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8월4일 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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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80453(창세기 5장 18-27절)
제목:인생의 가치
본문:창세기 5장 18-27절
 야렛은 162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962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예녹은 65세에 모두셀라를 낳았고 머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모두셀라는 187세에 라맥을 낳았고 라맥을 낳은 후 782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969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이번 공과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 배우는 데서 이대로 참 실행해서 결실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애를 써 가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가치 저런 가치 속에 살고 있고 이런 생애 방편 저런 생애 방편 속에 살고 또 이런 쾌락 저런 쾌락 그수가 한이 없습니다. 수많은 쾌락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사람이 마치 물에 파묻힌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건너다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서 자기가 물에 들어가지만은 물에 들어가서 물에 빠져서 나올라고 해도 헤어나지 못하고 그만 물에서 허브적거리다가 시체가 되어지는 것과 같이 이렇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가치라는 물속에 방편이라는 물속에 쾌락이라는 수많은 물속에 사람들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헤어나오고 싶어도 이것에게 붙들리고 저것에게 붙들리고 자유하지 못하고 거기에 붙들려서 그것을 취하여 살다가 죽고 마는 것이 마치 물에 빠진 것과 꼭 같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수많은 가치 속에 방편 속에 쾌락 속에 파묻혀서 예수 믿는 사람들도 여기에 파묻혀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고 이런 기쁨 속에 파묻혀서 저런 기쁨 속에 파묻혀서 신앙의 자유를 하지 못하고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속에 파묻혀서 신앙의 자유를 못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가치 때문에 신앙의 자유를 못하고 이런 생활의 방편 때문에 신앙자유를 하지 못하고 이런 가치 방편 이런 기쁨 속에 허덕이다가 마지막에는 죽음으로 다 끝이 나고 마는 것을 이번 공과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야가 어두우면 안 됩니다. 우리는 포부가 커야 합니다. 우리는 시야가 넓어야 합니다.
보는 면이 넓어야 한단 말입니다. 세상에서도 시야가 좁은 사람이 있고 시야가 넓은 사람이 있습니다. 시야라 말은 자기가 보는 면이라 말입니다.
자기가 보는 면이 좁은 사람도 있고 넓은 사람도 있는데, 시야가 좁은 사람은 언제든지 그의 견해나 계획이나 비판이나 평가가 좁고 넓은 사람은 그의 소원과 계획과 비판과 평가가 넓기 때문에 항상 시야가 좁은 사람은 시야가 넓은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야가 좁아서 돈만 보고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요.
돈 몇 푼 요것만 보고 있으니까. 여기 공짜가 있다. 여기에 이런 서비스가 있다. 이렇게 하니까 야 그거 공짜니까 취해야 되겠다.
얼른 물었는데 그것이 들어서 그만 전체가 다 절단 나고 마는 다 빼앗기고 마는 큰 덩치가 빼앗기고 마는 이러니까 약을 팔고 그런 운동기구를 파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의 시야가 좁은 그것을 이용해서 이렇게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도 시야가 넓은 사람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내가 대국적으로 봐라 대국적이 되어야 된다.
그런 말을 많이 씁니다. 아주 커다랗게 늙고 큰 것을 봐야 된다.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을 가지고 이렇게 주고 하는데 큰 것을 잡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범사에 대국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소원하고 비판하고 평가해야 된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국적으로 보는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야가 넓어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존제적으로 전부를 봐야 하고 존제적으로 전부를 본다는 것은 피조물 전부를 보고 창조주를 보고 피조물과 창조주를 빠짐없이 다 보는 이것이 되어야 되겠고 시간으로 말하면 그저 인간 일생을 보는 사람도 대국적으로 본다고 하지만은 우리는 시간을 그렇게 보는 데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영원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영원의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하고 또 공간적으로 사람들은 그저 자기 가정만 보는 사람도 있고 이 도시만 보는 사람도 있고 우리나라만 보는 사람도 있고 세계를 보는 사람도 있고 이 우주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계도 있기 때문에 전체를 보는 것은 물질계와 영계를 다 같이 보는 사람이 전체적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체적으로 보고 계획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은 영원히 살 자요 우리는 영계도 살 자요 물질계도 살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전체적으로 보고 계획하고 걸어가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살이를 말하기를 하룻밤이라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 100년을 사는 그 세상을 하룻밤이라 말하는가? 영원에 비하면 사람이 100년을 살아도 하룻밤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룻밤도 되지 않는 그런 짧은 기간이 세상 사는 한 토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에 살 때 나그네 생활을 조심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세상에 창세기 5장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살았는데 그 사람들이 가치를 따라 살고 방편을 따라 살고 기쁨을 따라 살았는데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창세기 5장에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중요한 지혜는 내가 사는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을 잘못 정했으면 헛 일입니다.
