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2월1일 금야 이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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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153(마태복음 18장 21-35절)
제목: 이웃사랑
본문:마태복음 18장 21-35절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대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7번까지 하오리까 예수께서 갈아사대 내가 내게 이르노니 7번뿐 아니라 70번씩 7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개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개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데 종이 엎드려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빛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대 빚을 갚으라 하며 그 동간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다 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니가 빌기에 내가 이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부치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예 우리는 한없는 비참한 가운데에 빠져 있는 인생들입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어긴 값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므로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혜도 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저주가 우리에게 오게 되어서 이 진노와 저주가 영원히 계속하게 된 오늘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한없는 비참한 가운데에 빠져 있던 그런 우리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한 것을 묵인하고 용서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공하신 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당신이 정한 법을 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죽는다고 하나님이 법으로 정했으니까. 그 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죽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오 당신이 법을 세워 놓았으면 그 법대로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이 일로 인해서 영원히 진노와 멸망 가운데 빠져 살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긴 데서 우리를 구원해야 하는데 죄에서 구원하는 길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기 때문에 망하고 죽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사망을 대신 받으시는 대형이 있어야 우리가 이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우리를 위해서 대형하는 것이 없으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날 수 없는 이런 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없으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출생해서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체로서 우리 대신 영원한 사망을 당하시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 가운데서 구출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출하여 주셨지마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죄가 없다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되려고 하면, 의가 있어야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고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꼭 같은 이런 자로 세우시려고 하나님이 우리 대신 당신이 하나님의 지성법 지공법에 관계된 모든 행동을 대신 행하심으로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스 8장 1절 이하로 보면 율법에 우리는 완성할 수 없는 율법대로 살 수 없는 그런 우리인데 예수님이 사람되어 와서 율법의 요구를 다 만족 하게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완전 행함으로 완전히 행함으로 칭의를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함으로 받은 형이 무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행하신 의로운 일이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한 형을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하나가 되어서 감당함으로 영원히 무한히 그 형을 감당할 수 있게 됐고 우리 대신 죽기까지 복종하신 이것이 양성 일위로 순종하시므로 무한한 의를 완성하여 입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화친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이 살아있지마는 당신은 죽고 당신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똑같은 의로운 자기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이런 자기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이것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렇게 일으킨 것이 인성만이 순종해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체가 되어서 이 일을 이루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시키셨고 대신 순종하시므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대신 화친함으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무한히 완전 연결로 살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속성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사랑과 진실과 거룩과 의와 이것을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몸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된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마이크를 통해서 스피커로 소리가 나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식이 나오고 하나님의 지혜가 나오고 하나님의 거룩이 나오고 진실이 나오고 의가 나오고 주권이 나오고 진실이 나오고 사랑이 나오는 이런 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큰 사랑의 빛을 진 우리들이오 그러므로, 주님이 성만찬을 잡수실 때에 내살을 기념하고 내 피를 기념하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기념하란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잘못을 대신해서 형을 받으신 이것을 나타내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행하신 그것을 우리가 나타내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는 우리를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화친을 일으켜 이것을 나타내는 일을 하라고 하신 말씀이 기념하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본문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내가 몇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됩니까? 7번 하면 됩니까? 할때 예수님께서는 7번뿐만 아니라 70번을 7번이라도 할지니라 말씀한 것은 끝없이 용서하는 일을 해라 하는 말씀입니다.
용서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예를 들어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개하려든 회개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다 했습니다.
종과 임금과의 관계에서 빚을 진 것이 있는데,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주인에게 와서 일만 달란트 빚을 졌기 때문에 갚을 것이 없어서 갚지를 못하고 있는 종에게 내 몸도 내 처도 자식도 소유도 다 팔아서 일만 달란트를 갚으라 하니까 종이 엎드려 절하면서 내게 참으소서 내가 갚으리라고 사정할 때 주인이 불쌍히 여겨 일만 달란트 빚도 탄감해주고 그 종을 놔 보냈는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서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 하니까 그 동관이 빚을 갚을 길이 없소서 엎드려 간구하여 참아 주소서 내가 갚겠습니다.
할 때 허락치 않고 빚을 다 갚도록까지 옥에 가두었다 했습니다. 그것을 동관들이 보고 민망히 여겨 주인에게 그것을 고하니까 주인이 이 종을 불러다가 악한 종아 내가 빌기에 내 빛을 다 탕감해 줬는데 너는 어찌 동관을 불쌍히 내가 불쌍히 여긴같이 불쌍히 여겨서 빛을 탕감해 주지 않느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여 감옥에 갖춘 가둔 요 사실을 예를 들어서, 이렇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영원히 받아 영원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우리인데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이 사함을 받은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런 죄 사함을 받아서 이제 죄로 인하여 오는 해를 입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큰 사랑의 빛을 진 이런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이 너희는 내 살을 기념하고 내 피를 기념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기념한다는 것은 주님이 어떻게 사셨느냐 주님이 사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걸음을 걸어보는 것이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기 나도록 하기 위해서 대형함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했고 대형함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했고 대행함으로 영감과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고 화친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가 입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떤 걸음을 걸어야 하느냐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의를 입고 살 수 있는 자 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들어 주는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이 대속을 벗기지 않고 이 대속을 입혀 주시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대속을 입혀주지 아니하면 나는 이 대속을 실제로 입고 살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지 못하고 우리는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된다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죄로 인하여 고남 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사죄의 은혜를 입혀주고 항상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모든 사람에게 칭의의 은혜를 입혀주고 화친의 은혜를 힘 있게 해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렇게 빚을 탕감해 줄 수 있는 이 걸음을 우리는 걸어가야 합니다.
