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7월18일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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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820(디모데 후서 3장 15-16절)
제목: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본문: 디모데 후서 3장 15-16절
내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이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말씀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은 영감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형체가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주권자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에 하는 말은 하나님이 움직일 때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 움직일 때 하나님은 영감으로 역사하십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 영감으로 창조하셨고 또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운영하시는 것도 전부 영감으로 하신 것입니다. 또 이 신구약 성경을 기록한 것도 하나님이 영감하시므로 영감을 받아서 영감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이 우리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나타난 이 영감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영감이냐 성경이 영감이 아니라 성경 안에 진리가 있고 진리 안에 영감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하여 주셨고 영감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또 영감으로 보존하시고 영감으로 관리하시고 운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감하신 영감 역사는 1차 영감 역사와 이 차 영감 역사가 있습니다. 1차 영감 역사는 처음으로 하나님이 영감 역사한 이 역사입니다. 게 1차 영감 역사로 영계와 물질계를 창조했습니다. 또 이 영감 역사로 이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주권 개별 섭리로 이 역사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무한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영감으로 나타나셨고 그러면 영감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우리가 막바로 만날 수 있느냐 못 만납니다.
영감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우리는 왜 못 만나느냐 우리가 성령으로 성령을 만난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하지만은 실제는 그 성령을 직접 만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면 우리가 다 절단 나고 죽고 말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영감을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진리로 오시고 진리로 오신 영감 영감을 만나 만날려고 해도 진리가 뭘 눈에 보입니까?
눈에 보이지 안 합니다. 그 진리를 접할 수 있도록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구약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말씀을 믿는 자기가 될 때에 그럴 때에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는 진리를 접하게 된 그게 옳은 이치로구나 옳다 옳은 길이다. 이렇게 진리를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접할 수 있도록 성경으로 진리를 접하는 것이지. 막바로 만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리를 접하고 진리를 접한 자기가 믿고 인정하고 나갈 때에 그럴 때 이제 진리 안에 있는 영감을 접하게 됩니다. 영감을 접하면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냥 영감 영감하니까 자기에게 나도 성령 받았으니까. 막바로 하나님이 내게 와서 날 붙들고 역사한다. 이렇게 느끼고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실 때에 영감으로 역사하시고 영감이 진리로 와서 역사하시고 그 진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을 접해 가는 데는 성경을 읽고 듣고 자기가 성경을 읽어도 모르잖아요. 잘 깨닫지 못하니까 성경을 해석해 주는 설교를 듣고 설교 속에서 그래 말씀은 성경의 어디에 그 말씀이다.
성경대로 목사님이 말씀을 증거하고 있구나 게 사람들은 이것까지 구별해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성경을 가르쳐 주는지 무슨 역사를 얘기하니까 신문 쪼가리 얘기를 하고 있는지 뭔지도 구별하지 않고 재미만 있으면 아 오늘 은혜 받았다. 하고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그런 거로 못 걷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 속에서 성경을 접해야 됩니다. 성경을 깨닫고 이 말씀이로구나 요?
말씀을 오늘 목사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하고 요렇게 믿을 때 자기는 성경을 믿으니까. 성경 안에 있는 고 진리가 깨달아지는 진리가 믿어지는 요 역사가 나타나고 진리가 믿어져서 진리를 자기가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는 옳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이제는 영감이 와서 영감의 역사를 자기가 볼 수가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 설교 말씀에도 영감이 와서 이렇게 하셨다 이렇게 하셨다 이렇게만 하니까 이 세부적인 사실을 생각하고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들으면 이 말씀이 또 이해가 되지 않고 지나가 버리기 쉽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실 때는 영감으로 오시고 영감이 진리로 오시고 그 진리가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에게 왔는데 성경이 그러면 하나님이냐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될 수가 없죠. 그러나 성경 안에는 진리가 있고 진리 안에 영감이 있고 그 영감 안에 영원히 자존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는 하나님 쪽에서 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는 영감으로 역사하십니다. 영감으로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주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일차로 영감 역사를 했습니다.
