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9월5일화새 거룩과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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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20(베드로후서3장6-8절)
제목: 거룩과 경건
본문:베드로후서3장6-8절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말라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우리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 으로 말미암아 무슨 말씀이냐 이제 120년 후에는 홍수로 온 세상이 다 멸망할 것이니까.
너희들은 방주을 지었어 그멸망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알려주신 그  말씀 하나님이 알려주신 말씀을 그대로 지켜 순종하기를 계속했습니다. 홍수로 다 멸망받고 만다는  알려줄 때에 그때에 멸망받지 않는 길은 방주를 짓는 이것이다.
그 방주를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방주를 지어서 방주를 지은 사람들은 구원을 이루지만은 방주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은 다 홍수에 멸망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산 사람은 구원을 얻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 멸망받았는데 이제 지금 하늘과 땅은 그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한 것처럼 이제 이 말씀으로 인해서 불로 사르기 위해서 간수되어 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이 모든 것을 불로 사르게 되어진다 불로 사르게 되어지니까. 불타지 않으려고 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되느냐 마지막 때는 거룩과 경건를 준비해야 된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래 오늘 우리가 준비할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다 불로 사러서 체질이 다 녹아지는 원소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그런 일이 생길 것인데 이때에 불타지 않을 수 있는 이것을 준비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할 준비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에 물질을 태우는 이 불인가 이 불은 경건치 아니한 것을 태우는 불이오 경건한 것은 태우지 않고 보호하는 그런 불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불 속에 들어가면 다 불의 사망을 받고 탈 것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은 이 불은 인간의 역사로 일어나는 그런 불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기 때문에 이 불은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죄된 것은  불의 해를 조금도  면하지 못합니다. 이 물질의 이 불이 붙을 때는 과학적 방법으로 얼마든지 방어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지금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느냐 온 세상은 다 하나님 말씀대로 불타게 된다.
이러니까 그럼 무슨 불로 불타게 될 건가 마지막 때는 원자폭탄으로 이렇게 불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원자폭탄으로 불타는 것을 방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원작탄을 가지고 있는 세계 각국들이 약속하기로 정말로 자기가 죽는 일이 아니면 나라가 갑자기 그 나라 자체가
완전히 망하는 그런 것이 아니면 원자탄을 쓰지 말자 이렇게 약속을 하고 원자탄을 가지고 써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고 그것을 서로가 감시를 할려고 애를 씁니다. 또 그런 동시에 어쩌든지 실수로라도 이것을 쏘게 되면 방어 하는 거기에 아주 힘을 기울여서 이렇게 합니다.
지금 또 전쟁 치고 있는데, 보면, 상대방이 미사일을 쏴왔는데 그것을 방어할 수 있는 실력이 구비되어져 있으니까. 아무리 쏘아도 그것은 공중에서 그냥 폭발해버리고 실제로 타격을 줄라고 하는 데는 아무 해가 없는 그런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실력보다도 죽일려고 할 때에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실력을 구비하는 데에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면에 힘을 기울여서 다 우리는 방어할 수 있다. 우리는 해할 수는 있고 우리는 방어는 완벽하게 되어진다 그럴 때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죠. 이래서 방어하는 데에 아주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불의 해를 우리가 방어할 수 있는 이런 실력을 구비만 하면 다 될 것이니까.
이 마지막 심판이라 하는 불에 탄다는 것도 우리가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지만은 하나님의 심판하는 이 심판은 그런 인간의 그런 것으로 이 불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불은 경건치 않은 것은 다 불에 타고 경건되어져 있는 것은 불타지 않고 보호하는 것이 이 불인 것입니다.
홍수 심판에 때도 물이 다 멸했지만은 방주를 만드는 것은 해하지 않고 보호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다쳐올 이 심판의 불은 인간의 오만 공작으로 방어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에 이 불을 방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도 홍수를 면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마련하는 것뿐입니다. 방주를 마련해서 구원을 얻었지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에 불이 올 때는 이 불에 타지 않는 이 준비를 우리가 해야 심판을 면 하지 우리가 이 준비를 하지 않고 세상에서 이런 불의 타지 않기 위해서 과학으로 준비하는 이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 다 멸망을 받았지만은 방주로 구원 얻은 이 사람들은 어떤 방편으로 구원 얻었느냐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이 방편으로만 구원을 이룬 것처럼 마지막 때의 구원의 방편도 거룩과 경건으로만 이룰 수 있다 했습니다.
이 불에는 거룩이 없고 경건이 없는 것은 다 불에 타서 한 번 타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타게 되어집니다. 그러면 이렇게 불태우는 것은 어떤 것인가?
경건한 것은 불타지 않고 경건치 아니한 것은 불탄다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에 공로를 입어서 완전 구원된 것은 불타지 않게 됩니다.
완전 대속을 다 입은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중생 될 때 우리의 영이 완전 대속을 입었고 우리의 육이 심신의 형체가 완전대속을 다 입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불타지 않습니다.