자기는 자기 생각대로 나는 이 목적을 가지고 목적을 가지고 산다고 하지만은 자기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세상에 살게 하신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모르고 나는 한국의 갑부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한국의 제일 정권자가 되어지는 것이 목적이다. 대학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미남과 미녀와 만나 가지고 재미있게 지내는 이것이 목적이다. 사람들은 다 자기대로의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은 마지막에는 죽었더라 마지막에는 죽었더라 그것이 다. 그
목적을 가지고 살아도 끝이 나고 아무 소용이 없더라 그것을 두고 성경에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전한 바로 이 복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목적으로 삼아 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세상에는 가치의 종류도 많고 방편의 종류도 많고 쾌락의 종류도 많아서 마치 바닷물과 같이 이런 가치와 방편과 행복이란 기쁨이 가득 찬 이런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이 가치가 좋다고 가치를 붙들으라고 이 가치를 자기가 취하려고 이 방편을 사용하려고 이런 방편으로 들어가고 자기는 이런 행복이 최고라고 행복을 누리려고 그 행복 속에 들어가서 행복을 취하려고 하지만은 그 속에 파묻혀서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고요히 명상해 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세상의 가치와 방편과 행복을 두고 이것은 홍수 바다라 전 인류가 여기에 빠져 죽고 익사하고 만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위험한 세상이요. 이 세상은 위험한 세상이지만은 중요한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 무궁이 하룻밤 나그네 같은 짧은 요 세상에서 영원 무궁이 어떻게 될 것인가? 다 결정이 되기 때문에 짧은 하룻밤 같은 나그네 세상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원 무궁이 좌우가 되어지는 이런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저 이 세상을 생각없이 자기 눈에 보이니까. 자기 눈에 좋게 보이니까.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이것이 인기가 있으니까.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마치 씨름판에 가니까 씨름쟁이가 되고 싶고 공부하는 학자판에 들어가니 학자가 되고 싶고 예술가 속에 들어가니까 예술가가 되고 싶고 이런 향락자 속에 가보니까, 향락자가 되고 싶고 이게 좋다. 이게 가치다 이렇게 사는 이것이 다 정신없는 걸음입니다.
인생아 내가 일생을 무엇을 목표로 삼고 걸어가느냐 내가 그렇게 호기양양한 인생걸음을 걸어가고 있지마는 그 인생걸음이 내 영원의 원인이 되는 것인데 내가 이 세상살이를 내가 살 때에 내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내 목적을 돈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 권세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 자식 많은 데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 장수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 학문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 미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 자기가 자기를 아름답게 할려고 삣꼬 깎고 이렇게 바르고 저렇게 바르고 해도 조금 지나면 쭈글쭈글한 송장이 되고, 만다 좀 시야를 넓혀서 전체를 봐라 창조주도 보고 피조물도 보고 영원의 시간을 보고 영계도 보고 물질계도 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것을 바로 깨달아서 인생의 목적을 바로 찾아잡고 걸어가는 내가 되어야 된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목적을 가지고 나는 이 목적을 가지고 살겠다. 나는 저 목적을 가지고 살겠다.
