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월23일 화야 바른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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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323(사무엘상 7장 1-5절)
제목: 바른 지도자
본문: 사무엘상 7장 1-5절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빼앗기고 난 이후에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향하게 되어 졌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도 진리와 영감을 빼앗겼는데도 이렇게 진리와 영감을 빼앗긴 줄 모르고 자기는 아주 영적인 사람으로 아주 영감을 따라서 사는 사람으로 이렇게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구약시대 때는 이렇게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계시의 말씀은 오늘 신약 시대는 물질에게 물질로 인해서 영감도 진리도 가리워져 버렸고 정실로 인해서 가리워져 버렸고 문화로 인해서 과학으로 인해서 이 영감과 진리의 역사가 자기에게 가리워져서 그저 자기가 산다는 것은 세상 지식으로 이렇게 살고 과학에 맞추어 살고 세상 문화에 맞추어 살고 정실에 맞추어 살고 물질에 맞추어 사는 이런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기준을 이렇게 이 네 가지에 기준을 두고 네 가지에 붙들려서 움직여지고 네 가지로 인하여 사는 이런 우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도 그러하지만은 집사도 목사님도 다 이렇게 변해져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해져 있는 줄 모르고 있는 거예요.
다 경제에 붙들려서 물질에 붙들려서 동하고 정하고 있으면서도 안 그런 줄 알고 있다 이거요 . 정실에 붙들려서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자기 지역 사람을 싫어한다고 자기의 형제간을 가족을 뭐라고 한다고 그만 거기에 말을 한마디 했다가는 큰 사고가 납니다. 이것이 다 정실의 영감도 진리도 없어요. 영감도 진리도 없고 정실에만 맞추어서 삽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진리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됩니까? 안 됩니다. 아무리 진리대로 산다고 해도 정실 문제가 오면 진리를 버려버리는데 그 사람이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문화를 따라 살다가 보니까, 지금 문화가 이런데 지금 세상이 이런데 이렇게 성경 따라 사는 것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면서 무슨 영감을 따라 살고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든지 과학에 맞으면 옳다 좋다. 하고 과학에 맞지 않으면 다 부인하고 돌아가 버리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신앙의 사람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것은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려고 하면, 우리는 거기에 붙들리지 않해야 합니다. 또 사람들은 다 그렇게 되죠.
근심하고 걱정하고 고민이 되고, 고통을 당하고 절망을 느끼고 낙망을 하는 모든 것은 이 네 가지 문제로 인해서 생겨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믿고 하나님이 선포하신 계약대로 순종을 해야 됩니다. 과학에 맞느냐 안 맞느냐 그것 따라가서는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보면은 과학에 맞지는 아니합니다. 또 시대에 따라 살아서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동이 되어져도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도 전도하는 방법도 그래요.
요사이 사람들은 전부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사탕 나눠주고 화장지 나눠주고 호떡 굽어 가지고 주고 뭐 풀빵 꿉어주고 그래 하니까 사람들이 그거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모여드니까 안 그러면 사람도 모여들지 않는데 뭘 어떻게 전도합니까? 그거라도 있어야 사람이 모여들고 사람이 모여들 때 전도하지 않습니까?
하고 이렇게 하지만 성경적 전도 방법은 과거 조선 시대는 남자가 여자한테 그냥 가서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전도를 어떻게 하겠소 그래도 전도할 때 지나가면서 밭에서 일하는 거 보고 예수 믿었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지나갔는데 그 사람이 몇 년 뒤에 가보니까, 거기에 교회가 세워졌더라 그 사람이 예수 믿게 되어졌더라 실제로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택해야 하고 하나님이 불러주셔야 그가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보고 주님이 전해라 했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입니다. 전도하라는 것이 그래서 전해라 했으니까. 우리는 그가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예수님의 구주라는 것을 전하는 것만 우리 할 일입니다. 믿고와 믿고는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그럴 때 영감이 가서 역사하고 진리가 가서 역사함으로 구원할 수 있는 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지금은 이렇게 네 가지로 인해서 사람들이 다 근심 걱정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인생인데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데는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해결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말씀대로 법궤를 빼앗겨 가지고 여호와에 대해서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 찰 때 하나님이 이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 인도가 여기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은 법궤를 빼앗기고 난 다음에는 그 일반 국민이 다 똑같이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다 일어나느냐 아닙니다. 다 일어난 게 아닙니다. 이제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져 가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퍼져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여호와를 사모하는 그것이 가득 차 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때까지가 20년이 걸렸는 걸린 것입니다. 20년이 걸려서 20년이 지나가고 나니까 하나님의 사무엘를 보내주셨습니다.