1차로 영감 역사 하신 것은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신 이것이 창조하신 것을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이것이 1차 영감 역사라 1차 영감 역사라 이차 영감 역사는 이차로 영감 계시는 영감 계시가 우리에게 왔는데 문서로 진리로 왔고 문서로 온 것입니다. 이 차 영감 계시가 진리로 왔는데 이걸 다 뭉쳐서 말하는 것은 영감이 왔다 영감이 왔는데 영감이 무엇으로 왔느냐 문서 계시러 왔다 그러면 막바로 문서 계시러 왔냐 그게 아닙니다.
진리로 오고 진리로 온 것이 문서 계시로 온 것입니다. 그 문서 계시 말이 뭐냐 하면, 앞서 성경을 기록한 이 선지 사도들이 영감이 왔는데 자기가 느끼는 것은 옳은 이치가 깨달아져서 옳은 이치가 깨달아 따라져서 옳은 이치대로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문서 계십니다. 그래서 문서 계시로 우리에게 왔다 이 말입니다.
또 이차 영감이 우리에게 온 것은 어떻게 왔느냐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이것이 영감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이뤄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 입장에서는 그러합니다. 처녀가 잉태하면 저는 죽음의 길입니다.
 저는 죽음의 길이지만은 말씀으로 오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는 말씀을 듣고 그걸 믿으니까. 그걸 믿으니까. 이게 진리가 와서 자기에게 이렇게 역사에서 이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이죠. 그러면 그것을 과정을 중간 과정을 조금 덮어놓고 막바로 영감이 와서 역사해서 예수님이 사람 되어 세상에 와서 도성인신 사활대속공로를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이제 좀 간단하게 줄여서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하나님은 영감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영감으로 역사하시는데 영감이 1차 영감으로 역사하신 것이 있고 이차 영감으로 역사하신 것이 있습니다. 1차 영감으로 역사하신 것은 진동될 거 변동될 거 변동될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당신이 창조하신 것이고.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섭리하시는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 데서 이제 다시 이 차로 오신 영감 이 차 영감의 역사가 와서 이 영감은 문서계시로 우리에게 왔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도성이신 사활대속으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자 이차 영감 계시와 1차 영감 계시는 무엇이 다르냐 1차 영감 계시는 변동될 것을 창조하시고 주권하시고 관리하시고 보존하신 이 역사를 하기 위해서 1차 영감의 역사가 우리에게 와 왔고 이 차 영감의 역사는 1차 영감의 역사로 만들어진 것 가지고 이제 완전을 창조하는 완전 창조를 위해서 온 것이 2차 영감의 역사다 하는 것입니다.  요까지 이것을 잡아야 됩니다.
이 차 영감의 역사는 완전을 창조하기 위해서 완전히 어떻게 완전히 있을 수 있느냐 우리가 완전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은 우리 사람의 힘으로나 내가 어떤 노력을 가해서 완전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라고 하면, 완전을 만든다는 건 거짓말이죠. 불완전해서 완전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한에서 무한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이 완전은 우리 활동으로 만든 게 아니고 완전에서 우리에게 건너온 완전히 완전에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이 완전을 창조한 것인데 이 완전을 어떻게 창조했느냐 완전을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완전을 창조했습니다. 완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 있을 수가 없죠.
있을 수가 없지요 없지만은 예수님이 사람 되어 와서 죄를 다 멸해서 죄를 다 깨끗이 한 요것으로 완전히 만들 수 있는 기초를 완성하시고 당신이 세상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앞에 완전순종으로 완전을 만든 것입니다. 당신도 사람 되어 왔었으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인 내가 이제 사람 되어 왔으니까. 내 마음대로 내가 완전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완전 복종으로 도성이신 하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에게 완전 복종 성령 하나님에게 완전 복종으로 의를 이루신 이것이 완전을 창조한 것입니다.
