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8월25일 금새

페이지 정보

본문

23082550(창세기4장1-12절)
제목:가인과 아벨
본문:창세기4장1-12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에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에 소산으로 재물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드렸드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재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재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하면 어찜이뇨 내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내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 지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리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 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되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내 손에서부터 내 아우의 피를 받았은 즉 내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내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내게 주지 아니할 것이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2절까지 봉독했습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되어 사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목적이 교회입니다. 머리는 하나님이요. 그 몸은 교회 된 모든 성도요  모든 만물들은 발등상이 된다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과 찬송을 돌리면서 이렇게 사는 이런 세계가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교회를 이루신 것입니다. 첫교회가 아담화와의 교회입니다. 아담 하와의 교회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어서 이 교회가 나왔는데 이때 에덴 동산은 천국이었지요 하나님에게 모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지도와 통치를 받아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이 속에서 천국 생활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이 되고, 변질되어져 버리니까 거기서 나온 새 교회가 있으니 가인과 아벨의 교회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 교회가 나온 것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아담 하와의 자손이지만 이때에 아담하와가 처음으로 낳은 이런 가인과 아벨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여기에 기록되어 있지만은 가인과 아벨 외에도 많은 사람이 출생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담은 일찍이 가인과 아벨을 낳고 살았고 아벨이 죽고 난 다음에는 130세에 셋을 낳았습니다. 이런 데 아담이 130세 때 셋을 낳은 후에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 했으니까.
아담은 930년을 살다가 죽었는데 93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와가 낳은 자손이사람이 한 해에 한 사람씩 낳았다. 이렇게 해도 이때도 쌍둥이도 낳을 것이고.
적어도  920년 다만 못 잡아도 900명 이상을 낳았지 않았는가 900명 이상을 자녀를 낳았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나게 하고 자라게 하고 이렇게 했지만은 이 중에도 하나님의 구원 계통 구원 이루어 가는 계통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구원이 내려온 계통을 여기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다 불택 자인가? 불택 자할수도 없고  또 다 택자라 할 수도 없겠습니다. 이 중에는 택한 사람은 구원을 얻었고 택하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록된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의 계통 어디로 내려왔느냐 요거를 말씀하고 있고 또 여기에 교회 아담 화와 교회 그다음 가인과 아벨의 교회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교회 이 가인과 아벨의 교회였는데  하나님이 아담 화와가 타락이 되고, 변질이 되어 졌을 때에 그들에게 다시 이 회복할 수 있는 그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 하나님이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가죽 옷을 지어 입혔다 그랬습니다.
가죽 옷으로 아담 하와에게 지어 입혀서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보호를 입지 못해서 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데 가죽 옷을 지어 입은 이것이 바로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이 이 대속한 이 대속을 상징하는 그런 일이 되겠습니다. 멸망 가운데에 빠져서 절단할 수밖에 없는데 이 가죽옷을 입는 것은 짐승을 잡았다 말이에요.
아담하와 대신에 짐승을 잡아 제사드리므로 그들이 모든 죄를  벗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돼서 이것이 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라 그래서 모든 멸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회복되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제도가 내놓은 이것이 오늘도 세상 모든 안 믿는 사람도 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런 모여서 제를 지내서 다 다 그렇게 합니다. 이건 하나님이 노해서 그러니까 이것을 좀 해결해 달라 하고 이렇게 제사를 지내며 거기에 곡물을 가지고 이렇게 갖다 놓고 제단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 구원이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그래서 아벨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는 죄를 멸하려고 하면, 대신 형을 받아 죽음으로 그 죄가 사해 지지 그 죄의 형을 받지 않으면 죄를 없앨 수 없는 이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전해 듣고 전해 듣고 계속 내려오니까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많이 해 내려옵니다.
