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7월19일수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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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930(디모데 후서 3장 15-17절)
제목:하나님의 아들의 성장
본문:디모데 후서 3장 15-17절
내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이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노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여 함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을 가까이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됐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형체가 없었습니다. 물체도 없고 영체도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형체가 없는 하나님이신가 이것은 참 제가 어릴 때도 참 이해가 이해하기가 참 어렵고 하나님이 계신다 해놓고, 하나님은 보이지도 안 한다. 형체도 없다.
그럼 하나님이 뭐냐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무한하신 하나님이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형체 속에 갇히실 수가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본체가 무한이오 영원이요. 완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나타날 때는 영감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 영은 하나님 영 자 감은 감동 감자 하나님이 감동으로 이렇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 감동으로 이렇게 나타났다. 여기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는 하는 말은 하나님은 영감으로 감동으로 이렇게 나타났다.
하나님이 감동으로 나타난 것이 성경이다.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우리가 볼 수가 없습니다. 하늘나라 가면 보겠지 하늘나라 가서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완전자시오.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이고 무한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가 접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성화되어서 이렇게 간다 할지라도 형체를 가진 유한한 인생이 완전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과 배치가 되기 때문에 당장 다 절단하고 맙니다. 그것은 우리 자체가 불완전해서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을 접하면 우리가 다 소멸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신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하나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계실 때 처음으로 당신이 역사하신 일이 있으니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 이 목적은 하나님이 감동으로 나타난 것이 목적입니다.
이 목적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려고 어떤 자를 만드시려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이렇게 하니까 선택이라 하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있고 난 다음에 선택이 있지 없는데 어떻게 선택을 합니까? 그래서 후택스를 사람들이 많이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총공에는 선택서를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때는 어떤 사람은 설교할 때 후택설로 설교하는 사람도 또 있습니다. 자기는 뭐가 뭔지 몰라서 그렇게 했는지 몰라도 그럴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것은 우리가 있고 난 다음에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났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처음으로 역사하신 그것이 하나님의 하나님의 역사가 목적으로 나타난 것인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예정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안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이제 에 예정하신 것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만드시려고 하나님이 이 감동으로 나타난 것이 에 하나님의 창조 역사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했다. 그랬습니다.
 그리스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 하나님이 어떻게 감동 역사를 하느냐 감동 역사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 역사로 그리스도의 윤곽으로 그리스도의 모양으로 목적이 이루어지게 한 것입니다. 목적을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하나님으로 역사할려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그리스도 하나님으로 이렇게 역사할 때 정하신 목적이라 말입니다.
물을 둥근 그릇에 담으면 물이 물의 모양은 둥글고 사각 모양의 그릇에 담으면 사각 모양이 되어지듯이  아이를 낳을 때 이런 어머니가 낳으면 또 어머니를 닮고 저런 사람이 낳으면 똑같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 따라서 또 사람이 다른 사람이 좀 되어집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이런 우리로 목적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뭐냐 하는 것을 알 수가 없었는데 구약 시대에 그리스도가 무엇이라 하는 것을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것은 구약 시대에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세웠고,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세웠고,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라 하는 것은 기름 부음이라 하는 그런 뜻이라는 말이에요.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이라 그럼 기름 부음이 뭐냐 기름부음이 뭐냐 그래 구약 시대에 보니까, 제사장 선지자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그 세웠으니까. 이 그리스도라 하는 것은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을 하는 이런 존재로 만드시려고 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란 한 이 존재를 만드실려고 했구나 하는 것을 여기서 깨달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하신 대로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그리스도의 형상은 제사장의 형상이요. 선지자의 형상이요. 왕의 형상입니다. 이런 존재를 만드시기 위해서 정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를 만드실려고 그러면 그리스도는 영원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는 제사장의 역사 선지자의 역사 왕의 역사를 가진 이것이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예 자존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그 하나님을 접할 수 있도록 할려고 하니까 그 하나님과 비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도록 가로막는 것이 없도록 하려고 하는 고 역사 그 역사가 제사장의 역사로 요 제사장의 역사로 요렇게 역사했고 또 역사가 하나님과 똑같은 이런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선지자의 역사로 역사를 했다.
