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8월21일 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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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본문:누가복음17장5-10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데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들의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오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어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이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동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에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할 지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주님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할 때에 꽁나무 나무에 에 뿌리가 뽑히는 이 비유의 말썽을 가지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안 할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하면, 장정 여덟 아름이 되는 그런 뽕나무도 다 뽑히고 옮겨지고 심겨진다 하는요 비유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이 작은 것인데  이 겨자 씨 한 알 만한 믿음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능력의 역사를 할 수 있느냐 이렇게 겨자씨 한알 믿음 한 알 만한 믿음 요 믿음에는 생명이 있는 믿음이 되어서 그러한 것입니다. 씨중에 생명이 있는 씨와 생명이 죽은 씨는 땅에 묻으면 금방 그만 흙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씨은 자 땅을 잡아먹고 싹이 트고 자라게 되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생명 있는 이 믿음이 있으면 그게 늘 생명있는 믿음이라 생명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여기 겨자씨 한 알만한 이런 믿음인데 겨자씨 한 알만한 요 작은 것이 어떻게 뽕나무더러 뽑히라 한다고 뽑히고 옮겨지라 한다고 옮겨지고 바다에 심겨져라 한다고 심겨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일이지마는 그만 이렇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렇게 명 했을 것이다. 반드시 이런 명령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게 된다. 또 명령하면 그대로 순종하게 되어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예수 믿는 일은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은 무엇 때문에 예수 믿는 이 길을 걷는 것이냐 우리에게 뽑을 것을 뽑기 위해서 또 옮길 것을 옮기기 위해서 또 우리에게 심을 것을 심기 위해서 이 신앙걸음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데도 거기에 뽑을 것을 알려주지 못하면 옮길 것 심을 것을 말해주지 아니하면 그것은 다 헛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신앙 걸음을 걷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말씀을 들을 때 내게 뽑을 것이 무엇이냐 옮길 것이 무엇이냐 심을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깨달아 잡고 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다고 하면, 내게 뽑아야 될 거 내 속에는 이 성질을 뽑아야 되겠다. 요 성질 때문에 나를 옳은 이런 신앙걸음을 걷지 못하게 하고 요.

성질이 나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일을 많이 하는구나 내가 이 성질을 고쳐야 되겠다. 내가 요 생각을 바꿔 가야 되겠다.  자기에게 그렇게 뽑아야 할 것 자기에게 없어야 할 그 요소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거 뽑아야 되겠다. 하고 뽑는 그 일을 할려고 할 때에 뽑히게 된다. 그것이 뽑히고 그것이 뽑히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 갈려고 하면, 참 이 구원이 이루어 가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운 그것이 자기가 자기를 고쳐야 하는데 자기를 고치려고 해보면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자기를 고칠 수가 없는 나는 나를 고쳐야 되겠다.

하고 자기를 고치려고 애를 썼는데 자기가 고쳐지지 않는, 전에 신정동 교회 있을 때 요 말씀을 듣고는 김종천 할아버지가 그렇게 고칠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가느냐고 반문을 해 그래서 그때에도 고칠 수 없는데 고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길을 다시 말해준 일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고쳐 보려고 하면, 내가 이걸 고쳐야 되겠는데 그래 뭐 담배 피는 사람이 담배를 끊으려고 해도 잘 안되고 술을 먹는 사람이 술을 끊는다고 해도 그게 잘 안되고 우리에게 습관화되어져 있는 이것이 고쳐야 되기는 고쳐야 되지만은 그걸 고치려고 해보면 참 고쳐지지 않는 그것을 뽑을 수 없는 자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 자기가 자기를 고치려고 애를 써서 내가 이제는 고쳤다 했는데 보니까, 또 그 죄가 나오고 또 죄가 나오고 이러니까 나중에는 참 주님 앞에 회개한다고 해 놓고, 또 죄를 짓고 회개한다고 해 놓고, 또 죄를 짓고 그러니까 참 부끄럽고 너무 미안한 자유하겠습니다. 이제는 이거 고치겠다. 회개하겠다. 하는 그 말도 못 하고 내가 너무 이런 부끄러운 자라  그만 포기하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말씀을 볼 때에 장정 여덟아름 되는 뽕나무 이게 어떻게 뽑히라 한다고 뽑힐 수가 있겠습니까? 뽑힐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일이 역사에 없습니다. 뽑을 수가 없어요.

