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0월18일 화새 기도회

페이지 정보

본문

본문23101723(마태복음5장1-12절)산기도
제목:심령이 가난한 자
본문:마태복음5장1-12절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 5장 1절의 이 말씀은 산상보훈의 이 말씀입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이라 하는 것은 가만히 보면 이 산은 아주 높은 산은 아닌 거 같애요.  나지막한 그런 산인 거 같은데, 산에 올라가서 말씀을 가르쳐 주신 이 교훈입니다. 이 교훈은 그 아주 귀한 그런 교훈이 되어서 이 교훈을 산상보훈이라 그렇게도 말을 말을 합니다. 또 이 말씀을 황금율이라 그렇게도 말을 합니다.

이절에 입을 열어 가라사대 주님이 직접 이 말씀을 가르쳐 주신 그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 이것이 팔복 중에 첫째, 되는 복입니다. 여덟 가지 복을 말씀했는데 그래서 팔복이라 그렇게 말하지요 이 복이 있다. 하는 말은 이 복은 최고의 그 복을 두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이런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는 최고의 복은 어떤 복인가 우리가 피조물 앞에서 같은 필요물과 관계를 맺고 살고 또 여기에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사는 이런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이것을 보고 복이 있다.

하니까 그 돈벌이가 잘 되는가 보다 병이 잘 고쳐지는가 보다 또 자기 하는 일이 형통해 지는 그런 일인가 보다 하고 이 복을 받게 되면 좋겠다. 오래 살 수 있는 그게 복이 아니냐 그런 복이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그런 것도 복이라 하지만은 참 복은 무엇이 참 복이냐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가 없고 자존자 창조주 심판주가 없으면 상관이 없겠지만은 자존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왕이신 이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그런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런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면서 복이 있다 하면 어떤 것이 돼야 복이 되겠는가 자기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세상의 높은 권세를 차지해도 자기가 하는 일이 크고 중요한 일이 잘 형통하게 되어 지고 그렇게 해도 나와 창조주와의 관계가 비틀어지면 그만 내가 했던 모든 것 다 헛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내가 큰 일을 하든지 작은 일을 하든지 어떤 것을 맡았든지 간에 창조주와 나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되어지느냐 이것이 복입니다.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 창조주와 나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되는 이것이 첫째, 최고의 복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수많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피조물과 같이 살고 있는 이런  세상입니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고 식물들이 살고 있고 모든 곤충들이 살고 있고 이 모든 피조물들이 살고 있는 이런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지요 나만 잘되면 되겠습니까? 나만 잘 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모든 피조물과 관계가 있는데, 모든 피조물이 나를 보고 싫어하고 저주하고 내가 망하기를 속히 망하기를 원하는 그런 자기가 된다고 하면, 나는 잘 되어 가지고 성공되어지고 크게 되어졌지만은 그게 저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어지니까. 그게 복이 될 리가 없지요 이러니까 나와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 복은 복을 받았다. 하면 사람이 소유가 많아야 합니다. 복 받았다.

하면서 가난한 사람이 되어 있으면 사람이 복 받았다고 할 수가 없지요 가난한 사람인데 복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못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부유한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부요한 부요를 가질 수 있는 그런 길을 우리가 걸을 수가 있느냐 얼마나 그 많이 소유한 이런 자가 되느냐 이것이 여기에 복을 받는 복 받았다가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 복을 받았다. 하는 것은 자기가 제일 천하고 못나고 제일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제일 밑에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복 받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좀 지위가 있고 높아져야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복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자기는 아주 천한 위치에 있으면서 복을 받았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는데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어떤 복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질 때 심령의 가난성은 어떻게 해야 심령의 가난성을 가질 수 있느냐 심령에 가난 성을 가지면은 복 있는 자가 된다. 복 있는 자가 된다.

하는 것은 나와 하나님과 관계에서 내가 어떤 자가 되느냐 나는 우리 택함 받은 성도가 어떤 희망이 있는 어떤 소망이 있는 우리냐 우리는 주님의 것 되어질 수 있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될 수가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고 하나님은 나 없으면 못 살겠다고 할 정도로 나만 좋아하고 나만 바라보고 나만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자기가 될 수가 있고 또 우리는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주님만 사랑하는 이런 자기가 될 수 있는 이렇게 주님과 가까워져서 주님이 내 전부가 되어질 수 있는 이런 위치에까지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이었어요.

