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11월17일 금야 신앙생활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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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753(이사야 34장 16-17절)
제목: 인생의 생의 법칙
본문:이사야 34장 16-17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로 줄을 띄어 땅을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들이 있습니다. 그 세상 지식을 가리켜서 이치가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법리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 그것을 다른 말로 방법이라 방편이라 말할 수 있겠고 또 그것을 과학이라 문화라 역사라 모든 통계라 그렇게들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어떤 것이든지 실존이 있으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으면 그것은 자연히 움직이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존재하는 그 존재가 움직이게 되겠고 움직임은 차츰차츰 수정이 되고, 계량이 되고, 숙달이 되어 나갑니다.
어떤 존재든지 존재가 존재할 때 보다 편리하게 움직이려고 하고 보다 실패 없이 움직이려고 하고 보다 생명과 평강과 온전을 향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모든 존재하는 존재에 욕심과 생애 본능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가 이런 움직임이 있고 그 움직임은 점점 개량이 되어 가고 점점 숙달이 되어 가고 이렇게 되어 가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벌레도 있고 이런 곤충도 있고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고 무생물도 있고 또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존재하는 그 존재마다 생애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따라서 차차 연습하고 연승해서 숙달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움직여지지 않는 존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말없는 하나의 화초도 이런 초목도 그냥 여기에 심겨지니까 여기 있고 저기 심겨지니까 여기에 그냥 있는 줄 알아도 그 식물도 그 자체의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무생물도 그러합니다. 곤충도 그러하고 동물도 그러하고 동물도 그러하고 사람도 그러합니다.
존재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느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살아갈 수 있느냐 무엇이든지 존재가 있으면 사는 것과 또 보존되어지는 것이 법칙이 필연적으로 있고 본능적으로 그 이치에 딱 들어맞게 그렇게 움직이려고 모든 존재는 그렇게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작으면 작은 것대로 크면 큰 것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이 존재의 법칙은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의 그 법칙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떤 존재든지 각각 존재에 법칙 보존의 법리가 생애 법리가 다 있습니다. 만물이 다 그러하지만 사람은 그보다 더욱 그러합니다.
사람이 혼자 살아도 그 자체가 사는 법리가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더 편리하고 더 잘 되어지고 더 자라갈 수 있는 그런 법리가 있느냐 그걸 찾아서 개량이 되고, 또 숙달이 되고 그러합니다.  사람이 한 사람 있는 것보다 둘이 있으면 더 할 것이고.
여러 사람이 있으면 더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잘 살 수 있을까? 평안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커질 수 있을까? 오랫동안 보존되어질 수 있을까? 그것을 찾아서 연구하고 개량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숙달되어져 갑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정치라 말합니다.  가정도 자기 가정이 잘 되려고 하면, 가정 정치가 있고 사회가 살기 좋고 평안하고 부유한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하려고 하면, 사회 정치가 있고 민족이 잘 살려고 하면, 민족 정치가 있고 국가 정치가 있고 회사 정치도 있고 하나의 단체 정치도 있습니다. 살인강도들도 저희 가운데는 정치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데는 각각 그 생애 법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느냐 그 보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법이 있습니다. 법이 없는 것은 하난도 없습니다. 크면 클수록 많고 많을수록 거기에 대해서는 더더욱 세밀한 것입니다.
이런 것인데 우리 사람들이 마귀에게 이끌려서 깜깜해져서 어두워져 있습니다. 요사이 대만이 우리나라를 앞질러서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어졌습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정당이 정치를 함으로써 대만이 이렇게 앞질러 가게 됐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중국 공산주의를 더 좋아하는 그런 국민들로서 표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 하고 있어요. 이해하기가 어려운 거죠. 어느 때에 잘 살 수 있었는데, 지금 우리나라도 그러합니다.
앞에 정권과 지금 정권이 어떠냐 그래 그걸 보고 바로 이 지지율이나 이것이 차이가 나야 될 것인데 그렇지 않고 지지율이 영 달라지고 있다. 이거죠.
왜 그럴까 모든 생물 식물이나 동물이나 곤충들은 다 그가 존재하고 존재하는 법칙이 있고 성장되어지는 법칙이 있는데, 점점 존재의 법칙과 성장의 법칙이 개량되고 숙달되어져 가고 그것을 잊지 아니하고 빼앗기지 않고 그법칙을 따라 사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은 거야.
이 사람들이 왜 그러냐 사람들은 세계의 대학자라 하면 모든 사람이 저 사람은 지성인이니까. 그가 말하는 것은 다 옳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그가 길다 둥글다 네모다 많다 적다 이것은 움직인다 안 움직인다 이렇게 학자가 말을 해 놓으면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냥 쭉 따라갈려고 애를 써 갑니다.
