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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14장1-6절
23040310(요한복음 14장 1-6절)
제목: 예수님이 길이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1-6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만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러서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어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그 귀를 어찌 알게 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남의 말미암치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는 이 말씀을 듣고 그렇게 능력 많으신 그 주님이 죽으신다고 하니까 근심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이 뭐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하시고 주권 개별 섭리로 역사 하셔서 우리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이렇게 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일도 이해하고 또 여기에서 극복해 나갈 수 있게 되어 집니다. 자기에게 찾아온 모든 일도 우리가 이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주님을  믿음으로 걸어가면 이것을 이길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꾸로 좀 돌아 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분명히 택했다. 하는 것은 증거가 택함 받은 증거가 있느냐 택함 받은 자라고 이렇게 확실히 말하지 않아도 성령이 내게 와서 역사 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하면, 그런 분명히 택한 받은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이 와서 역사 할 때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주지 않고는 성령이 와서 역사할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나는 기본구원의 은혜로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서 분명히 구원 받은 자유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 대상의 자기가 되어있는 것은 틀림이 없으니까 그러면 오늘 나는 이 세상에서 살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 내가 이 하나님의 목적 하신 대로의 자기가 되어져 가는 데에 자기의 전 힘을 다 기울여 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나간다고 하면, 사도 바울이  경건한 성도들을 잡아다가 죽이고 이렇게 하는 일에 앞장 선 일을 하고 난 뒤에 그가 개종이 되고, 난 뒤에는 일 대해서 서 어떻게 느꼈을까? 어떻게 느꼈을까?
이 말씀을 깨달아 느낀 그런 자가 되었으면 주님이  나를 이런 나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목적 대상으로 이렇게 나를 길러주시는가 하는 것을 느끼면 그만 죽도록 충성하는 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목표를 여기에 두고 살지 않을 수 없는 자기가 되어져 갑니다.
이와 같이 자기가 이런 택함을 받은 이런 자기라 하는 것을 깨달아 느껴서 회개하고 주님 앞에 바로 서서 걸어 가려고만 하면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자기가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아야 되겠죠.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순종 하는 자기가 되려고 애를 써 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하나님이 이 어떤 분이며 무엇 할라고 하신 것인가?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시려고 그런 역사를 하시는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세상에 와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사활의 대속 공로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을 깨달아 알 때에 그 주님이 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는 말을 들어도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 자기가 될 수 있는데,  이 자체를 잘 모르니까 그만 마음의 근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이것을 단순히 하늘나라는 넓으니까. 우리가 다 가서 살아도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 집에 하나님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 하는 것은 우리가 내가 산다고 하면, 내 활동 범위 내가 아무리 좀 똑똑하다 해도 외국으로 나가서는 살지 못하고 한국의 요 범위 안에 서는 내가 활동하고 일하고 이렇게 하기는 한다. 그러면 요것이 내 활동 범위가 되겠지요.
그와 같이 또 어떤 사람은 그저 몸이 아파서 바깥은 못 나가고 자기 방 안에서 뚜글뚜글 구부는 방 안에서 만 있는 요것이 자유 활동 범위라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내가 살 수 있는 내가 살 영원무궁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내 활동 범위를 두고 내 아버지 집에 거 할 곳이 많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그 세계를 만들어 갈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 이 세계가 없다고 하면, 너가 그만 세상에서 잘 먹고 살아라 돈 잘 벌어서 이렇게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재미있게 누리고 살 수 있는 것 많이 누리고 살아라 그렇게 내가 너희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 집에 할 곳이 많기 때문에 그 내가 이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 하러 가느니 우리가 거 할 처소는 주님이 마련합니다. 주님이 마련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가 갈 하늘나라에 내 아파트를 건설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가 살  이 처소 그러면 나는  모든 피조물이 중보자로서 살 수 있는 그런 우리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건너오고 내게 건너온 이 은혜가 모든 피조물에게 건너가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을 돌리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이런 세계가 이루어지게 되겠는데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그런 중보의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무생물이나 천군 천사나 다 하나님의 은혜가 건너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살고 자라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이런 세계가 이루어져 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 주려고 하면, 내가 삐뚤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삐뚤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받을 수도 없고 전해질 수도 없는 그런 자기가 되어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흠 없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하려고 하나님이 요걸 건설한 것이 사죄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죄를 건설했으니까. 우리는 죄를 사해 줬으니까. 그냥 죄 없다. 이렇게 했느냐 그러면 죄 없다고 했는데, 내 속에 돌아보니까, 내 생각 속에도 들어있고 감정 속에도 들어있고 고집 속에도 들어 있고 이런 습관성에 도 들어있고 자기 속에 이 죄가 들어있는 것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봐도 요런 꾀가 아직도 빠져나가지 않고 있구나 요런 성질들이 들어 있구나 게 그것을 우리가 현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자기 마음에 들어있는 걸 어떻게 압니까 자기 생활을 통해서 그 죄의 요소가 자기 에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죄를 알고 하나님 요 죄가 있습니다.
