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3월16일 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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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로마서1장17절
223031640(로마서 1장 17절)
제목: 하나님의 의
본문: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님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의가 나타났다 하는 이 복음은 신구약 성경을 두고 복음이라 말합니다. 신구약 성경 안에는 성경에 감화 감동의 역사가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그 안에 성령의 감화 감동의 역사가 있는 이것을 왜 복된 소리라 이렇게 말하느냐 이것을 복음이라 하는 것은 이 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어서 복음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는데,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에서부터 모든 것을 우리 위해서 다 내놓으시고 사람 되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주었심므로 우리를 대신해서 당신이 형벌을 받으시므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가 행하지 못한 이것을 대신해서 당신이 완전히 죽기까지 종처럼 복종하여 칭의를 이루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이것을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이 버림을 받아도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고 하나 되어 사심으로 말미암아 화목의 새 생명을 완성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죽으심으로 대속하신 이 세 가지요 이 대속을 완성해서 아무리 대속을 완성해서 우리에게 입혀주었다 할지라도 이대로 살 수 없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이래서 주님이 죽으심의 대속으로 죄없는 자로 살게 하셨고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하나된 자로 이렇게 살게 해서도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이 은혜를 입어도 그 효력을 누리며 살 수가 없다. 하는 말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실술 죽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 대신 다시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으로 부활하셔서 영원히 사시는 것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대속입니다.  죽으심의 대속이나 부활하심의 대속은 같습니다. 주님이 죽으시므로 대속을 하신 이것은 일반적으로 다 인정하고 압니다.  부활하시므로 이 대속은 무엇인가 아직도 많은 교계에서 확정을 짓지 않고 있는 그런 교리입니다. 주님이 죽으시므로 이 대속을 입혀주었지마는 실제로 이 대속을 입은 자로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어떻게 살 수 있냐 우리가 그러면 살 수 있겠지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 대신 사신 것입니다.
우리를 대속했으면 하나님이 또 사람이 되실 이유가 없는데 하나님이 사람이 된다는 것은 피조물이 된다는 말이거든요. 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한없이 낮아지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조물이 되어서 영원히 이 피조물을 입고 사시는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하나님은 신성이 있고 인성이 따로 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성이신 하나님이시죠.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이신데, 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와서 인성으로 사시다가 죽으심으로 끝났으면 됐을 것인데 다시 또 인성을 입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영원히 계시는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과 진리를 우리에게 보내어 주어서 우리 안에 성령과 진리가 내주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이 대속의 은혜를 입혀서 죄없는 자가 되었다. 이제 의로운 자가 됐었다 이제 하나님과 하나되어 살 수 있는 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실제 이 생명이 생명이 우리 안에 와서 우리를 인도해 줄 수 있는 이것이 돼야 합니다. 사람은 능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피동적 존재입니다. 피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끌고 가는 요것이 있어야 된다. 말이야. 우리를 끌고 갈 수 있는 요것 그게 뭐냐 우리 안에 성령과 진리가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과 진리가 우리에게 와서 역사합니다.
그러면 이 성령과 진리가 우리를 인도하는 데에 여기에 피동되어 사는 이것이 우리가 실제로 죽으심의 대속을 입고 사는 이것을 누리며 사는 그런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에게 성령이 오시고 진리가 와서 자기를 인도할 때 우리는 이것을 무시하지 말고 영접하고 이 성령과 진리의 인도를 받아서 성령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 걸어가는 그런 우리가 되어서 가야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 수 있게 된 것은 주님이 우리 대신 부활하셔서 이제 사는 삶은 어떤 삶이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신령한 몸이 되어서 신령한 몸은 인성이지만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그런 몸이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그런 몸으로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죄가 없고 하나님과 꼭 같고, 하나님 따라 움직여지는 요 생명이 그 안에 있어서 끌고 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이런데 왜 다시 인성의 몸을 입고 부활을 하셨느냐 그것이 우리 대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부활하셔서 예수님이 이렇게 사심으로 말미암아 이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에게 성령과 진리가 와서 살 때 우리도 성령과 진리를 따라 살면 여기에서 우리는 영생이 이루어져 갑니다. 죽고 다시 부활해서 그때부터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생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면서 자기 안에 성령과 진리가 와서 역사할 때 성령과 진리로 인하여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은 자기 심신의 그 모든 기능이 영생이 되어지는 그때부터는 영원히 다시 말해서, 영원히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사는 자기 심신의 기능이 되어지고 이렇게 되어지면 심신의 껍데기는 심신의 껍데기는 그만 여기에 붙들려서 영생할 수 있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치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그저 세상에서 돈이나 많이 벌고 그저 이렇게 잘 먹고 살면 성공인 줄 알고 여기에 머무는 사람이 되지 않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좀 멀리 봐야 되죠. 영원을 보고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돼야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생할 수 있는 이 길이 예수님의 부활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살면 무엇하고 살까 뭣하고 살까 그저 이 세상에도 이렇게 이런 저런 직장에서 몇 년 살아도 그만 이제는 오랫동안 살고 했으니까. 그만 좀 쉬자 하고 이렇게 하는데 영원히 산다면 그 어떤 삶이 될까 그것이 우리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일을 하고 또 이들에게 은혜 베푸는 일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그 모든 충만한 은혜를 모든 피동물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돼야 합니다. 이래서 모든 피동으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안합니다.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과 똑같은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우리 성도입니다.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똑같은 역사가 나타나니까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인데 하나님에게 대우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영광을 사람을 두고 이렇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영원히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환영하고 좋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므로 이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은혜를 어떻게 입을 수가 있느냐 자 이것은 오늘 세상에 살면서 믿음으로 이 구원을 이루는 믿음으로 살아야 이 구원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오늘도 시험에 합격했다. 돈을 얼마나 벌었다 사람을 얼마나 차지했다. 어떤 지혜를 구비하게 될까 뭐 그런 것으로 다 성공으로 생각하고 살지만는 이 구원의 이치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날마다 자기가 성령과 진리로 사느냐 성령과 진리로 살지 못하느냐 여기에만 마옴에 관심이 있지 여기에 힘을 기울여서 다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은 우리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노력으로 이 군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런 구원은 하나님이 당신이 다 완성해 놓은 구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도 이런 구원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런 구원을 하나님이 완성해서 우리에게 공짜로 입혀주시는 이 구원을 완성할 때도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믿음으로 이 구원을 완성했습니다.  믿음으로 이 구원을 완성해서 이게 우리에게 입혀 주실 때에 우리는 구원을 공짜로 주시니까 교회만 오면 다 되겠지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지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우리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택한 사람이면 다 받지 않는가 택한 사람은 다 구원을 그냥 하나님이 공으로 주니까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입혀주시는데 아무리 택한 사람이라도 그 은혜를 공으로 주시는 것을 받을 때는 믿을 때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공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만은 그 구원 자체는 지극히 준귀한 구원이라서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것인데 공짜로 주시는데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교ㄱ회만 가면 되지 뭐 그래서 아주 기본적으로 믿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구원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었으니까. 내가 믿는다 그 주님을 내가 믿겠다. 그러니까 그것은 기본입니다.