그러면 선지자로 하는 것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이것이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뜻을 전해주는 요 직책  요.직책이 선지자 직책인데 이런 직책을 가진 자로 만드시려고 당신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과 삐뚤이 쓰진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깨끗한 자를 만들고 당신의 뜻을 그대로 전해줄 때 그대로 그 전달되어질 수 있는 전달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만드실려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따라서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뜻을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이런 존재를 만들려고 목적을 정하시고 이런 자로 양육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가 되어져 가는 것이 기독자가 그 자라가는 목표가 되느냐 우리는 어디에 목표를 두고 사느냐 과거는 그래요. 예수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다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말 말하는데 그냥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모였다.
그리스도인이다. 이랬지만 그게 뭔지  제가 참 어릴 때는 이거 몰랐는데 이제는 이걸 배우고 나니까 우리가 제사장처럼 자라가고 선지자처럼 자라가고 왕처럼 자라가는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어져 가도록 하나님의 모형과 같은 이런 우리가 되어 가도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 대상으로 삼으신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이렇게 깨닫게 됐습니다.  여기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러면 이 성경은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나타날 때 감동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면 감동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막바로 접할  수 있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만은 그렇게 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막바로 하나님을 접할려고 해도 접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사람도 그러합니다. 사람도 내가 내 마음은 이렇게 있지만은 내 마음이 직접 다른 사람의 마음에 막바로 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람은 몸을 통해서 접하지 마음이 내게 이런 마음이 있지마는 이 마음을 가지고 볼펜 하나도 들지를 못합니다. 아무도 그걸 할 수가 없어요. 몸을 통해서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기를 이렇게 구조가 되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영이 있지만은 영이 내 영이 다른 사람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영이 아주 실력이 있고 굉장한 힘이 있는 것이 하나님과 같은 이런 능력에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영입니다. 그러나 영은 물컵 하나 못 듭니다. 볼펜 하나도 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음을 통해서 자기 마음을 통해서 하고 그것은 자기의 몸을 통해서만 하지 그렇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실 때 그대로 오면 우리는 다 멸해지고 다 죽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접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접해서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역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하나님이 영감으로 오셨고 영감이 진리로 오셨고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 으로 오셨고 말씀이 신구약 성경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듣고 하는 가운데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감동 역사가 나오는 그러면 막바로 감동 역사가 오는 게 아니고 자기가 성경 이 글을 댄 글로 기록된 이 문자로 기록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들으면서 이 안에 만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만납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하는 말이야. 사람이 이렇게 자라야 되는구나. 이 길이 옳은 도의 길이로구나 이렇게 깨달아 알게 되어집니다.
말씀을 읽고 이 성경은 참 우리에게 교훈한 참 좋은 교훈이다. 옳은 교훈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고 하나님이 이 우리에게 알려준 이 말씀이라 하는 걸 알고 이 말씀을 자기가 믿고 이대로 실행을 해 봅니다. 그대로 실행해 보니까, 진리를 느끼게 됩니다
이게 옳은 위치구나 옳은 위치를 자기가 깨달을 수 있게 되고 그 옳은 위치를 깨달은 것을 자기가 잡고 고 위치대로 자기가 이제 행동할려고만 하면 자기가 행동할려고 하면, 그때 이제 자기는 진리를 따라 사는 자기가 될 때에 예 영감이 자기에게 와서 역사하는 영감의 역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 와서 역사하지만은 실제 진리가 자기에게 와서 자기를 붙들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은 영감으로 역사하셨고 그 영감이 나왔는데 나오고 본 우리에게 가까이 오니까 진리다 진리가 연계도 물질계도 다 창조한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굉장히 능력 있는 이 진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되어 우리에게 오신 이 하나님 이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은 우리로 제사당 되고 선지자 되고 왕이 되어져 가도록 이런 자를 왜 만드실라고 왜 이런 자를 만드실라고 했을까?
