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3월10일 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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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갈라디아서2장19-21절
23031050(갈라디아서 2장 19 -21절)
제목: 부활의 연합
본문: 갈라디아서 2장 19 -21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하나님이 정하시니 법이 있는데, 인생이 법을 어겨서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서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주었으므로 주님이 죽으셨지마는 우리 대신 죽으심이 됩니다. 주님이 죽으셨지마는 그것은 우리 죽으심이 우리가 죽은 것이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죽은 자긴 줄 알고 자기는 죽은 자로 사는 것이 우리의 걸어가야 할 걸음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로 사는 그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려고 그리스도로 살려고 이렇게 죽는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짓던 자기가 완전히 죽고 죽은 내 안에 이제 그리스도가 사는 이런 자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자기가 완전히 죽는 이 걸음을 걸으면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이 걸음을 걸어가게 됩니다.  다니엘은 죄 짓던 자기는 완전히 죽어버리고  죽은 자기니까 죄 짓든 자기는 하나도 자기에게서 움직일 수가 없지요 이러니까 그런 자기로 사니까 그 안에 예수로 사는 요것이 있으니까. 그를 죽일 수가 없지요 예수님으로 살았으니까.  영원히 사는 자기야 되지 사자굴에 들어갔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안 믿을 때와 같이 자기와 염려하는 것이나 소원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나 평가하는 것이나 비판하는 것이 그것이 죽지 않고 남아 있으면 우리가 이런저런 현실을 만날 때에 그것이 일어납니다. 자기 속에 죽은 그곳이 완전히 죽지 아니하고 있으면 나 지금은 위험하다 손해를 본다 이렇게 꾀를 써야 된다. 자기 속에 마구 그것이 일어납니다.
완전히 죽지 아니했으면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현실을 주실 때 자기에게서 나오는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온 생각이 아닌 자기로 인하여 나온 그 이성 비판이 그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내가 아직 다 죽지 않고 이렇게 있다. 네가 성질이 아직 살아있다.
네 뜻이 살아있고 네 기분이나 네 중심이 자기를 위한 그것이 죽지 않고 지금 살아있다. 이것을 죽여야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이것이기 때문에 자기 속에 죽여야 될 고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 요것을 보여주고 요것을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기기 때문에 죽은 자긴 줄 알고 죽은 자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희를 권면하시는 도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그 말은 자기가 살아있지마는 자기를 잡아서 재단 위에 재물로 올려놓은 것처럼 자기를 잡아서 재단 위에 올려놓았으니까. 잡아 죽인 고기가 무슨 움직임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이 내 심신을 아직 살아있지마는 잡아놓은 짐승처럼 이것은 주님의 소유요 주님의 것 되어서 이제는 재물이 되었으니까. 그전에는 짐승이 자기 마음대로 뛰어다녔지만은 잡아서 제단 위에 올려놓으면 풀도 못 먹고 다녀도 못하고 불에 구우면 굽히고 삶으면 삼키고 아무 말을 할 수 없고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몸뚱어리가 살아있지마는 잡아놓은 짐승처럼 하나님 마음대로 하고 짐승이 제 소욕대로 하나도 못하는 것처럼 너는 완전히 죽어야 내 속의 하나님이 자유자재로를 쓸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권면한다. 내가 산제사 드리는 이것은 산제사 드리라고 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참 내가 행복 되고 내가 성공되어지는 영원히 행복 되고 성공되는 그런 길이다. 그러기 때문에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 이것이 이치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의 죽으심에 우리가 연합해서 죽는 우리가 되고 주님의 부활의 연합해서 다시 사는 우리가 돼야 됩니다.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다시 사는 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들을 믿는 믿음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 하는 것은 나를 대신 죽으셨고 나를 대신해서 부활하신 이것을 확실히 인정하므로 요 사실을 인정하는 믿음 위에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내가 죽은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내 부활이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이 신인양성 일위로 사심 같이 나는 신인양성 일행으로 살 자기라 하는 요것을 믿는 자기가 되어서 이제 자기는 예수님의 소망으로 예수님의 이성 비판으로 예수님의 그 모든 은행 심사로 이렇게 사는 것이 자기의 생활이라 하는 것을 알고 주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서 주님 따라 동하고 정하는 자기가 되고 주님 없이 자기 단독으로 사는 요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산다는 말은 자기 주관대로 살지 않고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 여기에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자기가 이것은 지식적으로 가질 수 있고 이성 비판적으로 가질 수 있고 여기에서만 머무는 자기가 되지 않고 이제는 본능적으로 가지는 자기가 돼야 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심으로 다시 살아난 내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나는 내가 예수로 사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로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이 지식적으로 알고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성 비판적으로 알고 사는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아는 이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안다는 말은 자기가 자기를 주관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속에 딴 세력이 들어와서 자기 마음을 주관하고 정신을 주관하고 소원을 주관하고 감정을 주관해 가지고서 과거에는 내 속에 내가 주인이었는데. 내 속에 어떤 세력이 와가지고 주인 노릇 반응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쉽게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연습해야 됩니다. 그래서 경근 연습을 해라 이 하루종일 살면서 이렇게 연습하며 사는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이게 잘 안돼요. 그러나 우리가 하루 종일 이 경근 연습을 해 가면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자기에게 와서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본능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가 의식해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지 이렇게 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살려고 하는 요곳은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 사는 이것은 아직 안 된 것입니다. 자기가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찾아갈까 이렇게 생각하고 비판 평가해서 이렇게 사는 이것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자기가 바로 된 줄로 생각하지마는 아직 그것은 멀었다 이 말이야.
