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4월21일 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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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3042150(요한복음 14장 6절)
제목: 예수로 사는 길
본문: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 하는 이 말씀은 아버지라 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해서 우리 배우고 있는 공과로 일곱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라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아버지라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아버지는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오. 모든 그것을 존재케 한 창조 주시오. 지금도 대주제자시오. 모든 것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에 주가 되신 하나님을 가르켜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 하나님 이것을 우리는 그저 듣고 지나갈 것이 아니고 깊이 새겨야 합니다. 아버지라 하는 것은 나의 권원이란 말이 입니다. 나의 권원이라 나를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그 모든 존재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 근원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아버지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느냐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아버지가 되셨고 둘째, 아담을 통해서 우리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첫째, 아담을 통해서 낳아주신 것은 온전치 못하고 변동될 것이고. 유한한 것이요.
시간이 지나가면 다 변질된 그런 것인데 이것이 선악과를 먹어서 변질이 되어서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져 버리니까 인생은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존재로 모든 만물의 주인의 그런 위치에서 살게 했는데 위치에서 쫓겨나게 됐습니다.
주인의 지위에서 쫓겨난 인생이요. 둘째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다시 낳아주신 것은 영원히 변동하지 않는 영생할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낳아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우리를 낳았단 말을 했느냐 야고보서의 말씀 보면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주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1차 창조도 말씀으로 창조했고 이 차 창조도 말씀으로 이렇게 에 창조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차 창조도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말씀하신 대로 진리가 1차 창조의 것을 다 만들어 놓은 그런 것입니다. 이차 창조도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함으로 그 창조하신 이 창조가 이 차 창조로 창조한 것입니다.  1차 창조가 뭐야?
 이차 창조가 뭐냐 1차 창조는 유한한 보이는 이 세상 것 이것을 만든 것이 1차 창조입니다. 1차로 참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것을 만들었기 때문에 1차 창조라 1차 창조한 그걸 가지고 다시 이 재창조를 한 것이 오늘 우리인 것입니다.
재창조로 창조된 것은 애미가 새끼를 놓은 것 같은 새끼를 놓은 요것이  재창조입니다. 그 언니가 자녀를 낳은 것처럼 이렇게 느끼지만은 그 어미가 새끼를 낳는 것처럼 그렇게 됐으니까. 그 어미가 만들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도 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인데 재창조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재창조로 이룬 그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1차 창조로 창조하시고 재창조로 다시  창조하는 이 역사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차 창조라 하는 것은 뭘 창조한 것인가? 이차 창조는 하나님이 하나님과 꼭같은 완전자를 만드신 이것이 이 차 창조입니다.
그러면 이차창조는 완전자를 만들었다 하는 거 완전자는 어떤 자냐 완전이라는 것은 조금도 부족한 것이 모자란 것이 없는 전지요 전능이 이런 존재가 되어지는 것이죠. 이런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느냐 아무리 하나님이 만드셔도 그것이 망해버리면 안 되잖아요. 망해버리고 변질되어서 끝이 나고 나면 그건 완전히 된 것은 아니죠.
이런데 이 모든 것이 망하는 것은 뭐 때문에 망하느냐 죄로 인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다 이런데 그 모든 죄를 없애지 아니하고는 망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망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니까 죄를 멸해야 되는데 죄를 멸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므로 죄를 다 대신 형을 받음으로 죄를 멸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죄 없는 무죄를 만든 것이죠. 그러니까 영원히 죽거나 망하는 일이 없는 그런 존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 전지전능이 되어져야 되겠는데  그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완전 순종 할 수 있는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하나님 말씀을 완전 순종할 수 있는 요것이 돼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람되어 세상에 와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의를 완성했기 때문에 그것이 완전인 것입니다. 또 주님이 하나님이 버려도 당신은 하나님을 잡고 놓지 않고 기도하고, 계셨다 그랬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사신 예수님이 되시므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됐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 안에 생명으로 와서 내주할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와서 생명으로 내주하고 사람은 그 생명을 따라서 동하고 정할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두고 완전을 창조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해서 이차 창조라 말합니다. 1차 창조는 변동될 것을 만들었고 이차 창조로는 변동되지 않을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 때에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전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요것으로 이걸 만드는 것입니다.  믿고 성종할 때 진리가 요것을 창조해서 새로 창조해서 만든 이것이라 말이죠.