또 주님이 당신은 성자지만은 당신은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지만은 당신은 죽고 당신 안에 성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하나가 되어서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언행 심사하므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서 완전을 창조한 것입니다.
이래서 이 완전을 창조해서 이 완전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려고 주님이 신인양성 일위로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체로서 다시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셔서 영감으로 역사하시고 진리로 역사하시므로 당신이 완성하신 완전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려고 부활하셔서 영감과 진리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이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을 입도록 완전을 입고 살도록 하시려고 당신이 부활하심으로 영감과 진리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목사님 설교를 제독하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렇게 사활대독하고 그렇게 듣고 있느냐 그러면서 비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는 아주 잘나가지고 똑똑해서 벌써 그렇게 실력 있는 자기가 된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서부교에 있던 사람도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사활대속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완전을 창조해서 완전을 입혀주시는 이 큰 구원의 역사인데 이것을 알면 이 위대한 발견이라고 이것을 놓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살 수밖에 없는데 이걸 모르니까 이 재독 듣는 것이 귀한 줄로 생각지도 않고 이 말씀 속에서 이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큰 것인 줄 모르고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 차 창조로 완전 창조가 이루어져서 이 창조한 것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려고 오신 것이 이제 예수님의 사활 대속 공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완전을 주님이 다 창조해서 완전을 내게 입혀줘서 내가 완전자가 되도록 하시는 이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 내가 목회하면서 배우고 있는 이 모든 사람에게 이 대속의 공로를 알게 하고 이 대속의 공로를 입게 하는 사람이 되면 하목사님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완전한 사람 완전한 사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그러니까 어제 저녁에 설교해 준 걸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됩니다) 그래  그러면 말이요.
하늘나라에 갔어도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소 그렇지  당신 때문에 이렇게 완전히 이렇게 입고 이렇게 살게 돼었소 어가서 좋아서 말이오 이거 붙으면 놓고 놓지를 못하는 거예요. 이 비밀을 알고 나니까 이걸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이걸 알아가지고. 이걸 어떻게 하든지 이걸 믿고 살 수 있도록 이걸 전할라고 애를 쓸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 이 영감 이차 영감이 나타나서 이제 영원히 변동되지 아니할 완전한 것을 만들고 보존하고 운영하려고 영원히 사망 없는 것을 만들려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 이차 영감의 역사가 우리에게 역사입니다. 그러면 이 차 영감의 역사를 받아서 이 차 영감의 역사를 따라 살면 변동되지 아니할 요게 되어져 갑니다.
우리의 마음도 몸도 이게 시간이 지나가면 늙어지고 힘이 없어지고 죽고 맙니다. 끝이 나죠. 그러고는 영원히 지옥불에 살라진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이 2차 영감을 받으면 이게 살아나는 겁니다. 이게 살아나요? 이 차 영감을 받아서 이 차 영감으로 완전히 되어지면 이게 죽은 건데 죽은 건데 완전히 죽어가는 것인데 이게 살아나서 영원히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런 보배를 가르쳐 주니까 언제도 말했지만은 그저 자기가 목회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예수 믿도록 복음을 전해주니 그것도 좋다고 진짜로 진짜 내가 당신 때문에 구원얻어서 나 구원이 얼마나 귀한지 천국 갈 수 있다는 그것도 좋아가지고. 그렇게 하는데 하늘 날아가서 대속을 입어서 완전을 이루어 가게 됐다는 이걸 깨달아 알고 나면 이거 얼마나 좋은지 모를 거예요.  내가 늘 기억을 합니다.
우리 부친은 그 어릴 때에 참 우리 가정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분이 집사로서 늘 와서 기도하러 가자 하고 어린  사람을 데리고 산속에 가서 같이 기도를 했대요 그렇게 하면서 예수를 믿도록 인도해 주고 그러니까 그분을 못 잊었어 또 가서 한번 인사하러 가야 되겠다.
