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5월18일 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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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3장
23051840(사도행전 3장 3-6절)
제목: 불쌍한 사람과 복된 사람
본문: 사도행전 3장 3-6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하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할 때 에 나면서 앉전뱅이 된 자가 구걸을 하는 것을  그 베드로와 요한이 그것을 주목하여 보고 주목하여 보고 우리를 봐라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 앉전뱅이 된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이 세운 주님의 제자입니다. 막바로 주님이 너는 베드로라 내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한 이 베드로지요 주님의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예수님이 물어설 때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줄 우리가 믿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바른 시관을 가지고 이렇게 있을 때에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거든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바로 알고 믿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이요. 이런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게 됐다는 것은 얼마나 복이 있는 복된 그런 기회입니다. 일생을 지금 또 뭐 천주교에서는 베드로 동상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다 좋아하고 그렇게 하죠.
이런 예수님의 제자요 참 이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하 이런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는데 그에게  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구걸하려고 하니까 이거 참 기가 찬 일이죠.
이 당시에도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베드로와 요안을 인해서 병고침을 받는 사람이 참 많았지 않소 굉장히 능력 있는 그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지금도 야 이렇게 병을 잘 치료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런 집회라 그러면 나도 여기 가서 병을 치료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그렇지하고 여전히 구걸한 사람으로 이렇게 살고 있다면 이것은 참 이게 불쌍한 것이다. 이게 불쌍한 사람이다. 이것을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수많은 도가 있고 그 이것이 사는 길이다.
하고 길을 말하는 데가 많지만은 참 길이 어떤 길이냐 그 우리는 그렇습니다. 이런 총공회를 만났고 이런 교단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게 됐다. 하는 것이 참 이거 복 있는 길일 것이다. 이게 참 복 있는 것이다. 이것을 느끼고 내가 여기에서 나도 인간병을 치료받는 이런 내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우리는 가지고 좀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 세상에는 많은 그런 길을 말하지마는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은 참 얼마 되지 않습니다. 찾아보기 어렵단 말이에요. 자 불교를 믿어도 그것이 옳은 길이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가만 보면 보면 하루 세 번씩 기도도 하고, 참 열심이다.
참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없고 다른 사람 다른 종교를 믿지 못하게도 전파하지도 못하게 에 그렇게 하는 그런 사회인데도 사람들이 구원을 잘 이룰 수 있느냐 그것이 아니고 이런 가운데 우리는 특별히 기독교를 만나게 됐고 그중에 또 총공회를 이렇게 만나가 됐으니까. 얼마나 복된 무슨 그런 길입니까?
저 이북에서 아주 중요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제주 기독교 극동방송에 방송을 듣기 탈북을 해서 그때부터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탈북해 남한으로 내려와서 살았다.
참 사람 참 옥 있는 사람 게 그런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사람도 보면 그 자기하고 아주 친한 사람이 어디 이 성경책을 구해 가지고 이 책을 한번 보라고 생전 처음 본 책인데 안 본다고 그러다가 책을 읽어보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져 버려요 그래 그런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을 이렇게 보면서 참 성경을 만났다는 것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무 목사도 거기에 없고 누가 지도하는 자도 없는데 성경만 전해졌는데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내가 이런 길로 걸어야 되겠다.
이런 신앙 걸음으로 내가 걸어가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가져 지고 이런 길을 걷게 되는 이것을 듣고는 내가 볼 때 참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그런 이북에서 도무지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그런 곳인데 그런 속에서 있는 사람도 불러내서 이렇게 신앙 걸음 걷게 하는구나 또 그런 데서 그것을 듣고 참 예수 믿는 이 길 걷고 싶어서 거기서 탈북을 하는 그런 일을 한 것을 이렇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이 안전뱅이처럼 이렇게 구걸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자기는은 아니가? 나는 아니다. 이러면서도 참 이런 걸음을 걷지 못하고 있는 그런 우리가 아닌가 이렇게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구걸 하는 사람을 보고 주목하여 봤다. 주목하여 봤다. 여기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에  그저 이렇게 보지 아니하고 구걸을 하지만은 구걸 하지만은 거기에 대해서 응하지 않아고 그를 주목하여 보는 자세히 살펴봤다 이 말입니다. 이게 이 사람이 돈을 좀 달라고 하지만은 보니까, 안전뱅이라 말이입닏다.  그 은과 금을 줘서 될 문제가 아니고 사실은 병을 치료해야 되겠다.