사유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해서 고함으로 사함을 받고 다시는그  죄 를 짓지 않는 자기만 되면 우리는 죄가 없는 자기가 되어서 갑니다. 아담 하와 이후로 역사에 많은 세월을 거쳐 내려오면서 앞서 지나간 선조와 이렇게 살았던지 저렇게 살았더니, 상관없는 게 아니고 가만 보니까, 그런 죄를 짓는 그런 성질들이 내게 까지 연결되어 온 것을 볼 수가 있단 말이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 죄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이 자기 현실을 통해서 드러날 때에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 받고 주님에게 이제 고해서 받고 이렇게 해서 자기에게 그 모든 죄를 다 멸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내게 이런저런 현실이 이 닥쳐오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 어떤 때는 이해하지 못해요. 나는 왜 그럴까 나는 왜 이런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이런 죄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자로 하나님이 예정 하셨고 또 이런 자로 살 수 있는 이런 내가 되게 했을까?
 참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니까, 내 속에 있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을 드러내어서 이제 그걸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하시는 그런 역사를 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이 자랑하는 의인 입니다.  욥 같은 의인이 어디 있느냐 말씀을 했죠. 그러나 욥 속에도 그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죄가 있는데, 그 죄를 욥도 모르지 자기는 의인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 죄가 자기에게 있는 줄 몰랐단 말이에요.
 이랬는데 그에게 찾아온 무슨 질병으로 인해서 결국 내 속에 이런 죄가 있었구나 하고 찾아서 회개하도록 알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런 현실을  주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그렇게 깨끗해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조성해 주신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하나님과 자기와 막힌 것이 하나도 없이 다 그것이 이 티워 졌기 때문에 이제 네 활동 범위가 얼마나 넓어지는지 모릅니다.
내 처소와 넓어져 가는 것입니다. 커져 가능합니다. 피조물에게 이것이 필요한데 그것을 누가 갖다 줄 수가 있느냐 하나님과 나와 막힌 것이 그만큼 해결 할 필요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어서 자기가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 쓸 수 있는 자기가 될 수가 있다. 말이죠. 자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 주려고 하면, 하나님과 막힌 것이 없어야 됩니다. 막힌 것이 그것을 멸하기 위해서 주님이 대속을 하셨고 또 주님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 순종으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 순중한 의를 내게 입혀 주셨단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다 입혀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만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것 때문이다. 요것 때문이다. 요것 때문이다. 여기서 요것을 연습해라 요. 실력을 길러라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그 현실을 조성해서 거기에 인도해 주시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말이죠. 이러니까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가 우리에게 건너올 때는 하나님의 뜻으로 건너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실행할 때에 그 은혜가 내게 건너오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이 연습을 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수많은 지나가는 현실이지만 그때 그때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고 그 뜻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도 저를 따라 사는 자기가 되려고 애를 써 봐야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실행하니까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내게 건너오고 내게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줄 알고 또 내가 만물들에게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줄 때는 그냥 전해줄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인 인 관계 사물 관계를 맺는 거기에서 전해져 가는 것이지.
무슨 물건처럼 하나 들고 떡 갖다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이 그 은혜를 힘입는 것은 무엇으로 힘을 얻을 수 있느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처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물건을 처리하고 잘 들어야 돼요.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온 것이 모든 피조물에게 전해져 가고 거기에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는 그런 자기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모든 사물들을 접하도록 모든 인인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해 놓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건너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실력을 길러가도록 이를 위해서 역사하고 있는 것이죠. 자 그러니까 자기는 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 물건을 이렇게 처리하고 처리하고 이렇게 처리하고 또 이렇게 사용하고 저래해서 하는 거 그 잘못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이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
내 성질대로 하고 내 감정대로 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거기에 전해져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그 피조물에게는 소용없는 자기입니다. 아무 필요가 없어요. 이러니까 내가 사는 모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를 할 때 아담 하와도 그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관리할 때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생명과 평화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니까 아담 하와를 다 좋아하고 환영하고 높이고 그렇게 됐죠 그러나 이제는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는 그들이 그만 모든 피조물을 자기 욕심대로 씁니다. 자기 욕심대로 쓰니까 기가 찬 일이죠. 하나님의 은혜가 다 가로 막혀 버리니까 멸망되어지고 마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주님이 이 처소를 예비 하러 간다는 것은 죄를 면할 수 있는 길을 예비 하러 가신 것이요. 의를 완성하기 위해서 걸어가신 것이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걸어가신 걸음인 것입니다. 이것을 다 완성을 해 놓은 것이요. 이 처소를 이제 예비 해 놓고, 이제 우리가 거기에 가서 살도록 우리가 그 속에서 살 수 있는 자 되도록 하시려고 주님이 나를 거기에 인도하고, 계신다 하는 것을 여기 말씀하고 있죠.