맛있는 걸 사가지고 가서 대접도 하고, 인사도 하고, 늘 그래 하시는 것들을 보면서 세상에서도 참 저렇게 당신을 이렇게 복음으로 인도하신 그 사람을 잊지 않고 저렇게 대접하는 저 구원해 주신 이 구원의 은혜를 입게 해 준 여기에 대해서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기뻐하는 그걸 좋아하고 다른 친척 다른 인척 형제보다도 사람이 더 좋은 거야 이제 그런 것을 보면서 참 이 구원을 전하고 이 구원에 대해서 깨달아서 느껴서 감사하는 그때는 그 감사와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이 1차 영감 역사와 이 차 영감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이게 무엇인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가야 되는지를 여기에서 쭉 계속해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바로 받아서 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영감 역사를 우리가 접할 때는 그냥 하나님 있다가 자기가 예배 드리다가 성령 받았다. 하고 좋아 가지고. 그렇게 성령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을 접하는 영감을 접하는 그런 길은 어떤 길이냐 우리가 하나님과 가로막혀 가지고 인생에게 수많은 질병이 생겨진 것입니다. 그래 질병이 생겨진 것을 가만 보면 이게 왜 이런 병이 생겨졌을까? 오랜 그 사람의 악습입니다.
오랜 악습입니다.그래 자기는 뭐 내가 뭐 잘못했노 이라지만은 자기의 비뚤어진 생각 감정 지식 이런 성질 이런 게 한 번 그래야 한 게 아니고 두 번 세 번 10번 100번 1000번 이러니까 이제는 속에 비뚤어져 버려 하나하나 비뚤어져 가지고. 이제 병이 되어버려요 병이 돼 이러니까 이 병을 치료할라고 사람이 고생을 합니다. 고생을 합니다.  사람이 병든 것이 다. 죄병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집회를 참석하면서 말씀을 듣고 내가 요것이 잘못됐다. 하는 것을 깨달아서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 내가 이렇게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내가 행동이 잘못되었습니다.
하고 진정 자기 마음에 회개가 되어져 가면 고 말씀의 진리를 바로 가르쳐 주는데 그것을 듣고 회개를 하면 그만 몸에 병이 낫습니다. 이거는 우리가 집회를 통해서 특별히 병 고쳐지는 이 역사가 일어나는 이것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지난번에 그 부산에서 장례식 때 조내영 목사님 사모님 장례식 때 또 가서 박종건 목사하고 얘기를 하는데 언제까지 재독할랍니까 따져요 그래 제독해야 된다고 설명을 좀 하니까 설교해야죠 우리는 서영호 목사님한테 교육받았고 또 이 김영체 목사님한테 교육받았으니까.
설교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독의 경우도 봐라 기적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 주니까 아그거는 우리도 설교하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자신만만에게 얘기하는 걸 내가 들으면서 아주 위험하게 좀 생각이 되어 졌습니다. 이게 뭔지를 너무 모르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생각이 돼요. 그래 사실은 좀 많이 걱정이 돼요.  그  죄가 뭣이 틀렸다 하는 것을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정확하게 영감이 자기에게 와서 영감으로 바로 가르쳐주는 것을 바로 증거할 때 고것을 받아가지고.
깨달아져야 깨닫고 자기 마음에 여기 잘못됐구나 자기가 그것이 느껴져서 회개가 되고 내가 요거 고치겠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회개하니까 자기 몸에 병이 치료가 되어져 가는 역사가 일어난단 말이요. 그러면 그게 뭐냐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로막힌 그것이 티워지는 거예요. 티워지는 거예요. 어떻게 티워져 가느냐 그냥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회개합니다. 그런다고 그게 되겠습니까? 그럼 다 그러지 뭐한다고 뭐 교회에 와서 뭐 할 게 뭐 있어요. 자기가 앉아서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지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런 죄를 사함받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사람이 되어서 그걸 의지해서 고해야 사함이 되지 그렇지 않고는 그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자기가 고백한다고 다 사함이 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깨달아 알고 주님이 요. 죄로 인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자기와 느껴서 참 주님 앞에 미안하고 부끄럽고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겠 했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지고 이래서 주여 잘못했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그 죄에서 자기가 벗어나는 요게 있을 때 죄를 벗을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죄를 벗으니까.
