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31일 수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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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53130(열왕기하서 5장1-19절)
제목: 계집아이의 신앙
본문:열왕기하서 5장1-19절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십구 절까지에 봉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표적의 역사 지나갔고 또 성경에도 표적으로 나타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모든 표적의 그런 일들은 표적만이 아니고 표적이라 함은 기적의 역사 이면에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그런 이치가 있고 이치를 깨달아 사는 걸음을 걸어갈 때에 거기에서 큰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람 나라에 대장과 다만 되면 이 나라의 대장이지요 이 대장이 아람 나라를 구원하는 일을 했다. 그랬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하게 하니까 구원했지 제 힘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했다. 아람을 구원하게 했으니까.
그 아람나라에서는 아주 존귀한 자로 이렇게 대우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문둥병이 들어서 문둥병자였다 했습니다. 이 문둥병이 또 들었으니까. 이건 뭐 이것으로 이제 세상 끝이죠. 뭐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데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아 와서 나만의 아내에게 수종 들도록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이 계집아이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여기에 있다가 쓰임 봤다가 그만 죽여도 그 만이고 팔아 먹어도 그 만이고 종으로 팔려갔으니까.
그것은 참 하나님 섬기는 말씀대로 순종 하는 걸음을 꼬박꼬박 이렇게 순종 했는데 그만 아람 사람에게 사로잡혀 가서 종으로 살 수 있게 된 이 형편에 놓였습니다. 이러니까 이 아이로서는 참 비참한 형편 그런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온갖 불평도 할 수 있고 낙망도 할 수 있는 원수로 아람 사람에게 되면 이를 갈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볼 때에 나아만과 나아만의 아내가 이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 병을 고치러 이스라엘 땅으로 간 것을 보면 얼마나 신용이 있었는지 믿을 만한 그런 사람이었는지 그것을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분명은 이렇게 종으로 팔려갔으면은 이 아람 사람들이 원수가 아닙니까 자기를 잡아갔으니까. 참 미워서 죽이고 싶고 어떻게 하면 내가 부모가 있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겠습니까? 주인에게 뭐 잘해주고 할 게 뭐 했겠어요. 자연히 그렇게 살게 될 건데 그러나 이분은 그렇지를 않은 것 같아요.
하나님이 이런 환경 속에 살게 하셨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을까? 나를 이렇게 아람 사람에게 종으로 팔려와서 이렇게 살게 했으니까.  여기에서 하나님 바로 섬기는 이런 내가 돼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참 바로 섬기는 일을 했다 이렇게 보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 하는 일이 정확하고 충성되고 나아만과 나아만의 아내가 신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져 있는 이것이 요셉이 형들이 팔았고 보디발 집에 종으로 팔려갔으면 저도 역시 그랬을 것 같은데, 요셉의 생활도 얼마나 그 집에서 신실하게 했기에 보디발이 자기 가정의 모든 재산이나 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걸 요셉에게 맡겼을까요?
그만큼 믿음이 가기 때문에 그렇게 했지 않겠습니까? 이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때는 억울한 때도 고생이 되는때도 이런저런 아직 환경 속에 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나는 왜 이런 가정에  시집와서 이렇게 살아야 될까 나는 왜 이런 직장에 와서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해야 될까 우리가 자신에게 닥쳐온 형편들을 이렇게 돌아보면 어떤 땐 참 낙망이 될 때도 있고 뭔가 불평을 할 수 있는 그런 형편들도 다 있습니다.
그럴 때 불평 불만하고 원수 삼아 이렇게 산다고 그 현실이 뭘 바꾸어지거나 해결되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내가 이때까지 살아도 그렇게 살지를 않았는데 이 계집아이의 신앙을 볼 때는 이스라엘 땅에 살 때도 말씀대로 지켜 산다고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왜 아람 나라 사람에게 붙잡혀서 이렇게 종으로 살아야 되는가?
그게 참 정말 하나님이 계시면 그럴까 뭐 온갖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거기에서 믿음으로 순종 생활을 잘하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계명을 어기지 않고 진실하게 이렇게 하니까.
  그만 나아만 가정에 그 나아만도 그러하고 주모도 그러하고 그만 이 아이를 완전히 믿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문둥병이 들었설 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가면 그 병을 치료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가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 권면을 했단 말이죠.
자기가 그걸 한 번도 안 봤으면 모르지만은 그것도 그 선지자가 치료해 주면 다 치료도 되는  그런 것도 아마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런 일이 안 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확실히 믿고 이렇게 말을 할 때에 그 말을 믿고 이렇게 말을 할 때에 나아만 대장도 왕 앞에 가서 왕에게 우리 집에 있는 계집종이 이렇게 말합니다.  말을 그렇게 하면 우서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계집종 잡아 가지고. 종으로 부르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한다고 어떻게 그 말을 믿고 치료 받으러 갈 거냐 말이죠. 참 어리석은 사람이죠.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건데 그러니까 말을 할려고 할 때 상당히 계집아이에 대한 설명을 했을 것이라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 아이는 어떤 아이입니다.
