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8월20일 주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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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000(창세기 5장 21-24절)
제목: 생의 가치
본문: 창세기 5장 21-24절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우리는 언제든지 크나 작으나 우리의 모든 생활을 평가도 하고, 비판도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형편대로 환경에 종이 되어서 살면 안 됩니다. 겨자씨 믿음도 주위 환경이 현실인데 그 현실을 따라 살면 결국에 세상이 되고 맙니다.
겨자씨 믿음을 배웠는데 겨자씨 비유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현실을 따라 살지 말고 현실을 잡아 먹어라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잡아먹는 것은 자기에게 어떤 현실이 찾아와도 현실에게 피동대고 지지 말고 현실을 다스리라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자기 주위 환경인 이 현실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우리의 현실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만 있기도 하고, 물건만 있을 때도 있습니다.
물건이 있을 때 물건을 따라 물건 위주로 물건 중심으로 이렇게 살지 말아라 무슨 사건이 있을 때 사건 위주로 사건 중심으로 살지 마라 이런 사람이 저런 사람이 있을 때 사건 중심 사람 중심으로 살지 말아라 그런 현실이 닥칠 때에 현실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나는 생명을 따라서 사는 이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만난 현실에서 사람 따라 살고 사건 따라 살고 물질 따라 살면 그것은 생명이 죽은 것과 같습니다. 생명이 있을 때 겨지씨는 죽지 않고 지기를 다 먹고 장성해 가게 되지만은 생명이 없으면 죽고 썩어지고 세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 있는 자기로 살 때 현실에 지지 아니하고 현실을 이기고 극복해서 자라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지는 것이니 우리의 현실을 이기는 것은 생명으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무엇이 우리의 생명이고 하면,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의 대속이 생명이오 성령의 감화 감동이 생명이오 우리에게 나타난 신구약 성경의 말씀인 진리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에 공로를 입고 영감과 진리로 행동하면 우리의 현실은 내 구원을 위해서 다 이용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내 현실을 내가 잡아먹는 것이 되고, 내 현실을 잡아먹어 생명이 자라가는 결실을 이루게 되지만은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영감과 진리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되면 그만 그 사람은 주위 환경에 피동이 되어서 사람에게 피동되고 일에 피동대고 물질이 피동되어 살아 자기는 세상화되고 만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 사람은 세 가지로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람은 주위 환경 따라서 주위 환경에 맞추어서 살 수 있는 이런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오 또 하나는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자기 주관을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또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하나님 따라서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그런 우리인 것입니다.
자기에게 이런저런 현실이 닥쳤을 때에 자기 생각대로 자기중심 위주로 자기 목적대로 자기가 주인이 되고, 주장이 되고, 자기소원대로 자기 욕심대로 이렇게 현실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보다 못난 사람은 자기는 다른 사람을 따라가고 또 자기는 일에 붙들려서 일을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자기 현실에 붙들려서 현실에 맞추어 사는 사람은 양심에 꺼려껴도 현실에 맞추어 살고 양심의 꺼리껴도 자기 계획을 따라 살고 모든 사람들의 비유를 맞추어서 살고 일에 맞추어서 살고 물건에 맞추어서 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사람 따라 살던지 이런 일을 따라 살던지 물건을 따라 사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좀 못난 사람이 세상 사람으로서 좀 잘난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 생각대로 자기주장대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세상의 영웅이고 잘난 사람이지만은 그것도 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요.
세상 따라 사는 것이요. 마귀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위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위 환경을 만들어주시지만은 그것이 다 악령의 것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악령이 아담 하와와 싸워 이겨서 이제 악령이 왕이 되어 있던 세상입니다.
다시 주님이 싸워 이겨 빼앗았지만은 이제는 악령에게 맡겨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령을 통해서 우리 현실을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악령을 통해서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나 이런 나라나 가정이나 사회를 조성합니다.
악령을 통해서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고 일을 이렇게 만들고 물건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도록 이렇게 만드는데 주장은 악령의 주당하고 그 뒤 배경은 주님이 모든 것을 주장합니다.