이게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지면 이 복을 차지할 수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또 복이 있다.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자가 되는 것이 복이냐 복이 있다.

하는 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과 나와의 관계에서 사니까 모든 필조물은 우리를 보고 구주라고 우리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우리가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우리를 바라고 의지하고 소망하고 완전히 우리에게 속하고 우리의 것되어 살 수 있는 이러니까 모든 만물을 내꺼 삼을 수 있는 길이 우리 기독자에게 있다.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여 팔복 중에 첫째, 복은 첫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그런 복을 받을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영계도 물질계도 하늘의 것 땅의 것 이제껏 장래 것 생명과 사망을 다 자기 것 삼을 수 있는 이런 큰 부자가 될 수가 있어요. 그 이보다 더 큰 부자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동물들이 살고 있고 식물들이 살고 있고 곤충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우리가 이 동물들을 잡아 죽이고 잡아먹기나 하고 이렇게 해치기만 하고 사는데 그 동식물들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타락해서 쫓겨날 때 모든 만물이 우리에게 대해서 저주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우리로 인해서 저들이 하나도 은혜를 입지 못하기 때문에 사는 길이 없고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모든 만물들은 우리를 저주하고 싫어하고 원치 아니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있는 자가 되면 이들을 다 차지하고 이 모든 피조물이 나를 좋아하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기업이 되어져서 나는 이 모든 만물을 보고 살고 모든 사람을 보고 살고 모든 만물을 보고 사는 이것이 잘되고 살고 커져가고 좋아져 가는 것 이 재미로 사는 그런 우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자 우리는 복 있는 자 되면 자기는 하나님이 우리만 보고 우리 잘 되는 것 보고 우리가 잘 되니까.

좋고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우리가 성장되는 거 보고 기쁘하고 이런 우리로 살아서 아무리 봐도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과 똑같은 이런 우리가 되어져 가는 이런 것을 보고 당신이 기뻐해서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생각과 똑같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이루어지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을 한 대로 그렇게 우리가 좋아질 수 있는 이 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자 그러면 자 복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 복이라 하는 것을 대충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이런 복을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 질 수가 있다.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돼야 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 하는 이 말은 일반적으로 그저 마음이 가난하다 해서 이 말을 어떻게 느끼는고 하면, 인간의 그 정욕을 다 내려놓은 것을 두고 심령에 가난이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욕심을 부리고 살았는데 욕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제 그런 욕심을 내려놓고 그런 욕심 없는 사람이 될 때 심령이 가난하다 그렇게 해석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번 이걸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사람이 살 때에 욕망이 없으면 사람이 그 병이 들어가지고 이제 한 달밖에 못 삽니다. 맛있는 것이나 먹고 그래 좀 하고 싶은 것 하고 실컷 하고 그리고 마지막 준비를 잘하십시오. 하고 이건 뭐 수술해도 안 되고 뭐 수술한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이건 안 됩니다. 이렇게 딱 판정을 지어 놓고 나니까 소리 듣고 나니까 이제는 자기에게 욕심이 싹 없어져 버립니다.  뭐 욕심 가져봐야 뭐 될 거 될 게 있어야지 아무것도 없는데 그만 보면 사람이 죽은 사람이 돼버립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야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죽은 사람이 돼버려 그래 이랬는데 그러면 우리가 욕망을 버려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된다는데 어찌 되느냐 사람들은 그런 정욕 내려놓은 이걸 가지고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그런 정욕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심령의 가난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물론 여기에 대한 팔복에 대한 해석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이렇게 해석들을 합니다.

하지만은  이것을 제가 깨닫고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전에도 이렇게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있어서 심령이 뭐냐 심명이 뭐냐 우리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된 존재요 육은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는 우리 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과 관련을 가지고 영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마음이 될 때 그것을 두고 성경에는 영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영혼으로 사는 이 걸음을 걸어갈려고 하면,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서 신앙 양심으로 사는 여기에서 좀 나아가면 이제 영으로 살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것 중에 에 제일 깊게 연결된 것 우리의 마음이 영의 지체가 되어서 영이 완전 주관하고 영에게 완전 피동되어 움직여 사는 이 깊은 관계가 되어진 상태를 두고 심령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보다도 심령은 더 깊게 연결된 상태를 두고 말합니다.