빛과 이제 연결이 되어서 빛이 자기에게 오므로 자기가 죄에서 벗어나고 죄 없는 자기가 되어지니까. 그 몸이 치료가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런 집회를 통해서라도 말씀을 듣고 깨닫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의 병이 고쳐져야 된다. 삐뚤어진 지식이 있었던 것이 고쳐져서 옳은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자기가 되어야 돼요.
그러면 옳은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자기와 마음에 인정하니까 벌써 다 인정되어지는 것 같이 실효가 되어지고 또 몸으로 실행을 하면 몸의 행동으로 이제 치료를 받게 되어서 가는 그  걸음을 걷게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가는 데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가로막혀서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는데 그것을 이 가로막고 있는 그 죄를 찾아서 하나하나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져 갈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해야 돼요.
그러면은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요 막혀있는 것이 열려져서 그다음에 진리를 알게 되어집니다. 요거 틀렸다 요거 고치고 옳은 것을 따라 순종하는 자기가 되어질 때 그다음에 내가 내 말에 거하면 참내 제자가 되고 한 말씀대로 진리를 만나고 옳은 이치 만나서 고 이치를 따라서 내가 이제는 이 진리를 따라 살겠습니다. 할 때 자기에게 영감이 와서 영감이 자기를 붙들고 역사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영감 따라 걸어가면 자기에게 완전이라는 것이 자기에게 생겨져 가는 완전히 역사를 자기가 힘입을 수 있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음에 이 순서가 순서를 뚤뚤 뭉쳐서 그냥 생각하게 요런 순서라 하는 것을 알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각오하고 작정하면 자기속에 이제는 진리가 왔는데 그 진리로 인해서 영감을 접하고 영감의 마음이 이제 자기를 끌고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영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중심된 영이 없다. 그 영 안에 영감이 있는 것이지. 중생된 영을 배제하고 영감이 자기에게 직접 와서 역사를 못합니다.
영감을 통해서 자기에게 왔기 때문에 영감이 중생된 영을 통해서 자기에게 왔기 때문에 자기가 영감을 접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영과 중생된 영이 자기에게 오는 데는 어떻게 해야 올 수 있느냐 자기의 신앙 양심을 통해서 오지 신앙 양심을 깨끗게 하지 아니하면 자기에게 건너 오질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접할려고 하면, 자기의 신앙 양심을 힘 있게 만들고 장성하게 만들어요.
자기의 신앙 양심을 북돋우고 힘 있게 만들고 장성하게 만들어서 양심이 끌고 가는 데는 마음도 다 복종하고 몸의 모든 욕구도 그 마음에 복종하는 자기가 되어져 가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
 자기에게 신앙 양심이 끌고 갈 때 그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 지식대로 된 양심 신구약 성경 지식대로 된 신앙 양심이 인도하는 데에 생각도 고집도 성질도 감정도 다 그 신앙 양심의 지도에 복종하는 그 마음이 되어서야 그 마음이 영의 중생된 영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의 인도를 들을 수 있습니다. 중생된 영의 인도를 들을 수 있어야 영감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바로 잘 알고 우리는 자기의 신앙 양심을 키우고 북돋우고 장성 시켜서 이제 신앙 양심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우리는 굉장히 실력 있는 자들 여기서 우리가 완전을 이룰 수 있는 완전을 내가 힘 입을 수 있는 이 큰 성공이 여기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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