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10월9일 월새 심령의 가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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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910(마태복음 5장3절)
제목: 심령의 가난성
본문:마태복음 5장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니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으니 어떤 복이 있느냐 천국이 저희 것이 되는 복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떻게 복이 있느냐 어제 복은 뭐라고 했습니까?
복은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인가 우리는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주권자시오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에 주시고 심판주이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이 하나님으로 우리는 지음 받았고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과 관계를 맺고 사는 이런 세계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속에서 어떤 자가 복이 있는 자인가?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건강하고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하는 일이 형통하면 죽을 때도 잠자다가 죽고 죽음에도 고통이 없는 이런 사람이 되면 다 복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은 그것이 복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나와 만물과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과 모든 만물과 나 사이에 나는 어떤 인정을 받고 얼마나 부요를 가진 자기가 되고 얼마나 실력이 있는 자기가 되느냐에 따라서 복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에 차이가 여기에서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복이 있다고 하면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대로의 그런 복이라는 것은 그게 오히려 자기에게 큰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참 복은 회사에 다니면 그 회사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사원이나 사장이 다 그를 귀하게 여기고 고맙게 여기고 존경하게 되는 사람이 되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이요. 바쁜 사람이요. 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대우를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되는 이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도 살지만은 이 사는 시간은 잠깐이요.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세계에서 사는 그 시간은 영원 무궁입니다.
영원한 시간입니다. 이 세계에서 제일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제일 사랑받는 사람이오 제일 필요한 사람이요.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어야 됩니다.
얼마나 부자가 돼야 되느냐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다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복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있는 이 물질계의 세상도 영계도 다 차지하고 하나님에게 있는 모든 것도 다 차지할 수 있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우리에게 다 맡겨 주었을 때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자기가 되어야 복이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있는 하늘의 것 무한의 것 완전의 것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을 다 받아 가질 수 있는 자기가 되어야 복 있는 자요 이것을 우리는 모든 만물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는 것이 복있는 자인 것입니다.
참 그것이 되면 복이는 자가 되겠지마는 어떻게 그것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이런 복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을 가지고 이런 복 있는 자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복이 있는 자가 되느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심령은 뭘 두고 심령이라 말하는고 하니 우리의 마음이 영으로 인하여 사는 우리의 마음이 영에게 완전히 피동되어서 우리의 영이 중생된 영이 우리의 마음을, 주권하고 우리의 마음은 영에게 완전히 피동되어 사는 이런 삶을 살 때 그것을 두고 심령이나 말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 하는 말은 자기가  중생된 영과 자기가 연결되어 사는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참 자기로 인하여 사는 이 걸음을 걷는 것이 너무 적다 이런 생활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원통하게 여기고 답답하게 여기고 여기에 대해서 갈급을 느끼는 사람을 두고 심령이 가난하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돌아보니까, 이 마음이 어떻게 됐는지 내 욕심에 붙들려서 움직이고 있는 마음이요. 내 성질에 감정에 붙들려서 움직이는 마음이 되어 있고, 내 고집에 나의 일은 정욕에 붙들려서 움직이는 마음이 되어 있으니까. 이것이 참 기가 차서 요것을 꺾어야 되겠다.
중생된 영에게 붙들리고 중생된 영을 따라가고 중생된 영에게 복종하는 이 감정이 되고, 이런 성질이 되고, 이런 생각이 되고, 이런 마음이 되어지지 못한 여기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렇다가 보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를 망친 것은 내 생각이 나를 망쳤구나 네 정욕이 나를 망쳤구나 내 고집이 내 성질이 내 생각이 나를 망쳤다 중생된 영으로 살아야 되는데 중생된 영의 지도를 받아야 되는데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고 싶은 이 마음으로 가득 차서 내가 성령으로 살아야죠 오늘 또 성령으로 살 수 있게 해주옵소서 이래서 과부가 재판관에게 간청한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성령으로 살 수 있는 자 되기를 강청하는 항상 이것이 자기에게 소원이 되고, 이 마음이 자기 속에 가득 차야 됩니다.
내가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야 되는데 그만 일을 하다 보니까, 주님이 없고 그만 공부하다가 보니까, 주님은 없고 사람을 상대하다가 보니까, 주님은 없고 사람만 봤고 너무 답답해서 하나님이여. 중생 된 영으로 살 수 있게 해주옵소서 중생된 영으로 살 수 있게 해주옵소서 이 소원이 자기 속에 가득 차 있어서 늘 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는 복이 있다.
어떤 복이 있느냐 늘 그렇게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서 하는 하나님과 자꾸 가까워질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어져 간다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져 가고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한 자기가 되어져 가고 주님의 지체가 되어져 가고 주님의 것이 되어져 가고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이런 사람이 되어져 갈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심령의 가난성을 가질 수 있는 이 가난성을 가지는 것은 내가 갈 천국은 하나님의 왕이요.
