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0월25일 수새 팔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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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30(마태복음 5장 6-8절)
제목: 팔복
본문:마태복음 5장 6-8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 팔복을 배우는데 진도가 빨리 안 나갑니다. 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됩니다.
나와 영과의 내 마음과 영의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 가는 여기에서 복을 받게 되고 그 복으로 천국을 차지하는 복이라 천국을 차지하는 복이라. 천국을 누릴 수 있는 그런 복이라.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심령의 가난성을 가지는 그런 길이라 그러면 원래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 나와 하나 되어 살 수 있도록 이렇게 당신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창조할 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자기만 되면 거기서 오는 쾌락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굉장한 쾌락 천국을 누리는 그런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뭐이든지 자기가 어려운 일로 인해서 거기에 고민하고 걱정하고 그런 아니고  이 애통이라 말은 죄와 사망과 마귀로 인하여 오는 모든 해를 인해서 고민이 되고, 걱정되고 자기중심으로 자기가 살던 여기에 대해서 내가 내 중심으로는 하지 않는다.
했는데 돌아보면 자기 중심이 되어져 있는 이런 자기 에 언제든지 자기는 악습 따라 움직이는 자기가 되고 있고 자기가 자기 중심에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이것을 보고 이걸 고치지 못해서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큰 해가 있으니 이 해를 알고는 고민이 되고, 여기에 대해서 원한적인 자기가 되어지면 말이야.
또 마귀가 우리를 주장해서 끌고 가는 이 마귀의 미혹에 자기가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또 끌려가고 또 끌려가고 게 이것을 애통해야 하는 요것이 자기 속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자기가 자기에게 오는 모든 사망의 역사는 죄로 인해서 오는 것 인데 죄로 인해서 오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 돌아보면 내가 이런 죄로 인해서 내게 이런 사망의 역사가 왔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닥쳐온 것에 아무런 감각이 없이 그저 자기에게 어려운 것이 오면 이거는 뭐 남편때문이다. 자식 때문이다. 회사의 사장 때문이다. 옆에 동료 때문이다 전부 남 핑계하는 이런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는 그게 아니라, 그 모든 원인은 자기 때문입니다.  자기 속의 죄 때문입니다. 그게 그걸 모르고 남 탓만 하고 있으니까. 실은 남은 나를 그렇게 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죄가 자기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죄에 대한 원한을 가질 수 애통을 가질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어질 때 그 사람은 위로를 받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그것을 죄와 마귀와 이 사망 옛사람의 이 역사 여기에 대해서 애통함을 가질 때 주님의 대속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이 날 이렇게 대속해서 이 대속의 은혜를 입혀주셨구나 이것을 깊이 깨달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의 사람이 되고, 자기가 이 대속을 입고 벗지 아니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무슨 복이냐 위로를 받는다. 그게 위로를 받는다. 하니까 고생한다고 병들어서 참 어렵다고 가서 아이구 얼마나 고생이 됩니까? 힘들죠 용기를 내세요. 또 약이나 먹으면 이게 안 낫겠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그게 무슨 위로가 되고 다 그것을 위로로 생각하고 좋아하고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몰라서 그렇단 말이야. 아무리 그래봐야 그게 해결됩니까? 안 되죠.
왜 죄를 인해서 왔는데 죄 문제를 얘기를 하면 되는데 그것은 하지 아니하고 그 도리어 불쌍한 그거 어려움을 당한 그것으로 인해 가지고 그만 말하고 있는 위로를 한다고 하지만은 아무런 도움 되지 않고 그저 도리어 더 고민되고 더 짜증나고 화가 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그런 말인데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느끼지 않고 그런 위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망의 역사가 모든 질병이나 어려움의 역사가 죄로 인해서 왔기 때문에 그건 비뚤어진 것 아닙니까 이런 것이 삐뚤어져서 이면이 삐뚤어져서 온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하면 왜 정죄를 합니까? 우리가 잘못했다고 정죄나 하고 그것을 정죄로 받습니다. 정죄로 받으니까. 이 말씀은 도무지 거리가 뭡니까? 그래 내가 맞습니다. 옳습니다. 내 속에는 이런 게 비뚤어진 게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그다음에 사죄의 위로가 오는 것입니다.