 내려온 것이 나중에는 보면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재물로 드리는 그런 제도를 세운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방 사람들이 위에 선조로부터 자꾸 들어온 그것이 자꾸 변질되어서 내려갔습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함으로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들의 구원이 다시 회복되어서 구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을 전해 받은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하나님이 정한 법칙 그래서 양을 잡아라 이렇게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된다.  그 다른 것을 잡아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게 아니고 양을 잡을 때에 자기의 죄를 대신해서 이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면서 이렇게 해 왔는데  가인은 농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 죄를 사함 받으려고 하면, 양을 구해다가 잡아 제사를 드려야 되지만은 자기가 나는 다른 게 없다. 농사짓는 하기 때문에 이런 곡식들이라 해서 그런 곡식 가지고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 고맙습니다.
농사 잘 지게 해서 하나님이 농사 잘 지었으니까. 이것 잡수시고 우리를 사죄해 주십시오. 그런 제사를 드릴 때 그는 여기에 대해서 죄에 대한 해결책을 바로 모르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니까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이러니까 결국에 가인이 아벨을 시기해서 처 죽였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가인도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야 된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닙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된다 죄를 사함받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마는 가인은 그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따라서 제사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여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내가 분하여 하면 어찜이뇨 안색이 변하면 어찜이뇨 내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니까. 시기가  났다 그랬습니다. 시기가 났다 시기가 나서 결국에 아벨을 들에서 쳐 죽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네가 왜  아벨을 보고 시기하고 그렇게 분을 내느냐 분을 내느냐 내가 잘못해 놓고, 왜 분을 내느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선을 행하면 왜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분명히 자기가 바로만 행했으면 떳떳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자기가 제사를 드려도 그 양심의 가책이 여기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옳게 했으면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할 건데 제사를 지냈어도 떳떳지 못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단 말이에요. 분명히 하나님이 이렇게 해야 된다.
하고 법을 정해주고 그 이치를 알려 주었는데도 나는 농사만 잘하기 때문에 농산물을 가지고 해야지 다른 거 못합니다. 이렇게 했지만은 양심의 가책은 느꼈다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도 보면 가인은 자기가 정한 법대로 자기 주장대로 이렇게 하는 것이고. 아벨은 하나님이 정한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여진 것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느냐 아니면 자기를 중심으로 하느냐 하는 여기에서 달라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아니하면 그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요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속에 소원은 죄의 소원입니다.  삐뚤어 진것이 내 소원이니 옳고 바르게하는 것이  소원이 아니고 삐뚤어진 것이 내소원이니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언제든지 자꾸 자기중심을 위한 내게 좋은가 내게 편한가 내가 내게 유익한가 내가 올라가는 길인가 내게 유익된 길인가 전부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자기가 되어져서
하는 데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자기가 된다하겠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데서는 아예 하나님 중심으로 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뭘까?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까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중심에서 하나님 위주로 이렇게 자기가 생각할 때 죄를 이길 수 있고 죄를 다스릴 수 있는 거기에서 자기가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될 수가 있단 말이요. 내 속에 죄의 소원이 있지마는 네가 죄를 다스리라 죄를 이기라는 말입니다.
죄를 이기라 죄를 이길 수 있는 그 길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이렇게 내가 할 때 죄를 이길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교회는 하나님이 정하신 이 법 따라서 사는 이 교회가 되어야 돼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축복해 주실 수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삐뚤어졌으면 그걸 하나님이 모르는 건 아니고, 다 알고 계시는 것을 여기에 다 말씀했습니다.
자 그래서 처음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그다음 교회가 계대되었을 때 이 교회가 어떻게 해서 타락이 되었느냐 가인의 걸음을 걸어가면 타락의 길이요. 아벨의 길을 걸어가면 그것은 정통 교회로 내려가는 길이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이 정통 교회로 흘러내려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대속의 공로를 깨달아서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이것은 그 양은 예수님을 상징해서 예수님이 우리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것을  우리도 깨닫고 이 은혜를 힘입어 살려고 하는 자기만 되면 이 은혜를 힘입어 살려고 하는 교회만 되면 그 교회가 전통 교회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무엇인지 알고 이 공로의 은혜를 힘입어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중심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서  죄를 다스릴 수 있는  길을 걸어 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