그래서 심령의 가난성이라 하는 것은 자신이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살지 못한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사는 이런 자기가 되지 못한 여기에 대한 갈급성 중생된 영으로 사는 생활을 하지 못한 여기에 대한 갈급성을 느끼는 것 여기에 그 마음이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는 이 가난한 자다 하는 것은 심령의 가난이라 심령의 가난이 무엇이냐 심령의 가난은 그저 우리 이 정욕을 다 내놨다 버렸다 하는 그런 말이 아니고 영과 내 마음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서 우리 마음은 영의 지체가 되어서 영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영의 것되어져서 영이 내 생명이 되고, 생명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그런 마음이 되어 살지를 못한 여기에 대한 갈급증을 느끼는 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 된다.

이런 복이 있는 사람이 된다.

그게 어째서 그렇게 되어지느냐 그렇게 살기를 갈급증이 느껴지느냐 아무나 그렇게 갈급증이 안 느껴지죠 우리가 세상에서 살려고 하면, 돈이 없으면 돈의 갈급증은 느끼고 배가 고프면 배고픔의 그런 갈급증을 느끼고 목마르면은 물 마시고 싶은 갈급증은 느껴도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살지 못한 여기에 대해서 답답하고 걱정되고 여기에 대해서 갈급증이 느껴져서 사는 그런 사람은 사실은 참 찾아 보기 드물죠 어렵죠 우리가 이렇게 심령의 갈급증을 느끼는 심령의 갈급증을 느껴서 사는 일은 우리가 돼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은데 부모와 떨어져 있다가 어떻게 보고 싶고 부모에게 이렇게 뭐 좀 잘해주고 싶고 그런데 기회가 되어서 나와 와 가지고 같이 모시고 가서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대접을 하고 뭐 실컷 하고 나니까 후련합니다.

부모를 좀 섬겼다 이런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후련해져 가는 그것이 갈급증이 해결된 것 아닙니까 그런 것과 같이 나와 주님과 만나서 내가 중생된 영으로 움직이지 못한 여기에 대한 갈급증은 여기서 주님 만나고 싶고 성령으로 살고 싶고 성령 만나서 성령으로 인하여 움직여지고 싶은 이 갈급이 자기 속에 강하게 일어나서 이런 갈급증이 있는 이 사람 거 어떻게 하니까 그렇습니까? 이것은 천국이 저의 것이며 하는 말씀대로 천국이 어떤 세계인가 이 천국을 알고 나면 심령의 가난성을 가지게 된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다가 이제  죽고 나면 그만이 아니라 하늘나라 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서 영원히 살게 되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다 나는 예수 믿어서 이제 구원 얻었다 이제 천국 가서 산다 그리고 뭐 만족하고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아무 걱정 없습니다. 아무 다른 욕망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 내 어떤 노인을 보니까, 나이는 90 넘어서 이래 있다가 보니까 내가 안 죽어 탈이다. 내가 안 죽어 탈이야 내가 오래 너무 오래 살았어.

내가 너무 오래 살아 하도 그런 소리를 해 가지고 처음에는 노인이 얘기하는 거니까 그래 마 들어주는 것으로 듣고 이래 있다가 한 번 두 번이 아니야. 여러 번 그래 하니까 권사님 이제는 그 말을 그만하십시오. 오늘 죽으면 오늘 주님 만나면 어떻겠습니까? 좋죠. 좋아요. 주님 만나면 좋아요.