다만 고깃덩어리 형체는 피와 혈로 된 것 가지고는 영생할 수 없기 때문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불타지는 아니하고 이것이 변화받기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되어서 신령한 몸이 되어서 영원히 이 살게 됩니다. 그러면 불타고 불타지 않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인가 불타고 불타지 않는 것은 심신에 기능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심신의 기능이 불타느냐 불타지 않으냐 이 물질이 불타는 건 말하는 거 아닙니까 심신의 기능이 불타느냐 불타지 않느냐 이게 제일 중요한 노력이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는 이 심신의 기능이 다 불타버리면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 자 우리가 세상에 나서
자라가는 동안은 음식을 먹고  그냥 음식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에 에너지가 생겨집니다. 힘이 생겨집니다. 이 힘을 가지고 우리는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것만 생각하고 음식을 먹고 힘이 있으면 힘 가지고 이런 행동 저런 행동만 한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행동함으로 우리는 기능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의 움직이게 움직임에는 모든 기능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기능을 만들어 가지고 기능 가지고 사는 것이 오늘 우리의 세상 생활이요. 이 어떤 기능을 구비했느냐에 따라서 실력 있는 사람이냐 실력 없는 사람이냐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먹고 힘을 얻어서 자기는 자 공부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간다 기능을 길러간다 이런 과학의 물리를 연구하는 실력을 길러간다 음악의 감각에 그런 실력을 길러간다 정치의 실력을 길러간다 여러 가지 기능들을 길러가려고 연습하고 숙달시키고 또 새로 기능을 구비하려고 애를 쓰고 다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 기능이 어떤 기능을 구비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 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또 그로 인해서 환영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됩니다. 그래 여기에서 이 실력을 길렀는데 이 실력은 이 기능은 불탈 기능이냐 불타지 않는 기능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똑 같은 일을 했지만은 똑같은 공부를 하는 일을 해도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해도 이런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고 살림을 살고 병원에 가서 누워 있어도 우리는 내 모든 움직임을 통해서 멸망의 기능을 만드는가 아니면 불타지 않는 기능을 만드는가 요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가가 아무리 기능을 구비 하게 만들어도
불탈 수밖에 없는 기능을 만들었다고 하면, 헛일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불이 올 때에 다 타버려 타버리고 그 기능이 없는 자기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불타지 않는 길은 무엇을 준비해야 되느냐 거룩과 경건으로 불타지 않을 수 있는 이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거룩이라 하는 것은 둘로 두고 구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요것이 하나님 말씀대로냐 하나님 말씀과 반대냐 요것이 말씀과 틀린 것이냐 말씀과 맞는 것이냐 요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것인가? 반대가 되는 것인가? 이렇게 둘로 구별하는 요 구별을 거룩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무슨 일이든지 거기서 언제든지 자꾸 둘로 구별하는 자 말씀대로냐 아니냐 하나님이 하라는 것이냐 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냐 섭섭해하는 것이냐 이게 복음에 유익되냐 해가 되느냐 내가 지금 이 행위를 하는 것이 옳으냐 틀리느냐 자꾸 구별하고 구별해서 그 옳은 행위를 찾아가는 요 생활이 있어야 고게 거룩이 됩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일어났으니까. 밥 먹고 나가서 일하고 뭐 만나니까 그냥 이리하고 저리하고 그리하고 그래 와서 들어와서 자고 그렇게 할라는 것은 다 그만 헛 일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자꾸 구별을 구별해서 구별을 하는 것은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진실한 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자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똑같은 자 되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자기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거룩으로 사는 것입니다.  거룩으로 경건의 삶을 살게 걸어가는 걸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믿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요 자기가 되려고 거룩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거룩한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는 자기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거룩으로 경건한 삶을 사는 자기가 되어지면 자기는 진실한 자기가 되어집니다.
진실한 자기가 된다는 것은 주님과 꼭 같은 예수 그리도의 형상을 닮은 자기가 되고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그런 속성을 가진 심신이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멸망받지 안 하지요 구별구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 된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하나된 요 자기가 되어 사는 연습을 하고 요
실력을 길러가니까 우리가 설교를 해도 어떤 때는 자기를 나타내는 설교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인기 끌기 위해서 하는 것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감정이 나서 하는 설교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다 구별구별해서 영감을 받아서 영감 따라 하는 설교가 그것이 또 달라지게 되겠습니다.
자기와 나가서 전도하는 것도 다 좋지만은 거기에도 거룩과 경건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거룩과 경건으로 전도하는 일을 하고 집에 살림을 살아도 거룩과 경건으로 살림을 살고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해도 거룩과 경건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자기가 돼야 합니다.
 이게 자기 몸에 배여서 거룩과 경건으로 사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 되고, 실력 있는 사람이 반드시 거기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가 언제든지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이 될까 내가 수입이 많을까?.
어떻게 하면 내 편을 많이 만들까? 그런 생각만 하는 사람은 자꾸 어두워지기 마련입니다. 거기에서 거룩과 경건을 가지는 데서 우리는 불타지 않는 것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종일 내가 어떤 삶을 살아도 길을가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자꾸 거룩과 경건을 가지는 이 실력을 길러가도록 해 봅시다 그러면 불타지 않을 수 있는 우리가 됩니다.
자 여기에서 이렇게 신앙생활 하면서 거룩과 경건를 가지고 살아서 살았느냐 아니면 그냥 자기 좋게 자기 위해서 자기 성질을 따라 사는 자기가 되어 있는가 자기를 돌아보고 거룩과 경건으로 사는 자기가 되도록 이렇게 애를 써 봅시다 여기에서 우리 세상 성공이 되고, 여기서 우리 구원이 되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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