사무엘이 너희가 참 하나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과 아스다롯을 제해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그것이 가득 찰 때 그것이 가득 찰 때 바른 지도자를 보내주셔서 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바른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바른 지도다가 하나님이 바른 지도자를 양육하고 길로 온 이것이 이제 때가 될 때에 바로 바른 지도자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셔야 됩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에게는 지도자가 없느냐 지도자가 있지만 바른 지도자는 아닙니다. 이러니까 지도자 바로 만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지도자를 만나려고 할 때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여기에서 사무엘를 보내준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내가 구원를 받았다. 내가 이 구원을 바로 이루어 가야 되겠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주가 됐는데 이게 뭐냐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기를 소망하는 이것이 가득 차면 찰수록 거기에 영감의 역사가 더 커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 어떤 목회자가 바른 지도자냐 교인들을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런 얘기를 해요. 왜 목사님이 좋아서 따라갔습니까?
내가 아플 때 병원에 와서 위로해주고 돈도 한 푼 주고 뭐 이렇게 내 병낫기를 위해서 간절히 그렇게 기도해 주고 그런 목회자니까 고마워서 내가 그분 따라갑니다.
뭐 이거는 순전히 영감을 따라가고 영감을 만나고 영감 지도받는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교역자도 이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연습을 하려고 애를 써 가죠 그러니까 거기에는 영감 진리가 없는 그런 깊은 영감 바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그 길이 거기에 열려지지 않습니다.
과거에 이 영감을 만나려고 이 진리를 만나려고 영감과 진리에 인도를 받는 이런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지 않고 총공회 오면 좋겠다. 하고 들어오려고 했는데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랬어요.
왜 받아주지 않았느냐 그 사람은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권세 때문에 세상 이런 저런 것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들어왔다가는 곧바로 나갈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그만 여기 오지 말고 거기서 신앙생활 잘하고 그저 말씀을 배우고 싶으면 그때마다 와서 배우라고 그렇게만 했지 교단을 옮겨 여기에 속하라고 이렇게 하지를 않았다. 하는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참 바른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바른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 바른 지도자냐 바른 지도자는 죄를 지적해 두는 것이 바른 지도자입니다. 죄를 지적하는 것이 어찌 바른 지도자가 됩니까? 바른 지도자가 되는 것은 인생이 다 죄로 인해서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 인생인데 그 멸망당한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가지고. 요 죄를 회개해라 그러면 이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알려주는 그 지도자가 바른 지도자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리 위로하고  어떤 교육자는 병문안 가면 돈봉투 넣어가가지고 한 봉투 주고 위로해 주고 그리 하니까 우리 목사님 제일이다. 이러고 따라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목사님이 와서 돈봉투를 주고 가는 게 어딨노 그게 또 이상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또 아픈 때 왔으면 병문안 왔으면 위로나 해주고 병낫기를 기도나 해주고 그래야 할 것이지. 오면 이것 잘못했다. 이것 잘못했다 이것 고쳐라
듣기도 싫은 그런 소리를 한다고도 나는 여 안 있을랍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영감을 만나며 진리를 만나겠습니까? 그 사람이 자기 구원을 다 절단된 원수를 어떻게 멸하며 구원을 이루어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일생을 살아도 참 자기 구원은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위로해 주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그럴 때 돈봉투나 주는 것은 좋아합니다.