나는 거기에 와서 살도록 그 처소에 살도록 너희를 위하여 스스를 예비 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면 우리도 주님이 완성해 놓은 처소가 사죄의 처소요 칭의의 처소요 화친의 처소요 소망의 처소 입니다. 자 이 처소에 우리가 가서 살게 될 때에 우리의 활동 범위가 얼마나 넓어지는지 모릅니다.
이 세계가 얼마나 큰 세계 얼마나 좋은 세계가 되는지 몰라 이러니까 나를 모든 피조물이 다 환영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높이고 가치 있게 여기고 이것이 이루어져 갑니다. 자 우리가 세상에서도 자기가 어디에 가든지 말이죠. 자기를 알아주고 필요를 여기고 존경하고 이래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신이 나죠. 자기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살 수 있는 그래 해도 피곤치 않고 재미가 있고 그럴 겁니다.
그래서 하늘나라가 천국이라 그러니까 거 가서는 하늘나라 가면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 놀고 그러니까 세계가 천국인 모양이다.  아니오 그런 세계라서 천국이란 말은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이 환영할 수 있는 세계가 되니까. 천국이죠. 하나님에게 가장 필요한 자기가 되어지니까. 천국이죠.
하나님이 이 모든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고 모든 것을 좋게 해주려고 그렇게 해주므로 모든 피조물이 좋아하고 환영하고 감사하고 이런 데서 하나님 또 신이 난단 말이요 당신이 이렇게 하니까 모든 피조물이 좋아하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을 찬성하고 하는 이게 당신이 좋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자 합니다.
그 길은 뭐냐 우리 사람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에게는 꼭 필요하다 말입니다. 그건 나는 하나님에게 꼭 필요한 자기가 되는 거지요 하나님에게도 없어서 안 될 꼭 필요한 내가 되어서 간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이런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당신이 이렇게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큰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권세 있으면 된다. 많은 지식이 있으면 된다. 돈 있으면 된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 힘을 기울여서 사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을 받아 누리려고 이 구원을 알고 이 구원을 이루어 가려고 하는 사람은 사실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이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 노아 홍수 때도 겨우 여덟 사람만 이것을 알고 이 구원을 이루어가고 예수님 초림 때도 이 구원을 누린 사람이 그저 몇 사람 이렇게 손가락에 꼽아질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사람으로 이렇게 돼 있다. 말이요.
이제 마지막 말세지 말에도 그렇다고 했으니까. 이때도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사람은 참 적다 그것은 믿지 안 해서 그렀습니다. 믿지 안 해서 이것을 듣지 못하고 이걸 알지 못하고 이걸 믿고 순종 하지 아니하니까 이런 구원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 가서는 이 구원을 이루는 사람과 이루지 못한 사람 뭐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이랬으니까. 사람은 괭장한 구원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게 기억납니다.
현신애 권사님이 그분이 이 죽었다가 살아나서 하늘나라가 가 봐서 하나님에게 물어봤어요. 그 큰 교회를 하는 사람이 구원을 얼마나 참 잘 이었겠다고 물어볼 때는 하나님은 어떤 분은 나 모르겠다. 쪼끔 안다 이렇게 말하더라고 정말로 기가 차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것 가지고 구원이 됐다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사소한 현실 현실에서 자기가 주님이 나를 데리러 오셨거든요.
어떻게 데려오시냐 영감으로 진리로 내게 데리러 오셔서 나를 죄 없는 자로 살게 하려고 의로운 자로 살게 하려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이런 내가 되도록 하려고 이렇게 데리러 오셨단 말이야. 이러니까 나는 그 속에서 사는 속에 그 살 수 있는 실력을 길러가려고 애를 써 가야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제 주님이 길이라고 했으니까.
예수로 사는 것이 내가 걸어갈 걸음이라 요것을 느껴서 주님이 완성해 놓은 이 처소에 내가 살도록 했다. 이 처소에 가서 사니까 모든 피조물이 다 환영하고 좋아하는 참 이런 천국의 세계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사는 이런 우리가 되어져 갑시다.
 통성으로 기도 하시다가 자유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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