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0월30일 월새 믿음 있는 사람된 원인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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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010(히브리서11장1-2절)
제목: 믿음 있는 사람이 된 원인은 무엇인가?
본문: 히브리서11장1-2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 앞서간 많은 선지 사도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믿음있는 선지 사도들이 되어 졌는냐? 참 이렇게 독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된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이런 사람으로 살게 된 것이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이것을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주일 말씀도 베드로가 물 위에 그냥 뛰어내려서 물 위로 걸어가게 된 그런 믿음이 있게 된 이것도 물위를 사람이 어떻게 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도 물위로 걸어가겠습니다.
하고 그렇게 물위를 뛰어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신앙을 볼 때 아주 이분이 굉장히 믿음이 좋은 그런 분입니다.  이분도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이 믿음이 건전하고 독실하고 또 믿는 동역자들에게 대해서도 신앙이 아주 독실하고 진실한 그런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계시면서 직접 불러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두고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전한다고 박해를 하던 사람인데 그렇게 믿는 사람을 다 잡아죽이려고 하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독실한 그런 신앙의 사람이 되어졌느냐 참 사도바울은 복음을 자기가 전하면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수없이 매를 맞고 배고픔과 추위와 그런 대적들이 죽이려고 하는 그런 가운데서 끝까지 교회에 대한 그런 끊임없는 충성을 한 그런 걸음을 걸었습니다.
이 사도 바울이 걸어간 신앙 걸음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충성된 그런 신앙걸음을 걷게 되었는가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었느냐 이분의 신앙걸음을 우리가 좀 배울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이 사도 바울은 안 믿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불신사회에 가서 이방 국가에 가서 말이죠.
이렇게 복음을 전할 때에 흠없는 그런 신앙 생활을 하고 이렇게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 복음이 전해져 오게 된 것입니다. 그 사도 바울이 이렇게 전했기 때문에 물론 베드로도 이방인들에게 조금 전하기는 전했어도 우리에게 전해온 이 복음은 사도 바울를 통해서 이렇게 전해져 온 그런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한 후에 예수님의 부름을 맞아서 예수님이 등용해서 사도로 세워서 이렇게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가만 보면 그는 많은 하나님 섬기는 사람을 핍박하는 일에 제일 앞장서서 일하던 그가 이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에 제일 앞장서서 충성하는 그런 걸음을 걸었습니다..
이 길을 걷는 데는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환란을 겪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도 한 번도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는 일을 하지 아니했고 모두가 배반하고 자기 혼자 있어도 그는 슬퍼하거나 외로워하는 일 없이 고독한 그런 신한걸음이라도 그는 혼자 묵묵히 이 신앙걸음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구비한 신앙걸음을 걸어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사도 바울이 어디에서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느냐 사도바울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모든 동역자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불신 사회에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만물에 대해서 온갖 환란에 대해서도 한 번도 신앙이 요동되지 않고 변동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형 판결을 받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게 되는데 감옥에서 순교의 판결을 받고도 그는 주님에 대한 열심이나 기쁨이나 충성이나 이런 면이 원만하고 변동되지 아니하는 이런 신앙의 걸음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어디 쓰나 어떤 입장 처지에서도 충성하는 일을 한 것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 보니까, 하나님을 참 믿을 만하고 하나님은 참 든든한 분이요 자신이 손을 잡고 영원히 여생을 살 만한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이러니까 하나님께서도 한 번도 사도바울를 혼자 날뛰도록 두지 아니하시고 언제든지 함께 계시고 그는 고난도 컸지마는 고난보다도 주님의 더 큰 위로가 있다는 것을 그가 항상 느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이하에 보면, 항상 주께서 내 곁에 서서 계셨다 또 사자의 이빨에서 나를 건지셨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그 길을 걸어가니까 거기에서 주님이 당신 곁에 계시는 것을 느끼고 위로해 주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다니엘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은 순종 해보니까, 확실히 맞다. 여기 틀림없다. 하는 것을 느끼니까 말씀을 순종하기를 단행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풍랑이 일어난 그냥 풍랑이 아닙니다. 배가 파산될 만큼 파도가 아주 높이 치는 그런 때입니다. 그런 땐데 그런 파도치는 그런 바다 물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선생님이 예수님께서 안심해라 내라 하는 말씀을 듣고는 그만 선생님 나도 물위로 오라 하십시오. 오라 하니까 그만 물 위로 뛰어내려서 걸어갔습니다. 이 신앙도 이 믿음도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이게 어디서 이렇게 왔을까? 이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믿음을 가졌을까? 그것이 오병이어의 그런 기적의 역사 주님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나눠줘라 그 뭐 얼마 된다고 어린아이 도시락이라 어린아이 한 끼 먹을 도시락인데 그거 가지고 뭐한다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주님이 나눠줘라 하니까 나눠주겠습니다.