칭의의 위로가 옵니다 말입니다. 화친의 위로가 옵니다. 그래 바로 그 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어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왔어 그걸 느끼니까 얼마나 위로와 감사와 기쁨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참 주님이 날 위해서 왔어요. 참 주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사유하여 주옵소서 이런 자가 되어지는 것이 참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래 하고 나니까 그러면 병이 치료가 된 거야.
진정 자기 속에 비뚤어진 것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으니까. 내가 뭐 잘못했어. 사장이 잘못 있지 옆에 동료가 잘못 했지 내가 뭐 이런 데 시집와 가지고 내가 이래 고생하지 전부 남 탓하고 사는 이런 사람이 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위로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고생하는 거기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살고 맙니다.
그러나 애통이 있을 때 죄와 사망과 마귀와 옛사람으로 인하여 오는 이 어려움 우리에게 오는 모든 사망과 모든 어려움은 이것으로 많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게 이것을 느끼고 이 원수를 멸하고 싶은 심정이 자기 속에 가득 찰 때 주님의 위로가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가 온다 하니까 주님의 위로는 아이고 고생한다.
힘들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바로 그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거 아니냐  주님의 나 위해서 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 죄를 사해주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있으니까. 이제 죄를 지어서 이제 고통을 당했는데 바로 그것이 그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이 죄 때문에 그렇구나.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죄 없는 사람으로 내가 이제는 살겠습니다.
이렇게 각오하고 작정하니까 다 치료가 되는 참 위로가 되어지는 그런 은혜를 힘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온유한 자는 우리가 어떻게 온유를 가질 수 없는 참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전쟁이 날런지 언제 죽을런지 언제 사고가 날런지 그게 참 안심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세상에 살면서 온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냐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애굽 나라의 종으로 팔려갔는데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세상걸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걸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사는 것은 어떻게 될까?
자기의 삶에 대해서 온유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아 야 그런 생각하지 말아라 다 잊어버리라 술 한잔 마시고 모르겠다. 될 대로 되다 되겠지 뭐 그러고 사는 것이 인생들이요 그래서 제발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물 흘러가는 대로 그래 흘러가면 되지 그냥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음의 번민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 다 포기해라 그냥 되는 대로 살아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안 그렇겠나 이렇게 해서 온유의 마음을 가지게 하지만은 사실을 알고 나면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그래서 가만 제가 세상이 나면 낫다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이제 나이가 들고 나면 온유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어요.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니까 야 놀러 가자 야 다른 데 빠져 있어야 된다. 그런 데 빠져 있으면 안 된다. 다 이렇게 해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아무리 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온유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과 이 목적 대상이 된 자기인 것을 믿고 하나님의 예정과 창조와 주권 개별 섭리를 따라 삶으로 이 길을 걸으려고 하는 사람은 온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로구나 하나님이 나보고 사실려고 나만 보고 사시려고 나만 좋아서 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주님이 나만 보고 나만 잘되게 하시려고 하는 것이 주님이라 하는 이 사실을 바로 깨달아 안 사람은 온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는 탕자를 잊어버린 날이 없고 탕자가 돌아오기를 늘 기다리고 있다가 오니까 잔치를 벌리고 까락지를 끼우고 새 옷을 입히고 새 신발을 신겨서 다시 새 출발시켜 주는 큰 축복을 준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하나님의 목적 대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물을 다 유업으로 상속받아서 영생할 수 있는 자기가 될 수 있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온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으로 살 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온유의 사람이 되어 사는 이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벌써 이것을 알고 믿고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제 하나님이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이제 것도 장래 것도 생명과 사망을 다 나에게 맡기시려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해서 내가 이 준비를 해야 되겠다. 나는 새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자 이 사람은 온유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에게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다 상속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될 때에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걸어갈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어제 아침까지 이렇게 배운 말씀입니다. 반복하지 않아도 잊어버리지 않고 이 팔복에 대해서 바로 기억하고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려고 애를 써 가야 되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의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없는 이것입니다. 여기에 의은 세상에서 질서를 바로 지키고 사람을 위하고 사랑하고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사는 그런 사람을 두고 의로 말하는 것 아닙니다.  의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가 사람이 하나가 된 것이 의입니다. 어떻게 하나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없는데 의가 없는 세상입니다.