 이것을 보고 병을 치료하는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전도를 한다고 하면서 뭘 줘야 된다. 여기에 서비스를 잘해야 인인관계를 맺어서 해야 전도가 되니까. 교회 오면 선물을 주고 교회 오면 뭘 해야 된다. 그래서 ㅈ총동원 주일을 정해 놓고, 오면 선물을 줄 수 있도록 더 돈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좀 이렇게 내시오.
해서 선물을 많이 모아 놓고 과거에  가만 보니까, 그 다른 큰 교회에서는 뭐 선물을 얼만큼 많이 준비했는가 그 준비를 해 놓고, 오라 하는데 그냥 다른 교회 다닌 사람한테 한 번 와 좀 와주세요. 자기가 아무리 전도할라 해도 안 되니까. 믿는 사람밖에 안 되는 믿는 사람을 불러다가 그 교회 오도록 한 번 예배 참석하러 가면 인자 됐다. 한 사람 내가 데리고 왔다 이렇게 보고하고,  정말로 전도보다는 다른 그런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총동원 추일이라 해 가지고 운동을 한 그것이 참 전도가 됐느냐 그리 해 가지고 뭐 주다가 이제 안 주니까 뚝 떨어져 그런 그것을 보면서 구걸하니까 은과 금을 주는 그런 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 그것을 여기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참 무엇이 필요하냐?
당신이 세상에 뭐 때문에 이렇게 출생한 줄 아느냐 세상에 이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또한 아무것도 없어지고 그만인 줄 아네요. 천국 간다고 구원얻었으니까.
천국 가면 되겠지 하고 천국 간 가면 될 줄 알고 그렇게만 내가 믿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구원하신 것은 그것 때문에 아니고 하나님이 당신이 어떤 분인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는 나타낼 수 있는 이런 우리를 만드시려고 당신이 이렇게 하고 계시는 이 사실을 모르니까 어떻게 하든지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야 되겠다. 잘 먹고 살아야 되겠다. 온갖 이런 것을 누리고 살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만 가지고 그런 것만 구하는 사람이 되어져 있으니까. 기가 찰 일이라 말이지요 그것을 보고 나는 은과금을 줄 수가 없다. 은과금은 내게 없다. 나에게는 이것이 있다. 나에게서는 이것이 있다. 그랬어요. 베드로와 요한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것만 내게 했다.
그러면 베드로와 요한는 어떤 사람이냐? 사람이 이렇게 세상에 나서 이렇게 사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사는 거냐? 이 당시의 사람들도 다 천국 갈려고 천국 가는 이 구원 얻으려고만 신앙생활 하던 것이 유대교 교인들이라 말이죠.
 이렇게 천국가는 이것만 목표로 믿는 신앙걸음을 걷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의 이 사람이 되어지는 이런 사람으로 자라가는 이것을 목표로 우리는 자라야 되겠습니다. 그 베드로와 요한은 이게 가득 차 있다. 우리에게는 나사렛  이 나사렛이라 하는 것을 바로 느껴서 알아야 합니다.
이 번에도 이 집회의 말씀을 들으면서 갑자기 이 집회 말씀만 듣고 이렇게 지나가다가 보니까, 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  나사렛이라는 것은 깊이 깨달아 느끼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래서 이건 이거 못 느끼고 있는가  이렇게 생각이 됐는데  하나님이 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이루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주권 하시고 섭리 하셔서 이 세상에 나게 하셨고 이제 세상에서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다 차단해서  멸할 수 있도록 이것을 다 멸하도록 이 길을 열어 놓고 하나님과 꼭같은 우리가 되어지도록 요것을 주님이 완성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려고
이것을 그냥  입혀주면 되는가 안 됩니다. 우리에겐 다 입혀 줬지마는 실제로 그대로 사는 살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 실력을 우리에게 주어도 우리는 이런 실력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입은 우리지만은 우리가 이것을 알고 믿고 요대로 행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행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행해보기를 연습을 자꾸 해야 돼요.