그걸 가지고 나눠 주니까 5000명이나 먹고도 남았단 말이요 이게 그 말씀을 순종하는 걸음을 걸어본 것입니다. 주님 말씀을 순종해 보니까, 틀림없구나 틀림없구나 이렇게 순종해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틀림없다는 것을 느끼고 보니까, 주님이 명령하면 그대로 된다. 이 확신이 되니까. 선생님 나도 물위로 오라 하십시오. 그럼 나도 가겠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반드시 명령하면 인간의 그런 통계나 경험이나 그런 과학의 이치나 그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순종하니까 무 위로 걸어보는 그런 걸음을 걷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니엘이 순종하니까 사자굴에 들어가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 자기에게 닥쳤습니다.
낙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했는데 해방이 오기는커녕 이제 사자 밥이 되고, 말겠다.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는 그런 형편입니다.
 그런 형편이라도 다니엘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공부를 할 때 믿음으로 공부를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 순종으로 공부를 하니까 10배나 뛰어난 지능을 얻었고 또 그 나라를 통치하는 총리의 직을 맡아서 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으로 통치가 하니까 아주 능력 있게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을 그는 경험했어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다. 정확하다.
자기 보기에는 이게 이 말씀대로 했다가 큰 낭패를 당할 것처럼 보여지는 그런 형편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이 축복해서 큰 은혜의 역사를 경험한 것을 그도 경험했기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낙망하거나 낙심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 맡기고 이렇게 믿는 생활을 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자굴에 들어가면 그러면 사자에게 잡아먹히면 어찌 될 건고 그것은 내가 죽을 때가 되었으면 죽을 것이고. 아직은 죽을 때가 되지 않았으면 잡아먹지도 않을 것이다. 얼마든지 사자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왕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는 줄 확실히 믿고 산 그런 걸음을 걸었습니다. 이 사도 바울도 순종해 본 그 경험이 있단 말입니다. 순종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분명히 이렇게 해주시더라 하는 경험이 자기에게 쌓여서 말씀을 언제든지 어떻게 어려워도 말씀을 순종하는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해 보지 아니한 사람은 만약에 내가 그때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했다고 하면, 큰일 날 것이다. 완전히 낭패를 당할 것이다. 내가 순종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이런 사람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점점 낙망의 사람 점점 불순종의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그러나 순종해 본 사람은 사도 바울은 나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주님이 항상 자기와 함께 계시고 내 곁에 계셔서 자기보다 주님이 더 힘쓰시고 모든 걸 준비해 놓고, 계시는 것을 그는 경험하게 됐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는 순종하는 그 걸음을 걷는 데서 그런 경험과 체험을 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믿고 언제든지 순종으로 걸어가니까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외롭게 느끼지도 않고 이렇게 든든히 주님만 믿고 걸어가는 걸음을 걸어가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는 참 놀라운 일입니다.
