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9월15일 금야 스스로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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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553(누가 복음 21장 34-38절)
제목: 스스로 조심하라
본문:  누가 복음 21장 34-38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덧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뜻밖의 그날이 덧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뜻밖에 생각지 않은 때에 갑자기 그날이라 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날 불심판이 나타나는 날 기독교 대박해가 일어나는 날 땅에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7년 대의 환란이 계속되는 날 주님은 공중에서 지상재림을 재촉하고 계시는 그때를 가리켜서 그날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날이 임하게 된다. 주님의 재림의 날 불심판이 나타난 날 기독교에 대한 대박해가 일어나는 날 아마겟돈 전쟁으로 7년 대 환란이 계속되는 날 주님이 공중재림해서 지상재림을 재촉하고 계시는 그때를 가리켜 말합니다. 뜻밖의 그날이 덧과 같이 덧이라 하는 것은 그물을 말합니다.
그물은 하나의 그때 형용사인데 불로 심판하실 터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거물이라고 거물로 비유하셨느냐 여기에는 하나님의 철저한 포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포언은 택한 자들을 긍휼히 여겨서 온갖 방편으로 교훈을 해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제 욕심대로 제 취미대로 이렇게 자유 행위하는 데 대해서 심히 노여워서 하시는 그런 말씀입니다. 마치 그물을 쳐 놓았는데 그물에 딱 걸리면 고기도 자유하던 고기가 자유가 다 빼앗기게 되고
 날라다니는 새들도 이제 자유가 다 빼앗기고 자유로 날아다니는 벌레들도 그물을 쳐 놓은 데 딱 걸리면 그만 자유가 박탈되는과 동시에 생명도 끊어지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람들이 전부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 신앙행위의 규범으로 주셨지마는 이 성경 말ㅆ에 자기의 자유 행위가 제재를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성경 말씀에 자기의 욕심이 제재를 받는 사람이 별로 없고 자기의 취미나 주장이 자기의 계획이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말씀에 꺼리끼니까 이것은 중단해야 되겠다. 포기해야 되겠다. 하는 사람이 보기가 드물다 말입니다.
전부는 제 주장대로 그 생활을 각종의 행동을 성경 말씀에 하나도 제재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로 얼마든지 계속하는 하나님이 우리를 아껴서 이 모양으로 모양으로 권고도 하시고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를 하시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도 제재를 받지 아니하고 제 주장대로 행동하는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히 분노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날이 임하면 자기 마음대로 공중에서 물에서 놀던 모든 것이 그물 딱 걸리면 자유가 없어지고 생명이 빼앗겨지는 것 같이 이렇게 택한 자들도 되어질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새사람과 다릅니다.
새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부모가 공부를 시킬 때 스스로 연구해서 모든 출세의 계획을 가지는 것도 자기 주장을 자기 발언을 자기 계획과 소원을 꺾지 아니하고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투쟁해서 그것을 능가하고 설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연습을 시킵니다.
부모가 그것을 가르치고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사회에서도 그것을 가르칩니다.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자기 주장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법을 세우고 그 법을 지켜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하지만은 그런 속에도 자기 주장대로 자기 계획대로 소원대로 하는 사람들이 왕이 되고, 세상에서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존귀한 사람이 세상에서 승리를 하고 모든 유익을 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자기의 주위 환경에서도 누구에게든지 꺾이지 않고 지지 않고 승리하고 점령해 가서 내가 그것을 다 이용하라 하는 그것이 모든 인간들의 심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큰 데서나 작은 데서나 단체에서나 개적으로나 자기의 잘못된 것을 꺾고 또 옳은 것도 꺾을라고 애를 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를 꺾는 연습을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은 자기를 꺾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강하게 만드는 것이 모든 안 믿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입니다. 믿는 사람이 옳은 것도 꺾을라고 한다. 하는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물론 자기와 잘못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다른 사람이 말하기 전에 스스로 자기를 꺾습니다.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스스로 꺾어서 뿌리를 뽑으려고 애를 쓰고 다른 사람이 훼방으로 하든지 꺾으라고 사랑에 충고를 할 때에 감사함으로 달게 받아서 자기를 꺾을라고 애를 씁니다.
