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7월7일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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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70750(베드로 전서 3장 21-22절)
제목: 신앙생활
본문: 베드로전서 3장 21-22절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더러운 것을 취하여 버림이 아니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세례를 빋는 것은 이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공로로 구원을 받았다는 표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난 뒤에는 막바로 세례를 주는 그런 일들을 합니다.  그렇게 세례를 주려고 하고 보니까, 금방 믿기로 작정은 해 놓고, 좀 있다가 보니까, 믿지 않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고  이러니까 참 믿는 사람이 되도록 할려고 하니까 1년은 있어야 되겠다.
그래서 1년 동안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걸어가는 그런 걸음을 연습시키고 숙달시켜서 그리고 확실히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였는지 확신을 하고 확인을 하고 그 후는 세례를 주게 되어 집니다. 이렇게 세례를 줄 때는 사람이 이제 너는 구원받았다.  구원 받았으니까.
주님의 죽으시고 부왈하심으로 말미암아 너도 완전히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서 이제 하나님이 것되였으니까. 이제 너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그래서 여기에 육체의 하나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며 아니오. 그저 할례를 하는 그런 정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너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렇게 말만 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는 선한 양심의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이 일이 시작되어졌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선한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이 걸음을 걷는 우리가 되어졌다 이것을 우리가 말고 이제 우리는 선한 양심으로 살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걸음을 걷는 우리가 되어져야 합니다.
그만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이것은 어떤 것이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
이런 욕심의 요소도 생각의 요소도 또 감정의 요소도 성질의 요소 이런 생각의 요소 저런 생각의 요소 수많은 요소가 있지만은 양심은 옳고 바르게 살기를 제일 깨끗하게 제일 옳은 길로 찾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양심인데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서 하나님의 지식대로 제일 옳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그 주장을 하고 길로 인도하는 것이 요.
신앙 양심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아는 대로는 자기가 아는 대로는 그래도 예수를 제일 바로 믿어야 되겠다. 잘 믿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요 걸음을 두고 말합니다.
이렇게 살려고 예를 써 갈 때 양심이 그렇게 사는 데에 양심만 그런 게 아니고 욕심의 요소도 성질의 요소도 자기의 주장의 요소 이렇게 자기 이런 생각의 요소도 다 힘을 합쳐서 양심이 주장하는 대로 따라가려고 하는 그것이 신앙 양심으로서 하는 요 걸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양심을 기울여서 사는 이 걸음을 걸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경의 감화 감동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막바로 찾아갈 수 있느냐 그게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하나님 그대로 우리에게 올 수가 없고 보면 우리는 절단 나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오신 이가 뭐냐 하면, 성령의 감화 감동입니다.
영감으로 우리에게 오신다면 영감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중생된 영입니다. 중생된 영이 영감을 접할 수 있지 우리 마음이 막바로 영감을 접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막바로 영감을 접하면 다 절단 나고 말고 또 만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이 영감을 만나 영감 만난 중생된 영이 신앙 양심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접선되고 마음의 수많은 요소은 신앙 양심을 통해서 중생된 영의 지도 영의 역사를 깨달아 알게 되고 영을 따라 살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이 되어져 갑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을 따라서 신앙 양심이 움직이는 그 신앙 양심을 따라 마음이 움직일 때 그 마음을 따라서 우리의 몸이 움직여지는 여기에서 우리 심신이 구원되는 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선한 양심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은 자기가 신앙 양심을 가지고 살 때 신앙 양심으로 살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의 수많은 요소가 양심에 지도를 받아서 양심의 인도를 따라갈려고 하는 그런 그러면 우리는 내 욕심이 있고 내 성질도 있고 내 주관도 있고 내 고집도 있고 나에게 이런 감정 저런 감정도 있고 너는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도 있고 이런 마음이 양심이 주장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살아야 실제 내 이 욕심이 달성되는 길이다.
내 주장이 성공되어질 수 있는 길이다. 제 생각대로 참 이룰 수 있는 그런 길이라 해서 신앙 양심과 우리의 마음의 이 요소가 하나가 되어서 이렇게 주장하는 인도하는 길이 신앙 양심에 인도 선한 양심의 지도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지도를 따라 걸어가면 우리는 영감을 만나게 된다.
하니까 내게 와서 이렇게 영감 역사하니까 중생된 영은 빼버리고 바로 영감을 만나는 것 아닙니다. 중생된 영과 영감이 하나 되어요.