 학자들이 모든 존재가 어떻게 생겨졌느냐 하는 데 대해서 바로 알고 설명하는가? 해도 세상의 이 모든 존재는 자연이 생겨졌다 저절로 생겼던다 이렇게 말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온 세상에 이 모든 것은 자연히 생겨졌다  저절로 생겨 졌다. 이것을 완전히 믿고 사는 이런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인간은 서로 속이고 죽이는 역할만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것뿐이지 칭찬받을 것은 하난도 없습니다. 그러면 지식 중에 제일 큰 지식이 무슨 지식이냐 인간의 학문을 다 아는 사람이 큰 지식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창조주가 있다.
이 모든 존재를 만드신 창조주가 있는데, 그러면 창조주는 어디서 생겼느냐 창조주는 영원전 자존하신 분이요. 완전한 분이다 그분은 홀로 계셨다 그분은 자존하신 분이라고 당신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말씀을 했습니다. 그분으로 인해서 모든 존재는 지음받은 것들이라 하는 이것을 아는 것이 모든 창조주를 부인하는 그 지식을 다 발아래 밟는 이 지식이 됩니다.
창조주를 부인하는 지식은 결국에 지식대로 걸어갈 때 유황불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서 다 태워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주가 계신다고 하면, 모든 지음받은 존재는 어떤 존재냐 어떻게 해서 이렇게 존재하게 됐고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인간 철학입니다.
철학이라 하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서 보이지 않는 모르는 그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모든 존재는 창조주가 있고 이 창조주로 인하여 지음받은 것이라면 이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사이의 관계가 어떠하냐? 만일 이것을 찾아 알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참 가치 있는 사색이오 궁구요. 욕망이겠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창조주가 모든 것을 창조하고 지음받은 것을 관리하고 양육하고 계시고 먹이고 살리고 기르고 있다. 하는 이것을 아는 것이 큰 지식입니다. 산 지식입니다.
창조주가 보존하고 관리하고 양육한다고 하면, 모든 존재에게 창조주가 주신 법칙이 다 있고 그 개별개별 마다 사는 법칙을 창조주가 주셨고 그 사는 법칙도 주었고 점점 성장하고 번식되는 법칙도 주었고 망하고 죽고 없어지고 썩어지고 멸망하는 법칙도 주었고 생명으로 성장해 가는 이 법칙도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 된 우리는 창조주가 주는 사는 법칙도 거처하는 법칙도 성장하고 번식하는 법칙도 망하고 죽고 썩어지고 죽는 이런 법칙이 있으니 이 법칙을 아는 것이 큰 지식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있지만 그 많은 책이 있어도 이런 법칙이 있다. 저런 법칙이 있다.
아무리 그 법칙을 알아도 그것만으로는 전부 썩는 것이오 죽는 것이오 죽이는 것이오 속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이렇게 하면 산다 커진다 확대된다.
온갖 방법을 말하지마는 그 법칙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 10년 가느냐 100년 가느냐 1000년 가느냐 영원히 계속되는가 하나님이 내신 이 법칙 창조주가 내신 법칙은 영원히 변치 않는 그런 사는 법칙이오 죽는 법칙이오 흥왕되어질 수 있는 그런 법칙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만물들을 보면서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식물이 하나 나서 자라고 점점 번성하고 커져가고 확대되고 죽고 하는 법칙을 어길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식물만 그런 게 아니라,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합니다.
동물도 그러하고 사람도 꼭 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연계시라 하는 것은 이 자연들이 움직여지는 것을 보고 모든 만물이 사는 법칙에 있구나 번성해 가는 법칙이 있구나 죽는 법칙이 있구나 사람은 없을까? 사람도 창조주가 있으니까.
당신이 이 법칙을 다 내 놓은 줄 알고 이 법칙을 알고 이 법칙에 맞추어 사는 이보다 더 지혜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 자연을 보고 알 수 있도록 했지마는 이것을 모르고 이 법칙을 찾아보려고 이 법칙을 깨달아 가려고 애를 쓰지 않고 세상에 이 사람이 저사람이 학자가 말하니까 교수가 말하니까 박사가 말하니까 그 말만 믿고 사는 길인 줄 알고 거기에 있는 힘을 기울이고 이렇게 사는 인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특별계시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이 사는 길로 알려주시는 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특별 계시는 신구약 성경문서 계시가 특별계시오. 그 안에 있는 영감계시가 특별계시입니다.