주님 만나고 싶지만은 내 알지 못하던 내 모든 잘못 부족을 환하게 다 보고 계시고 심판하실 주님 앞에 설 걸 생각하면 그만 벌벌 떨릴 건데 천국이 어떤 세계인지는 모르니까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아니하고 그저 천국 가니까 될 거다 좋다. 안심하고 이래 있단 말이요 이 천국을 모르는 거야. 그 천국을 모르니까 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 세상에서도 지금도 베트남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나 캄보디아 사람이나 이렇게 한국 와서 한국서 살려고 하면, 그냥 한국에서 살도록 하는 것 아닙니다. 한국에서 살고 싶지만은 한국에서 살면 한국에 시민권을 얻고 나면 이렇게 살기 좋은 데가 어디 있습니까? 노후 보장도 잘 돼 있고 의료 체계도 잘 돼 있고 이러니까 한국 사람이 되기를 참 소원하죠. 그러나 아무나 한국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될려고 하면은 그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또 법을 공부하고 문화를 공부하고 이런 거를 다 해 가지고 그런 공부를 다 해서 얼마든지  한국의 정치나 언어나 문화나 이런 것이 환하게 능통하게 되어져야 한국 시민권으로서 시민인으로서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에 에 합격이 되고, 살 수가 있게 되어지죠 이러니까 한글 공부하러 간다고 뭐 우리는 그런 공부는 초등학생이 하는데 그래라도 초등학생이 하는 공부를 해야 되지요 공부를 다 해서 그렇게 준비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가 어떤 세계인지 모르고 준비하지 않고 하늘나라만 생각 하고 하늘나라 갈 수 있으니까. 됐다. 하고 안심하고 있는 이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 됩니다. 하늘나라를 바로 알면 갈급증이 생깁니다. 하늘나라는 주님이 왕이에요. 주권자요 당신이 주권 개별 섭리로 역사하는 이런 세계에서 우리가 그 살게 됩니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가 살게 되기 때문에 때문에 이런 세계에서 살려고 하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자유로 활동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 따라 동하고 정하는 나라가 하늘나라지 하늘나라는 내 인간 욕심대로 내 성질대로 내 고집대로 살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데 세상에서는 자기 욕심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성질대로만 실컷 살아놓고 이 연습을 했는데 사람이 습관이 그렇게 쉽게 바뀌어지는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 가는 가서는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는 실력이 하나도 없으면 이거 참 기가 찰 일입니다. 오늘 나라는 진리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진리의 나라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진리로 사는 나라요. 진리로 통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한국어로 서로 통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고 영어로 통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진리로 통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영감으로 통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런 세계인데 자기가 진리가 뭐냐 영감이 뭔데 진리로 사는 것이 뭐며 영감으로 사는 것이 뭐냐 이것도 모르는데 이렇게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이 세계에 가서 살려고 하면, 그런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늘나라의 귀머거리요 하늘나라에 벙어리오 하늘 나라의 무식자요 하늘나라의 무능자요 이런 자로 하늘나라에 가지만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이런 자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이 어떤 세계라는 것을 자꾸 가르치고 연구하고 해보면 내가 여기에서 무슨 준비를 해야 될까 그래서 돌아보니까, 내가 참 진리를 너무 공부하지 않았고.

이 진리를 너무 모르는 내다 내가 영감으로 살지를 못하는 내다 하늘나라는 주님이 왕이신데, 주님의 뜻도 모르고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 얼굴만 봐도 저 사람이 좋아하구나 싫어하구나 저 사람이 이거 하라고 하는구나 이렇게 보면 알 수가 있죠. 그래서 보고 그렇게 살지만은 자기는 주님 안면을 보고 사는 그것을 하나도 연습하지 않았고. 자기는 사람 안면만 보고 살았지 주님 안면을 보는 그것은 하나도 연습이 되지 않아서 이게 하나도 안 돼 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 얼굴을 봐야 지금 화가 나가 있는지 좋아하는지 이걸 하라는지 저걸 하라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무능한 사람이 되어 있는데, 사람을 보고 주님이 야 너 식물들을 좀 통치해라 이 동물을 통치해라 그런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요. 그렇게 무지무능한 자인데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결국에 천국을 알면 심령의 가난성을 느낍니다. 천국을 모르는 사람은 담대하죠.

세상에서 자기가 이렇게 담대하게 살지만은 천국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떤 세계인지도 모르고 있으니까. 난 죽고 나면 이제 구원받아서 하늘나라 가면 되는데 뭐 걱정이냐 난 구원 얻었는데 이렇게야 생각하고 안심하고만 있다. 이 말입니다. 천국의 가난성이 없기 때문에 심령의 가난성이 되어지지 않아서 그 사람이 얻는 것은 천국을 차지하지 못한다. 했습니다. 천국 못 간다는 말이 아니고 천국에서 필요 있는 인물 쓰임 받는 사람 천국에서 할 일 많은 사람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무슨 준비를 해야 되느냐 심령의 가난성이 생겨지도록 자기가 천국이 어떤 세계일까? 이걸 가지고 연구해 보고 그걸 깨달으면 주님이 왕이라 해도 그걸 느끼는 느낌이 와닿지 않는 거예요. 자기에게 주님이 왕이라 주님이 왕이면 왕이지 뭐 나는 내대로 살고 내 좋아하는 건 하고 내 욕심대로 하면 되지 이렇게 살기가 쉽습니다.