이런 자를 만드실려고 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당신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모든 피조물에게 전해져서 모든 피도물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살 수 있는 이런 피조물들이 되도록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은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우리는 제사장의 실력을 길러가고 선지자의 실력을 길러가고 왕의 실력을 길러가야 이 실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여기에서 우리는 결정이 됩니다. 우리가 제사당 되고 선지자이 다 되고 왕이 되어지는 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의 자기가 되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역사가 나타나고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지만은 마치 하나님이 된 것처럼 모든 피조물에 에게 역사할 수 있고 모든 피도문은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은 우리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접할 수도 없고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볼 때에 우리가 하나님이 이 되어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니까 우리만 있으면 됩니다.
이러니까 이 모든 피조물은 우리를 보고 우리에게 복종하고 우리로 인하여 움직여지고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받고 좋아하고 환영하는 그런 세계가 되어지는 것이 영원 무궁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접할 수도 없지만은 하나님이 감동으로 우리에게 와서 나타나는 것이 오늘 모든 성도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이렇게 이론만 가지고 살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어 줄라고 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가 가로막히지 않도록 나와 모든 피조물과의 사이에 삐뚤어진 것이 있어서 가로막지 않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애를 써서 그것을 다 제거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 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렇게  길러가는 것이 제사장의 실력을 길러가고 선지자의 실력을 길러가고 왕의 실력을 길러 갈려고 애를 써 가야 합니다.
그면 이렇게 길러 갈라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여러 가지 수많은 현실들을 조성해 놓고, 속에서 하나님과 삐뚤어진 요소가 우리에게 수없이 드러나도록 이렇게 하십니다. 그럴 때 내 속에서 이런 삐뚤어진 것도 나오고 저런 삐뚤어진 것도 나오고 올라옵니다. 그걸 모르고 그냥 지나가면 안 됩니다. 그럴 때마다 그 모든 삐뚤어진 것을 주님의 대속의 공로에 고해서 사안받는 걸음을 걸어가야 합니다. 자기가 자꾸 그냥 회개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내가 됐다.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고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공로를 믿고 구해야 합니다. 대속의 공로를 믿고 의지해서 구해서 자꾸 사함 받고 깨끗함을 입을 수 있는 자기로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자기가 재사상이 되어 또 자기와 모든 만물과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모든 만물과의 관계 다른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자신이 이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참 이거 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다른 사람이 잘못한 걸 볼 때는 그렇게 해지는 게 아니고 뭐 니가 이렇게 잘못하노 너가 잘못했으니까.
공박을 하고 욕을 하고 원수 삼고 이렇게 되기가 쉽지 자기가 그걸 보고 대신 십자가를지는 걸음을 걷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또 교계적으로도 그러한 다른 사람이 아주 악하게 날뛰는 걸 보고 가만 욕을 합니다. 막욕을 하면서 어디 목사님 이 저럴 수가 있나 어떻게 저런 사람이오 이렇게 욕은 할지라도 자기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지 않고 연습을 하지 않고 있는 이런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도 그런 얘기를 한다.
내가 이 둘이 이 급하고 그만 이래서 이렇게 할라고 했는데, 그저 주남선 목사님을 생각하니까 내가 참아지더라 이런 일이 있는데, 그분 같으면 어떻게 했느냐 그만 암말도 안고 꾹 참고 있으면서 이렇게 계실 건데 그 내가 들어서 그만 막 책망을 하려고 하다가 꾹 참고 계시면서 이렇게 한 게 있는 그러가도 그러다가도 일제 시대 때 신사참배를 다 국가의식으로 결의를 할려고 할 때 에 주기철 목사님 아니요.
