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0월11일 수야 팔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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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마태복음 5장 3-12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컴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나니라

 여러 시간 3절에 대해서 이렇게 좀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해서 우리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복을 받는다. 하는 것이 무엇이 복을 받는다. 하는 것인가? 복을 받는다.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져서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을 받는 것은 우리가 주님에 것되어서 주님의 지체로 살 수 있는 자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오 우리가 지혜와 능력이 있는 이런 우리가 되는 이것이요. 또 우리는 복 있는 자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힘입을 수 있는 우리가 되고 모든 피조물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자 되는 이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 있다는 말을 그저 돈이 많아지는 것으로 건강해지는 것으로 일이 형통해지는 것으로만 복으로 느껴 생각하지 않아야 됩니다. 애통하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그랬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는 것은  과거에 백 목사님이 이렇게 좀 말씀한 것은 천국이 저의 것이 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게 된다. 심령의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하는 말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게 일반적으로 심령이 가난하다 하는 것은 세상 욕심을 다 버렸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 욕심을 다 버린다 그게 세상 욕심을 버리면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이 됩니다. 그래 세상 욕심을 버리지 않고 세상 욕심을 가지고 사는데 무슨 천국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이 어떤 세계인지를 아는 사람은 세상 욕심을 가지고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 말입니다.

또 제가 지금까지 가르쳐 준 것은 심령이 가난하다 하는 것은 중생된 영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 이것의 가난성입니다.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사는 여기에 대한 가난성을 느끼는 자는 복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 형상대로의 자기가 되고 하나님이 쓸 수 있는 지체가 되고 하나님과 똑같은 그런 우리도 지혜를 가진 능력을 가진 이런 우리로 자라가게 되고 하나님에게 있는 모든 소유를 우리가 다 받아 가질 수 있고 또 만물에게 다 줄 수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은혜의 기관으로 살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어진다 하는 말입니다.

목이 마르면 갈증을 느끼게 되겠죠.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다. 자기에게 쓸 만한 돈이 없다 하면 악착같이 내가 돈을 좀 모아야 되겠다.

해서 참 부잔데 돈 몇 백원 그거 깎는 거는 꼭 어디든지 가서 돈을 깎는 것을 보면서 부자가 그건 좀 주면 되지 왜 그러냐지만은 돈을 버린 사람을 보니까, 그렇게 아껴두고 돈을 잘 쓰지 않으려고 돈을 아끼고 절약하는 그게 아예 몸에 배어서 모든 생활을 아직 돈을 쓰지 않는 이런 사람이 되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돈이 있지만은 자기는 돈이 없다고 생각해 아니 아닙니다. 내 돈이 없어요.

그 부자한테 가서 당신 부자니까 좀 하면 안 되겠느냐 그래도 아이구 내가 뭐 부자냐 나 돈 없어 이렇게 아주 자기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는 없으니까. 더 모으려고 악짝같이 노력하는 사람의 가난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세상에서 자기가 이 몸이 마음을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굉장한 효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축구 선수도 공을 차는데 자기 마음먹은 대로 탁 공을 차면 공이 그렇게 날라가야 되겠고 야구선수가 야구공을 치는데도 자기 마음에 마음먹은 대로 공이 턱 맞아서 날아가도록 그렇게 돼야 되지 그러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먹은 대로 되도록 하려고 연습을 굉장히 합니다. 그래서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기만 하면 그 사람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그 사람 세상에서 뭘 하든지 일 등을 하고 최고가 되어져 갑니다. 마음먹은 대로 다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뭘 하나 해낼려고 하면, 자기 마음먹은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여고 전 힘을 기울이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영이란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믿는 성도는 영으로 인하여 살기만 하면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살기만 하면 우리는 굉장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으로만 살면 이것은 성령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중생된 영으로 사는 것은 성령으로 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일이든지 성령으로 살려고 성령으로 행할 수 있는 사람만 되면 그 사람 하는 일은 전지요 전능이 됩니다. 성령으로 사는 중생된 영으로 사는 사람을 훼방하면 다 절단하고 맙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방해한 사람마다 먼저 망하고 맙니다. 그 중생된 영으로 사는 것은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중생된 영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중생된 영을 따라만 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야 저 사람은 어째서 저럴까 그 사람에게서 초자연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는 이런 역사가 있단 말이에요. 이러니까 중생된 영으로 살려고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삽니다.