주님이 왕이시고 주님 뜻대로 주님이 주권개별 섭리로 역사하는 만왕의 왕이신 이 세계 속에서 우리는 이 세계는 진리의 세계요 영감의 세계라 진리와 영감으로 움직이지 진리와 영감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세계가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면 어찌 해야 돼요.

내가 이것을 세상에서 진리로 사는 연습 영감으로 사는 연습을 해야 되는데 자기가 어쩌든지 꾀를 내어서 자기 욕심대로 일이 달성되면 성공되었다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서 그것이 이루어지면 성공했다고 좋아하고 잔치하고 하지만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모르는 사람의 그런 세상 생활이오 하늘나라를 아는 사람은 심령의 가난성을 느껴서 하나님에게 피동이 되고,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자기가 되지 못해서 애가 타고 답답해서 여기에 마음이 다 기울어져서 내가 주로 인하여 사는 연습을 해야 되겠다.

내가 척 보면 주님의 안면이 보여서 주님이 이걸 좋아하시는구나 게 어떤 사람이 결혼하고 난 다음에 가서 식사 준비 할라 하니까 여보 뭐 먹고 싶어요. 하면서 얼굴 척 처다 보니까, 벌써 뭐 먹고 싶다. 하는 게 보이거든. 알거든. 내가 그거 하지요 그거 하면 될까요? 예 그래 오늘 그거 해 먹읍시다 벌써 이렇게 마음이 통해지는 것은 마음이 그만큼 통해서 얼굴을 척 보니까, 생각이 나고 알아지지 않습니까? 주님을 봤는데도 주님 생각을 읽을 줄도 모르고 주님이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도 모르는데 거기서 무슨 재미가 나겠습니까?

주님과 밀접한 교제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주님의 안면을 보고 할 수가 있어야 돼요. 주님의 앞면만 볼 수 있는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이 이걸 원하신다  이것은 이 진리대로 하면 되겠다. 이 영감으로 이렇게 살면 이 일이 되겠다. 이렇게 영감과 진리로 사는 이 실력을 길러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만물들을 상대하고 사는데 죽고 나면 이런 모든 만물과 상관없는 것이 아니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에서는 이 모든 만물과 영물과 같이 사는 이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자기는 연습을 하나도 안 했는데 천군천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든 만물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줄 수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그 모든 만물이 그에게 복종할 리가 없죠 어디를 가니까 왔느냐 말도 안 합니다. 환영도 없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무안하겠습니까? 세상에서도 그런데 내가 가니까 내가 가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가니까 줄 수 있는 걸 가지고 가거든요. 내가 모든 만물에게 주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주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들은 나를 환영할 리가 없지요 나로 인해서 혜택 받을 게 하나도 없는데 뭐 때문에 좋아하겠습니까? 우리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주님에게 다 있습니다.

주님에게 다 있지마는 가져오는 방법을 모르니까 아무리 많이 있어도 가져올 수 있는 실력이 없는데 어떻게 가져오겠습니까? 아무리 많아도 자기는 가난한 자입니다. 가져올 수 있는 실력은 우리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실행할 수 있는 요 실력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고 실행하는 믿음을 길러가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만큼 하나님에게 충만한 은혜를 우리가 받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받아 가진 모든 만물을 줄 때는 내가 가져왔으니까. 이거 주면 되지 하지만은 전달이 안 됩니다. 어떻게 전달하느냐 모든 것을 믿음으로 관리해야 됩니다. 진리로 관리할 때에 내게 온 하나님의 충만의 은혜가 만물에게 건너 건너가기 때문에 나는 모든 피조물을 관리할 때 믿음으로 관리하는 실력을 길러가야 합니다. 이것이 다.

천국을 알고 나니까 심정의 가난성이 느껴서 내가 이 면이 부족하다 이것을 연습하고 이걸 준비해야 된다. 이래서 이 준비를 잘 해야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하는 모든 일도 심령의 가난성을 느껴서 천국을 암으로 인해서 심령의 가난성을 느껴서 사는 이 걸음을 걸을 때 우리의 걸음이 가치 있는 생애 걸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