의가 없는 세상입니다. 의를 가질 수 없는 세상인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와서 의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를 주님이 완성하여서 이 의가 어디 들어 있느냐 복음안에 들어 있다고 했어요. 이 의를 자기가 받지 못하고 이 의에 대하여 갈급성이 있는 자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복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완성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기 때문에 이 은혜를 심는 사람이면 힘 있는 사람이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자신이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이제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몸이 되고, 주님의 지체가 되고 주님의 것이 되어 살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기가 되어서 이 자기로 살 때 하나님의 것은 다 자기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다 자기 것이 될 수 있어요. 이러니까 여기에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배고픔이 없는 뭐 이건 내꺼 삼아야 되겠다. 할 그런 생각이 없는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미 이건 다 내 것인데 자기 것 다 된 거예요.
내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면 다시 말해서, 내가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어 살 수 있는 것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의를 자기가 받아서 자기 어로 삼았으니까. 사람은 의인이 된 것이오 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의인이라 하는 사람은 저는 의인이라 그는 의인이라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을 했어요. 그래 사람은 어떻게 의인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이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하나님의 소원과 이 진리와 하나님의 뜻이 나왔는데 영감으로 나왔고 진리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온 것입니다. 이것과 자기가 하나가 되지 못한 여기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겨서 내가 성경대로의 사람이 돼야 되겠다. 내가 성경대로 사는 내가 돼야 되겠다.
성경대로 살지 못한 여기에 대해서 갈급성을 느껴서 야 오늘도 내가 참 이렇게 못 살았는데 오늘은 꼭 성경대로 내가 한번 살아봐야겠다.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갈급성이 있는 사람 그런 갈급성이 없이 그게 안 된단 말입니다.  벌써 타락이 되어졌다 그만 나 이만큼은 했으면 됐지 하고 오만한 자에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우리 기독자의 신앙걸음은 오만한 자의 앉전자 같이 되어지면 실패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만하시면 됐다고 내가 이만큼 열심히 했으면 됐지 이보다 더 어떻게 내가 열심을 내어서 예수 믿는단 말이고 이만하면 됐다. 하고 그 사람의 신앙이 성장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오만한 자의 차이에 앉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은 자기 신앙이 성장되지 않는 것은 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는 영생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자라가야 됩니다. 이런데 작년에 신앙생활 하는 것 그대로 올해 그대로 하고 있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지만, 없다. 생각하지마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작년보다 더 올해는 더 세밀하고 더 정확하고 더 열심히 내고 그런 자기가 되어져 가야 그게 오만하지 않는 신앙걸음 우리는 신앙걸음이 점점 자라가고 향상되어져 가야 한다. 그러므로, 의의 주림을 느끼는 의의 목마름을 느끼는 이런 우리가 돼야 됩니다. 이게 끊어지면 안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하나 되어 살 수 있을까? 내 생각 내 주장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고 여기에서 진리와 하나 되어서 움직여야 되겠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움직여야 되겠다.
이렇게 산다고 했는데, 또 돌아보니까, 미진한 것이 있었어 내가 요면을 고치지 못해서 이렇게 하나가 되지를 못했구나 또 하나 되어 살려고 애를 써보고 애를 써보고 의에 목마른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로 살지 못한 요 안타까움을 가지고 사는 이 사람이 되면 내가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진리 따라 움직이는 내가 되고 내가 성경 따라 사는 내가 되고 말씀 따라 사는 내가 되고 진리 따라 사는 내가 되고 영감 따라 사는 내가 되어져야 되겠는데 그렇게 살지 못한 데에 대한 고민과 번민 그렇게 살지 못한 여기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껴 사는 그런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은 배부를 것이다.
자기가 진리와 하나 되고 영감과 하나 되고 하나님과 하나 되니까. 하나님의 것은 다 자기 것 되 하나님의 전지도 전능도 완전도 다 자기 것 삼아 살 수 있는 이런 자기로 자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하루 먹을 쌀 한되 더 팔 수 있단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이 큰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것을 다 유업으로 상속받아 살 수 있는 자기가 될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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