 이렇게 살지 못해서 내가 왜 이렇게 중생된 영으로만 살면 이렇게 큰 성공이 되는데 왜 이렇게 중생된 영으로 살지 못할까 중생된 영으로 살지 못한 여기에 대한 안타까움 여기에 대한 갈급증을 느낀 사람 중생된 영으로 살지 못한 이 문제 때문에 갈급증을  느껴서 어찌거나 내가 중생된 영으로 사는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정력대로 내 성질대로 살지 않고 중생된 영으로 사는 성령으로 사는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내가 돼야 되겠다.

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복있는 자가 된다. 아까 방금 복이 뭐라는 걸 말했죠. 복있는 자가 된다. 그 사람은 천국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심령의 가난성을 느낀 이 사람이라면 굉장한 역사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좀 살아보려고 애를 써 봤습니까? 심령의 가난성 중생된 영으로 살려고 하면,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해야 되느냐 처음부터 그래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살려고 하면, 성경으로 사는 연습을 해야 돼요.

성경으로 신구약 성경의 문서 계시에 나타난 이 성경을 가지고 내가 성경대로 살아야지 내가 무슨 일이든지 성경으로 해야 되겠다. 이렇게 성경으로 행동하려고 성경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그 사람인 성경 안에 말씀을 발견하게 되고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자기가 됩니다. 성경이 자기에게 알려주는 말씀을 따라 살게 된다. 이래라 요거는 하지 말아라 이 길을 가자 성경이 가르쳐주는 말씀을 따라 살고 이 길을 걸어가 보면 이제는 진리를 알게 되어집니다.

이게 옳은 이치로구나 이게 진리다 왜 말씀으로 살아보니까, 분명히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내가 십일조를 바로해야 되겠다. 왜 십일조 하면 복 준다던데 이러니까 어떤 교회는 십일조 하라고 하면, 교인이 도망간다고 십일조 하라고 말을 못 해요. 그런데 순복음 교회에 가보니까, 십일조 하라고 그렇게 광고를 한다. 그러면 복을 받는다. 이렇게 말을 해주니까 자기도 십일조를 해보니까, 복을 받으니까. 이래라 이러면 너도 복을 받는다.

다 자기가 경험을 했거든요. 자기가 성경으로 살았고 말씀으로 삶으로 진리를 깨닫고 나니까 자기는 그것을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으로 내가 살아야 되겠다. 내가 진리로 살아야 되겠다. 이제 이 진리로 사는 사람은 자기에게 영감이 오는 것입니다. 그 영감이 오는 것은 중생된 영이 자기에게 자기 마음에 알려주는 말씀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은 이제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중생된 영으로 사는 사람이오 성령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막을 수가 없고 해칠 수가 없고 중생된 영으로 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을 해치는 사람은 제가 먼저 다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고 중생된 영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고 알리는데 그것을 반대하고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기에서 망하는 일들이 생겨집니다. 이러니까 성령이 역사해서 여기에 교회를 세워서 이 복음운동을 해야 되겠다. 하고 운동을 하고 있는데, 어디라고 거기 교회를 세우느냐고 그 없이 해야 되겠다.

하고 나서서 마구 반대 운동을 일으키는데 하나님은 여기에 교회를 세워라 여기에서 복음운동을 해라 이렇게 했는데 그 일을 위해서 돕는 역사를 하고 있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어떻게 됐는지 그만 집이 망해버립니다. 그 집이 사고가 나  과거 부산에 가만 보니까, 분교를 세워서  해나가고 있는데, 주일학생이 많이 모이고 예배를 보고 거기서 이 찬송을 하고 하니까 이웃집의 찬송 소리가 들리고 이러니까 시끄럽단 말이야.