하고  고함을  지르는  주기철 목사님 같았으면  어땠을까? 그럴 때라도 그렇게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당신 또 옳은 것을 말하기도 하고, 또 참고 견디고 이렇게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도 제사장 역할을 해야 되겠다. 내가 여기에서 이 제사장 역할을 하는데 나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제사장 역할이 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선지자 역할이 될까 이것을 가지고 자꾸 행동하는 것을 연습하고 연섭하는 것을 우리는 길러 가야 됩니다.
이게 우리에게 목적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살게 하신 목적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모든 사람을 상대할 때에 모든 피조물을 상대할 때에 이렇게 제사장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져 가고 선지직을 감당할 수 있는 우리가 돼야 됩니다. 선지적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옳은 것을 나타내고 진리를 나타내는 그런 자기가 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을 바로 나타내고 증거하려고 이렇게 하는 우리가 되어져야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살 때 여러 가지 형편을 만나게 되지요 자 하나님이 왜 이걸 만나게 했을까? 여기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라고 그 여기에서 하나님이 옳은 것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고 옳은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이렇게 요 현실을 만들어 주셨다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악령과 싸워서 이기므로 승리해서 이제는 악령은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게 그냥 이 말만 전하면 대번에 이단이라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도 아이고 자신이 잘 이해를 하고 바로 잘 증거해야지 잘못 증거하면 이단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악령을 증거해서 마귀도 종으로 삼았고 마귀는 주님의 것되어서 이제 이 모든 악령을 이제는 이용을 합니다.
그랬지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에 이 걸음 바로 걸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많은 역사가 나타나니까 이거는 사탄이 이렇게 나타나서 이래 하니까 이거하고 싸워야 된다. 이겨야 된다. 이게 원수다 이렇게 원수를 삼아서 이기려고 하지만은 사실은 그게 우리의 대적이 아니고 우리가 거기에서 사죄의 실력을 길러가고 칭의의 실력을 길러가는 제사장의 실력을 길러가고 왕의 실력을 길러가고 선지자의 실력을 길러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은 종으로 지금 일한다.
하는 이것을 바로 가질때에 예수 믿으면 죽인다고 해도 예수 믿으면 온갖 고문과 고행을 준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붙들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이런 주의 재림의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가지고 설교를 하고 나니까 그때 중간반 학생이 이 찾아와서 목사님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럴 고문과 고행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 어떻게 내가 예수 믿는다고 예수님 계속 믿겠다고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 못 합니다.
나오면 그거 힘이 없서 안 됩니다. 그래 얘기하자 맞다. 나도 그렇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하자 준비하면 이길 수가 있다. 하고 그것을 가르쳐준 일이 있습니다. 참 우리에게 어려움이 올 때 어려움 주는 그게 뭔지 모르고 있으니까. 그만 놀래가지고 어려움 주는 것을 원수로 삼아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종으로 나를 제사장 실력을 길러가도록 반대가 없으면 거기서 내 실력이 길러집니까 길러지지 않하지요.
군대에 보니까, 그러합디다 훈련하러 가면 그냥 이렇게 훈련을 시키지 않습니다. 꼭 북한 군인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가지고 대항군이라 해가지고 그 북한군처럼 옷도 입기도 하고, 또 북한군의 전술을 가지고 앞에서 전술을 하고 또 우리 남한 군대는 북한이 저렇게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하고 이렇게 하죠.
미군은 중공군을 또 중국 군인을 또 러시아 군인을 상대해서 전투를 하기 때문에 그 그들의 전술을 가지고 그들의 비행기를 가지고 그런 전술을 펼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건가 그걸 이렇게 연습을 합니다. 수없이 연습을 했기 때문에 미군이 겁이 나는 겁니다. 벌써  그런 전술로 많은 연습을 해서 그 이북에서 또 군인들을 그 데리고 이렇게 전쟁하는 전술이 있단 말이야. 교본이 있는데, 교본을 그대로 우리가 가져와가지고 그대로 이북 군인을 만들어서 이렇게 대항합니다.