이 계시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공로를 입은 자에게는 이 계시를 읽어 깨달을 수 있고 믿고 순종해 갈 수 있는 이 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존재에게 존재의 법칙을 주시고 이 법칙을 지키는 자는 생명과 평강과 번식을 주시고 이 법칙을 어긴 자에게는 죽고 썩고 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계시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있고 이것이 우리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편에는 땅에 있는 모든 권세자들이 군왕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있다. 하고 있습니다. 어떤 허사를 경영하고 있느냐 우리가 창조주 절대자의 결박을 벗어나서 우리 마음대로 한번 해보자 우리 마음대로 해서 멸망이라 하지마는 우리가 멸망을 벗어날 수 있다.
멸망을 벗어나도록 한번 해보자 하고 하지마는 하늘에 계신 자가 비웃는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신 법칙을 어기면 마지막에는 멸망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법칙을 선포하신 이후에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서 오늘까지 인간들이 원치 않은 죽음을 벗어나려고 아무리  해도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인생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창조주가 주신 죽음의 법칙을 따라 걸어가면 죽고 사는 법칙을 따라 살면 살 수 있는 이것이 조금도 가감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법칙을 따라가면 죽을 수밖에 없고 삶의 법칙을 따라 살면 살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실력이 있고 저 정도 같으면 하늘에 별도 따오겠다.
해도 나이 50 60 70 80 되어 가면 별 수 없이 늙어 힘없고 무능하고 결국에 죽고 맙니다. 그것을 두고 코로 호흡하는 것까지 것이 무슨 힘이 있느냐 그것을 수로 헤아릴 것이 없다.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존재의 사는 법칙과 죽는 법칙이 있는 것을 알고 인간에게도 인간에게 해당 된 사는 법칙과 죽는 법칙이 있는데, 그법칙을 말해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이란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 사는 법칙으로 멸망에서 복구되지를 못하고 이 성경을 통해서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은 멸망의 법칙에서 복구되어서 사는 법칙을 따라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는 법칙과 죽는 법칙을 에덴동산에서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 법칙을 어겨서 죽는 법칙으로 사니까 인생은 다 사망의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완성해서 이 공로를 입은 자는 멸망의 법칙에서 다시 복구되어서 이제 자유함을 얻어서 지금 너희가 삶의 법칙을 따라 사느냐 다시 멸망의 법칙을 따라 사느냐 다시 한번 시험을 치르도록 한 것이 택자에 대한 특별한 특혜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조그마한 세력도 단체도 있으면 거기에 반드시 사는 법칙이 있고 죽는 법칙이 있고 거기에 심판하는 심판이 있고 거기에 보상과 복수가 있는 이것이 모든 만물이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단체요 모든 인류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작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이런 단체나 국가에도 다 이러한데 하물며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분이 이렇게 살아도 그만 저렇게 살아도 그만 아무 상관없이 그냥 내비려 두는 하나님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모든 존재를 관리하시고 혼자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다스리고 이렇게 하고 계시는데 그분이 정한 법칙이 없겠습니까?
식물도 법이 있고 동물도 법이 있고 곤충도 법이 있고 귀신도 법이 있고 이런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법칙을 내지 않았겠습니까? 1차 법칙을 내신 것은 선악간을 먹으면 죽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방과을 먹으며 동산를 다스리고 지키며 이렇게 살 때는 사는 길을 법칙로 내신 것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법칙을 어겨 죽는 법칙으로 삶으로 인류는 사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죽는 법칙을 따라 걸으므로 죽고 죽어 마지막 유황불 구릉텅이에 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요. 여기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십자가 사활 대속 공로를 완성해도 이것을 입혀준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소망을 가지고 지금 역사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에게 대해서 하나님께서 소망을 두고 이제 사는 법칙으로 살아라 번성하는 법칙으로 살아라 우리에게 소망을 두고 이렇게 하신 것을 가르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라 했습니다.
대속을 입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는 사망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어 영멸되어지고 말지마는 대속을 입은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서 영생하는 이 법칙을 지켜 살라고 이 신구약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법칙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이 법칙대로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데 있는 힘을 다 기울여 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의 실력 가지고 커지고 부유해질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커지고 부유해지고, 사는 법칙은 하나님이 내신 사는 법칙을 따라 부요해지는 법칙을 따라 커지고 존귀해질 수 있는 이 법을 따라 사는 여기에서 우리는 살고 번성하고 자라고 가치 있는 그런 우리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로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준 대로 너희들이 유월절을 기념해라 맥추절을 지키라 수장절을 지키라 우리에게 이렇게 사는 길 가르쳐 주었는데 다시 이 길을 걷지 못하고 이 길을 가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살 수 있는 길이 없고 영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자 됩니다.
영생할 수 있는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법칙 번성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 될 수 있는 존귀해질 수 있는 이 법칙을 우리가 알아 이 법으로 사는 그런 우리가 되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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