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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 계시록3장2-23061060(요한계시록 3장2-6절)
제목:온전한 자로 사는 길
본문:요한계시록 3장2-6절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람들에게 모든 좋은 것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모든  좋은 것은 자기 안에서 나오고 더러운 것도 자기 안에서 자기 안에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거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자기 안에 모든 좋은 것이 나오는 것은 자기가 주님 생각하는 자기만 되면 거기에서 든 좋은 것이 자꾸 나옵니다.
주님 생각하고 주님과 자기와 생각하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하는 데서 이것은 자기 주관적인 그런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크신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자기를 해치는 것도 자기 속에 나옵니다.
자기가 주님 외에 어떤 위대한 사람을 생각해도 자기가 자기에게 어떤 은혜를 끼친 은인을 생각하고 유익된 사람을 생각해도 주님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면 결국에 자기에게서 이런 해독이 나옵니다.
부모야 우리에겐 좋은 부모가 자기에게 제일 좋지만은 부모를 생각하는 것도 자기를 해하는 해독이 나오지 해독이 나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고 교훈을 생각하고 지도를 생각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지만은 그것도 조금 범위를 넓게 자기에게 부딪히면 사망의 것만 자기에게 오지 유익한 것은 안 옵니다.
주님 생각하는 것은 주님이 내게 어떻게 하셨느냐 주님이 내게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이 내게 잘한 것 또 내가 잘못한 것을 했을 때 주님은 어떻게 했느냐 내가 완전히 잘못되었을 때 주님은 내게 대해서 어떤 교훈을 주며 어떤 성령에 감화을 주셨고 어떤 징계를 주셨는가 어떤 깨달음을 주셨는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보호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모든 것에서 나를 안보하기 위해서 당신이 이렇게 보호하시고 나를 지켜주시고 있는가 하는 주님이 내게 대한 사랑과 내게 대한 역사와 섭리와 간섭과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자꾸 생각하면 모든 좋은 것이 나옵니다.
그것이 하나의 자기 생각으로 자기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실상 하나님에게서 오는 그런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지으실 때도 나는 이렇게 지었었고 우리를 구속하실 때도 이 목적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주님만 생각했더라고. 하면 아마 에덴동산에서 영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담 하와가 주님 외에 잠깐 엉뚱한 생각을 했다가 그만 대대손손 멸망받게 된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도 꼭 같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참 많습니다.
걱정스러운 것도 많고 나쁜 거 필요한 것 해로운 것 그런 것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이 주님 생각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만 그리 옮겨 가기가 쉽겠습니다. 우리가 내게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주님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렇게 해주셨다 주님이 내게 주셨다 주님이 뭐 할라고 이렇게 하시는 거 뭐든지 주님 생각하면서 모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거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돼 내게 이런 일이 왔다 내게 이런 일이 왔다 내게 나쁜 일이 왔다 그것만 생각하면 또한 자기에게 나쁜 것이 옵니다.  그래 자기에게 나쁜 것이 왔으면 내가 왜 이럴까 나는 이 무엇 때문에 이러느냐 온갖 낭만적인 불평불만적인 게 다 나오지만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주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님이 주권 섭리하시는데 주님이 뭐 때문에 해주셨느냐 나를 사랑해서 나를 깨끗게 하려고  실력 있게 하려고 주님이 나만 좋아하실려고 당신이 이렇게 하셨다 이런 나쁜 것이 여기에서 나를 요렇게 만들라고 하셨지요.
이런 좋은 곳에서 이렇게 만들라고 하시는구나 모든 좋은 것을 거기에서 우리는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말씀했습니다. 주님 생각하는 그게 우리가 걸어갈 길입니다. 주님만 생각하면 우리는 여기에서 길을 바로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생명이라 말씀했습니다. 비유로 말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우리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생명과 자원은 이런 생명에게서 나오는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식물들도 보면 생명이 끊어지면 그만 그로부터 흉하고 천한 것이 되어지고 그것을 생명과 연결시켜서 생명이 끊어지지 않게 되면 거기에서 새것이 나오고 자라고 아름답게 되어지고 그러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입니다. 주님과 떨어지면 모든 것이 다. 죽고 망하고 꺼꾸러지고 천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고 망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죽고 망하느냐 모든 죽고 망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에 미혹에 끌려서 그렇게 됐다. 주님과 끊어지면 자기에게 온갖 욕심들이 다 나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 절단 나고 마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배운 것이 사람이 취미 없이 못 살고 기쁨 없이 못 살고 소망 없이 못 살고 사랑 없이 못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취미나 기쁨이나 소망이나 사랑이 있어야 참 재미를 가지고 이렇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지만은 좀 깨끗한 사람이 되어서 이것을 구별해 보고 살펴보는 사람은 취미나 기쁨이나 소망이나 이런 사랑은 그것을 가져봐도 마지막에는 사망이 되고, 마는 이런 결론을 맺게 되기 때문에 이것을 보고 좋다고 이것만 있으면 사람이 사는 길이라고 이렇게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이런 네 가지 있으면 좋아하고 이 네 가지를 찾아가고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 가진 사람이 이 지식을 가지고 생각을 해 보니까, 세상에 살면서 이 네 가지가 제일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지만은 이것이 자기의 머리에 박히고 자기의 습성이 되고, 이렇게 되어 져서도 성경 지식을 가지고 살펴보니까, 그것은 사망에 속한 것이구나 저주 아래에 속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뭐이든지 그저 들어 지식만 가지고 압니다. 하나하나 실행해 봐야 압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먹어보지 아니하면 그것이 맛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것이라고 해도 접촉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자기가  실행해 보면 이게 진짜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되지요 그래서 세상에 불신자라도 심령이 좀 밝은 사람은 살펴봅니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 취미를 가지고 살고 기쁨을 가지고 살고 소망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 좋은 것이다.