또 옳은 것도 꺾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은 옳은 것이 악에게 꺾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이라도 할 수 있으면 자기를 꺾어서 그 옳은 것을 다른 사람이 주장하고 자기는 다른 사람이 주장하는 데 따라갈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에게 따라 살려고 하나님 따라 살려고 애를 쓰고 그다음에는 사람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믿는 사람의 걸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의 걸음은 모든 사람을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 복종하도록 자기가 삐뚤어져서도 자기가 다른 사람을 정복하고 옳은 것도 자기가 정복하여 자기가 그것을 나타내려고 이렇게 하지마는 믿는 사람은 자기를 꺾어서 자기를 숨기고 나타내지 아니하고 자기에게서 다른 사람을 나타내고 옳은 것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나타낼려고 하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보기에는 믿는 사람은 뼈도 없고 속도 없고 아무 창자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 같지만은 쇠를 달구어 녹여 놓으면 물렁물렁하게 물 같지만은 그 쇠를 닿을 때는 다 타버리고 마는 것처럼 단쇠보다 더 강하게 되어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자기를 꺾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꺾지 못하고 자기 잘난 것이 자기 주관대로 자기가 왕 노릇하는 그것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다 속박을 당해서 상당한 보옹으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 있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삽니다.
어떤 사건에 옳은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자기를 꺾여서 명예를 얻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나쁜 것도 다른 사람이 꺾으면 꺾는 대로 따라가고 다른 사람이 삐뚤어진 것을 꺾지 못하고 자기가 삐뚤어진 것을 주장할 때에 간접적으로 뺑빙 돌려서 상대방에게 옳은 것을 알려주어서 이것은 틀렸고 옳은 것을 찬동하도록 해 놓고, 그 옳은 것을 주장할 때에 옳은 것을 주장하는 그 주장에 자기는 꺾여서 순종해 갈려고 하는 그런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가 옳은 것을 발견해서 주장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옳은 것에 따라와야 할 것인데 할 수 있는 대로는 그렇게 안 하려고 애를 씁니다. 옳은 것이라도 슬슬 둘러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바로 깨닫고 옳은 것을 말하면 자기는 그 옳은 것을 처음 아는 듯 그 옳은 것에 찬성을 하면서 따라갈려고 애를 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모든 피조물에게 순종하는 이 순종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기독자의 걸음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크나 작으나 모두 제 나름대로 제가 잘나서 자기 주장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항상 자기를 부인하기를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다른 사람 밑에 가서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고 지배를 받기를 힘쓰는 그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옳은 지도를 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쩔 수 없어서 그거는 옳은 것을 주장해서 옳은 지도로 걸어갈려고 하지만은 성경에는 너희가 스승되기를 원치 말아라 너희가 남의 지도자  되기를 원하지 말아라 뭐이든지 머리 되기를 원하지 말아라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모처럼 자기가 의로운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 어려운 일로 인해서 영광을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로운 일을 한 자기를 나타내어서 이런 자기가 의로운 자라 나타내는 것은 백해무익입니다.
자기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타나고 영감이 나타나고 진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데에 이용을 당했으면 그것은 좋지마는 자기 단독으로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유명해지는 이것을 소원하는 것은 큰 화 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그런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꾸 드러낼 때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지만은 자기가 유명할라고 하면, 사망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럴 때라도 하나님을 높이고 자기를 자꾸 가리워서 그런 자가 되지 않으려고 자기를 나타내는 그 위치가 해독이 있는 줄 알고 그 위치를 피하려고 애를 쓸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위와 권세를 줘 가지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밖에는 들고 설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 이하에 보면,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새사람들이 다 영광이라고 칭하는 것은 나중에 모든 것이 진가가 드러날 때는 큰 수치가 될 것입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부끄러운 것을 자랑하는 그것이 참 낯이 간지롭고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시면 숨을 구멍을 찾지 못해서 떨 것이오 거기에 대한 형벌 받을 것이 얼마나 큰데 자기가 칭찬받을라고 칭찬받을 것이 없으면 그것을 만들어서라도 돈을 들여서도 만들고 조작배기로 간판을 만들어서 칭찬을 받으려고 사람들은 애를 쓰지만은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래서 여기에 34 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스스로 조심하란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하는 그 조심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다닐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권고와 협조와 경고해 주심을 받아 가지고. 자기가 조심하는 것은 가장 평온한 때입니다.
평온한 때라 그렇지 나중에 참 지느냐 이기느냐 성패의 결정이 되는 절정의 마당에서는 아무리 우리를 옳다 거르다 바르다 삐뚤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지도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끝까지 환란의 때도 어려움에 때도 나를 지도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마는 환란일 때가 되면 나도 여러분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붙여서 세상이 이 구멍으로 끌고 가고 구멍으로 끌고 가고 이 자리로 끌고 가고 자리로 끌고 가서 우리 단독이 시험을 받게 합니다. 단독 시험을 받고 단독 연단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독립 신앙을 길러 가도록 해야 합니다.