주권자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지는 이 세계라는 것을 알고 여기에서 자기 주장이나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니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이런 세계에 가서 살 것인데 나는 준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나는 천국 준비가 너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내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은혜를 있게 하여 주옵소서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주님 뜻대로 살 수 있는 내가 되도록 해 주옵소서 이렇게 자꾸 천국을 생각하고 보니까, 가난성을 느끼지 않은 수 없습니다.  내가 이것 빈약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 가면 믿어 갈수록 뭘 느끼려고 하면, 어릴 적은 하나님과 가까워져 가는 것을 느끼지만은 점점 깨끗해져 가면 하나님과 너무 거리가 먼 곳을 느낌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런 신앙의 종입니다. 그런 종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모든 사람이 다 배척해서 반모섬에 귀양을 가서 그럴 때 주님을 보았습니다.
주님을 보니까,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주님 다리를 베고 눕고 기대고 같이 식사하면서 친구처럼 참 이렇게 가까이 지내던 주님인데 주님을 바로 보니까, 너무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기절해서 죽은 자 같이 되었다. 그랬어요.
주님이 자기에게 해주신 것과 자기가 주님에게 대해서 한 것에 대하면 너무 거리가 멀어  자기도 죽도록 충성한다고 했고 복음을 위해서 일하다가 이렇게 귀양까지 왔지만 자기가 주를 위해서 한 것은 너무 보잘 것 없고 주님이 자기 위해서 한 것은 너무 큰 그것을 느끼게 되었단 말이에요.
또 사도바울도 신앙걸음을 걷다가 보니까, 주님과 자기가 너무 거리가 멀어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입니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 말이죠. 사도 베드로는 순교할 때 나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그렇게 못 박혀 죽을 수가 없으니 나를 거꾸로 십자가에 죽여라 글 간청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과 가까워져 가다가 보니까, 너무 거리가 먼 것을 느낀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고민이 되고, 걱정되어지는 여기에 보면, 심령의 가난입니다. 이게 심령의 가난입니다. 이게 천국의 가난성입니다. 이런 천국을 자기가 누릴 수 있는데, 가질 수 없으니까. 여기에 가난성을 느껴서 가난성 갈급성을 느끼니까 어찌해야 됩니까?
어떤 동물이 아주 사막해서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그 다 죽어가는 짐승을 보고 물병을 가지고 물로 주니까 고맙다고 물을 들컥들컥 마시는 그런 영상이 있습니다.  갈급증을 느끼니까 갈급증을 느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갈급증이 있어야 됩니다. 심령의 갈급증 천국의 갈급증 이런 갈급증이 있을 때에 사람은 천국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얘길 말하니까 자기가 무슨 돈이나 손해나 보고 자기가 무슨 희생을 해서 자기가 손해나 보나 싶어서 거리가 멀어서 하기 싫어서 뒤로 물러 가지고 그런 사람이 무슨 천국을 알고 있습니까? 모르니까 천국의 가난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지니까. 천국을 이루어 가는 것은 천리만리로 먼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천국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좋아서 나 없으면 안 되겠다. 당신이 나만 좋아하고 나만 기뻐하고 딱 나만 보고 사는 그런 주님이 되시도록 내가 나를 단장할 수가 있어야 돼요. 우리는 그런 자기로 단장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신부의 단장이오 하나님의 백성의 단장이오 하나님의 아들의 단장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단장하지 못한 여기에 대해서 두려워 떨리면서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되지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나님에게 미움 당하면 안 되는데 자기가 하나님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이것을 느껴서 천국 준비를 못한 여기에서 답답함을 느껴서 여기에 갈급을 느껴서 사는 이 사람이 될 때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아봐야 됩니다.
내가 성령으로 인해서 사는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사는 이것은 얼마나 되어 있느냐 중생된 영으로 살면 자기는 전지로 살고 전능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중생된 영으로만 살면 그 사람을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말이죠. 운동선수가 마음을 따라 움직일려고 연습을 그렇게 연습합니다. 그래서 마음 따라 몸이 움직여 지기만 하면 사람은 금메달 됩니다. 어디든지 일 등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검도를 가르치는 사람도 말이죠. 칼을 쓰는 것을 배우는 것도 가만 보면 그냥 몸뚱아리로 칼 움직이는 그런 것 연습은 어느 정도 하고, 나면은 그것은 않 가르칩니다.
마음을 따라 칼이 움직여지도록 하는 연습을 전부 시키는 연습을 시켜서 그래서 자기 마음먹은 대로 칼이 칼을 착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되면 사람은 최고의 검객이 되고, 최고의 실력자가 되는것입니다.  칼만이 아니고 모든 운동선수 모든 기술을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그것은 영을 모르는 사람들이 원하는 생활입니다.  그것도 세상을 모르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연습하나 고생하게 그렇게만 생각하지만 마음을 따라 사는 사람만 되어도 그렇게 실력 있는데, 마음보다 영을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이것은 초자연의 역사가 여기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 말이에요. 이것은 이길 자가 없습니다.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고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을 해치지 못합니다.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을 손해 보도록 하지 못합니다. 심령의 가능성 심령의 가능성을 느끼면 우리는 천국을 차지하고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령의 가난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돌아보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얼마나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사는 그런 걸음을 자기를 돌아보고 심령의 가난성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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