그러면 중생된 영 안에 중생된 영을 주장하는 이가 영감 그 영감 안에 주장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것이 이제 우리의 마음의 각요소에 와서 우리의 마음의 각요소를 주장하고 우리의 마음의 각 요소를 주장하는 마음을 따라서 이 몸은 이 몸은 고깃덩어리는 마음이 원하는데 이상은 뭘 보지를 못합니다.
마음이 이래하라 하니까 거기에 순종해서 사는 것이 우리의 고깃덩어리라 말이요  이러니까 이렇게 사는 데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것이 된다. 이렇게 말씀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 그냥 찾아만 가면 되는가 찾아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지도를 받게 된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내 몸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자기의 몸은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몸이요. 신앙 양심을 따라 움직이는 몸이요. 중생된 영을 따라서 영감을 따라서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자기가 되어져 갑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걸음 걸어간 제일 이 걸음걸어서 성공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걸어서 저는 하늘에 올랐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나는 우편에 계시네 그러면 하늘에 올랐다는 것은 최고의 위치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하나님 다음에 위치에 가지게 됐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은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 이런 위치에 올랐다. 이런 위치에 올랐다는 것으로 하늘에 올랐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세상에 사는 데에 신앙 양심을 기울여서 신앙 양심을 기울여서 신앙 양심을 따라 사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걸음을 걸어가니까 하늘에 오르게 되었다. 하늘에 오르니까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되는 그런 성공을 하게 됐다. 하는 것을 말씀 우편에 앉아서 나는 우편에 앉았다.
말은 하는 모든 역사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이것은 내 오른말이라 발언한 대로 그와 같이 말이죠. 자기의 모든 뜻을 자기의 생각을 자기의 모든 역사를 오른편에 계신 오른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나타내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창조 주시요 주권자시오. 완전자십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어디를 나오에서 나오느냐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양심으로 사는 이 걸음을 걷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여기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편에 계시니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천사도 굉장히 능력이 있는 그런 천사입니다.
하나님이 천사에게는 무한히 그런 권세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 천사사만 해도 우주를 멸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을 다 가진 것이 천사입니다. 천사 모든 권세와 능력이 저에게 순복한다.
그러면 하나님 우편의 안전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이런 천사가 되고 모든 권세가 되고 모든 능력이 되어줬다 이러니까 예수 그리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권세라 이런 권세가 계속되어졌다 이것을 비록해서 우리에게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도 이 신앙 양심을 기울여 사는 이 사람이 될 때 여기에 이르게 될 수 있는 것을 말씀함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 어떤 처지를 만나서라도 내 신앙 양심으로는 이것이 가장 옳은 길이다.
그래서 욕심도 그게 동의하고 성질도 동의하고 주관도 동의하고 고집도 거기에 동의하고 그 신앙 양심의 주장에 동의를 하고 같이 따라가겠다. 우리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움직여지는 요것이 선한 양심인데 이렇게 선한 양심으로 것은  하나님 우편에 앉을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와서 역사하는 하나님이 내 안에 와서 역사할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고 자기는 마치 하나님 우편에 앉은 자처럼 하나님의 그 능력의 역사가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잘 안 되지만은 자기가 신앙 양심을 기울여 살아보려고 애를 한번 써 봅시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자기가 되어 지면 자기의 생각은 그게 잘못하면 자기가 사욕을 가지고 왜 내 마음대로 안 될까 그러면 이거 틀린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지만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이 바로 이거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 이 신앙걸음을 걸어본 사람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고 계신다 그게 자기에게 확신이 되어진다 그게 확신이 되어지고 나면 이게 옳습니다.
이렇게 하면 결국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단 말이야. 그런데 그걸 자기 주장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려고 하고 있구나 그걸 발견하면은 하나님 따라서 갈려고 하니까 자기 소원대로도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대로 이루어져 가는 능력의 역사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려고 하니까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움직여서 이렇게 하시는구나 그런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니까 신앙 양심으로 사는 사람은 이 경험이 느껴진다 하나님의 뜻이다.
요대로 이러시겠구나 나도 여기에 속해야 되겠다. 우리 사람이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데도 가만 보고 자기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다고 동의하지 않고 따라가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 주장에 맞지 않으면 싫어하고, 틀렸다 하고 이렇게 나갈 때가 많은데  신앙 양심을 따라서 살면 그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지 아닌지 볼 수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자기가 동의하고 거기에 순종하여 삶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를 자기에게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 환하게 보여지고 느껴지는 이런 걸음을 우리가 걸어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 양심으로 사는 이 실력을 길러가는 애써서 힘써 일을 이루어가는 이 걸음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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