그럴때에 이길 수 있느냐 뒤에서 딱 보면서 점수를 매깁니다. 요번에는 못 이겼다 너희가 졌다 너가 이겼다 세상에 어떻게 군인이 이북 군인도 못 이기고 너거 실패다 그런 거 가지고 다 이렇게 계산이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군이라 그런 마귀로 만들어서 세워놓고 예수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들을 붙들어서 우리로 실력을 키울려고 하니까 이러니까 너 예수 믿음은 내가 오늘 죽인다 그래도 그 뒤에 계시는 주님이 보고 시험을 하려고 이렇게 하고 계시는구나 그걸 다 보니까, 주님의 심정을 보고 주님이 내 어떤 면을 길러주실려고 이렇게 하고 있구나 그런 것을 다 보다가 보니까, 마음이 급하지도 안 하고 놀라지도 안 하고 편안하면서 보면서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이기고 승리할려고 하니까 내가 예수 믿기로 나이 많아서 이렇게 예수 믿었는데 또 내가 이 다른 이 교단에서 예수 믿고 교단에서 예수 믿어서 이 이치도 하나도 모르고 오랜 기간 예수 믿었지만은 그저 그래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그래 많이 하죠. 나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사랑해라 한다. 손들고 사랑합니다. 그러고 나니까 실컷 사랑하는 줄 알았지요 다 된 줄알아 순 엉터리다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그런다고 사랑이 됩니까?
내가 나를 사랑한 적 내 계명을 지키리니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돼야지 계명 지키는 것 가지고 사랑이 되는 거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다고 됩니까  이 이치를 알고 나니까 야 지금부터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해도 이 구원을 어떻게 이룰 수가 있느냐 몇 가지 이루도 못 하고 이 세상 끝나고 말겠구나 이래 생각하니까 참 기가 찬 거야. 하 목사님 구원을 많이이루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그거를 많이이루어 놓았으면 안심을 하겠는데 이런 도의 길을 깨닫는 것도 빨리 깨닫지를 못하고 이제야 깨달았는데 이거 어찌 될까 그러니까 목사님이 기도해라 명상 가운데서 하나님 이런 현실이 왔을 때 어떻게 할까 또 생각을 해보고 내 마음에는 그런 고문이 오면 그만 항복 하겠는데 하나님이여. 이런 경우에 주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앉아서 가만 책상에서 앉아서 이 산에 와서 앉아서 기도하면서 온갖 현실을 다 만들어 가지고 다 한번 경험해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를 많이 했는데 구원을 다 이룬 거야. 구원을 다 이룬 거예요. 그래서 명상 많이 한 사람이 구원을 잘 이루었다 그렇게 하지요 그래 이런 데도 지금은 기도하러 다닐 사람이 참 없고 기도가 중요하고 기도해서 이런 구원을 이루어 갈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많이 없습니다. 전부 수련회 ㄱ가지고 재밌는 이런 일만 찾아가지 이런 구원을 이루어 갈려고 애를 쓰면 제가 참 없는 그런 때 참 이런 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조건이 좋지 않고 이러니까 거기 누가 가서 이 예배를 드리러 거 간다고 할까 뭐 쫌 이렇게 평안해야지 뭐 해야지 할 수 없이 그렇게 만들지마는 우리를 이렇게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만드는 데는 그래도 이런 가운데서도 이걸 만들어 가야 되는데 참 그런 실력을 길러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을 건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이면을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간 예수 믿는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그런 제사상 선지다 왕으로 양육 받는 그런 걸음을 참 너무 걷지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쫌 어려워도 외로워도 힘들어도 그 속에서 걸어가야 되겠다. 속에서 이 실력을 길러가야 되겠다. 하는 이 마음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 감동으로 이렇게 나타나시고 감동이 진리로 오시고 말씀으로 오시고 성경을 오시고 그것이 문서 개시로 우리에게 와서 이 문서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접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자꾸 묵상하고 생각하고 이것을 잡고 들어가서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느냐  이런 것을 잘 깨닫지 못하면 자연계시에서 깨달아 갈 수 있는 이런 일이 돼야 됩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지마는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자연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이걸 원할지 저걸 원할지 자연를 통해서 다 알 수 있도록 해놨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더 타락하고 변질되어지니까. 