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8월4일 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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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80450(:창세기 5장 21-24절)
제목:인생의 가치
본문:창세기 5장 21-24절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말씀을 듣고 또 행하는 여기에도 많이 힘을 기울이도록 합시다.  사람이 일생 산다 하는 것을 간단하게 이렇게 분류해 본다고 하면, 사람이 출생해서 결혼하기까지 이렇게 저렇게 또 살고 결혼한 다음에 자녀 놓고 이렇게 저렇게 또 몇 해 살고 이제 자녀를 다 출가시키고 난 다음 늙어서 이제 또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이것이 인생의 일생입니다.
이런데 여기에 악령이 들어서 혼돈시켜서 이것을 간단 명료하게 분류하지 못하게 하고 인간인생 사는 것이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죽는 일을 하고 있는지 사는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구분은 되지 않고 모르고 그냥 일생을 지내가기가 쉽습니다.
사람이 출생하고 나면 먹고 자라고 또 공부하고 일하면서 이런저런 생활하면서 자라가고 또 결혼할 때 되면 결혼하고 그러고 난 다음 이런 생활이 가치 있다. 저런 생활이 가치 있다.
복된 생활이라 나름대로 그렇게 선택해서 전신전력 기울여서 선택하고 거기에 부모들은 자녀의 선택에 협조해서 이렇게 선택하도록 해서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성공이다. 저런 사람과 결혼하면 성공이다. 또 자녀를 잘난 자녀를 낳으면 성공이다.
잘난 자녀를 낳았다고 성공이라고 기뻐하고 병신을 낳았다고 울구불고 또 좋은 직장을 가졌다고 기뻐하고 이렇게 살다가 마지막에는 죽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젊고 얼굴이 주름살도 하나도 없고 참 이 사람은 아주 늙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래도 그 사람도 자기대로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것이고. 늙어가지 않는 사람이 없고 죽음을 향하여 찾아가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제일 소원이 일생 늙어지지 않는 것과 안 죽는 것이 제일 소원일 것입니다. 아무리 안 늙어질려고 해도 결국 늙어지고 안 죽으려고 해도 결국 죽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제 늙어 죽을 때가 다 되면 내가 이렇게 살지 않고 좀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죽을 때가 되어서는 그렇게 후회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에는 인생의 일생에 대한 가치를 평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나도 죽을 것이라 하고 죽을 준비를 하고 대비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는 안 죽지 하고 죽지 않는 것으로 알고 이렇게 사는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창세기 5장을 보내서 인간 일생에 제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죽는 것과 영원히 죽지 않은 사망과 영생의 문제가 우리 인생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서 결혼을 할 때까지의 토막 어떤 토막 생활을 했든지 간에 자기가 명예가 좋다고 권세가 좋다고 기술이 좋다고 돈이 많다고 소원대로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쓰고 싶은 것을 다 쓰고 살 수 있다고 나는 가치 있는 것을 잡았다고 이렇게 생각하나 인생의 생애에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영생과 사망이다. 영원히 사는 길이 있고 영원히 죽는 길이 있다.
인생이 인생 살면서 나는 먹을 것이 많다 나는 돈이 많다 권세가 많다 나는 아주 건강하다 나는 이런 미가 있는 사람이라 이런 영광과 호강이 많다 이런 것이 아무리 없다고 자기는 못나고 천한 자로 저 자세로 또 이런 것이 많다고 우쭐하고 여기에 가치를 두고 사는 그런 걸음을 걷지 말아라 그런 것에 가치를 두고 살지 마라 인생의 가치는 영생이냐 사망이냐 여기에 가치를 두고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9절로 보면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 이는 풀에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불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지고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 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세잔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지위가 높고 낮은 그것을 가지고 가치를 보지 않는다.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고 이 세상에 세상적으로 어떻게 높고 낮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이는 천한 인간이라 이런 귀한 인간이라 이렇게 보지 않는구나 세상적으로 높다 많다 낮다 이것 가지고는 인생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니 인생에게 참 문제는 영생이냐 사망이냐 여기에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생활을 했든지 간에 내가 영생을 이루느냐 사망을 이루었느냐 이것으로 평가를 해라 요사이는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이 아이는 귀가 축 처져서 복이 있을 것이라고 이 아이는 IQ가 좋아서 복 있는 아이를 낳았다고 요사이는 여자를 많이 낳아 놓으니까.
비행기를 탄다고 그것을 인생의 가치로 삼지 마라 영생이냐 사망이냐 여기에 가치를 두라  사람은 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 그 가치에 다 따라가고 협력하고 그 가치에 주력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 가치를 이 일을 이렇게 하면 명생하느냐 아니면 이 일을 이렇게 함으로 영원한 사망을 하느냐 여기에 중점을 두고 가치를 두고 여기에 기준을 해서 내가 살아라 여기에 기준을 두고 가치를 두고 살지를 못하고 나는 남자를 낳았다. 여자를 낳았다. 많이 낳았다. 적게 낳았다. 높은 자리에 있다.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있다.