사람이 그런 어려움이 오고 그런 질병이 오고 사고가 나고 어려움이 올 그때는 보면 하나님이 그를 돌이키도록 하려고 삐뚤어진 걸음을 걷는 거기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온갖 축복이 다 올 것인데 돌이키게 할려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교역자는 돌이키게 하지 아니하고 더 삐뚤어지게 만드니까 하나님이 교역자에게 축복을 하겠습니까?
교인 도와주고 하나님에게 뺌맞고 그런 교역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소 회개시킬려고 하니까 회개 못하도록 딱 자꾸 갖다 막아버리는데 이러니까 죄를 찾아서 죄를 지적해 주는 요것이 바른 지도자입니다 우리는 죄를 벗으려고 예수 믿는 것이지. 다른 것 없습니다.
모든 질병이나 사고나 어려움이나 죽음은 다 죄로 인해서 왔기 때문에 원인되는 죄 문제를 죄를 지적하고 죄를 회개하도록 그 죄를 회개하면 그 사망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마귀에 의해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이냐 벗어나는 길은 우리에게 죄가 있는데, 죄는 다 사함받은 죄입니다.  사함 받은 죄인데 사함 받은 죄인 줄 모르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여전히 그 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죄가 네 속에 있는데, 그 죄는 사함받은 죄다 그러므로, 내가 사함 받은 줄 알고 그 죄로 인해서 낙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그 죄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사해준 죄라 주님의 사죄의 은혜에 감사를 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는 내가 되려고 애를 써라 자기가 그 죄를 지었던 자기를 자복하고 사함 받기를 하나님 앞에 간구해라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오 주님이 말씀했지 않으냐 주님 나는 참 믿음 없는 자입니다.
나는 참 이렇게 비뚤어졌던 자입니다. 이 죄를 사유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대속에 공로를 믿습니다.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고 이 죄에 거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rm 죄에서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죄 짓고 또 회개하고 죄 짓고 또 회개하고 그래도 됩니까? 아니요. 그것은 사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범죄라고 했어요. 그것은 회개할 때 고칠 때 사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죄든지 사함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사죄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이 은혜를 깨달아서 이 죄는 사함 받은 죄다 그걸 알고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연히 감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아 주님이 이것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구나 내가 이렇게 잘못되어서 이로 인해서 당신이 이렇게 곧 고난을 당하셨구나 이것을 깨달아 느끼는 사람은 우리를 대속하신 것이 일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우리를 대속해 주셨으니까.
이 은혜를 입은 자기인 것을 알고 여기에 참 감사하는 사람 이 은혜를 알고 여기에 감사하고 이제 다시는 죄 짓지 않는 사람이 될 때에 모든 사망에서 고통에서 실패해서 우리는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죄는 천하 모든 사람이 아는 그런 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죄 그 죄는 그렇게 자기를 해치는 독이 크지 않아요.
도둑질하지 말아라 하는 죄는 사람들이 다 알죠 다 압니다. 모든 사람이 모르는 자기만 아는 죄가 있습니다.
그 다른 사람은 그건 죄라고 취급하지도 안 하지요 그러나 자기는 내가 이것을 잘못했구나 그것을 깨닫게 되어질 때 그것을 자기에게 알려주는 영감 역사가 있을 때 그것이 자기에게 바른 지도자의 축복입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죄인 취급 안 하죠. 모든 사람이 아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모르는 자기만 아는 죄가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에게 알려주는 지도자가 바른 지도입니다 자기만이 아는 그 죄보다 자기가 모르는 죄가 더 해가 큽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그것이 죄인 줄을 몰랐어요.
이랬는데 자기가 말씀을 듣고 보니까, 내가 잘못했구나 이게 잘못이로구나 이것이 참 비뚤어진 것이로구나 지금까지 내가 그것이 비뚤어진 줄 모르고 그렇게 행했더니, 그로 인해서 온 이 해였구나 그로 인해서 온 고통이요. 실패요 어려움이었구나 질병이었구나 이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른 지도자입니다.