그 매실 나무를 뽑아 옮기려고 한번 이렇게 하는데 아주 또 뭐 거의 100년 가까이 된 매실나무라  뽑을라고 하니까 포크레인이 두 대가 와 가지고 해도 뽑는 것이 대번에 뽑는 게 아니라,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뭐 사람이 여러 사람이 달라들어서 하나 뽑아 옮긴다고 이런 데 에 장정 여덟아름이나 되는 그런 뽕나무가 뽑히라 한다고 말 한마디에 쑥 뽑혀 나갈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뽑힌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겨자씨 믿음 겨자씨믿음이 이 씨 중에 제일 작은 씨가 겨자씨인데 그씨가 고 씨 정도가 어떻게 그렇게 고런 정도의 믿음이 있다고 그게 뽑히느냐 이 아무리 큰 바위가 있어도 그 바위에 나무가 나무 생명이 있는 씨가 거기에 떨어졌습니다.

거기에 파고들고 뿌리가 박히고 뿌리가 점점 커져 가면서 큰 바위인데도 그 바위가 갈라져 버립니다 그런 바위를 갈라지게 하려고 뭐 망치로 여간 두드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끄떡하지 않합니다 그래도 그 생명 있는 씨가 바위에 떨어져서 뿌리를 박고 파고 들어갈 때는 바위로 다깨어버립니다. 그의 생명 있는 씨라 하는 것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여기에 말씀을 한 것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 이렇게 말씀했으니까.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이란 말인데 믿음이 어떤 믿음이기에 그런 뽕나무도 뽑히라 한다고 뽑힐 수 있는 그런 믿음이 될 수 있을까?

이 믿음이라 하는 것은 아는 것이오 인정하는 것이오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인데 제일 적은 믿음 그러면 이렇게 큰 능력의 역사를 하는 그런 씨라 하는 것은 생명이 있을 때 그런 능력의 역사를 하고 생명이 없을 때는 모든 씨는 흙 속에 들어가면 그만 흙이 되고, 맙니다. 생명이 없는 씨는 흙에 묻어 놓으면 뭐 며칠 안 되어서 그것이 폭 썩어서 흙이 되고, 말아요.

그러나 생명이 있는 씨는 거기에 온도가 흙이 되게 할려고 하고 수분이 흙이 되게 할려고 하고 질소분이 흙이 되도록 하려고 그렇게 역사하지만은 그런 온도도 수분도 질소도 다 잡아먹고 그 생명은 자라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믿음은 어떤 믿음이 되어야 하느냐 생명 있는 믿음이다. 생명 있는 믿음이 되면 이렇게 뽑고 옮기고 싶는 이런 역사를 하게 되어진다 했습니다.

그게 생명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 생명입니까?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 됐다. 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 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생명이 되느냐 우리에게는 다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아담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생명이라 이 생명은 죽은 생명 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는 생명이 있어서 내가 살아있고 지금 자꾸 자라간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생명은 나자마다 그때마다 그때부터 우리는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얼마나 오랫동안 있다가 죽을런지 그것은 모르지만은 생명이 죽어가는 생명입니다. 그게 우리 속에 있는 이 생명은 죽어가는 생명이 완전히 죽어가는 그런 생명입니다.

이런 데 여기에 예수그리스도가 생명이라 하는 이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 죽지 않는 생명 영원히 살고 자라가는 그런 생명 이 생명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서 새로 창조한 생명이에요.

이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 사죄를 만들고 칭의를 만들고 화친을 만들어서 완전을 창조하는 요 생명 입니다 이 생명을 창조해 가지고 이 생명이 우리 속에 잉태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택함 받고 부르심 받아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부르실 때에 그 속에 생명이 잉태되게 됐습니다.

그 생명이 잉태될 때 보면 그냥 생명이 잉태가 안 됩니다. 그 생명이 잉태될 때 가만히 보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 받읍시다 예수 믿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말 몇 마디 할 때에 그만 내 속에 그생명이 들어와버립니다. 그래 자기는 잘 모릅니다. 뭐가 생명이 내게 들어와 예수는 무슨 예수 난 예수 안 믿어 그래 하는데도 그 속에 택함 자에게는  생명이 속 들어가버립니다.

그 생명이 그  속에 심겨져서 그때 중생이 돼 버립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그 속에 심겨질 때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명이 심겨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이런 구원이 있는가 예수님이 이런 분인가 이렇게 느껴서 그때부터 자기도 몰랐는데 내가 중생이 될 때는 그때가 중생이 되었던 때구나  느낄 수가 있죠.

