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8월6일 주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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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80600(창세기 5장 21-24절)
제목: 생의 가치
본문:창세기 5장 21-24절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다 자기대로의  제일의 가치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찾아서 힘써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가치 있다. 하는 이 가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 세상에서는 사람이 자기가 좀 가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겠다. 해서 나는 내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이런 내가 돼야 되겠다.
벌써 우리나라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도 벌써 몇백 년 동안 자기 이름을 남기고 알려지고 있다. 나라를 위해서 산 이순신 장군의 이름도 지금까지 내려오고 다 이름을 남기는 이름이 남겨질 수 있는 그런 삶이 보배로운 것이다. 하고 살고요. 또 과학자로 산 사람은 과학자로 산 그것이 제일이다.
해서 그렇게 살고 어학을 발견해서 어학에 대해서 유명한 사람이 된 사람은 또 그대로 가치를 따라 살고 이렇게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대로의 그런 가치의 걸음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천년 전에 2천년 전의 사람은 어땠을까? 모릅니다.
그렇게 번창했던 로마도 또 애굽도 또 그런 나라가 아닌 이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나 이런 나라도 굉장히 문화가 발달된 그런 때가 있었는데, 그 흔적은 그때에 도시 그때의 건물 조금 흔적이 남아있는 이것 보고 그때 이런 문화생활을 했던 그런 도시가 있었구나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그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벌써 1000년이 넘어가니까 이름도 없어지고 그렇게 살아도 다 죽음과 동시에 없어지고 마는 것이 그게 사람이 뭐 죽을 죽지 않은 사람이 없고 죽으니까. 그것은 끝이 되고, 말지요 그래도 살아 있을 때는 가치 있는 사람을 삶을 살자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들은 살지만은 죽음으로 끝나는 그런 가치도 있고 죽음이 와도 끝나지 않는 가치도 있다.
하는 것을 창세기 5장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 이 가치 있다고 하는 이 걸음은 얼마나 갈까 얼굴이 예쁘니까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얼굴이 예쁜 게 가치다 해서 얼굴을 가꾸는 데에 힘을 다 기울이고 늙어지지 않는 그게 가치니까 얼굴에 주름실이 주름살이 안 가도록 하려고 애를 써서 수술을 하고 해서 어쨌든지 얼굴이 팽팽하도록 그렇게 할라고 애를 써 갑니다.
그래도 결국에 늙어서 죽었다 얼굴이 예뻐서 이렇게 좋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줄 알고 바꿨지만은 그것이 들어서 불행이 되어서 아주 이런 실력을 구비하면 이 실력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해서 준비를 했는데 그 실력이 들어서 아주 자기를 불행케 하는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다는 것을 가치의 대소와 가치의 수명과 가치의 결과를 가지고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 가치를 따라서 사는 것은 어떤 결과를 이룰 수 있느냐 가치가 얼마나 가치가 큰 것인가? 그 가치는 몇 년을 유지하는가?
이렇게 따져 볼 때에 이제 아무리 가치 있다고 크다고 해도 그것은 한 지역에서 알아 세계에서 알아주는 그런 가치도 있지마는 참 그것은 드물 그래도 그가 죽고 나니까 이제 그것이 자기에게 이름만 남겨도 없이 아무 소용도 없고 이런 가치인데 그중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치는 끝이 없고 또 가치의 크기가 하나님은 아니지만은 하나님과 같은 그런 지위에까지 올라가는 가치가 되고 그 가치는 영원히 있게 되고 이것을 볼 때에 하나님과 동행의 가치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가치에 대한 눈이 밝아지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과 동거동행 생활이라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생활인가 이것을 우리가 연구해 보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거동행의 생활은 이렇게 큰 가치가 있는 이 길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봉거 동행의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동거동행이 되는가 자 여기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잘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번 집회를 통해서 잘 배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은 완전자시오. 영원불변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우리가 막바로 하나님을 대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과 동거동행을 한단 말인가 하나님과 동거동행의 방법을 집회를 통해서 배우고 이 가치 있는 이 걸음을 우리가 걷도록 애를 써 봅시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왜  그 길이 무슨 그렇게 가치 있는 길일까? 하나님이 열어주시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알려고 해도 들어도 모르고 읽어도 모르고 외워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지 않으면 이 길이 어떤 길인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이 공로를 입은 줄 알고 이 공로를 입어서 자기가 사죄의 은혜로 자기 속에 있는 삐뚤어진 것을 자꾸 정리해 가면 정리해 가는 것만큼 밝아져서 이 보배를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 보배며 뭐이 크겠느냐 하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용감하지요 모르면 자기는 무시하고 용감하게 하지만은 알면 그리 하지 못합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크게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보배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셔서 이 가치 있는 길을 걸어라 그 가치 있는 길이 무엇이냐 죽음이 와도 내 가치가 줄어지거나 약해지는 것이 아니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이길 수 있고 영원히 점점 더 가치 있는 이런 내가 되어져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길이 가치가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합니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동행이 되어지도록 하나님이 우리 사람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나님은 무영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영감으로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감으로 역사하고 그 역사가 우리에게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더 가까이 온 역사가 진리의 역사예요.
