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4월19일 금야 은혜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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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53(요한 계시록 3장 1-6절)
제목: 은혜 받는 것
본문: 요한 계시록 3장 1-6절
 사대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 하기를 하나님의 일곱명과 일곱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내 행위를 아노니 내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내 행위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내게 임할는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대의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내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하고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다 받았지만 이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해서 다 정죄와 사망 아래 죽은 것입니다 일반 은총이라 하면 하나님이 공기도 주시고 물도 주시고  이 세상에 이런 좋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서 공으로 주신 이것은 다 우리가 받아 가졌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짐으로 다 정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은혜는 완전과 영생과 불변에 속한 것을 이루는 구원인 것입니다.
 완전과 영생과 불변에 속한  이 구원은 은혜로 받아 이루어지는 구원이요 은혜로 받지 아니하면  이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첫째 아담에게 속하고  이 세상에 속한 것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때에 속함을 받게 됩니다 정죄와 사망 아래 있는  이 세상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에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오는 은혜를 받을 때 우리는 속량함을 받게 되고 속량함을 받으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더러운 것이 깨끗한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속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를 가지고 다시 나는  이 구원을 받았다 하는 것을 알고 받은 구원으로 사는 자기가 될 때 죽은 것이 죽지 않을 것이 되고 더러운 것이 깨끗한 것으로 살게 됩니다. 이렇게 되려고 하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때 아담에게 속한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세상을 떠나면서 그것도 다 죽어 버리고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이다 은혜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은혜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은혜를 입으면 죽은 것이 살아나게 되고 또 우리는  이 은혜를 입으면 영원한 것을 우리가 받아서 내 것 삼는 이 결실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으면 멸망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주님 앞에 예배 드리려고 모인 것도 은혜를 받으려고 모인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는 어떤 것이 은혜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은혜라 말은 대가 없이 공짜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은혜 중에 첫째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깨달음을 받는 그것이 은혜입니다 자기가 혼자 신구약 성경을 읽든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가르쳐 줌을 받든지 거기에서 깨달음이 없으면 은혜를 못 받은 것입니다. 아무리 유식한 사람이 되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들을 때에 깨달음이 있는 그것이 첫째 은혜입니다. 첫째 깨달음은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참된 이치인 것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 이치에 대해서 어떤 것이 깨달음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이런 교수가 학자가 박사가 정치가가 철학자가 이런 문화가가 말하는 그런 많은 말들이 있지만은 그런 말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은 무한히 탁월하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지극히 크신 말씀인 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초보적인 깨달음 입니다.
 세상에 나온 수많은 책들은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끊어져서 아무 책임 없이 그저 자기 생각나는 대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말한 그런 말들인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말도 타락 이전에 나온 말은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을 아담 앞에 갖다 놓고 이름을 지어라 할 때에 아담이 그 이름을 지은 것은 타락전 피조물인 아담의 말입니다. 피조물의 말이지만은 타락전 아담 하와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피동이 되어서 하나님의 것 되어서 한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은 권위가 있고 온전해서 하나님이 보시고 평가하시기를 잘 됐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담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많은 말을 했지만은 그 말은 그런 가치나 권위가 없는 죽은 말입니다 그 후 많은 인생들이 악령의 유혹을 받아 악령이 주권 한 그 사람이 말한 그 말로 나타난 지식들입니다.
 그러나  이 신구약 성경은 구속받은 사람이 영감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공로를 입어 저에게 역사는 영감 역사로 나타난 말씀이 있으니 이것은 신구약 성경의 지식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 구속을 입고 영감을 통하여 나타나지 아니한 그 지식은 다 뱀에게서 나온 악령에게서 나온 지식 입니다. 악령에게서 나온 그 지식도 분류하면 물질에 대한 물리적 지식이 있고 사람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물리 지식은 바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1 더하기 1은 2다 하는 그런 지식입니다.