이렇게 보지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오늘 이렇게 행동한 것은 보응이 오는 것을 볼 수 있고 젊을 때 이렇게 한 것은 늙어서 보응이 오는 것을 보고 일생 동안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죽을 때 옵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 사람이 일생 어떻게 살았느냐 마지막 장례식이 어떻게 되느냐 그걸 또 이렇게 보면 많이 보입니다.
이러니까 좀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인생을 깨닫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게 아니라, 반드시 거기에 대한 보응이 왔는데 이런 가치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취했더니, 결과적으로 그 가치가 허무하게 됐다.
기쁨도 보니까, 결과적으로 허무하게 되어졌다 그래 그런 것을 살펴보고 좀 깨끗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취미를 가지고 기쁨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사는 것도 그만 허무한 것이다 그래 살아봤자 그래 좋다고 웃고 이렇게 했는데 뒤에 보응이 오는 것을 보니 그로 인해서 그것 때문에 웃었기 때문에 좋다고 취미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그런 보응 오는 것을 보니까,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해서 도덕의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가치가 있다. 이래서 도덕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도덕의 사람으로 살아봐도 그것도 좋은 결과를 맺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허무하다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종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종교에 찾아가서 이런 종교 저런 종교 속에서 이런 종교로 개종해 보고 저런 종교로 개종해 보면서 불택자로서는 그렇게 하다가 세상을 마친 사람이 있고 그렇게 찾아가 보니까, 종교는 그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이렇게 했지 확정적으로 이건 이거다 저거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추척 추론한 그런 말들이지 그걸 믿고 어떻게 갈 수가 있겠느냐 그저 사람을 악하지 않고 선한 사람이 되도록 하려고 권선징악에 그런 것을 알려서 악하지 않도록 하려고 하는 그런 종교일 뿐이다.
하는 것이 느껴져서 어떤 길이 바른 길이냐 그것을 가다 연구하고  그런 길을 찾아 연구하던 사람이 성철 스님 같은 그런 분도 그걸 연구해 보니까, 불교를 믿는다고 거기에서 구원의 길이 있는 것 아니다. 그것을 확정지어 사람은 그런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인생을 영원을 말했고 무한을 말했고 인생은 영원히 살 수 있다.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무한하게 되어진다 조물주가 있다. 주권자가 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이 달려 있다.
이런 것을 옛날 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의 말과 지금의 종교가 말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일관성 있게 그대로 말합니다.  기독교는 갈 지 자로 걸어가게 말하는 것압니다. 이런데 이것을 모르고 오늘날 많은 기독자들도 기독교 인본주의로 사람 중심으로 살도록 그렇게 끌고 가는 사람도 있고 이 기독교 사회주의로 기독교는 사회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또 기독교 도덕주의로 정치주의로 이렇게 살도록 끌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신앙주의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한 분을 향하여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우리가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그분을 따라가는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받은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나는 무엇을 받았느냐 받은 걸 생각하고 들은 것을 지켜 행하고 만약 자기가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들은 것을 지켜 행하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다시 지켜 살면 여기에서 사람은 흰옷을 입게 되어진다 성결을 이루게 되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님이 내게 주신 것 주님이 내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대속의 공로를 입혀 주었기 때문에 이 받은 은혜를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나를 치료해 주시고 내게 은혜에 베풀어 주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하고 주님이 내게 새롭게 깨닫게 말씀을 알려주신 것을 지켜사는 이 사람이 되고, 내가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서 고쳐서 주님 주신 거 생각하고 주님 알려주신 대로 실행하는 이 사람으로 살 때 우리는 깨끗한 자기가 되어저서 하나님의 큰 축복 속에 살 수 있는 인생길을 성공하고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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