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2월9일 금야 심판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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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53(마태복음 24장 37-44절)
제목:심판 준비
본문:마태복음 24장 37-44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에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의 두 사람이 밭에 있음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나 모든 교회들이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어떤 걸음을 걸어가야 하느냐 하는 그런 시비와 변론의 이 전투가 끊칠 수가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복을 받고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게 되고 실패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다 여기에 그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구원을 얻는다 그렇게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투는 혈육의 싸움이 아니고 논리의 전투입니다. 또 그 안에 내적으로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 믿음의 전투요 또 우리가 확실히 인정하고 그대로 살려고 할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는 믿지 못하게 하는 그런 많은 방해의 역사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믿는 사람도 교회들도 어떻게 살아야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느냐 복을 받을 수 있느냐 우리 신앙걸음을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두고 다 자기대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외부적으로는 논리의 전투입니다.
논리에 맞게 주장을 하느냐 논리는 잘못된 논리인가 이 전투요 또 자기가 옳은 논리를 가지고 있었으면 자기 속에는 참 내가 그 논리를 믿고 사느냐 자기가 그 논리를 확신할려고 할 때에 또 자기 속에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하나님을 숨긴다고 해도 그렇게 섬기면 안 된다. 하는 그런 마찰이 우리 속에 생겨집니다.
또 논리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고 주님 따라 움직일려고 하면 그렇게 살지 말아라 세상에는 수많은 철학가도 도덕가도 사상가도 권세자도 있으니 이런 자를 따라 움직여야지 어떻게 예수님이 시키는 그대로 움직여서 성공하는 길이라고 하지만은 그것은 틀렸다 하는 그런 많은 전투 속에 사는 마찰 속에 사는 그런 우리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데 이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세상이 우리를 이렇게 대적하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사드락도 메삭도 아벤느고도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 복종해야 된다. 하는데 그렇게 절대 복종하면 어리석은 것이라고 복종하지 못하게 많은 미혹하는 미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요 주권개별 섭리자시라는 것을 믿을라고 하는데 왕이 주권자지 이 권세자가 주권자지 하나님이 무슨 주권이 있느냐 믿지 마라하나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그것은 어리석은 길이다. 내가 믿으면 속는다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에게 주권이 있고 왕에게 주권이 있다.
사자에게 주권이 있지 정권자에게 주권이 있지 하나님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마찰되는 속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요 주권자다 주권 개별 섭리자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어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가면 하나님이 집권 개별 섭리로 역사하시는 역사를 확실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믿고 순종하려고 하는 여기에는 많은 마찰과 그런 마찰의 전투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주제이신 주님이 심판을 베풀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 심판을 통과하느냐 통과되지 못하느냐 하는 이것이 우리의 전투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주님이 심판을 할려고 심판을 열어놓고 있는데, 이 심판에 통과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려고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는 우리를 붙들고 역사합니다.
또 우리도 예수 믿는 것이 주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을 힘입어 이 능력으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고 이 심판에 걸리지 않으려고 걸어가고 있는 오늘 우리의 사는 세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전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 이 사람이 사장이 대통령이 주권이 있다. 이 물질의 주권이 있다. 하나님이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은 창조주요 주권자니까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을 것인가? 돈을 배경으로 삼을 것인가? 사람을 배경으로 삼을 것인가?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 되어 있고 하나님은 우리 배경이 되어지고 싶고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 되어서 역사해 주시기를 당신이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 되어지고 우리를 위해서 역사해 주고 싶지만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법칙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지마는 아무리 구원하려고 해도 당신이 세우신 법도를 벗어나서 우리를 구원하기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가 제일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왜 구원하기가 어려운고 아니 우리는 유한한 자유를 받았지마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을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오 상속자가 자유성이 없으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한은 자유지만은 우리에게 자유성을 주어서 우리가 믿을 수도 있고 배반할 수도 있고 실행할 수도 있고 실행하지 않을 수 있는 이 자유성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런 자유성을 우리가 가지고 자기가 참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믿고 이 법도를 지켜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 법도를 지켜 살지 아니하면 구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강제로 이 법도를 지키게 만든다고 하면 얼마든지 법도를 지킬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지마는 그렇게 하면 자유성이 꺾어져 버리기 때문에 법도를 지키는 것은 되지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유성 있는 자유성을 가지고 순종할 수 있는 그런 우리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구원이 도리어 실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성도 살리고 법도에 맞추어 살도록 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종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자율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도록 할려고 하니까 달래고 권면하고 또 가르쳐주고 이렇게 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쳐주고 법도대로 지키자고 우리를 자꾸 달래고 알리고 해서 자유성을 가지고 자기의 자유로 이 말씀을 이 법도를 지켜서 하는 것이 옳다 이게 참 바른 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이 길 가겠다. 하고 이렇게 걸어가야 이 법도에 맞추어 살아야 그 사람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자를 높이 올릴 수 있고 부강하게 할 수 있고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엿새 동안에 영물계를 다 창조하신 창조주요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에 있게 하셨고 또 있는 것을 당장 없앨 수도 있는 그런 전지전능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올릴려고 하면 당장에 올릴 수 있고 부강하게 하는 것도 당장에 부강하게 할 수 있고 우리를 당장에 존중하게 할 수도 있고 당장에 할 수 있지마는 당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법도가 있기 때문에 이 법도에 꺼리껴서 당신이 못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자유성을 주어서 우리를 온전케 만들려고 하는 데에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관계를 맺는 이것이 강제로 우리가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유기적 관계로 자유 의사로 하나는 창조주요 주권자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맡기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그것이 옳은 길이라 이 길로 사는 것이 진리로 사는 길이라 하는 것이 느껴져서 이대로 살 때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 축복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자유 의사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그런 우리가 될 때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법규를 가지고 강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성을 가지고 우리가 볼 때 법도대로 사는 것이 옳다 내 현실의 수많은 이치와 수많은 길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마는 이런 도덕에 맞추어 살고 철학에 맞추어 살고 정치에 맞추어서 살아야 된다고 하지만은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요 주권자요 완전 자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도대로 지키는 것이 옳다 하여 이 법도를 지켜 나가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 되어지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 되어질 수 있는 이것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이 법도대로 살 때에 하나님이 배경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 되기 전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으로 우리의 영을 살리지마는 우리를 중생시킨 이후에는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강제하지를 못합니다.
