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4월25일화새

페이지 정보

본문

본문: 창세기15장1절

23042520(창세기 15장 1절)
제목: 아브라함의 선택
본문:창세기 15장 1절
 이후의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가나안 땅 벧엘까지 가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 섭겼습니다.  제단쌓고 하나님 섬기는 중에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만나게 됐습니다. 기근으로 인해서 살기가 어렵고 힘든 이런 어려움을 위해서 이 어려움을 피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은 지금 우리로 말하면 세상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서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다가 더 큰 어려움을 만나서 가정도 덜 다 나고 자기의 생명까지 절단 날 그런 위기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 회개를 하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감동 시키고 이래서 애굽에서 다시 하나님이 머물라는 가난안 땅 벨엘로 향하게 됐습니다.
가나난땅 벧엘에 올라가는 기간이 얼마였는지 모르지만은 그들은 목축을 하기 때문에 양떼를 여기에 가서 먹이고 저기 가서 먹이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벨엘로 올라가는데 하나님이 축복해서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이럴 때 아브라함도 부강하게 되고 롯도 부강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인데 하나님에게 받은 이 축복이 하늘의 축복도 있고 땅에 축복도 있습니다. 하늘의 축복이라고 하면, 우리가 심신이 점점 성화 되어져 가는 변화되어져 가는 이것이 하늘의 축복이요. 우리의 인격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 하늘 축복이요.
우리가 점점 믿음이 강해져 가는 것이 하늘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축복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난 땅 벧엘에 가서 살라고 했는데, 어렵다고 이렇게 애굽으로 찾아 내려온 이것이  야곱도 외국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에게 물었고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해서, 이렇게 간 것이지. 기근이 오고 어려움이 온다고 그것을 피해서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나님에게 물어서 하나님과 의논해서 이렇게 걸어가는 걸음을 걸어갔다고 하면, 멸망이 오지 않을 것인데 그저 자기 생각에 어려우니까 하나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지 않고 외국으로 간 걸음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왔지만 거기서 회개하고 자기를 고칠 때에 다시 가난한 땅 벧엘로 올라가겠습니다.
하고 올라갈 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브라함 믿음이 만들어졌죠 그전에는 믿음이 어린 믿음이었지만는 이제는 어렵고 힘들어도 부요하고 가난해지는 것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달렸다 하나님이 부요케 하면 얼마든지 부요해 줄 수 있고 하나님이 가난하게 하면 별수 없구나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에게 다 달렸다 하는 그런 믿음이 되어졌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가지고 왜 내가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네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이 모든 복이 내게 임하며 내게 미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내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이제 가난 땅은 벧엘로 가서 살아야 되겠다.
하고 벧엘로 올라가게 된 이로 인해서 그 아브라함의 마음과 몸도 다 성화가 되어지고 변화되어진 것이죠. 이런 하늘의 축복 이 축복을 받아서 이 축복으로 사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길이 있고 해 주실 때 땅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 땅의 축복은 언제든지 하늘에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재료로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나안땅 벧엘로 올라갈 때에 부요하게 됐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다시 내가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 길로 걸어가면 다시 하나님이 부요케해 주시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된다 이기요 그러나 땅의 축복은 이 축복으로 인해서 시험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이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이것이 들어서 롯은 시험이 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축복을 주니까 내가 하나님보다 이 축복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 하는 요것이 롯에게 닥쳤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이런 길인데 보이는 모든 조건을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내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라갈 것이냐 자기에게 소속한 사람들과 이견이 대립되어질 때야 그 모든 사람과 대립이 되고, 그 사람들에게 배측 당하는 일이 있고 그래도 나는 하나님과는 끊어질 수 없다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고자 하는 이런 자기가 될 것인지 여기에서 차이가 생겨지게 될 것입니다.
롯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모든 하나님의 축복도 좋지마는 보이는 조건이 좋아야 된다. 조건을 중하게 여겨서 하나님이 섭섭해 해도 조건 좋은 것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조건이야 좋든지 나쁘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니까 가나안땅 벧엘에 살아라 했으니까. 난 여기에 사는 것이 하나님이 여기에 살려고 했는데,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선택입니다. 그러면 가족들은 모두가 다 반대지요 가족들은 다 비 오지 않고 물 없는 이곳에 어떻게 살겠습니까?