나중에 그것이 장성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를 돌아보면 내가 중생이 그때 되는 것 같다 그때 새 생명이 내 속에 심겨진 것 같다 그래 느끼죠 이렇게 우리 속에 영생하는 생명이 우리 속에 심겨지고 이 생명이 이제 움이 나고 싹이 트게 되어지는 그런 역사가 나타날 때 교회로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생명이라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영생할 수 있는 생명 어떻게 그런 생명이 있느냐 이 생명은 죄를 없애버린 생명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죄가 하나도 없는 죄를 없애버린 것이고. 또 여기에 하나님이 완전 순종해서 의를 이룬 이것이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도록 되어 있는 요 요소가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이런 생명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와서 이 생명을 창조한 것입니다.

새로 완전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이 생겨졌고 이 생명을 우리에게 잉태되게 해서 무슨 생명이 우리 속에 잉태된단 말이고 무슨 그런 일이 있는가 이게 참 이해가 잘 안 가는 그런 말이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잉태된 것은 뭐 요셉의 정자로 생겨진 것 아닙니다. 요셉에게 뭐이 와서 생겨진 게 아니라, 마리아에게 성령이 와서 충만하게 됐다.

그랬죠 성령이 와서 충만하게 되니까. 예수님이 잉태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몸의 생명으로 생겨지게 됩니다. 이것은 특수한 생육법 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자라게 된 것이죠.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우리에게 오는데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는데 이것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요.

생명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해서 내게 오면서 내 속에 심어지고 이것이 자라나서 이 중생 된 사람은 예수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안 믿을 수가 없어요. 자기는 안 믿을라고 마구 발버둥 치는데도 나중에는 기억코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래서 고 영생하는 생명 고 생명이 우리 속에 심겨져서 요 생명이 자라가게 되는데 여기에 겨자씨 한 알 만한 생명 믿어 생명 있는 믿음 그러면 고 믿음이라 알고 인정하는 고대로 행하는 고 믿음이라는 그 속에 생명이 있다. 하는 말은 세 가지 이 대속이 그 속에 있다.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이것을 깨달아 알고 인정된 것이 자기에게 있다 말이요. 자기 속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자기에게 온 고 깨달음 요 이것이 자기에게 있을 때 자기에게 뽑히는 이 역사가 나타난다 이러니까 우리에게 있는 병이 뽑히는 나가는 것도 어떻게 그 병을 고치냐 이거는 불치병입니다. 안 됩니다. 이건 못 고칩니다.

그냥 죽을 때까지 그 병을 가지고 가야지 그래 하지마는 고 생명 있는 믿음이 자기 속에 딱 들어와서 하면은 그 다음부터는 그 병도  속 뽑혀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앉아서 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자기가 고 말씀이 인정이 되고, 고대로 살고 싶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아멘 나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각오와 작정이 생길 수 있는 역사가 자기에게 생겨집니다.

이러니까 자기 속에 이상하게 도무지 뽑을 수 없는 그것이 싹 뽑혀 나가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말씀 듣고 자기가 깨달았다고 은혜를 받았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피던 담배를 딱 끊고 술을 끊고 내가 이제는 이렇게 예수 믿겠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내 구원이 어떤 구원이라 하는 것을 느끼고 난 다음에 있는 힘 다 기울여서 이 구원을 이루려고 애를 써 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걸 봅니다. 이것이 다.

속에 생명 있는 믿음이 떨어졌을 때에 그런 결과를 맺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속에 말씀을 들을 때 생명 있는 씨앗이 떨어질 수 있는 그런 믿음을 받아 가질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겨자씨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이렇게 애를 써 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에 공로로 인해서 성령으로 인해서 진리로 인해서 자기에게 새로 깨달아지는 고 깨달음이 올 때 자기를 고칠 수 있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이런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이런 믿음을 받아 가질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자기가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그저 뭐 예배 시간에 자다가 듣고 자다가 듣고 뭐 그만 나가 앉아서 다른 생각하고 이래 앉았다가 가면 예배드렸다 이렇게 생각하고 가는 거기에는 그런 겨자 씨 믿음이 생겨지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이 생겨지는 데는 자기가 마음도 하고, 힘도 하고, 뜻 다 해서 말씀을 들으려고 애를 써 갈 때에 자기 속에 이 믿음이 생겨지고 믿음이 생겨질 때는 자기에게 뽑고 옮기고 심는 큰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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