나는 돈을 많이 모아 놨다 나는 머리가 좋다. 얼굴이 예쁘다 여기에 가치를 두면 사람이 같이 든 크기에 전신전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전심전력 기울이다가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참 내가 한 달만 더 살면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떠날 건데 후회하면서 떠나게 되어지는 그런 인생 그러므로, 인생은 영생하느냐 영멸하느냐 여기에 가치를 두면 사람이 여기에다가 힘을 다 기울여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소경입니다.  나는 젊을 때 돈을 많이 벌어서 이렇게 얼마든지 평안하게 사는데 너는 돈이 없어 고생하네 나는 자녀를 잘 공부시켜서 결혼시켜 놓으니까.
팔도강산 유람하고 세계를 관광하고 다니니까 복이 있다. 이래서 그복 속에 파묻히면 뭐하는가? 복 속에 파묻혀도 사망이 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를 땅에 이런 저런 것에 가치를 두고 살면 안 됩니다. 그 모든 것을 취하고 마련하는 데에 영생에 속한 것인가?
영생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사망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거기에서 살펴보고 영생을 취할 수 있는 이 걸음을 우리는 걸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아도 많아도 죽으면 그만 아닙니까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영생한다면, 좀 고생되는 것은 참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자기의 마음의 폭을 좀 넓혀서 지혜를 가지고 살면 되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살지 못하고 이 세상에 대해서만 가치를 느끼고 사는 이 사람이 되니 참 성경을 모르는 소경이요. 사망에 속한 사람이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고 부요하다 할지라도 다 죽으면 많으나 적으나 높으나 낮으나 꼭 같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수고하고 힘들었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내 집을 가지는 이것이 참 행복의 가치라 해서 이제 집을 새로 짓고 마련하고 다 준비해 놓고, 이제 됐다.
이제 참 가치 있는 것을 찾아서 좀 누려보자 했는데 그다음에 죽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옳게 누려보지도 못하고 그것으로 끝나가 버리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돈을 많이 마련하는 것이 복이 아니냐 거기에 사망이 있느냐 영생이 있느냐 이 높은 학위를 가지는 것이 지위를 가지는 것이 이게 가치요 복이다.
거기에 사망이 있느냐 영생이 있느냐 영생이 없으면 다 헛일입니다.  이러므로 사망과 영생의 가치를 두고 우리는 구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창세기 5장에 주신 말씀은 사람이 나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자녀 낳고 이렇게 살다가 죽었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했는데 에녹만큼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했다. 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이냐 영생이냐 여기에 가치를 두고 사는 우리가 돼야됩니다.  그러면 사망을 피하고 영생을 이루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망을 피하고 영생을 이루는 길은 세상에서 수많은 보이는 방편 가치 있는 방편을 말하지마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제일 좋은 방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가?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라 우리가 볼 수가 없지만은 우리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기로 성령으로 가까이 오시고 진리로 가까이 오시고 말씀으로 가까이 오시고 성경으로 가까이 오시고 문서 계신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왔기 때문에 우리는 문서 계시를 통해서 성경으로 동행하고 말씀으로 동행하고 진리로 동행하고 영감으로 동행 생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치 있는 생애 죽음없는 생애 걸음을 걸어갈 수 있는 이런 우리의 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똑같이 직장을 다니지만은 똑같이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고 농사를 짓지마는 거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는 것은 문서 계시를 어기지 않고 문서 계시 안에 성경으로 사는 것이오 성경 안의 말씀으로 인하여 사업하고 말씀으로 인해서 인인관계 맺고 말씀으로 인하여 모든 사물관계를 가지는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여기에서 말씀을 떠나서 하지 않고 말씀으로 인해서 이 사람과 인인 관계를 맺어 가야 되겠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이야 하나님의 것이오 하나님이 이 사람을 탐험해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니 이것을 보면서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상대하면서 사람을 상대해 가는 이 걸음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을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모든 물질을 상대하면서도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측권 개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보고 여기에서 이 목적을 이루는 데에 내가 협조하고 돕고 이 길로 내가 걸어야 되겠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험 없는 이런 우리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이런 우리로 양육하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 모든 인인관계에서 사물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그 모든 관계에서 삐뚤어진 것은 다 멸하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당신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는 이 실력을 여기에서 길러보라고 주신 현실이니 사람과 관계를 통해서 물질과 관계를 통해서 일과 관계를 통해서 점점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기로 걸어가는 이 목표를 향해서 달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여기에서 영생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관을 바로 가지고 영생이냐 사망이냐 영생을 이루는 길은 하나님과 동행의 길이다. 하나님과 동행의 길은 이 말씀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 만드는 것이니 이런 자기가 되어지려고 여기에 가치를 여기에 목적을 두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인인관계를 맺고 사물관계를 맺어가는 그런 걸음을 걷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인생이 성공하는 인생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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