진리의 역사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왔을 때 말씀의 역사요 말씀이 더 가까이 왔을 때에 성경의 역사요 성경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와서 우리가 접해도 아무 상함이 없고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그것으로 온 것이 문서 계신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서 계시 안에 내재적 영감의 역사가 있어 이 안에 하나님 계시는 하나님을 접하고 이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려고 문서 계시를 따라 순종하는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과 동행이 됩니다.
문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읽고 듣고 깨닫고 믿고 또 이 말씀을 생각하고 이 말씀대로 실행하는 데서 자기란 사람이 변화되어지고 자라가게 됩니다. 이제 여기에서 점점 성경을 깨닫게 되고 말씀을 깨닫게 되고 진리를 깨닫게 되고 영감을 접해서 영감으로 사는 이런 자기가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는 데는 예배를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 하나님은 내가 접할 수 있도록 가장 쉽게 찾아온 것이 말씀으로 내게 찾아왔는데 문서 계시인 말씀으로 내게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문서 계시인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이 말씀을 설교로 전하여 주는데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내게 말씀이 내게 옵니다. 말씀이 내게 와서 깨닫게 해 주시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깨달아지는 것은 하나님이 내가 접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내게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나는 만나고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과 하나 되어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 생활을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알려주는 말씀을 바로 깨닫고 말씀으로 사는 말씀으로 걸어가는 말씀대로 행동하는 이 사람이 되어서 자기가 변화가 되어져서 자기가 변화되기를 자기 안에 말씀이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는 말씀에게 피동이 되어서 말씀대로 동하고 정하는 이런 자기로 사는 여기에서 이 구원이 이루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은 지금은 뭐 나는 모르기 때문에 죽어 보면 그때야 알지 않겠나 죽고 난 뒤에는 하나님도 알겠고, 알 거니까 그때 가서 순종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 지금 힘 있을 때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좀 그래 합시다. 아이구 목사님 지금은 우리 아이 공부시켜서 학교 좋은 학교 나오도록 이렇게 해야 되니까. 그거 할 여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 공부 다 시켜놓고 그 뒤에 하겠습니다. 그랬는데 그 나이 되니까. 이제는 늙고 힘없고 치매 오고 그러니까 뭐합니까? 무슨 구원을 이룹니까 바보가 돼 버리니까 다 헛일 하고 맙니다.  우리는 이 구원은 짧은 요, 세상 사는 기간 동안에 이루지 이세상 사는 기간이 지나가면 이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는 동안에 이것을 연습하고 실패하면 또 다시 연습하고 또 다시 연습하고 이 실력을 길러가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걸음을 걷는 연습을 하고 실력을 길러서 말씀과 동행하는 말씀과 동행하는 요 사람이 되어지기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이 가치 있는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오는 이 큰 축복의 은혜를 힘입어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짧은 세상 사는 이 기간에 이 구원을 이루지 못하면 영원히 이런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도 힘 있을 때 늙어 힘 없어서 좀 움직일라 해도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눈 어렵고 눈물 나고 이러니까 뭐합니까? 늙어지고 나니까 아무것도 못 하는 겁니다.
그럴 때 가서 잘 믿을라고 생각하지 말고 힘 있을 때 우리는 내 마음의 모든 노력을 주님과 동행하는 동행 생활에 내 마음을 다 기울여 사는 이 걸음을 들어서 주님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 이 실력을 길러가는 우리가 되어져 가도록 주님과 동거 통행의 생활이 되어져 가도록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치 있는 인생 길을 걷는 우리가 되어 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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