그러니까 동네 반상회를 해 가지고 여기 이 예배 못 보도록 해야 되겠다고 반상회 하고 반대 운동하다가 그 집 아들이 연탄 가스를 둘 다 죽어버리고 그러고 난 다음에 반대 운동이 싹 없어져 그 부모는 나중에 울면서 내가 반장이라서 할 수 없이 이렇게 했는데 다치기는 우리집 아들이 다쳤다 그래서 울면서 그러더라 그 방법이 없어요. 성령이 역사하는 일을 막으면 막는 데에 해가 일어나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성령으로 역사하고 있는데, 성령의 역사로 성령의 감화 감동이 와서 성령의 역사로 이렇게 하는데 방해하는 역사를 하면 그게 깨어지고 맙니다. 이렇게 합시다.

했는데 성령의 감화감동이라고 말했지만은 실제는 성령의 감화감동이 아니고 자기 욕심에서 나온 것이면 반대 운동을 해도 아무 상관이 없죠 반대 운동하는 것이 더 성공이 돼 가지고 그래서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성령 따라서 했는지 성령에 감화 감동을 받아서 했는지 정욕으로 했는지 그런 것은 조금 뒤에 지나가 보면 다 그것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살아본 사람은 성령으로 걸어가 본 사람은 내가 성령으로 살아야 되겠다. 중생된 영으로 살아야 되겠다. 여기에 갈급증을 가지고 이래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이 갈금을 가진 사람은 어쩌든지 성령으로 살려고 애를 써 갑니다. 이러니까 성령으로 산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그런 인격성을 구비해 가는 그런 사람이 자연이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과 똑같은 행위와 하나님과 똑같은 능력의 역사가 그런 능력의 역사가  그사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사는 걸음을 걸어간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 이런 제자들이 걸어간 걸음에 보면, 굉장한 기족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심령의 가난한 자 심령은 중생된 영과 마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중생된 영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마음이 된 것을 두고 심령이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런 심령의 가난성을 가지는 데서 우리는 복 있는 자가 되고 천국을 차지할 수 있는 자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걱정이 되어서 마음의 근심이 되고,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자는 위로를 받는다. 왜 자기가 무슨 걱정이 많은데 무슨 걱정을 무슨 고민을 하는데 무슨 고민 뭐 때문에 자기가 고통을 느끼느냐 이것은 자기가 세상 일이 안 되어서 몸이 아프니까 하는 일이 힘드니까 그렇게 느낀 고통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런 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영과 육으로 지으시고 영으로 인하여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게 했는데 우리의 주인이 영이요. 중생된 영이 내게 대해서는 생명이요. 주인이요. 머리입니다. 그러면 이 영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자기가 되는데 돼야 되는데 그러면 마음도 살아나고 몸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이 이 걸음을 걸어가지 못해서 답답하고 걱정되고 애가 타는 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 요것을 두고 애통하는 자라 늘 여기에 대해서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데 돌아보니까, 또 말씀대로 살지를 못해서 사도바울이 늙은 노경에 가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입니다. 그랬어요.

자기가 대속의 은혜를 입고 죄를 멸하고 죄 없는 자로 살아야 되는데 가면 갈수록 죄가 또 보이고 또 부족한 것이 보이고 또 미련하게 행한 것이 보이고 자꾸 이게 보이니까.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고친다고 애를 썼는데 그래서 자기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도록 자기를 고쳤는데도 그래도 불안한 거야.

그래도 왜 사도 바울이 당신은 말이지 그렇게 양심에 가책할  것이 하나도 없도록 그렇게 자기를 깨끗게 했는데 뭐이 그렇게 불안한가? 나는 전지에 하신 주님 앞에 심판을 받을 것인데 그 앞에 설 때에 내 속에 이런 죄가 있지 않느냐 그때 드러날까 두려워서 내가 아는 죄는 다 회게하고 아는 것은 다 정리하였다고 했는데, 내가 미련해서 무식해서 내가 모르는 이런 죄가 있을까? 해서 이게 고민이다. 그래서 이것을 내가 깨달아서 고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그런 기도를 한 것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 사도바 을이 얼마나 애통한 애통하는 이 애통을 가졌느냐 하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벌써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니까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가 오느냐 그런 애통을 가질 때에 어떤 위로가 오느냐 그래 네가 죄를 찾지 못해서 그랬지 바로 그 죄를 내가 사해주었다 주님의 그런 위로가 오는 거야.