예 조건이 맞지 않다 이 말입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가정 불화를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고 가족들의 의사가 있지마는 그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딸기로 했고 하나님의 뜻이 있지마는 가족들의 총론에 의사를 인해서 가족을 따라 살기로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걸음 걷는데도 항상 이런 두 노선으로 갈라져 가는 그런 걸음을 걷게 되어집니다.
보이는 조건을 따라갈 것이냐 하나님의 축복을 따라갈 것이냐 그래 살펴보면 모든 조건이 좋기 때문에 그 길 따라가는 사람 아무래도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이 축복을 받을 받는 그런 길을 걸어가야 되겠다. 하고 이렇게 두 길이 우리에게 항상 있게 됩니다.
또 아브라함과 롯은 자기 가정에 모든 종업자들과 가족들의 그 모든 사람의 여론을 따라가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것인지 이 둘 중에서 롯은 많은 사람을 따라가야 되겠다.
그래서 오늘날도 교회가 수를 따라서 사는 여기에서 인생들이 다 교회가 타락이 되고, 변질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주장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의 주장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주장이 있지마는 하나님의 뜻을 두고 그 길로 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걸음을 걸어간 것이 아브라함의 걸음인 것입니다. 롯은 모든 조건 좋은 모든 형편을 보고 따라갔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따라가서 롯은 하나님의 축복보다 보이는 조건보고 따라갔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가련해지고, 절단 날까 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길 걸어가고 롯은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망하지 않도록 하려고 이렇게 하는 걸음을 걸어가 것이 롯의 걸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어쩌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남을 위해서 살려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그런 걸음을 걸어가니까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아브라함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 성자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하면 내가 올라가겠다. 내가 절단 나겠다. 나만 고생하겠다.
이렇게 해서 찾아가는 것이 그것이 아니고 내가 고생이 되어도 내가 힘이 들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면 나는 그 길 걸어가겠습니다. 하고 걸어가는 것이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 전쟁 때 보면 자기가 가서 전쟁에서 이겨서 많은 적산을 적군의 재산을 빼앗아 왔으면 그건 자기가 가져도 상관없는 자기 것입니다.
이런데 그것도 시험하려고 소돔 고모라 왕이 와서 이 재산은 당신이 가져가도 사람은 내게 주십시오. 이랬단 말이요 자기도 패전한 것 아닙니까 그 전쟁 연합 전쟁에서 자기가 폐전해서 폐전했는데 아브라함이 가서 다 점령을 했거든요. 소돔 고모라성 왕도 자기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잡아버리면 되는 거야. 별수 없는데 이랬는데도 내가 신 한 컬레도 내가 가지지 않겠다.
왜 그렇게 선택했느냐 하나님이  복을 줘서 내가 잘 됐는데 그 가만 생각해보니까, 지금은 그렇지만 쫌 지나가면 아브라함이 저렇게 부유하고 강하게 된 것은 우리 연합 전쟁 때에 우리 재산을 다 가져가고 적군의 재산을 다 차지했기 때문에 그래서 부자가 됐지 뭐 하나님이 축복해서 그렇게 됐을까? 그게 아니다. 그때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그렇게 많은 물질을 차지해서 그 사람이 부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아갈 것을 그만 다 없애버리는 이런 결과를 맺게 될 것이 뻔하게 보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 다 취할 수 있는데, 포기한 그것은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돌아갈 영광을 아무도 빼앗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선택한 걸음이라 말이지요. 롯은 그것보다는 온 가족이 말을 듣지 않고 그럼 우리 떠날랍니다. 가난안 땅이 여기서 어떻게 목축을 한단 말입니까?