기본이라  늘 안 믿던 사람도 그 사람이 마지막 죽을 때라도 이 택한 자는 그냥 뭐 구원 얻었겠지 아닙니다. 분명히 믿은 증거로 나타나는 것은 자기가 지금이라도 믿어야 천국 갑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갈 수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예수님이 우리 구원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걸 믿어야 됩니다. 마지막 숨 떨어지기 전에 급하니까 답답해서 고 말만 합니다.  그리고 믿으시소 그러니까 눈을 껌쩍껌쩍하면서 그래 믿겠다고 이렇게 하니까 그걸 보면서 그것은 자기가 믿는 거기에서 이게 오는 것이지. 택함 받았다고 해서 택함 받았서 우리는 택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그건 모릅는다 알 수가 없죠. 그 택함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반드시 곧 믿는 믿음이 고 사람에게서 한 번은 있단 말이요 한 번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택한 백성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한 번도 없다고 하면, 사람은 택한 백성이 안 되지요.
 우리는 그걸 가지고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이 사람이 택한 자가 아니면 아무리 말해도 예수는 믿지 않을 거고. 지옥을 갈 거 밖에 없는데 기가 찬다 이 말입니다. 넌 교회를 다녀야 되는데 안다니니까 예수 안 믿을 거야. 나 예수님 믿지요 그럼 왜 안 나오느냐 나중에 뭐 가지요 뭐 그래도 그것은 믿은 게 한번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구원은 받아서 하늘나라가 가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래 그거 한 번도 없이 아직 안 믿는 그 사람은 사람을 택한 자라고 할 수가 없지요 이 구원을 공으로 주시는데도 택함 받아 가지고. 이 구원을 받는 사람은 믿음을 통해서 받어요. 또 택한 자라도 택함을 받은 자라도 그가 건설구원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이 주시고다 하는 이 구원을 알고 누리는 데는 믿음을 통해서 그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보배로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기가 되었느냐 그런 보배로운 구원을 우리가 받았지만은 그것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자가 되는 데는 건설 구원이 이루어져 가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 수 있는 실력을 길러가야 그렇게 되는 거지 그 실력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구원을 누린다 말입니까? 안 되는 거죠.
그야 아무리 사람이지만은 어린아이 때부터 늑대가 길렀다고 하면, 그거는 사람 목소리를 잘 알아듣도 못하고 늑대소리만 내며 사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했으니까?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않았으니까. 이런 데 하늘나라에 가서 자기가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그 구원을 다 누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조그만한 것 하나 주면서 요런 현실 저런 현실을 주면서 여기서 하나님 말씀대로 네가 살아봐라 여기서 믿음으로 따라가라 하고 그 현실을 조성해 놓았단 말입니다. 내게 내 몸에 병이 드는 현실이 와도 실패가 되는 현실이 와도 성공이 되는 현실이 와도 출새하는 현실이 와도 거지가 되는 현실이 와도 어떤 현실이 와도 말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낙망할 것 아니고 거기에서 영감과 진리로 사는 연습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로 사는 연습만 해서 실력이 길러졌으면 성공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이 구원이 만들어졌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 믿음을 만드는 데는 알아야 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지요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또 설교 말씀을 잘 듣고 어쩐지 말씀을 잘 들어 깨달으려고 애를 써 가고 말씀을 읽고 듣고 잘 깨달아가면 거기에서 나도 요래 살아가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생겨지지 않습니까? 그만 설교하는 사람이 미우면 그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죠 그대로 살고 싶지 않죠 그러니까 자기가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까워지고 좋으면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지지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자꾸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지고 그렇게 살면 거기에서 영생하는 기능이 만들어집니다. 그 다시 말해서, 믿음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자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믿음을 만들어 가지고 자기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때 옛날 만들었던 믿음이 있으니까.  믿음을 거기에 써먹고 또 거기 써 먹고 저기에 써먹고 자꾸 믿음을 만들고 믿음을 써먹고 이렇게 하면 이 세상에서 큰 기적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서 예수 믿어서 큰 능력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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