이렇게 종으로 잡아왔지마는 와서 일하는 게 너무 신실하게 일하고 뭐 참 못되면 집의 자식처럼 그렇게 일을 아주 열심히 잘하고 충성되이 하는 그런 것을 설명을 잘 해서 이러니까 이 말을 들었을 때 왕도 거기에 감동이 되어서 그래 그러면 내가 글을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써 보낼 테니까.
이렇게 허락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 말을 했단 말이요 이렇게 보면은 만약에 나아만 대장이 가서 병을 고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게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나아만대장은 가서 아주 수치를 당하고 그러니까 그러면은 화가 나서 와서 자기를 죽일 수도 있고 그만 온 나라에 참 바보 덩신같이 똑똑한 자인 줄 알았는데 저런 덩신이 됐구나 다 나아만 대장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창피를 당하는 거기에 자존심에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인데 이 계집아이는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에게 가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것을 이렇게 보면서 이 계집아이의 신앙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 구원의 이치를 고대로 믿고 순종하는 그런 걸음을 걸어간 이 계집아이라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이 큰 구원의 역사를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어떤 나라라 하는 것을 알려서 이스라엘 나라를 넘보지 못하고 해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할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나아만 대장이 문둥병이 든 것도 또 와서 이렇게 치료 받게 되어지게 된 것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이 계집아이가 사로잡혀 갔다 그래 그러니까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저 이 계집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내가 살고 있는 이 형편 니 처지가 어떤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려고 이렇게 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해서 이런 형편 이런 처지에서 살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이 있을 줄 알고 자기가 그 입장 처지에서 충성되게 살기만 하면은 거기에서 큰 원의 실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내가 이런 형편에선 희망이 없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말이야.
우리에게 닥쳐온 어떤 형편이든지 거기에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해서 나 하나 요렇게 걸어가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아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것보다 나아만 장군이 그래 했었잖아요. 병을 치료 받고 난 뒤에는 내가 이스라엘 땅에 흙을 그 수례에 두 술에 이렇게 딱 담아가서 그것을 부어놓고 거기서 하나님 섬기겠습니다.
하나님 세상에 여호와와 하나님이 참 신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분도 구원을 얻었을까? 구원을 얻었을까? 이방인데 그가 하나님이 참 신인 줄 믿고 하나님 섬기게 되었다. 다만 릿몬당에 들어가는 거는 왕이 릿몬 신을 섬기니까 그 신하기 때문에 거기에 수종 들어야 되니까.
내가 들어가는 그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럴 때 엘리사는 뭐 용서해 준다. 말도 않고 그냥 가라 그랬어요. 그래 가라  그런 걸 가만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알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이다. 하는 것은 너희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랴 하는 것을 거기에 알리는 역사를 이렇게 하시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단 말이죠. 이 말씀 속에서 우리도 깨달아야 될 것은 내가 어떤 형편 처지에서든지 여기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일이 있다.
자기 형편에서 여기서는 뭐 아무 이런 구원이 이루어질 것도 없고 이런 형편에서 뭐이 되겠는가 그래서 낙망하기가 참 쉽습니다. 우리 형편에 내 형편이 뭐 모든 것이 다. 형통하게 돼 있으면 뭐 안 그렇지만 이상해 하나님이 왜 이렇게 했을까? 나는 이런 속에서 살기 했을까? 이렇게 낙망하게 쉽지요. 그냥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서 최선을 다해서 순종 해 나가는 데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 이 일이 여기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교회를 세워서 이렇게 해도 나는 왜 이렇게 될까 그 당신의 뜻이 있어서 한 것이 분명히 있고 여기서 또 구원할 자가 있어서 구원을 이룰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이구나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잘 해 가야 되겠다. 그 깨달음이 되어집니다. 우리는 그랬어요.
자신이 우리 가다가 이렇게 신앙생활 하다가 보면 늘 형통한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도 오고 억울한 것도 오고 아주 손해를 보는 것도 오고 여러 가지 일이 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원망이나 불평으로 죄를 짓지 않아야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이런 걸음을 우리가 걸어갈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가 거기에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를 이 사건을 기록해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신 것입니다. 계집아이의 신앙과 또 이런 나아만 장군이 이 병이 치료가 되어지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든 이 큰 사건 이 속에서 이 계집아이의 신앙이 이렇게 중요했다.
이 계집아이가 이렇게 신앙생활 함으로 여겨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학을 또 하는 것이 되는구나. 요셉이 참 팔려가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것과 비유는 그만큼 안 되겠지만은 그래도 그런 것과 비슷한 이런 더 결실을 이룬 것이다. 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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