이 가축들을 먹이려고 하면, 소돔들 같이 풀많은 그런 데 가야 되지 그러 안 할라 하면 우린 다 떠납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이런 데 어찌합니까? 가축은 많고 목자들은 다 떠날라 하고 또 가족도 이 살기 좋은 소돔 고모라 땅 거기로 가야 되지 여기에 아무 문화 시설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산다 말입니까? 이렇게 해 갈 때 이제 자기가 혼자 되면 이러니까 내가 어쩔 수 없다. 가족들이 이러니까 종업자들이 이러니까 형편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소돔 고모라성은 그들을 선택하겠습니다. 이렇게 갔단 말이에요. 이러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다 갈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는 삶과 자기를 좋게 하는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가 해 입지 않으려고 하는 그 걸음을 걷는 것과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 나중에 보니까, 롯은 자기 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자기 말 잘 듣던 종업원들 다 어딜 가고 없고 나중에 소돔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가만히 보니까, 자기 아내도 자기 말 안 들어요. 무시합니다.
자기를 무시하고 딸들도 그렇고 사우들도 그렇고 자기에게 속한 사람이라곤 그거밖에 없는데 다 말 안 듣고 무시하고 하는 그런 사람이 다 되지 그러나 아브라함은 보면 사람을 다 차지했어요.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제는 재산을 지키는 가정을 지키는 군대를 318명이나 구비하고  그 군대를 4 나라와 다섯 나라가 연합 전쟁하는 그 전쟁에서 패전한 다섯 나라가 패전해서 다 사로잡혀 가는 것을 318명을 데리고 와서 다 이기고 도로 빼앗아 찾아 오고 그러면 그 군대는 강력한 군대입니다. 그렇게 강하게 되고 아브라함을 따르고 아브라함에 속한 자가 되어졌단 말이야.
또 아브라함에게 절대 복종하는 사라가 되었었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구약의 여자들에게 축복을 할 때 내가 사라의 딸과 사라와 같은 딸이 되기를 바란다 하는 그것이 축복을 비는 말이 됐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사라가 어떤 일이 되느냐 자기 주장대로 막 끌고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을 주로 알고 아브라함을 주님으로 알고 하나님처럼 아브라함을 모시고 복종하고 아브라함 따라 순종 하는 그런 걸음을 걸어간 것이 사라이기 때문에 그 사라를 그렇게  모든 여인들이 제일 잘 되는 것은 사라와 같은 딸이 되기를 원한다. 이게 축복의 비는 말입니다.
그게 성경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요 관계가 되어질 때 정상적 부부로 가정 교회로 성공 되어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생으로서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 복종하여 사는 요 연습 요 실력을 기르는 것이 가정에서 이것을 기르고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여 사는 요 사람이 되어져가도록 자기를 길러가는 것이 이게 제일 복 있는 그런 그 종업자들도 보면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갈 때 아브라함이 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이면 지체하지 않고 단행하고 이렇게 순종해 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걸어가는 그것을 옆에서 보고 배우고 그들도 그와 같은 성자의 그런 걸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 하는 이런 사람들로 아브라함의 가족으로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다 이렇게 성화 되고 변화되어 가는 결과를 맺게 되더라 말입니다.
아브라함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데서 이 성공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 성공이 되었다. 말입니다. 자 그래서 오늘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말을 할 때에 우리 가족이 다 나도 그러면  그렇게 신앙 생활을 하겠습니다.
자기와 똑같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려고 살려고 하는 그런 자녀들이 되도록 만드는 길이 뭐냐 요것이 아브라함의 이 신앙걸음에서 볼 수가 있다 말이지요 롯의 신앙 걸음을 걸어가니까 전부 뿔뿔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말을 안 들어요 다 자유대로요 자기 잘나서 아 이래 살아야 됩니다.  소돔 고모라 성이 멸망하니까 이제 유황불로 다 탈 것이니까?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자 그 말을 듣지 않고 살다가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됐고. 또 롯의  딸들은 아버지와 동침해서 자녀를 낳는 그런 아주 못된 그런 조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나 왔느냐?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고 자기를 좋게 하려고 하는 거기에서 그런 멸망이 나왔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걸음을 걷는 거기에서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다 성자 성녀가 다 되어진 이런 신앙걸음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 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