중생시킨 이후에는 성령이 우리 영으로 드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고 그렇게 로마스 8장 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니까 이렇게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 성령이 영으로 더불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우리의 마음과 몸에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과 몸은 성령과 중생된 영이 우리에게 증거하여 주는 이 증거를 듣고 옳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라 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난 자라 이러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자라 하나님이 알려주는 이대로 걸어가야 할 내라 이것이 확실히 옳다고 인정이 되어서 이대로 살 때는 우리 할 일은 다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하실 것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기적과 축복으로 역사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 되어 주시되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 되어 주시면 누가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배경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약자입니다. 성경에 배우기를 우리는 주먹으로 악으로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써고 있는 그런 모든 전법을 우리의 힘으로 쓰지 못합니다. 못 쓰는 것은 지극히 존귀하신 절대자인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배경에 힘입지 못한다고 하면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참는 것도 죽음의 길을 북북 걸어가는 것도 십자가의 미련한 길을 걸어가는 것도 세상이 보기에는 참 미련한 길이지만은 절대자 주권자 전능자 이 분의 능력을 힘입으면 이 능력을 힘 입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구원얻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고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우리들인데 하나님의 배경을 힘 입는 길은 당신이 선포하신 신구약 계약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도 이 법들을 어길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의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말로 주권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은 당신도 그 법을 정해놓고, 법도가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이 선포한 계약을 어길 수 없는 분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법도지만은 그 법들을 다 지켜서 당신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인데 우리가 법도를 어기면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줄 수 있는 길은 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당신이 세운 계시의 도 선포하신 계시의 도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배경이 되어야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마음의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자기 양심에 하나도 자책할 것이 없이 다 행해도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오 완전하신 분이요. 영감의 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 앞에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안심하고 담력을 가지지 못하고 두려워 뜬다고 한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지만은 내가 전지자 앞에 설 때에 혹 어떻게 될까 두려워 내가 삐뚤어진 것을 찾아 고칠려고 이렇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두 사람이 같이 밭에 일을 하고 있지마는 한 사람은 그저 밭에서 농사지어 수입 얻으려고만 하고 또 한 사람은 여기에서 밭에서 수입을 얻어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니 심판에 걸리지 않도록 일을 해야 되겠다. 하고 여기에 맞춰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이 다 옹호한다고 해도 이 말씀이 정죄하면 헛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성을 믿고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정확무오한 말씀인 줄 알고 이 말씀을 지키는 이 말씀을 믿고 사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증거하는 데도 인기 얻기 위해서 증가할 수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바른 증거는 성경대로 증거해야 거기에 기적과 축복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대로 증거해야 되겠고 또 성경대로 증거하는 그것이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배경되어질 수 있는 이것이 되어야 하고 이대로 전할 때에 기적과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야 됩니다. 이러므로 말씀을 증거하는 데도 이것을 하나도 생각지 않고 증거한다고 하면 이로 인하여 올 심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그냥 사람만 보고 사람 기분에 맞추고 인기나 끌기 위해서 하는 그런 말씀을 증거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는 모든 신앙걸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도 당신이 선포한 계약의 말씀을 완전히 지켜 순종해서 구원을 이룬 것을 알고 우리는 이 성경이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이 성경이 보증해 줄 수 있도록 이안의 진리가 보증하고 성령이 보증해 주는 그런 순종의 걸음이 되어져 가도록 이렇게 우리는 해야 데려감을 당할 수 있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심판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지혜 있는 그런 걸음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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