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8월1일 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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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80120(창세기5장21-24절 )
제목:여섯가지 가치와 방법과 기쁨
본문:창세기5장21-24절
에녹은 65세에 모두셀라를 낳았고 므두 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대로는 다 가치 있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어떻게 살든지 가치있는 삶을 살려고 애를 쓰는데 어떤 삶이 참 가치 있는 삶인가 사람마다 이런 일이 가치 있는 삶이다. 저런 일이 가치 있는 삶이다. 해서 그런 가치 있는 삶을 따라서 열심히 다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세상에 와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좀 벌어 가지고 좀 행복되게 살 수 있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세상에 왔으면 이름을 남기고 갈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알려질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 그래서 사는 사람 참 그런 저런 가치 있는 그런 길이라는 그것을 다 찾아서 걸어가고 있죠.
그러나 그것이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서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또 지역에 따라서 가치관이 또 다르고 이렇게 같이 있는 길이 어떤 길인가 그렇게 가치 있는 길을 많이 말을 하고 있지마는 그 길은 성경은 두 가지로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일생을 살았는데 참 자기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와서 가치 있게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이면은 참 불행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래도 자기는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가치 있게 살았는데 살았지만은 마지막에 죽음이 오니까 끝이 나고 다 죽고 말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가치 있는 삶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내가 후대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면 가치 있지 않느냐 우리 조상들 보면 벌써 자 세종대왕도 아이고 이순신 장군도 이렇게 이름이 있잖아요. 그랬는데 전 사람들을 또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천년 전에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단 말이에요. 다 없어지고 말은 거예요.
그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은 그중에 다 그래도 가치 있게 산다고 해도 그렇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데 에 이 길을 성경이 구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당시 5장의 말씀입니다. 두 가지로 구별를 하는 것은 하나는 사망의 길이요 하나는 생명의 길이다. 어떤 가치 있는 길로 걸었다 할지라도 죽음이 오면 그만 그것이 다.
끝이 나고 마는 그런 길이 하나 있고 하나는 죽음이 와도 끝이 나지 않는 그런 길 영원히 잘 될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다. 그것을 이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만 보면 900년을 살았는데 900년을 잘 산다고 했는데, 죽고 나니까 끝이 났거든요.
다 끝이 났는데 에녹은 짧게 살았는데 365년을 사는 그런 짧은 기간을 살았지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고 영원히 생명과 평강을 누리는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이 에녹이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째로, 죽음으로 끝나는 생애냐 죽어도 끝이 나지 않는 영원이 계속되는 생애냐 이 둘 가지고 구별을 해서 영원히 끝이 나지 않는 이 삶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지혜 있는 걸음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둘로 구별해라 그러면 생명과 평강의 길 그 길은 어떤 길입니까? 영원히 가치 있는 생명과 평강의 일은 어떤 길입니까?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 그러면 세상에 사는 것은 크게 둘로 또 구별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생활과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생활 두 생활로 구별할 수 있게 되겠습니다.
그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 생활이 되면은 영원히 가치 있는 생활이 되고, 생명과 평강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생활이 되어진다 하나님과 동행이 되지 아니하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되고, 만다 죽음이 오기 전에 벌써 끝나버리는 것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느냐 요것 가지고 우리는 자기 생활을 자꾸 구별하고 동행 생활을 할 수 있는 이 자기가 되어지도록 애를 써 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 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신 하나님이시오.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인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형체도 없으신데, 어떻게 동행합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신 하나님이지마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는 영감으로 역사하십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은 영감으로 움직인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영감으로 창조하시고 영감으로 주권 개별 섭리려하시고 하나님은 영감으로 당신이 이 모든 일을 역사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왔는데 보니까, 영감 역사라 말입니다. 그러니 영감 역사가 우리가 느끼기는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 영감 역사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진리 역사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까이 온 것이 진리 역사예요.
진리 역사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온 것이 말씀 역사요 말씀 역사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온 것이 성경으로 온 것이오 성경이 우리가 접하기 알기 쉽도록 우리에게 온 것이 문서 계신 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서로 기록해 준 이 신구약 성경 말씀 안에 하나님의 역사인 성령의 역사가 내재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 믿습니다.
그러므로, 문서 계시를 잡고 깨닫고 문서 계시를 읽고 듣고 깨닫고 믿고 순종하는 요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알고 어떻게 역사하시는 하는 그것을 문서계시로 깨닫고 자기도 그와 같이 사는 자기가 되면 하나님과 동행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 이래서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닫고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는 분이구나 하나님이 이것을 좋아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것을 미워하시는구나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런 삶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 안 사람은 자기가 만든 자기가 만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지금 뭐 하실라고 할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것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실 하나님이 지금 이렇게 하실려고 하는구나 나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기서 동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하나님과 동행이 된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보고 자기도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자기도 동하고 정하는 자기가 될 때 하나님과 동행의 생활이 여겨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과 평강을 이루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우리가 기쁨으로 기쁜 일을 찾아가서 기쁨을 가지려고 합니다. 세상에 우리가 사는 것을 보면  기쁨 없이 살 수 없는 그런 우리입니다.
