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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61910(베드로전서3장20-22절)
제목: 신앙양심
본문:베드로전서3장20-22절
 그들은 노아의 방주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8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편이 곧 세대다 육체에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지에게 순복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에 인간이 하지 아니한 여러 가지 표적들이 있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것이던지 홍해 바다를 아무 기구 없이 건너고 홍해 바닷물이 양편 산더미같이 쌓이고 바다 가운데는 육지가 되어서 건너게 된 것이든지 또 마라에서 쓴물이 나는데 나뭇가지를 던져 단물이 되어 구원된 것이든지 므리바에서 물이 없는데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서 마신 것이든지 40년 동안 농사짓지 않고 만나 가루로 먹은 이 모든 표적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표적들은 사람으로서 한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서는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런 종류와 같은 그 외의 것들도 다 세상에서 나와 가지고.
하늘나라 가는 노정 중에 인간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모든 일들을 인간 이치에 맞지 않았지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해결되어지고 형통해질 것을 가르친 표준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고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홍해 바다 앞에서 완전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속에서라도 주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순종하니까 구원을 얻게 된 이것이 이 표적으로 보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이 걸음을 걸어가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그런 일이지만은 일이 해결되어지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고 예언하신 것을 친히 역사를 통해서 거 정하신 장소 때에 예언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시대에 예언한 예언은 예수님 때까지 다 이루어졌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1차 창조의 것이 변해서 이차 창조의 세계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 이제 하나님이 완전을 이루어 놓은 이 세계에 들어가서 영생할 수 있는 이 일이 오기 전에 그것을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말입니다.
1차 창조로 말미암아 생겨진 이 세대가 끝나고 이제 2차 창조로 새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영원히 살게 되는 이 세계가 또 열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계가 끝이 아니고 이 세계에서 이 차 창조의 것을 완성해서 이 차 창조의 세계가 이제 열리게 됩니다.
이 차 창조의 세계는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공로를 완성해서 죄가 없는 세계요 외로운 세계요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영감과 진리로 사는 이 세계가 이 차 창조의 세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없는 영원히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 따라 동하고 정하는 이런 세계가 되어서 여기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오기 전에 예언한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교회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 주신 예언은 그 예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은 다 구원을 얻었고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헛된 일을 하고 실패를 했습니다.
기본 구원은 얻었다 할지라도 건설 구원은 불 가운데 구원 얻음과 같이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런데도 구약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알려주신 예언을 믿고 그대로 지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하나님이 의인이라 친구라 이렇게 칭찬함을 받고 이삭도 야곱도 그런 은혜를 입었고 또 요셉 또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도 다니엘도 믿음으로 걸어서 이 건설구원이 성공이 되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 믿음으로 살아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히브리스 11장에 보면, 거기에 다 이런 종류의 말씀을 순종해서 성공했고 저런 종류의 말씀을 순종해서 구원을 이루었다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기본구원은 얻어도 건설구원은 이룰 수가 없었던 것처럼 오늘 신약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에 있는 예언도 구약에 있는 그때 사람에게만 계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계약이 되어 있고, 또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의 말씀 예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믿고 순종하는 데서 우리는 건설구원을 이룰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참되다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이것으로만이 이 구원을 이루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라는 구원은 없어질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이오 완전한 것이오 영생의 것이오 불변의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인적 요소로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적요소로 어떻게 불변의 것을 만들며 영원한 것을 만들며 완전한 것을 만들며 영생의 것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불변의 것 영원한 것 완전하고 영생의 것은 순전히 객관의 능력인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연결되어지는 그 연결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사랑의 신실함의 역사가 우리에게 건너오는 것은 무엇으로 건너올 수가 있느냐 다른 것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잘해 주실 것을 신실히 해 주실 것을 그분이 선포해 놓으신 그 약속 이 약속은 천지는 없어져도 당신이 선포하신 계약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변치 않고 신실히 이루어질 것을 믿는 이것으로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끌어올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구약시대도 이 구약에 예언의 말씀을 믿은 사람은 그대로 되었고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노아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노아 홍수 때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육지에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 육지에 배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예언해 놓으신 대로 홍수 심판이 있는 것을 믿고 이렇게 준비하고 나니까 그의 행동에 맞추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예언하신 대로 구원이 되도록 하시려고 그렇게 맞추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서 어떤 찬란한 일을 하고 능한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일을 헛되게 만들고 하나님의 예언하신 예언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로 한 것은 헛것으로 만드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 이치에 딱 맞도록 이렇게 했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이치가 그다음에는 딱 맞지 않도록 털어버립니다. 이러니까 인간 이치대로 틀림없이 여기도 될 것이니까. 이대로 하자 하고 했는데, 실상 보니까, 그 이치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오늘 세상의 모든 일들을 보고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을 따라서 당신이 주권 개별 섭리의 하나님이 지극히 작은 것도 주권개별 섭리하시는 이분이 약속을 선포하시고 선포하신 약속대로 행하는 우리의 일이 딱 들어맞아 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것이 무슨 힘이 있어서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을 때에 우리가 믿는 거기에 딱 들어맞춰서 고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주권 섭리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약하신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온 천하가 다 무시해도 하나님은 선포하신 계약대로 딱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에 말씀한 대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해주신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바로 깨달아 알고 믿고 순종하는 이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어제도 우리는 양심에 대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려고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길이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우리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 될 때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마음이 정결해지는 마음이 깨끗해지는 이것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 구할 때에 얻을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이 길을 우리는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양심을 우리는 꺾지 말고 양심을 북돋우고 양심을 기르고 양심이 장성한 양심이 되어져 가도록 이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에서는 참 성공이 되어져 갑니다. 모든 기독자를 다 차지할 수 있는 이 모든 기독자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택함받고 부르심 받아 예수 믿는 사람이면 다 성경을 압니다. 성경을 보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 해도 성경이 가르친 대로 제일 옳고 바르게 이렇게 살기를 원하고 그것을 다 좋아하고 소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말씀한 대로 그 지식대로 자기가 깨끗해지기만 하면 생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도 만나면 항상 같이 있던 사람처럼 그렇게 가까워지고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소원하는 바가 같기 때문에 깨닫는 바가 같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거기에서 넘어서 우리는 진리와 하나 되는 여기에 나아가야 됩니다. 양심을 길러서 양심을 길르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신가 원하시는가 이것을 자기가 깨달아 알 수가 있는 자기가 됩니다.
그러면 이제 진리를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되어지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 진리를 따라가는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영감으로 사는 이 실력을 길러가면 이제 하나님과 동행이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깨닫고 살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어지는 여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기독자가 이렇게 성공해 가는 길은 먼저는 양심을 길러서 장성한 신앙 양심이 되어져 가도록 해야 되겠고 이제 그 위에 진리로 살아서 진리와 하나 되는 자기가 되고 그러면 그다음에 영감으로 살아서 영감과 하나 되는 이런 자기로 살도록 우리는 자라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는 이 양심을 길러 가야 되는데 양심을 길러 갈려고 하면, 양심이 주장하고 양심이 가르치는 것을 무시하지 말고 양심을 따라 자기는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면 양심을 북돋고 양심이 자라가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자기 속에 어떤 주장이 있어도 어떤 성질이 있고 감정이 있어도 양심의 주장에 동의하고 따라가는 이런 자기가 되어져 가도록 애를 써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양심이 점점 자라가서 양심이 자기의 지식을 다 점령하고 이 양심이 자기의 모든 물질들을 다 점령하고 자기 마음을 점령하고 자기 몸을 점령해서 양심이 자기를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져 가도록 만들어 가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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