기절할 만한 그런 일이라도 본인은 참 그 일이 하나도 어렵지 않고 누워 놀 정도로 그렇게 쉽게 여겼습니다. 그는 40대를 맞으면 살인이기 때문에 39대까지 맞았다. 그  매를 맞는 것은 뭐 얼마나 고통스러운 매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매를 맞는 일을 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이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매를 맞으면 사람이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되어 버리고 말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매를 맞는 그런 가운데도 주님 배반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런 순종하는 가운데서 경험한 것이 있습니다. 이만기 목사님이 전에 늘 말하는 게 하나님 나는 아픈 걸 못 견디는데 이 일이 환란이 닥쳐서 총을 맞으면 내가 아프면 그만 항복하게 되니까. 두렵습니다.
하면서 그것 때문에 많은 기도를 했더라고서 그러니까 꿈에 총을 탁 맞아봤되요 그랬는데 하나도 안 아프더래요. 그래서 야 안 아프게 해 주신다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당신은 믿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6.25 때에 사형 둘째로 죽일 사람이다.
하고 이렇게 정해놓고, 그 사람은 분명히 죽인다 이렇게 정해진 사람인데도 아무 두려움이나 낙망이나 이렇게 하지 않고 집회를 하고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 앞에서 거기 앉아 예배 바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앉아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담대한 마음이 어디서 왔느냐 참 우리는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으로 살지를 못하고 다 포기하고 낙망하고 마는데 이것이 어디에서 왔느냐 실행하는 데서 작은 일에서부터 말씀을 지켜 순종해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같이 해주시는 그 은혜를 느끼면 그걸 깨닫기 때문에 이러니까 사도 바울도 그가 어려워도 그 일을 순종해 보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느껴졌고 도와주심을 깨닫게 되니까.
그게 어려워도 배반하지 않았다.  이래서 적은 일에서부터 믿음을 만든 것입니다. 믿음을 만들어 본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우리는 믿음을 만들 수 있어야 돼요.  우리 앞에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지금입니다. 그게 주님의 재림이 임박해서 극도의 환란이 심할 그런 일이 우리에게 닥칠 것인데 분명히 그때는 순교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했다가 그때에 내가 과연 나는 주님 믿습니다.
하고 복음을 전하고 순교할 수 있겠나 이 믿음 가지고 되겠는가 우리는 돌아보면서 사도 바울이 경험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에게 순종해서 경험한 것처럼 이렇게 순종으로 우리도 믿음을 경험해 보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꾸 불순종이 되어져서 나중에는 이 말씀을 배반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배반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그러니까 배반 안 하면 자기는 죽을 것처럼 보이니까. 안 되는 겁니다. 다 배반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실제로 배반하지 않고 주님을 믿으면 죽는데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고 믿고 이렇게 갈 수 있는 신앙 그것은 평소에 믿음을 만들어서 믿음을 통해서 자기 속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것이 자기에게 생겨져야 이길 수 있는 것이 되지 그렇지 않고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순종해 보면 믿고 순종하니 여기에 주님이 같이 계시구나. 주님이 같이 계시구나.
주님이 이렇게 매를 맞았는데 그러니까 매를 맞아본 사람들은 내가 죽도록 매를 맞았는데 하나도 안 아프다 그래서 백영희 목사님도 몽둥이로 그렇게 뚜드려 맞았는데 인제 죽었다 하고 다 가버렸는데 당신이 그냥 툴툴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도 안 아프더라 그래 어떻게 그렇게 두드려 맞았는데 믿는 사람이라고 와서 그렇게 두드렸는데도 맞기는 굉장히 맞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도 안 아픈 거야.
주님이 대신 맞아주셨구나 이런 것을 그들이 느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어려움이 와도 양보하지 않고 여기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제림이 오기 전에 믿음을 만들어야 됩니다. 믿음을 만들어야 마지막 환란의 때에 우리는 이 구원을 놓치지 않고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동선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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