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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73110(창세기5장 21-24절)
제목: 하나님과 동행생활
본문:창세기5장 21-24절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고 가지만은 다 자기대로는 제일 가치 있는 그런 삶을 살려고 애를 쓰고 힘을 기울여 삽니다.
자기대로는 다 이런 종류의 생애가 가치가 있다. 저런 종류의 생애가 가치가 있다. 하고 가치 있는 길이라고 걷고 있지만은 그 모든 생활을 보면 지방성을 따라서 가치가 달라지고 시대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지고 또 어떤 지식을 가졌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맙니다.
그게 참 가치 있다고 한 것인데도 지방이 달라지니까 아무 가치 없는 것이 되고, 가치 없다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되고, 또 시대가 달라지니까 참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생활이 되고, 이렇게 달라지게 됩니다.
아주 지식이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하고 교육 수준이 아주 뒤떨어진 사람들이 아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주 고등 교육을 받아서 많은 학식을 가진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이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내가 새로운 지식을 가지니까 또 가치관이 달라지고 지방이 달라지니까 또 가치관이 달라지고 또 시대가 달라지니까 가치관이 달라져서 야 우리 생활을 개량해 가야 되겠다. 과거의 생활은 가치 없는 생활이고 지금의 생활은 이제 가치 있는 생활로 다 바꾸어야 되겠다.
해서 다 바꾼다고 애를 쓰고 그래서 가치 있는 길을 걸어 갈려고 다 애를 써 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치 있는 길이라고 선택해서 살았지만은 결국에 죽음이 오니까 그것은 다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많이 본 사람은 거 다 헛일이다.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데 가치 있다고 하는 생활이나 가치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나 가치 있게 사는 것이나 그것이 다 꼭 같다 차이가 없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그만 마지막에 다 죽음으로 끝이 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도 남아 있는 게 아니고 다 끝나고 말았다.
우리가 그래도 돈을 좀 벌어서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내가 먹고 쓰고 남은 것은 우리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그래서 내 자식들도 잘 먹고 살도록 하고 싶어서 이렇게 애를 써서 준비를 했는데 저 어떤 분은 그래요. 평양에서 30 리까지는 자기 땅이 아닌 땅이 없이 다 자기 땅을 밟아야 갈 수가 있다.
하는 만큼 그렇게 많은 땅을 가진 지주가 이렇게 부유하게 살았는데 아들은 땅은 자기 아내에게 이건 니가 다 해라 하고 줘버리고 나는 그 다 소용없다. 절로 들어가서 주로 인생 살다가 또 마지막에는 내가 가는 길이 헛일이었구나 하고 후회를 하면서 다시 새로 예수 믿는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지혜 있는 길이라고 돈을 많이 모았는데 자식은 그것이 지혜 있는 길이 아니라고 어리석은 길이라고 다 던져버렸다 또 그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자식들은 치고박고 싸워서 야단이 나고 어떤 길이 참 지혜 있는 그런 길이고 가치 있는 그런 길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이런 도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창세기 5장에는 그런 가치 있는 길이라고 말하는 복잡한 세계 속에서 단 한마디로 어떤 길이 옳은 길이냐 가치 있는 길이냐 이렇게 말씀해 준 겁니다. 아무리 분망한 생애의 걸음을 걷지마는 사망에 속한 생애도 있고 생명과 평강에 속한 생애가 있다.
자기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가치 있다고 준비를 해도 사망에 속한 생애는 죽음이 오면서 그것도 끝이 나고 만다 그러나 생명과 평강에 속한 생애의 걸음을 걸어가면 죽음이 와서 해하지 못하는 끝없는 영생의 그런 생애에 걸음을 걷게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없는 생명과 평강에 그 길이라고 하면, 잠깐은 쫌 굶으면 어떻고 매를 맞으면 어떻고 불에 거슬리면 어떻겠습니까? 잠깐 고 기간이 지나가고 나면 영원한 평강을 누리게 되는데 영원히 자라고 잘되게 되어지는데 그 길을 택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사망에 속한 생애를 걸어가느냐 생명과 평강에 속한 길을 걸어가느냐 이것을 가지고 구별해서 생명과 평강의 속한 이런 길을 찾아가는 우리의 걸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생활은 여기에 이런 영광이 있고 명예가 있고 지위가 있고 공로가 있고 예술이 있고 뭐 굉장한 것들을 다 말하지만은 그것이 사망에 속한 이 세상에 속한 그런 것이면 그것은 다 죽고 마는 것이에요. 그기에 속하는 것이 다 세상에 속한 것이고. 사망에 속한 것이면 죽음이 오면 그것으로 다 끝나고 마는 것이다.
자기의 걸음이 길든지 짧든지 넓던지 둥글던지 어떤 걸음을 걷든지 간에 영생을 향하여 가는 걸음이라고 하면, 영원한 평강의 길이라고 하면, 그것은 가치 있는 길이라 가치 있는 길이라 그래서 자기가 내가 가는 이 걸음이 사망에 속한 것인가? 생명과 평강에 속한 것인가?
하는 것을 가지고 인생의 가치 평가를 요 둘로만 평가할 때에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참 가치 있는 그 길 자기가 무엇을 해 놓아도 그것은 멸해지지 않고 영원히 성장되고 영원히 자라가고 그로 인해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길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아가는 가치 있는 생명과 평강의 그런 방편은 어떤 길인가 그 사는 방편은 두 가지 방편이 있다.
생명과 평강으로 사는 방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는 길이 있고 하나님과 동거동행하지 않고 모든 피조물과 세상 그 외의 모든 것과 동거동행하는 길이 있다. 그러면 모든 가치는 두 가지로 우리가 구별해야 됩니다.