독립신앙을 연습하고 숙달시켜야 되지 그런 어려움의 환란의 때에 조심하라는 권면이 있고 지도가 있고 주의시키는 것이 있고 하지 마라는 그런 지도가 있을 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해 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말해 줌을 받을 수 있는 그것이 없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아끼고 내가 너를 단속하고 내가 너를 심사해야 되지 다른 사람이 언제 너에게 대해서 단속하고 심사하는 일을 그런 환란에 때서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남을 훼방하기 위해서 간섭을 하고 남의 단점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마는 그것은 다 악으로 쫓아난 것이지.
참 자기를 사랑하므로 단점을 말해주고 장점을 북돋아 주는 그런 사람들은 자기 구역장이나 그 구역 식구에게 말할 수 있고 반사가 자기 맡은 학생에게 말할 수 있고 교역자가 자기 맡은 교인들을 만나면 그렇게 해줄 수 있지마는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것도 잠깐 그렇게 지도를 해주지만은 앞으로 우리가 이기느냐 지느냐 생명이냐 사망이냐 하는 것이 결정 지어지는 마지막 결말에 가서는 자기를 지도해 주던 신앙 지도자가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돕는 사람 없는 고독한 가운데서 혼자의 힘으로 단독 전투에서 승리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우리는 항상 자신이 조심하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조심이란 나는 잡을 쫓아 마음 심자 네 마음을 잘 잡아라 우리의 마음은 굉장히 빠릅니다. 언제 이 맘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돌아다니는지 이 마음을 잡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평소에 우리는 자기 마음을 붙들고 잘 다스릴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는 간단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왜 기도를 간단하게 하라고 했는고 하니 기도하다가 보면 마귀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그만 어떤 물건 하나 연상하면 그와 관련된 것으로 쭉 연상해 가다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자기를 끌고 가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하다가 보면 주님과 자기와 의논하고 묻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 가서 헤매다가 나중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지만은 헛기도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30분 기도한다고 해도 내 마음이 주님에게 향하는 그것이 잠깐 그렇게 있고 계속하지 못하고 그 기도할 때에 믿음의 소원과 간절과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간절히 소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그것이 흐려지지 아니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고 결말을 지우는 데서 그 기도가 응답될 수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라 자기가 자기 마음을 잡아야지 자기 마음을 잡지 못하고 다스리질 못하면 그만 헛일 되고 맙니다. 우리가 몸으로 하는 것은 참 둔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몸으로 하는 몇천 배 더 빠릅니다. 우리의 마음 중에도 양심으로 하는 것은 더 빠릅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지만은 이 양심을 바로 알고 이 양심을 바로 설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것은 우리 마음을 잘 붙들어서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마음이 양심에 붙들리고 마음이 자유하지 못하도록 양심의 속박을 받아서 양심의 통치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만들어서 양심의 권위가 있어 양심의 마음을 자유 자제 할수 있도록
양심의 권위를 주는 마음은 양심에 굴복시키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은 주님이 말씀하신 이 모든 구원에 대해서 늘 마음을 붙들고 가지고 붙들어 가지고 있으라 내 마음을 잘못하면 내 주의 환경에 내 마음이 끌려가기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라는 것도 그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조심하라는 것은 내 마음을 주님의 재림에 주님 앞에 설 때에 내 모든 행위를 다 검사할 그 주님 앞에 붙들려 검사할 것이니까.
이 검사에 붙들어 매라 내 마옴이 돈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지 말고 주님의 재림에 붙들려서 주님을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도록 이 재림 붙들어 매라 주님의 재림에 붙들어 매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방탕하게 되어진다 주님의 재림에 귀인해서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서 말도 하고,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서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하고, 주님의 재림에 피동되어서 언행 심사할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어야 될 것인데 재림에 붙들린 줄이 딱 끊어져 버리고 나니까 방탕이 됩니다.
방탕이 되는 것은 주님의 재림에 붙들리지 않고 시대에 피동되고 친구의 피동되고 권세에 피동되고 예술을 만나니까 예술에 피동되고 물질을 만나니까 물질에 피동되고 향락 만나니까 향락에 피동되고 어떤 감정을 만나니까 감정에 피동되고 분함을 만나니까 분함에 피동되고 시기할 만한 일을 만나니까 시기에 피동되고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그런 원수가 천천이요 만만인데 이런 것들에게 붙들려 움직이기 쉽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방탕하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주님에게 붙들리지 아니하면 주님에게 주님의 재림에 붙들리지 아니하면 방탕하게 되니까. 내 마음을 주님의 재림에 딱 붙들려서 방탕하지 않도록 술취하지 않도록 생활의 염려에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이렇게 해야 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날이 덧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리라 너희를 거물을 쳐서 그물에 딱 걸리면 잡아가는 것처럼 요 시대에 피동되고 친구의 피동되고 권세에 피동되고 물질에 피동되고 향락에 피동된 여기에 걸려서 이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이런 우리가 되기 때문에 너희 마음을 조심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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