요런 현실에도 연습하고 저런 현실에도 실행하는 요런 걸음을 걸어서 자꾸 요 말씀대로의 자기가 되어져 가도록 연습해서 실력을 길러가는 그런 우리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사람되어 세상에 난 것은 바로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의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난 것이다. 그 자신의 세상 사는 목적이 분명하단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일이 되는가 예수로 살면 된다. 그 예수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예수로 사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인 이 진리로 사는 이 말씀을 깨달아서 진리로 사는 이 걸음 걸어야 된다. 성경대로만 살면 됩니까? 성경대로 내가 살면 이제 영감이 오는데 영감을 따라 살 수 있는 내가 돼야 된다.
내 성경대로 내가 살고 알고 믿고 요대로 행동하면은 이제 자기에게 영감이 와서 자기를 인도할 때 고 영감을 따라 살면 영감 따라 바로 영감을 따라 살았으면 어떤 역사가 나타나느냐 거기에는 사죄로 사는 역사로 칭의로 사는 역사로 화친으로 사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진리로 살면 내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말씀대로 자기가  진리대로 살면 자기가 바꾸어져서 바꾸어지고 나니까 생각이 바꿔어 지고 소망이 바꿔져서 이렇게 사니까 이제 하나님이 내게 감동 시키시는 감동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감동의 역사가 나타날 때 내 마음의 일은 감동이 와서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그러면 그것은 내 생각인가 아니면 이것이 참 성령의 생각인가 그건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성령이 내게 오시면 나를 주님과 꼭 같은 나로 만드시는 이 역사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것 잘못했다. 요것을 사함 받아야 된다. 자기에게 삐뚤어진 그것이 다.
보이고 그것을 사함받도록 하시고 성령이 오시면 내게 그저 정신 없이 말이지 성령이 성령 받았다고 정신없이 이거 뛰고 굴리고 찬송하고 그래 하니까 성령 받았고 그걸 성령받은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더 이렇게 바른 성령을 받으면 그런 기쁨도 있고 나오지만은 안에는 자기가 삐뚤어진 것이 느껴집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았다.
내가 이런 잘못을 범하고 내가 이런 길을 걷지 못했구나 이런 것이 느껴지는 것은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것 그러면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님이 자기에게서 이렇게 감동할 때 우리는 그저 그것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대속의 공로에 고해서 사함 받고 합니다. 자꾸 사함 받아갑니다.
이런 걸음을 걷다가 보니까, 사도바울은 노경에도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입 자꾸 자기 속에 있는 잘못된 그것을 끌어내 주니까 그것을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사함을 받아서 깨끗함을 받아가는 자꾸 깨끗함을 받아가는 그런 걸음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구나 이걸 하나님이 원하시는구나 나를 이렇게 살라고 하시는구나 그것이 자기에게 느껴진단 말이죠. 그게 느껴진다 말입니다.  주여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주님 내가 이제는 내가 요걸음 걷겠습니다. 그게 자기에게 온 소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고 느껴지고 이 뜻대로 살고 싶은 것이 자기에게 생겨지는 나오는 이것이 뭐냐 예수로 사는 것이고. 그래서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그 걸음 걸어가면 결국에 주님 닮아가지 않겠소 주님과 같은 자기로 자라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는 그런 자기가 되어져 갈 수가 있단 말이에요.
왜 이렇게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속에 내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그러면 베드로와 요한 속에는 이것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복이 있는 사람 복 있는 이라  이런 사람이 되어서 자기에게 그러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가득 차 있으면 얼마든지 이것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이것을 주고 싶어서 이것을 줄 때 자기에게 더 충만해져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누구에게든지 이 걸음을 걸어가도록 이런 걸음을 걸어가도록 자꾸 이것을 주려고 하는 생활을 할 때 자기에게는 이 걸음이 점점 더 충만해져 갑니다. 자기의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전해주고 또 내 가정 식구들에게도 이걸 전해주고 내 이웃 친구들에게도 이걸 전해주고 내 모든 생활로 내 말로 내 생활로 내 인격으로 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사렛을 전하고 예수를 전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이런 사람의 생활이 되어질 때 자기에게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점점 더 충만해져 가고 인간병은 완전히 치료가 되어서 참사람으로 사는 이 자기가 되어질 수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 같이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이오 나면서 앉은뱅이처럼 이 구걸하다 살고 참 이런 복된 길을 만났는데도 구걸 하려고 하는 이 사람 되지 안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복 있는 기회를 만났으니까. 나에게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충만한 자기로 참 사람으로  성공되어 지기를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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