주님의 위로가 오는 것은 거기에서 애통을 가질 때에 그때 자기에게 주님의 사죄가 더 크게 느껴지고 칭의가 느껴지고 화친이 느껴지고 소망이 느껴지는 이것으로 우리에게 위로가 온다 참 내가 아무리 내가 이것을 고치려고 했는데, 이게 고치지 않아서 이거 고치려고 해도 이것 잘 고치지 못하고 여기서 내가 벗어나지 못한 이것인데 하나님이여.

이 죄 요 악 이 삐뚤어진 이 원수를 이기게 해 주옵소서 요 원수를 멸해 주옵소서 과부의 기도와 같이 과부가 재판관에게 간구한 것처럼 이렇게 주님 앞에 간구하는 그런 기도 그런 애통을 가진 자는 복이 있게 된다.

그는 이 죄를 주님이 사해줬구나 이 의를 주님이 다 완성하여 나에게 입혀둬서 나를 의인으로 살게 주셨구나 나를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 수 있도록 이렇게 해 주셨구나 그것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안심을 하고 주님의 참 위로를 받는 그런 자기가 되어질 수가 있다. 그 말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애통하는 애통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돈 못 벌어서 애통하는 걸 말하는 것 아닙니다. 일이 잘 안 돼서 애통하는 걸 말하는 것 아닙니다.

몸이 아파서 애통하는 것 아닙니다. 이 애통은 성령으로 살지 못한 애통이에요. 이 애통은 주님을 닮아가지 못한 애통이요.

이 애통은 주님을 섭섭할 하게 할까 싶어 걱정되고 고민되는 그런 애통이 이런 애통을 가진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니 그런 애통을 가진 자는 주님의 대속의 공로의 이 은혜를 더 깊이 깨닫고 이 은혜의 위로를 받는 자기가 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온유하다 온유하다 하는 이것은 평안하단 말이오 어째서 그랬습니까? 이 온유를 가지려고 하면, 지금은 가만 생각하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고 또 이스라엘 저기 전쟁이 일어나고 야 이거 보면서 이북에서 김정은 또 야 나도 이길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단 말이오 아무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해도 5000 발 7000 발을 쏘니까 막지를 못하고 다 두드려 맞고 다 박살이 나고 절단이 나니까 큰일인 거야.  이북에는 방사포가 많아 가지고. 방사포를 다 갔다 내놔누고 한 몫에 만발을 쏘아대면 여기 어떻게 돼요. 그만 뭐 서울 여기까지도 뭐 다 절단하는 거야.

그래서 여기는 여기대로 전쟁이 나고 이렇게 해서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듯이 유럽에서 전쟁이 나고 중동에서 전쟁이 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전쟁이 나고 이래 되면 어떻게 될까? 이게 참 걱정이 됩니다. 야 이거 기도해야 될 문제구나 그 전쟁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여기도 전쟁이 나면 이 큰일인데  전쟁이 나니까 사람들은 뭐 파리 목숨이다. 뭐 그만 사람 죽이는 거는 뭐 그냥 죽이는 거 야.

잔인하게 무섭게 그렇게 죽이고도 뭐 별 그런 다른 마음이 없어요. 그 정치가는 사람이 뭐 몇십 명 몇 만 명 죽어도 눈도 깜짝 안 하는 거 그 이런 세계에서 살면서 참 여기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는 지금입니다. 이러니까 마지막 때가 되어서 이러한 모양이다. 속히 이 구원 준비해야 되겠다. 이것이 더 깊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준비를 바로 하지 못하고 갑자기 이런 전쟁이 나고 어려움이 올 때에 그때는 이런 구원도 이루지 못하고 그만 끝이 나고 나면 이 세상에 살면서 참 억울한 세상걸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인데 구원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다 허송세월 했다고 하면, 나중에는 크게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기회 있을 때 시간 있을 때에 구원 이루어 가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는 힘 다 기울여서 이 구원을 이루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되는 것은 이렇게 세상이 이런데 어떻게 온유한 자 나가 되겠습니까?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는데 내가 부요해지지도 않았는데 내가 몸이 아픈데 어떻게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 온유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온유한 마음을 가지겠느냐 온유한 마음을 가지려고 하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 되면 우리는 온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대속의 공로를 깨달아 한 사람이면 온유을 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가 되면 세상에 가난도 이기고 전쟁도 이기고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조금도 자기를 해하지 아니합니다. 온유한 자가 되면 아무리 큰 병이 자기에게 와서도 병의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적으로 정하시고 목적대로 나를 만드시려고 예정하시고 예정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것을 주권 개별 섭리로 역사에서 오늘 내 이 현실이 나타난 이 현실이니 병이요.