  이 과학의 그런 지식은 바로 되어 있어도 그것만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사람과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이 모든 물질을 과학의 지식을 가지고 사람이 이렇게 사용하고 저렇게 사용하고 이렇게 하는 데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사람에 대한 지식은 전적 삐뚤어져 있으니 물리에 대한 지식은 물리 지식은 바로 되어 있지만 물리와 인간과의 그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말로 되는 그것은 반 거짓말이 됩니다.
 물리 지식이 맞으니까 이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은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 지식이 삐뚤어져서 그 지식은 결국에 반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어떤 지식인고 하면 하나님의 지식이 나타나서니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진리가 명령대로 시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나타나서 물질계란 우주를 만들었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시공자는 진리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리가 창조하고 도전하고 관리하는  이 역사를 하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말씀은 1차 창조로 만들어 놓은 것이 1차 창조로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고 사람을 창조해서 우리 사람이 하나님에게 완전히 피동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도록 이렇게 만든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인데 인생이 변질되고 타락되어서 이것이 실패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이것을 이제 2차 창조로 이제는 영원히 변동되지 아니할 완전을 영원을 창조하는 것이 2차 창조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서 1차 창조의 역사를 하시고 다시 신구약 성경에 있는  이 말씀 2차 창조로 나타난  이 말씀이 이제 영원히  변동되지 아니할 이차 창조를 완성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복음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자체가 진리요.  이 성경 말씀이 진리요.  이 말씀 안에는 영감이 내재해 있습니다.
  이 영감과 진리는 일차적으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한 그 진리와 같은 능력을 가진 가진 진리인데 새로 창조하는 2차 창조로 창조하는 이것은 영원히 변동되지 아니할 완전의 것 영원불변의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 나타난 진리요 또 성령님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 공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2차 창조의 역사인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계약의 말씀은 천지는 변할지라도  이 말씀은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이 말씀 이 말씀에 같이 차이가 얼마나 크냐  이 말씀에 역사 차이가 얼마나 크냐 하는 것을 두고 이 우주가 없어져도  이 말씀은 한 말씀도 없어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2차 창조는 1차 창조의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그런 완전성의 가치의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든지 듣던지 할 때에 자기에게 깨달음이 와야 합니다. 아 내가  이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이구나.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준 말씀이구나. 이런 것이 자기에게 없으면 은혜를 못 받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신구약 성경을 통달하고 외우고 많은 사람들에게 능하게 확실히 이해하도록 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지고 한다고 해도 깨달음이 없으면 스스로 속는 사람이지 은혜를 못 받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내가 귀신 또 많이 쫓아내고 병도 많이 낫게 했고 이적과 기사도 많이 행했고 많은 선지자 노릇을 했지 않습니까 하고 주님 앞에 말을 할 때 주님은  이 불법을 행하는 자야 그렇게 행함에 대해서 딱 지적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신학자 노릇하고 부흥사 노릇하고 목회자 노릇을 해서 설교도 많이 하고 전도를 많이 했다 할지라도 너는 불법을 행한 자라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가라고 주님이 그때 밝히 이렇게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말씀하시기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간다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법을 말했고 그다음은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이렇게 행함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깨달음이 있어야 되겠고 자기에게 깨달음이 있는 그 깨달음을 잡고 깨달은 대로 살면 자기에게는 2차 창조의 구원 완전 영원 불변의 것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세상에 이렇게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줄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는 영원히 어떤 자로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2차 창조의 역사로  이 큰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지금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힘입을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어서 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데에  이 구원을 구별해 볼 수 있었어야 합니다.  이 구원은 우리가 받는 구원은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본 구원은 우리의 영이 얻는 구원이요 우리의 심신의 형체가 얻는 구원입니다. 건설 구원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얻는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고  이 기능 구원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서  이 기능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기능구원이라는 것은 마음에 생각이나 감정이나 느낌이나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의 기능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새로 깨달아져서 아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 참 보배로운 구원을 이루어가는 그런 길이로구나 이렇게 느껴져서 이제부터는 내가  이 도로 살리겠습니다. 이길 걷겠습니다. 이런 마음에 각오와 작정을 가지고 살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계속 공로로 말미암아 2차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서 자기 속에 완전 영원불변이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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