여기에서 성경을 주시고, 또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깨달아 알도록 하시는 이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인인관계에서도 이 모든 자연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깨달아가는 하나님의 심정이 이렇겠구나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구나 이런 것을 깨달아서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됩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감동으로 이렇게 와서 역사하시므로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이런 흠없는 우리를 만드시려고 하는 당신의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역사하신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만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그것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가면은 그건 문서 계시 고거만 잡고 가면 되느냐 안 됩니다. 문서 계시 안에 에 문서 계시 안에 진리가 있고 진리 안에 영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 잡아야 됩니다. 안에 있는 것을 만날 수 있도록 돼야 됩니다.
이 길은 길은 우리가 신앙 양심을 길러 가서 신앙 양심 장성해 가면 우리가 접할 수 있지 신앙 양심이 장성하지 않으면 이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이런 길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작은 일에서도 신앙 양심을 키워가야 우리가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이 길이 여기에서 열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 세상에서 나에게 조성한 이 모든 현실은 나를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로 만들어서 제사장 선지자 왕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런 나를 만드실려고 하나님이 요런 현실을 조성해 주셨다  이렇게 해도 그만 말씀을 들을 때는 이래 뭐 일을 척 만나면 그거 다 잊어버리고 생각도 안 나고 그냥 뭐 곤충 보니 곤충만 보이고 사람 보니 사람만 보이고 이래 버리면 다 실패가 돼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사람을 접할 때도 그 내가 이 양성원에 갔다가 오면서 경근 생활을 하는가?
이렇게 했는데 그 연습이라는 것은 없어도 버렸죠 그래요. 야 이 너무 변해져 가지고. 이런 연섭은 하나도 안 되고 그저 지식만 가지려고 하는 이런 양성원이 되어져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거 어려운데 그런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우리는 이 평소 생활에서 경건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서 갈 수 있도록 해야 되겠죠. 자꾸 자기는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과 접하는 자기가 되어져 갈라고 이 연습을 해 가야 되는데 그런 걸 하나도 하지를 못하고 자기는 만나는 거니까 사람을 만약에 사람만 대하는 거야. 사람만 대하고 나면 거기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이 늘 가르칠 때 당신이 이렇게 가서 사람을 만나도 자기 속에는 주님이 계셔서 주님 오늘 이 사람 만났습니다. 주님 이 사람 말을 이렇게 하는데 나는 어떻게 말해야 됩니까? 속에서 온 주님과 의논하고 바깥에서는 자기 입은 앞의 사람과 대화하고 주님과 참 연습해 볼라 하면 참 어렵습니다. 주님은 잊어버리고 딱 끊어지고 사람만 가지고 대화를 하고 이래 하지 내가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않고 하는 이 일이 너무 안 돼 가지고 이래 대하면서도 말하려고 하다가 말 빨리 안 나옵니다. 주님 생각 주님 뜻이 무엇입니까? 주님 무슨 말을 해야 됩니까? 주님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말을 더듬다가 보니까, 참 말을 더듬는 사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서 주님 생각하고 주님 하는 말을 해 볼라고 주님 뜻대로 움직여 볼라고 이 연습이 총공회의 교육자로서는 중요한 연습입니다. 그런 연습을 그런 실력을 길러가서 언제 어디서나 주님으로 인하여서 하는 연습을 해 갈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런 연습을 계속해 나가면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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