병이 온 것도 주님의 사랑이오 가난이 온 것도 주님의 사랑이오 장애가 온 것도 주님의 사랑이오 건강이 온 것도 주님의 사랑이오 부효가 온 것도 주님의 사랑이오 이런 직장이 오고 저런 직장이 온 것도 주님의 사랑이오 직장이 없는 것도 주님의 사랑이오 모든 것은 당신이 나를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역사로 나타난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자 되어지는 것이 온유한 자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온유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온유하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만 봐도 불안한데 온유을 어떻게 가지겠습니까?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차가 들어닥쳐서 교통사고 나서 죽는 일도 생겨지고 길 가다가 갑자기 건물 위에서 물건이 떨어져서 크게 다치기도 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 아닙니까 나는 나 혼자 차를 잘 교통 법규를 시켜서 이렇게 운전해 간다 하더라도 어떤 술 먹은 그런 사람이 마약 한 사람이 갑자기 차를 몰고 와서 들이받아 버리니까 갑자기 죽는데 그런 일이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보장도 못하고 모든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면 불안해서 못 삽니다.

요사이 시절엔 조금 어두우니까 어디 지나가다가 보니까, 사람이 와서 잡아가고 사람을 이렇게 헤치고 이런 일이 많이 있는 이 세상인데 불안해서 살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온유을 가지겠소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하나님의 예정과 창조와 주권 섭리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이 대속의 공로를 깨달아 알고 믿는 사람이 되어지면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 학교 학생 심방하러 가는데 자꾸 어떤 총각이 따라옵니다. 분명히 자기를 헤치려고 지금 따라옵니다. 겁이 나니까 하나님 아버지 이 남자가 따라오는데 이것 좀 벗어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고 기도하고, 하니까 조금 지나가니까 그만 옆에 낭떠러질 같은데, 뚝 떨어져 버려 아이고 그것이 뚝 떨어져 버려 그러니까 하나님 믿으니까. 다 되는 거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믿고 걸어가는 데는 하나님의 대속을 믿고 걸어가는 데는 그게 상관이 없습니다. 대속을 믿고 사는 다니엘은 잡아다가 사자굴에 집어넣으니까. 이제 사자에게 뜯어먹혀 죽을 것이 되니까. 얼마나 걱정되고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구원을 믿는 온유한 사람이 되니까. 다른 사람은 들어가도 다 잡아먹어도 다니엘은 잡아먹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예정과 창조와 주권 섭리와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을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사는 이 걸음을 걸어갈 때에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이런 걸음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게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 오는데 새벽에 와가면 야 이 새벽에 어떻게 일어나서 교회 가느냐 이 무서운 세상에 이 도둑이 있고 이 강도들이 날뛰고 가다가 보면 어떤 못된 사람이 그만 해칠라 하는데 어디에 갈라고 하느냐 그래도 마음의 이 구원에 대해서 기뻐서 교회 가야지 내가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하고 갈 때는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해하려고 하다가 보면 해하려고 하는 그 사람이 금방 사고가 나고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적과 예정과 창조와 주권 섭리와 우리를 사랑함으로 구원하신 대속의 공로를 알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꾸 깨달아서 온유한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면 모든 대적을 다 물리치고 모든 악을 물리치고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고 말씀한 대로 온유한 자는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차지할 수 있는 이 큰 성공이 여기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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