하나는 사망의 길이냐? 생명과 평강의 길이냐 ? 요것 가지고 구별하고 둘째는 생명과 평강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편이 뭐냐 방편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계명을 지켜 하나님과 동행하든지 아니면 다른 돈과 권세와 지위와 이런 저런 사람과 이런 예술과 이렇게 동행하는 삶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로 이렇게 구별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해도 어떤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죽으면 끝나는 일이면 그것은 가치 없는 일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죽어도 끝나지 않고 그래서 세상에서도 이것은 죽어도 끝나는 게 아니라, 자손 대대로 이것을 기념하고 알아주고 모두가 높이고 그리하는 길이다. 이렇게들 다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가만 보면 지금부터 뭐 한 1000년 정도 전에 이런 사람들의 삶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잘 모릅니다.
다만 그 무덤을 파 보았을 때 에 그들이 장식한 장신구가 아주 금띠를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있고 또 가락지 귀걸이를 해가지고 있고 아주 그 도구도 생활 도구도 아주 잘 되어 있는 그런 것을 봅니다. 모든 서민도 다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지마는 그들은 가치 있는 삶이라고 굉장히 많이 애를 써서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걸 뭐 그렇게 가치 있게 완전히 잘 모릅니다. 그거 다 없어버렸어요. 영원히 자기는 있을 것이라고 죽을 때도 자기 종들까지 살아있는 사람까지 다 죽여서 자기 옆에 같이 죽도록 이래서 주인이 죽으면 종들까지 다 죽여서 거기에 묻어버린 그런 장례를 지내가지고 이렇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지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끝이 났지요 이렇게 죽음이 오면 끝이 나는 죽음이 와도 끝이 나지 않는 죽음이 해할 수 없는 그런 생명과 평강의 생애 그러면 그 생애는 뭐냐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계명을 지키고 사는 요 생활 요 생활은 생명과 평강의 길이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 하나님과 우리가 어떻게 동행할 수가 있느냐 하나님과 우리가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온 것이 무엇인고 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영원의 하나님이요. 심판주신 그분을 우리가 직접 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온 것이 영감으로 오시고 영감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올 때는 진리로 오셨고 그 진리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올 땐 말씀으로 오셨고 말씀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왔을 때는 성경으로 오셨고 그 성경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왔을 때는 문서 계신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서 계신 이 말씀을 잡고 이 말씀을 따라 사는 그것이 이 말씀의 지도를 받고 이 말씀을 따라가는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 생활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든 생활을 하는 데에 그 생활에서 문서 게시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고 이 말씀대로 사는 이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요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 생활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문서 계시 요것만 보고 요것으로 동행 생활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살면 또 헛일이 되고, 맙니다. 이 문서 계시 안에는 성경이 들어있다. 성경과 동행이 되고, 이 성경 안에는 하나님 말씀이 있다. 해서 고 말씀과 동행이 되고, 고 말씀 안에는 진리가 있고 진리 안에는 영감이 있고 영감 속에는 주님의 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요것을 문서 계시 속에 이것이 다.
와 있는 줄 알고 이 속에 주님과 동거동행이 되어지는 이 말씀과 동거동행이 되어지는 그런 걸음을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우리는 성공되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영감으로 영감시켜 주시는 말씀을 그 영감을 받을 때에 진리가 왔고 그 진리가 자기에게 말씀으로 들려줬고 자기에게 성경으로 이것을 세분하니까 세분해서 다 잘라보니까, 여기까지 요렇게 나옵니다.
요 성경이라 말입니다. 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해 갈 때에 거기는 아무도 해할 수 없는 그런 길을 걷게 되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나라의 포로가 되어서 갔으니까. 그들을 누가 해방시켜 주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나라는 다 망해버렸는데 왕도 없고 군대도 없고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종으로 다 팔려가버렸습니다. 어떻게 해방되고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다니엘을 통해서 영감시켜서 기도해라  기도하니까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니까 그 이스라엘의 원수를 다 죽여버렸어요. 다 잡아 죽이고 이스라엘을 이제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에 가서 성전을 건축해라 성전 건축하는 돈까지 다 이렇게 줘서 이렇게 보내주는 이런 결실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보면 다니엘이 기도함으로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으니까. 죽은 거죠.
그건 죽은 거 아닙니까 근데 죽음이 왔다고 했는데, 죽음 속에 들어가니까 죽음이 하나도 그걸 해치지 않고 해칠 수가 없고 오히려 거기에서 더 살고 더 커지고 더 부유해지고, 더 형통한 길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이루어진 결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롯에게 같이 본토와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가나안 땅 벧엘에  왔을 때 여기에 머물러 살아라 이랬을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아브라함은 가나안땅 벧엘에 머물려고 했고 롯은 그 말씀과 동행 생활하다가 이제는 자기 가족과 동행하고 종업자와 동행하고 자기 집 가축과 동행하는 걸음을 걷다가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끝이나고 말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 걸음을 걸어가는 것은 점점 더 잘되고 더 부유해지고, 더 커지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그렇게 많아진다 하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그런 결실을 이루게 됐다 말입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나님과 동거동행의 생활에서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 생활을 문서 계시 말씀과 동행 생활에서 이것을 잡고 나도 이 걸음 걷게 해 주옵소서 게 여기 이 말씀대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거처럼 나도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그런 간구와 소원을 가지고 동행의 걸음을 걷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이것이 인생이 가치 있는 길을 걷는 것이요. 생명과 평강의 길을 걸어가는 길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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