각자 자기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살면서 잘 살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마는 나중에 죽음이 올 때에 그때 가서 후회하고 그때 가서 낙망하는 사람 되지 말고 오늘 우리는 인생의 이 목적을 바로 찾아 옳은 이 목적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 그런 우리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려고 우리를 세상에 살게 하셨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온 세상을 만드시고 주권 개별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것을 바로 깨달아서 주님의 이 목적을 자기 목적으로 삼아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세상을 초월한 고차원의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에 파묻히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자기의 목적으로 알고 이 걸음을 걷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 붙들리지 않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이런 걸음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이 목적을 바로 가지고 이 목적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가려고 이 방편은 어떤 방편인가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시기로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로 만들어서 당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그에게 상속시켜 주시고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는 마치 창조주가 된 것처럼 주권자가 된 것처럼 주권 개별 섭리자처럼 살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하시려고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로 만드시는 것이 당신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는 하나님과 같이 깨끗한 자기가 되는 이것이 자기의 가치로 온전한 자기가 되어지는 이것을 가치로 이 목적을 두고 살려고 하면, 너는 어떤 방편을 취해야 하느냐 사람들은 자기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취하는데 우리는 이런 옳은 방편을 가지고 갈려고 하면,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한 자로 하나님이 당신의 소유를 다 맡길 수 있는 자로 이렇게 살 수 있는 자기가 되어지려고 하면, 앞으로는 천군천사도 다 맡기고 모든 물질계에 있는 필요물도 다 맡겨서 관리하고 통치하고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고 이 모든 피조물들이 바라보고 의지하고 이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고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공급해 줄 수 있는 이런 실력의 사람이 되도록 하려고 하나님이 이 목적을 정하시고 우리를 불러 예수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걸어가는 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은 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실패했지만, 에녹만은 이것이 성공되어서 죽음 없이 죽음이 그를 해하지 못하고 죽음에 붙들리지 않고 죽음에 꺾이지 않는 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 방편이 무엇인가 그 방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합니까?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이오 하나님은 완전히 하나님이요.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하나님과 우리가 동행이 될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것이 영감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영감이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가까이 온 것이 진리요 그 진리가 우리를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가까이 온 것이 말씀이오 그 말씀이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가까이 온 것이 성경이오 그 성경이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온 성경이 문서 계신 신구약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고 인정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이 생활이 되면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 생활이 되어집니다.
성경대로만 살았다고 동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사는 생활 속에 말씀과 동행이 돼야 되겠고 말씀과 동행 생활되는 데에 진리와 동행이 되고, 그 진리와 동행 생활하는 속에 영감과 동행 생활이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동행 생활을 한 사람들은 실패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런 동행 생활한 사람을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씀과 동행 생활하는 사람을 해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과 동행하다가 마지막 세상 때가 다 되어서 아주 순교로 영원히 완전 동행의 생활을 한 사람은 있지만, 아직 삶의 때가 남아있는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동행 생활하는 사람을 해하려고 한 자마다 다 해를 입었고 멸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생활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고 순종하여 애굽에서 출발해서 가난 땅으로 가니까 못 가도록 가로막고 못 가도록 잡으려고 가던 모든 사람들은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다 죽고 말았습니다.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일을 하다가 전멸되는 위기까지 닥쳐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기도하는 다니엘을 죽이려고 하다가 저들이 다 죽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 생활하는 데서 우리는 성공이 됩니다. 자기가 사소한 자기 사업이라도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사업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장사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가 풍년이 되어질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 생활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동행 생활하려고 사업을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지금은 적게 주어도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이것 가지고 내가 복음을 위해서 투자할려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하나님 말씀 따라서 사업을 할려고 나서서 이렇게 하는 사람마다 하는 그 사업에 큰 축복이 옵니다.
자기가 장사를 해도 말씀과 동행으로 장사를 하면 말씀과 동행으로 공부하고 말씀과 동행으로 직장 생활하는 데서 하나님의 큰 축복이 찾아 옵니다. 그러므로, 세상 성공도 내세의 성공도 영원무궁의 성공이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사람은 기쁨을 위해서 삽니다.
이 기쁨은 어떤 기쁨을 우리는 취해야 되느냐 물질을 차지하는 그런 기쁨 다른 사람을 꺾어 자기를 위하고 자기에게 복종하도록 만드는 기쁨 그런 기쁨은 다 사망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기쁨 최고의 기쁨은 십자가의 기쁨이요 주님 만나는 기쁨입니다.
이와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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