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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1장1-13절
23051510(요한복음 1장 1-13절)
제목:예수 안에 살아야 하는 이유
본문:요한복음 1장 1-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나눌 때는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을 삼분설이라 하고 영과 육 이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을 이분설이라 합니다. 이런데 여기 사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 하는 이 생명은 영의 생명이요. 마음의 생명이요. 몸에 생명입니다.
이 외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 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다 하는 말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이 사람에게 오면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다. 이 생명을 영접하는 이 생명이 사람 안에서 빛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빛으로 역사한다는 말은 우리 사람이 진리로 행동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대로 행동하는 것이 막바로 빛이오 영감대로 행동하는 것이 빛입니다. 우리의 모든 언행 심사가 옳고 바르게 하는 그것이 빛인 것입니다. 
빛이다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원수에게나 자기에게나 모든 만물에 대해서나 옳고 빠르게 삐뚤어짐이 없게 이렇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빛이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빛의 반대는 비뚤어진 것입니다. 빛에 반대는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는 이 모든 것을 두고 어두움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빛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와 모든 피조물에게 모든 언행 심사가 옳고 바르게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도 하나도 걸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언행 심사가 되는 것을 두고 빛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빛으로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빛으로 살려고 하면, 주님을 영접해야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빛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빛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주님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빛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이 어떤 생명인가 생명은 피조물과 창조주가 연결되는 것이 생명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와 연결되지 아니하면 창조주와 화합을 하지 못하면 사망이 됩니다.
창조주와 화합을 하면 창조주로 말미암아 모든 은혜가 피조물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공으로 오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은혜가 공으로 오면 살고 멸망하지 않고 존귀해지고, 성장되어져 가지만은 창조주와 화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주의 은혜가 건너오지 못하면 다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생명이 있다. 하는 말은 주님 안에 창조주와 연결되는 것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와 연결되는 것이 당신 안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결이 되도록 해주는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하는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 길로 걸어가는 이치다 진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삼위일채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지도록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지도록 하나님이 인을 쳤다 하나님이 인치신 분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는 주님이 되셨는가 예수님은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사람 되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할 수 있는 이 길을 당신이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없었는데 그 길을 예수님이 대신 순종함으로 이 길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 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 한 말씀인데 예수님에게는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도록 이 길을 완성한 이것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만 아니고 천군천사도 모든 동물도 식물도 곤충도 무생물도 하나님과 연결되면 살고 연결이 끊어지면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택자들만의 구주가 아니고 모든 만물들의 구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세상에 구세주라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라 만물의 주라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세상에서 모든 언행 심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언행심사 모든 피조물들에게 후회할 것 없고 사과할 것 없고 잘못될 것없는.
그런 언행 심사가 어디에서 이루어질 수 있느냐 예수님과 연결되어지는 여기에서 우리는 후회할 것 없는 사과할 것 없는 정죄 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걸음을 걸어갈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 때 월권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자기 중심으로 해석해서 분명히 자기가 잘못한 것인데 잘못되지 아니한 것으로 변증을 하고 오히려 옳은 것으로 바꾸어 나타내는 그런 일들을 많이 합니다. 자기야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잘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는 모든 것이 공평 되고 바로 되지 아니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틀 것만큼 또 해를 끼친 것은 다 성질을 받게 되고 해를 입힌 것은 보상을 해야 됩니다.
누구에게든지 옳은 일을 해서 은혜를 끼친 일이 있다고 하면, 사람은 알든지 모르든지 그 사람에게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것을 다 보장을 해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몇 년 사람이 사업을 하든지 어떤 직장 생활을 하든지 어떤 사람 밑에서 일을 하든지 자기가 어떤 사람을 두고 부리든지 무슨 일이든지 일을 할 때에 우리는 사람을 보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할 때 사람을 보고 이렇게 상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을 보고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 모든 형편들을 당신이 조성해 놓고, 거기에 우리를 이끌어 살게 했기 때문에 자기를 어느 사람에게 소속시켰던지 어떤 기관에 소속시켰던지 어떤 회사에 가서 일하도록 농사를 짓게 했든지 고기를 잡도록 했든지 정치하게 했든지 그렇게 소속시킨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을 어떻게 행했느냐 행한 그대로 갚아주시는 주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사람에 대해서 옳게 했으면 다른 사람이 모를지라도 내 옳은 것에 대해서 갚아 주시고 내가 사람에게 대해서 잘못했지만은 돈이 있고 언변이 있고 권세가 있으니까.
그 시대에 언변과 사랑과 물질과 환경을 동원해서 설득시켜서 삐뚫어진 것도 옳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지만은 오히려 유익을 끼친 것으로 아무리 변호로 변호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옳게 했다. 이렇게 인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그것이 잘했는지 삐뚤어지게 됐는지 다 그대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이 드러나게 될 때에 자기가 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다 배상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배상하는 것은 주님이 죽고 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정리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배상할 때 불신자들은 배상하는 것은 벌의 벌을 더 가하게 되어 지웁니다. 그러나 택자들이 배상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에 공로가 있기 때문에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주님이 다 배상한 것이 있어서 그가 배상하는 것은 다른 것으로 배상하지 않고 자기 구원이 삭감이 되어집니다.
불택자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준 것은 벌을 더 가하게 되어지는 더 큰 벌을 받게 되겠지마는 그것은 베상한 일이 없기 때문에 더 큰 벌로 배상을 해야 되지만은 택자는 그는 잘못을 함으로 해를 주었지마는 그것은 주님이 죄를 다 갚아줬기 때문에 죄의 형이 없는 것입니다.
죄 형은 없지만은 자기 구원이 삭갑 되어집니다. 택자들이 이 세상에서 세상살이를 하고 갔지만은 어떤 사람은 대속의 공로를 입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이 공로를 다 벗겨버려서 삭감해 버리니까 하늘나라 가서 받는 구원은 벌거벗은 구원을 받은 자가 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사는 세상살이가 중요한 세상살이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자기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 만물들에게 일이 있을 때 이 잘못한 것을 하나씩 다 찾아서 예수님의 피공로에 고해서 사함을 받으면 새상 사는 기간 동안에 다 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것을 두고 내 죄가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눈과 같이 양털같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삐뚤어진 것이 어떻게 극심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내가 참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대속에 관련시켜서 주님과 해결 지어주면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된다고 하나도 잘못이 없도록 잘못한 것이 도말 되어지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살 때 일차적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들에게 잘못한 이것을 발견하면 잘못됨을 깨달았으면 다 사유하며 지나가는 사유함을 받고 지나가는 우리가 돼야 되겠고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 사물에게 잘못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할 수 있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옳고 바르게 할 수 있느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한 대로 자기 안에 주님을 모셔서 주님이 자기 안에 생명이 되어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걸음을 걸어가면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 피조물에게 잘못됨이 없이 잘하는 일이 되어지고 맙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는 삶은 생명을 모시고 주님을 모시고
생명으로 사는 이 걸음 걷는데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살아야 하겠고 소극적으로는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깨달아지고 남에게 해를 준 것을 느낄 때에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해서 사유함을 받고 지나가면 우리 구원이 주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이 구원으로 영원히 누리며 살 수 있는 자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잘못을 가루려고 하지 말고 언변으로 무력으로 물질로 듣고 가루려고 하지 말고 그것이 드러나면 대속의 공로에 고해서 사함받는 자기가 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과 모든 존재에게 자기에게 책임 지워진 자기의 할 의무와 책임 본분이 있습니다.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고해서 사함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직책과 자기의 의무와 할 일을 다 감당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되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우리가 되도록 애를 써 가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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