제일 가치 있는 생애는 어떤 생애냐 우리의 생애를 두 가지로 구별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생애냐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생애냐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생애의 걸음을 걸어가니까 다니엘이 죽음이 왔는데 죽음이 왔지만은 죽음이 조금도 해하지 못하고 그는 하나님이 하나님과 통행 생활로 계속하므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가 다 전멸되고 그는 평강을 누리는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는 이 생애 법칙  하나님과 동행 생활이 되느냐 동행 생활이 되지 않느냐 여기서 동행 생활의 걸음을 우리가 걷고 또 한 가지는 우리 성도가 어떤 입장 처지에서든지 사람이 기쁨이 없이는 살 수가 없죠. 기쁨이 있는 기쁜 것을 찾아가는 그런 일을 합니다.
그분 자기에게 찾아온 기쁜 자기가 제일 기뻐지는 그걸 찾아갑니다. 이런데 자기에게 기쁨이 왔는데 그 기쁨이 계속 자기에게 기쁨이 된다고 하면, 참 좋은 기쁨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도로 고통으로 슬픔으로 괴로움으로 자기에게 닥쳐옵니다.
기쁜 만큼 자기에게 고통이 다 찾아오니까 차라리 기쁨 없이 살려고 이렇게 될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기쁨 없이 살 수 없어서 자기는 기쁜 일을 찾는데 기쁜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기쁨이 어떤 것인가? 그것을 또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시고 자연이 가르쳐 주는 그런 기쁨은 작은 자가 큰 자를 위했을 때 오는 기쁨입니다. 가난한 자가 자기를 살리려고 하는 부자를 기쁘게 할 때요 오는 평강과 기쁨입니다. 자기는 새카만 어두운 죄인인데 그런 죄인이 을을 행할 때 오는 기쁨입니다.
사람이 못할 일을 할 때는 고통이 오고 자기가 할 일을 바로 했을 때 기쁨이 옵니다. 인생이 자기에게 분담된 일을 책임지지 못했을 때 고민과 고통이 오지만은 자기의 책임을 잘 완수했을 때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성도들의 영원한 기쁨을 우리에게 하나 계시해 주고 있는 자연계시입니다.
특별 계시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기쁨은 어떤 기쁨인가 성도의 기쁨은 십자가의 기쁨입니다.
십자가의 기쁨은 어떤 것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나를 십자가에 대속을 해주신 주님의 사랑과 그 고난과 우리를 대속해 주신 그 광대함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게 온 그 은혜에 구별하고 세밀하고 무한한 은혜 이 은혜를 주신 주님으로 인하여 오는 기쁨입니다.
또 이 주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요 주권개별섭리자요 창조지요 천지전능이다요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라 제일 크신 분이오 영원한 나라의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에서 왕으로 계실 이분을 자기가 영원히 모시고 삽니다. 이렇게 이분을 모시고 살 때에 오는 그 기쁨입니다.
십자가는 이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했는가 하는 그것을 십자가의 피로 말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오셔서 사생활 한 것과 공생활로 통해서 십자가 대속으로 나를 대속했고 이제 이 대속한 것을 우리에게 입혀서 영원히 입고 누리도록 하시려고 다시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이분으로 인한 소망을 깨달아서 이분을 모시고 살면서 우리는 이분을 모시고 사는 자기라 이것을 자기가 아는 사람이 되면 잠깐 지나가는 세상이지만 굉장히 기쁜 기쁨 속에 살게 됩니다.
나는 창조주 주권자 나를 위해서 이렇게 사랑하신 이렇게 희생하신 이분을 내가 모시고 사는 내가 되었다. 이것을 얼마나 느끼느냐 얼마나 깨달아 아느냐 여기에서 우리는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이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가  이래서 이분을 알고 이분을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하면 이분을 위해서 내가 수고를 하면 이분을 위해서 어려운 일을 하고 이분을 위해서 나 좋고 나 편한 길이 많지만은 좋은 걸 버리고 힘이 들어도 고생이 되어도 이분 위해서 어려운 길을 걸어가실 때에 걸어갈 때에 우리 마음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 기쁨을 두고 십자가의 기쁨이라 말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는 이 십자가의 기쁨을 가지고 십자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작은 예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평안할 건데 나가서 심방을 하고 오니까 힘들지만은 땀이 나고 힘들고 그래도 나가가 전도하고, 심방하고 들어오니까 기쁘죠 자기가 굶으면서도 자기 것을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고 오니까 기쁘시지요  주를 위해서 수고할 때에 오는 기쁨 주님이 소원하시는 대로 원수를 사랑하는 기쁨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의 명령대로 희생한 기쁨 이런 기쁨은 피조물로 인한 기쁨이 아니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십자가의 기쁨을 가지고 이런 십자가의 기쁨 속에 사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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