주님이 이렇게 악령을 통해서 이런 현실을 만드는 것은 우리 구원이 잘 이루어지도록 우리 구원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이런 현실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현실을 가만히 눈을 또 살펴봐야 합니다.
내 현실에 내게 가깝게 있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모든 물건이든지 사람이든지 사건이든지 그것을 들어가 보면 배후에는 세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이런 일이 있고 저런 일이 있고 이런 물건이 왔고 저런 물건이 왔고 이렇게 움직여지는데 배후를 보면
이것이 세상이로구나 그러면 자기가 그 물건과 대립되고 사람과 대립되고 일과 대립되면 세상과 대립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세상을 거슬리지 못하고 현실을 거슬리지 못하고 현실을 따라 살게 됩니다. 고 세상 뒤에 세상을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영의 운동이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그 영은 악령입니다. 악령이 그것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보는 사람은 악령을 배반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종이 되어 살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후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셔서 마귀도 이용하고 악령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배를 하고 악령은 모든 사람과 일과 모든 만물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은 악령과 사람과 모든 사물을 재료로 삼아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은 사람과 사물을 만날 때에 예수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를 버리고 사느냐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를 배반치 않고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를 따라 사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시험에 낙제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보다도 영감보다도 대속의 공로 보다도 물질이 일이 사람이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 살고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거슬려 사는 사람이 되는데 사람과 일과 모든 물질보다도 주님의 대속에 공로와 성령과 진리가 더 크다는 것을 느끼고 대속의 공로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살려고 해보면 그만 사람과 사물을 통해서 우리를 꽤우다가 안되면 협박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고문고행하는 이런 일을 합니다.
어떤 일을 해도 거기에 피동되지 않고 자기를 중생시킨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사는 그 사람은 그 현실을 진리로 이긴 사람이요. 영감으로 이긴 사람이요.
대속의 공로로 이긴 사람이 되기 때문에 사람과 사건과 물질은 그 사람에게 밥이 되고, 인격의 양식이 되고, 새 사람의 양식이 되어서 새 사람의 기능이 한 층 더 자라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 12절에는 시험을 참는다는 복이 있다. 했습니다. 우리 현실에 어떻게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할지라도 이렇게 사는 것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복이 있는 것은 이렇게 주님의 피로 살고 성령으로 살고 진리로 삶으로 현실을 통과했다고 하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멸류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습니다.
운동하는 데 면류관이 있고 권투면류관도 있고 배구면류관도 있고 여러 가지 면류관이 있습니다. 멸류관보다 꽃다발 안겨주는 것도 있고 또 그것보다 깃발을 주는 것도 있고 요사이는 메달을 주는 것입니다. 승리했다는 표로 이렇게 달아줍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하는 말은 생명이 승리한 이것을 준다한 것입니다. 생명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공로와 성령과 진리가 생명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닥칠 때 현실을 따라 살고 자기 주장대로 이렇게 현실을 살 때 우리는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떤 현실이 자기에게 닥쳐와도 그 현실에서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 때에 우리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살 때 두 가지로 구별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하나는 죽느냐 사느냐로 평가해야 됩니다. 죽는 길도 있고 사는 길도 있으니까.
내가 죽는 길로 가느냐 영생하는 길로 가느냐 이 둘을 가지고 우리는 현실을 따져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큰 성공을 이루어 가졌다 하더라도 끝이 죽음이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지 않고 영생하는 길은 죽음도 고난도 가난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부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사업을 할 때도 내가 이 길 걸어가면 끝은 죽는 길인지 사는 길인지 영생하는 길인지 그것을 가지고 구별해 가야 합니다. 이래서 이 레위기 11장에는 쪽발로 걸어가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또 우리는 내가 걸어가는 것이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와 동행하느냐 아니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동행하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구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는 모든 걸음에 사느냐 죽느냐 주님과 동행하느냐 세상과 동행하느냐 이것 가지고 구별해서 살아서 우리 현실을 승리하는 성공의 길을 걷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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