자기가 죄인 줄도 모르는데 자기도 모르는데 모르는 죄를 자기에게 알려주어서 이게 죄다 바로 이런 것이 내게 잘못이다. 너 죄라 그것을 목사님이 그걸 지적할라고 지적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데, 가만 듣고 있다가 보니까, 바른 지도자인 성령님이 자기에게 오셔서 너 속에 이것이 죄 아니냐 그게 죄입니까? 이런 죄가 내 속에 있었습니까?
이렇게 깨달아지게 됐단 말이오 사도 바울의 고민은 내가 양심의 가책이 되는 것은 다 회개해서 고쳤지마는 내가 나를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것이 없이 깨끗이 했기는 했지마는 하나님 앞에 설 때는 하나님은 전지자요 전능자인데 내가 모르는 그런 죄가 있을 수 있는데, 그걸 알려주십시오. 내가 죄인 줄 모르고 지나갔다가 해결받지 못하고 주님 앞에 설 때 내가 어떻게 될까?
그 걱정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그죄를 깨달아서 치료받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의 죄 자기도 모르는죄 그 죄까지 다 알고 그것을 고칠 수 있도록 사죄를 힘입을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모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모하느냐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분이 얼마나 했느냐 여기에 대해서 사모한 것만큼 자기에게 영감과 진리의 은혜가 와서 자기 속에 죄를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하나 깨닫고 둘 깨닫고 보니까, 나는 참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이런 죄인이라 하는 것이 느껴지니까 사도바울이 노경에 들어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입니다. 죄를 더 지어서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성자라고 보지만 자신이 자기를 볼 때 내가 알지 못했던 이 죄가 또 있었구나 이런 죄가 또 있었구나 그것을 발견하고 나니까 주여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입니다.
주님 이것을 사유하여 주옵소서 사함을 받고 이제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 죄에서도 해방시켜 주십니까 이런 죄에서도 해방시켜 주십니까 그런 감사와 기쁨으로 그 속에 충만하게 되어 사는 그런 삶을 산 것입니다.
이제 그 죄를 지적하고 난 다음에 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줘야 될 것 아닙니까 바른 지도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를 지적하고 그다음에는 미스바로 모이라 그랬어요. 이러니까 다 미스바로 모여서 회개 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미스바로 모이라 하니까 다 그 말에 순종해서 미스바로 모여들었습니다.
바른 지도자의 지도를 따라서 바른 지도자의 지도를 받아 미스바로 다 모여서 너희는 바알과 아스다롯를 회개해라 그것을 다 제해라 그것을 다 제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생기는 그런 그들이 되어지니까. 그대로 가만두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블레셋이 침공하여 왔습니다.
회개 운동한다고 그냥 두는 것이 아니고 회개 운동을 하면 우리를 다시 어둡게 우리를 다시 옛날로 돌아가도록 그런 우리를 죽이려고 오는 블레셋 군대가 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가면 하나님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주권 개별 섭리로 만나게 해 줍니다.
 그럴 때에 오늘 그 말씀을 전해 주더니 이 말씀을 어기도록  이 말씀을 버릴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이 환경이 찾아왔구나 그때에 낙제하지 않아야 됩니다. 그때 낙제하지 않아야 됩니다. 그것이 왔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서 사무엘에게 구했습니다. 자기들이 직접 싸우지 않았어요.
직접 싸우지 않고 사무엘에게 당신은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해서 우리를 치러오는 블레셋을 멸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했어요. 그러면 사무엘은 그들을 어떻게 멸했느냐 그들을 멸할 때는 어린 양을 구해다가 제물로 제단에 올려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나가서 싸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앞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이 앞서서 그래서 블레셋을 우뢰를 발해서 자기끼리 치고받고 해서 다 죽도록 만들었어요. 그러고 폐잔병밖에 없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가서 다 차지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귀한 도리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또 새벽에 다시 증거를 해 가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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