선지자가 돼야 됩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인도하는 인도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인도라 사람인데 하나님의 인도라 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까지의 그런 인도가 되어질 수 있는 우리의 신앙걸음이 돼야 됩니다. 이거 뭐 대번에는 안 되지만은 연습을 해야 돼요. 자꾸 연습해서 내가 예수의 은혜를 받아서 살려고 하면, 제4사 선지자로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왕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움직여 그리고 세상이 움직 지겨져 갑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 겁니다. 참 어렵지 않아요.
어떻게 사무엘이 말하는 대로 다 되겠습니까? 그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왕으로서 세상, 즉 뭐 군왕제도에서의 그런 왕이 되어서 그렇다는 말 아닙니다. 왕으로서의 위치를 왕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 따라 동하고 정하고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고 가르치고 지도하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져 간단 말이오 그래서 야 이건 암만 해도 이게 잘 안 되는데 내가 아직 이거야. 잘 안 되구나 또 예수의 계시를 받아서 제사장 선지다 왕직으로 살아야 되겠다.
이 연습을 해야 되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이 직을 감당해야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는 영원히 제사장 선지자 왕직으로 살아야 할 것이 우리의 직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사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애를 써 가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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