이 걸음이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사죄의 대속을 입을 수 있도록 자기와 관련된 이웃을 자기와 관련된 동료를 가족을 사죄의 은혜를 힘입을 수 있도록 이것을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사함을 받는 것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은 남들이 자기에게 잘못했으니까. 그것을 그만 묵인하고 없는 것으로 하지 아니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사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사해 주는 그런 이사야 1장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오 우리는 자기의 잘못을 하나도 모르는 데서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에게 온 모든 멸망한 하나님의 진노는 죄로 인해서 온 것이오 죄로 인해서 죄의 종되어 삶으로 당하는 모든 고난인 것을 알려주고 주님이 이 대속을 이 죄의 형을 우리 대신 형을 받으신 이것을 믿는 사람이 되어지면 우리의 죄를 다 사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형을 받아 이 죄를 사해 주신 것을 모르는 자에게 이것을 알려서 믿도록 만들면 요것을 믿는 자는 다 죄를 사함받는 자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이 죄냐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거짓말하지 않하고 남을 해치지 않았으니까. 죄를 짓지 않았다고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만일 믿는 사람 된 자도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죄냐 죄는 삐뚤어진 것이오 죄는 진리와 삐뚤어진 것이요. 영감과 삐뚤어진 것이오 주님과 삐뚤어진 것이 죄인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이 주님과 하나 되지 않고 삐뚤어졌는지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해 보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사망에서 벗어나는 그런 결실을 이루게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잘못을 범했서도 그 속에 고난 가운데만 있지 말고 내가 주님과 삐뚤어진 것이 무엇인지 진리와 삐뚤어진 것이 영감과 삐뚤어진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내가 이면이 삐뚤어졌는데 이 삐뚤어진 것 때문에 내게 이 형벌이 왔구나 이런 하나님의 진노가 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주님 참 나는 이런 삐뚤어진 자였습니다.
이 죄를 인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까? 이제 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사하여 준 죄를 알고 감사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되려고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가 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려서 사죄를 입게 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오 이런 사죄를 입혀 주지 아니한 것은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지만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죄를 입혀주고 칭의를 입혀주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칭의를 입혀 주는 것은 옳은 진리를 깨달아 알도록 알려주는 것입니다. 옳은 이치를 깨달아 알도록 알려주어서 그것을 믿고 주님이 우리 대신 행해서 완성한 의라는 것을 알려주고 요것을 믿고 요 의로 살려고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의로 살 수 있는 자기가 되어집니다.
또 우리는 주님이 우리 대신 죽으시므로 당신에게 있는 생각이나 주장이나 뜻이나 모든 것을 다 죽은 것처럼 역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당신 안에 신성이 주장하도록 신성이 주장하는 자기가 되어지니까.
하나님의 지식이 지혜가 거룩이 의가 진실이 주권이 사랑이 마음의 요소를 통해서 성질의 요소를 통해서 생각의 요소를 통해서 나오고 눈을 통해서 입을 통해서 행동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내 마음과 몸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므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우리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소자 하나에게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도 이 대속을 입고 대속으로 살도록 인도하는 이 걸음을 걸어가면은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오 형제에게 빛을 탕감해 주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을 할 때에 주님은 내가 진 내가 주님에게 진 빛이 다 탕감되어지는 주님이 완전히 이것을 탕감해 주셨지마는 실상적으로는 죄 있는 자유 탕감받지 못한 자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아 주님의 피와살을 기념하는 생활로 대속을 입혀 주는 이 걸음을 걸어갈 때에 자기가 이 대속을 더 입고 더 입으니까.
이전과 더 다르게 더 주님과 밀접한 자기가 되어서 이런 자기로 영생할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을 다 받아가지마는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입혀주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잘 못 느껴 이 대속의 실상을 입는 이 걸음이 바로 되지 않애서 자기는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진 자기가 되지 못하고 그만큼 하나님의 부요를 누릴 수 있는 자 되지 못하고 그만큼 모든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대속을 더 입고 누릴 수 있는 길은 기념 생활하는 것입니다. 기념 생활하는 것은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이 대속을 입고 살도록 인도하는 이 걸음을 걷는 데서 이 구원이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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