내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찾아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구나. 소원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사니까 그것은 내나 자기 속에 있는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지요. 그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은 자기가 찾는 그게 아니고 그만 자기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자기와 판단하는 것이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욕망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욕망하는 것과 같은 욕망이 자기에게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져서 사는 자기가 되는 요것을 말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연습을 먼저는 지식으로 연습해야 됩니다. 나는 죽은 자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께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라 그래서  내 이 성질도 이생각도 욕망도 다 죽여야  되겠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안에 하나님만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만 계시고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  사죄로 계시고 칭의로 계시고 화친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감으로 나오고 진리로 나온 것입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당신이 사시는 것은 자기 현실에서 진리로 사는 것이 되고, 영감으로 사는 것이 되고, 세 가지 대속으로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이 예수님이 이렇게 사신 예수님이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로 사는 것은 예수님은 신렁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와서 사는 이것이 내게 영감으로 알려주오. 내 마음에 내  양심해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내가 여기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구나 하고 걸어가는데 그것이 예수로 사는 것이 돼야 된단 말이요.  그것이 예수로 사는 것이 되려고 하냐면 예수로 사는 것은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지만은 내게 마음에 감동으로 왔고 왔는데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게 진리입니다. 그게 진리란 말은 신구약 성경으로 사는 자기란 말이죠. 이런데 자기가 여기서 요 말씀대로 사니까 그것이 내 마옴에 감동이 와서 내가 요 일을 요렇게 해야 되겠다. 요리해야요 깨끗해지고, 깨끗한 자기 삐뚤어짐 없이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다. 하고 자기가 사는데 그것이 자기 마음에 감동이 왔단 말이요. 감동이 와서 그렇게 살았는데 고기 성경을 떠나서나 성경에 나온 대로와 틀리거나 그렇지 않고 성경대로 삶이 됩니다.
이런데 그것이 돌아보면 결국의 죄를 완전히 멸하는 것이 되고, 죄 없는 것이 되고, 그것이 의로운 것이 되고,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하나님의 뜻과 꽃 같은 것이 되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고 계시는 요것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 되면 사람은 본능으로 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요것이 본능으로 사는 여기까지 이르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사는 것은 대번의 이것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수없이 연습해야 됩니다. 연습해야 돼요. 자기가 처음에는 무슨 일이든지 할 때에 자기 속에 이런 욕망이 올라오는데 욕망을 따라서 이런 욕심이 내가 뭐 내 마음대로 하나 그래도 가만  살펴보십시오.
내가 요 욕심을 따라 살았구나. 내가 이 성질을 따라서 살았구나. 내가 이런 감정을 따라 살았구나 자기가 무엇을 따라 살았는지 자꾸 자기의 살펴보란 말이요 이거는 죽여야 될 잔데 아직 안 죽고 살아있어서 그만 내가 성질을 냈는데 이 성질은 죽여야 될 죽어야 될 성질인데 아직 안 죽고 있다. 꺾어버려야 되겠다. 성질을 꺾어버립니다.  성질이 나오는 것을 꺾어버리고 욕망이 나오는 것을 꺾어버리고 자기 속에 진리가 깨달아진 것 영감으로 깨달아드린 것 그것을 잡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하루종일 그만 생각 없이 욕심나면 욕심나는 대로 이렇게 사는 자기 그냥 나오는 생각대로 그렇게만 사는 자기가 되지 말고 날마다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는 생활 하고 부활하시의 연합해서 사는 생활을 하는 이 걸음을 걸어 봅시다. 그러면은 자기 안에 예수가 사는 자기가 됩니다.
여기에서 영생이 이루어져 가는 것 입니다 자꾸 더 다른 말씀은 들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하루 종일 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고 부활의 연합해서 사는 생활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자기가 되어지도록 이 걸음만 되어지면 자기가 하는 일에 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아 이게 참 기적이다 자기가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기는 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걸음을 걸어가니까 그런 기적의 역사가 큰 능력의 역사가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걸 경험해야 됩니다. 그 요걸 경험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로 살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까지 자꾸 만들어 가야 돼요. 자기에게 나오는 생각을 죽이고 감정을 죽이고 욕망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움직여 가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자기가 되도록 이렇게 연습해 봅시다 얼마든지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여기에서 영생의 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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