진리가 이것을 새로 창조해서 만든 것 이런 우리로 하나님이 우리를 낳아서 우리를 새로 중생시켰을 때 요 생명이 요 다섯 가지로 된 생명이 우리 영 안에 와서 있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중생이 되고, 중생됨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거나 망하는 일이 없는 영생 하는 이런 우리가 되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난 자기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진 자이다. 요것을 두고 아버지라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모든 사람이 자기가 난 고향을 좋아하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이것이 다. 똑같습니다. 모든 식물도 자기의 난 곳을 찾고 자기가 어디에서 생겨졌느냐 이것이 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난 자기가 나온 그것을 찾고 돌아가고자 애를 씁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래서 이 세상을 보면서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생겨졌을까? 이것을 찾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걸 찾고 싶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생겨졌을까? 그냥 저절로 챙겨질 수가 없는데 사람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람을 찾고 그 근본을 찾아보려고 이렇게 애를 또 섰지만은  찾을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여기 예수님은 길이요. 진이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오늘 세상에  창조주를 찾고 근원을 찾고 대주재자를 찾으려고 하면은 예수님으로 만이 이것을 찾을 수가 있다. 예수님 아니고는 이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둡고 밝은 데 따라서 좀 다르지마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다 이 제일 힘이 센 능력이 있는 인생을 만든 그런 근원을 찾고 그런 창조주를 다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도 자기는 이런 하나님을 찾았지만은 그는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주 맑은 물이 아주 차고 맑은 물이 싹 나오니까 여기에 뭐이 있는가 해서 그것이 복을 줄 수 있는가 해서 거기 가서 빌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바윗돌이 있으면 그 바위돌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래서 거기에 빌고 큰 고목이 있어도 거기가서 빕니다.
태양을 보고 달을 보고 거기에 절을 하면서 이 큰 것이 있는데, 이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래서 거기에 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 그렇게  인생에게 복을 줄 수 있는 것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생을 심판할 수 있는 그분이 어디 있을까?  이런 큰 것이고 이런 무서운 곳이니까. 여기 있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그것을 신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만은 거기에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게에 있는 것 아닙니다.
이것을 찾으려고 연구하고 나가는 자들이 철학입니다.  이 근원을 찾아가는 그것이 철학인데  그 공자나 노자나 이런 사람들은 하나의 철학가입니다.  석가모니는 철학가보다도 탁월한 종교가인데 그들이 다 찼다가 찾다가 모르겠다. 나는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이렇게 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으려고 나선 것이 모든 종교들입니다.
이러니까 기독교도 그와 같은 종교인가 이렇게 생각해서 사람이 점점 연구하고 이렇게 해서 찾아가는 그런 도인가 하는데 기독교는 그런 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보이시는 종교라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모를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보여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환상으로 우리에게 보여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뒤에는 문서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문서를 보고 믿고 그 사람이 되어져 가면 이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알려주시고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영감과 같은 그런 사람이 되어지면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연결돼서 하나님에게 직접 연결로 깨달아갈 수 있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이 방편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우리가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첫째가 하나님이 우리를 낳아주신 하나님의 근원이라 하는 것을 두고 여기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없는 가운데서 존재케 하신 하나님이다.
나를 존재케 하신 그 하나님에게 우리는 가까이 갈려고 하면, 그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면, 예수님이 아니고는 찾을 수가 없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은 사랑 하나님이신데, 그 사랑을 받는 우리가 되려고 하면, 예수로 사는 이것만이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가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나를 길러주시고 나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기쁘시게 할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입으려고 하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은 예수로 사는 이 길 뿐입니다.
예수로 사는 이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그 이치가 예수로 사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 내가 살고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안에 사는 그 길은 예수로 살 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안에 사시고 나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 사는 이런 자기가 되어질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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