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6월30일 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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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063053(베드로전서 3장 21-22절)
제목:신앙양심
본문:베드로전서 3장 21-22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에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세례라 하는 것은 예수 그리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는 이 일인데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기 시작하는 이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하는 하나의 표요 그 의식으로 이렇게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표요 한 가지의 의식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세례는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인데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가 어떤 역사인고 하니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로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을 우리가 받아서 이 구원을 실상적으로 이루어가는 그런 행위입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지 아니하면 이 구원과 상관없고 또 선한 양심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하면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사람의 마음속에 속한 한 요소인데 중생 되기 전에는 사람에게 제일 옳고 바른 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이 죽었기 때문에 아무런 영이 기능적으로 작용을 하지 못하는 영이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양심이라 하는 것이 사람을 바로 인도할려고 노력하는 제일 앞잡이로서의 인도하는 그런 기관인데 중생된 사람은 영이 중생됐기 때문에 영이 사람에게 밝은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생된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성령과 진리로 중생했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영육으로 된 사람의 제일주격이요 빛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심되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의 양심이 사람에게 제일 빛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라 하는 것은 중생된 영외에는 자기에게 제일 현명하고 옳고 바른 것을 아는 것이 양심인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그 마음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요거 잘 듣고 해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그 마음이 지도를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은 양심이 지도를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의 전부와 몸의 전부는 중생된 영이 지도하고, 중생된 영은 성령님과 진리가 지도를 하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이 그 사람의 마음을 아무리 지도할려고 해도 그 마음을 지도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른고 하니 중생 된 영은 그 사람의 양심을 지도하게 되고 이제 그 사람의 양심이 그 사람의 마음을 지도하고, 그 사람의 마음이 몸을 지도하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올바른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중생된 영을 지도하고, 중생된 영은 양심을 지도하고, 양심은 모든 마음의 각양 요소를 다 지도하고, 마음은 그 몸을 지도하고, 몸은 자기 현실에 모든 사물을 지도해서 바로 바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런데 그 사람의 마음이 모든 사물을 지도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물건을 들거나 어떤 일을 하거나 그런 것은 마음이 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아무리 움직일려고 해도 마음에 종이 하나 있으니 이 종을 사용해야 합니다.
마음이 여기 있는 조그만한 볼펜 하나를 움직일려고 해도 마음이 힘이 있고 실력이 있어도 옮길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볼펜 하나를 움직이려고 해도 몸을 통해서만 옮길 수가 있지 몸이 아니고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사건도 있는데, 그 일을 이렇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해야 되고 이 사건을 이렇게 처리하고 저렇게 처리해야 되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마는 그 마음은 일을 처리할 수가 직접 처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일을 처리할려고 하면, 몸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몸을 통해서 사물에 대한 일을 하지 몸이 없이는 아무것도 처리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된 형이 우리 마음을 지도할려고 아무리 해도 우리 마음을 지도할 수가 없습니다. 중생된 영은 우리 마음을 지도하려고 하면, 양심을 통해서 마음을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저수지에서 우리 가정 가정마다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다. 할지라도 연결되어 있는 중간에 한마디만 끊어져 있으면 그 수돗물은 우리 집에 올 수가 없습니다.
전기 시설이 되어 있어서 한전에서 보내어 주는 전기가 우리 집에 올 수 있도록 다 연결이 되어 있어도 그 스위치가 내려져 있으면 전기가 우리 집에 올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몸이 아무리 무엇을 하려고 해도 물질을 통해서 몸은 일할 수 있고 물질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요.
그 사람의 몸이 아무리 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물질을 통해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굉장히 실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마음을 먹고 마음이 작정하고 하는 데는 마음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굉장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단독으로는 아무리 좋은 것도 할 수 없고 능력 있는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몸을 통해서 마음의 실력을 발휘하지 마음이 가진 실력을 아는 것을 아무리 나타내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음의 실력을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마음이 이런저런 고상한 마음이요. 지혜 있는 마음이요.
실력 있는 마음이지만은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의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따라서 몸이 움직여질 수 있는 이 연습을 수없이 반복해 가는 것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몸을 통해서 당 자기의 주장을 나타내고 뜻을 나타내고 실력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중생된 영은 하나님과 같은 굉장한 이런 영이지만은 우리 마음에 직접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중생된 영이 마음에 와서 역사하려고 하면, 그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마음을 설득시킬 수 있고 양심을 통해서 이해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과 마음 사이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둬 양심과 영감 사이에는 중생된 영이 들어 있습니다. 영감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려고 해도 중생된 영이 말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물질이 있으면 그다음에 몸이 있고 그다음에 마음이 있고 그다음에 양심이 있고 그다음에 중생된 영이 있고 위에 성령님이 계시고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일곱 가지 단계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우리에게 와서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는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 사람의 영에게 와서 일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그래서 영감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영감을 통해서 중생된 영에게 와서 역사할 수 있고 중생된 영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와서 역사할 수가 없어서 중생된 영을 통해서 우리의 양심에 와서 역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에 와서 역사함으로 양심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의 요소에 와서 역사할 수가 있습니다.
중생된 영은 우리 마음에 와서 역사하려고 하면, 양심을 통하지 않고는 역사할 수 없고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몸에 와서 역사할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몸의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 중간에 어느 하나라도 끊어지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우리에게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에 100층을 지을 수 있겠습니다. 100층을 지으려고 해도 1층을 짓고 위에 이 층을 짓고 위에 3층을 짓고 이렇게 올라가지 1층 없이 이 층을 지을 수가 없고 이 층 없이 3층을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는 4층이 없습니다. 하지만은 5층이 바로 4층이 됩니다.
이러니까 중간이 없으면 위에 지을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 모든 사람이나 사물이나 내 현실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모든 사건이나 그런 모든 것은 내 몸이 있어야 그것을 접하지 내 마음이 직접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물건을 움직이거나 어떤 사건을 처리하지도 못합니다.
마음이 일을 할려고 할 때는 내 몸을 통해서 그것을 접하고 상관을 가지게 됩니다. 그와 같이 중생된 영이 우리 마음에 직접 연결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도 마음의 요소는 요소지만은 마음의 제일 발단되는 빛이 되어 있고, 마음의 제일 선구자요 마음의 눈과 귀가 되어 있는 것이 양심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중생된 영은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마음을 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없으면 중생된 명은 사람의 마음을 접할 수 없고 그 사람의 육체에게도 아무런 관련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지만은 성령님이 중생된 영이 아니면 그 사람의 양심에나 마음 몸에나 마음의 직접 역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역사할 때는 증생된 영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 순서요 체계적이요. 그것이 조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증거해 줄 때는 성령님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아무리 증거를 해도 양심이 죽어 있으면 양심이 없는 사람은 중생된 영을 통하여 전해주는 성령의 역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중생 된 영이 귀한 복음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어도 아무리 안타까워도 그 사람의 양심이 없으면 중생된 영은 그 사람의 마음에 역사할 수 없고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몸을 치료하고 그 사람을 움직일려고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다리를 놔주어야 몸을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지.
마음이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어야 되는데 마음이 그 일을 바로 하지를 못하면 몸은 알아듣고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오 마음은 사물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할려고 환하게 알고 있어도 그 사람의 입이 벙어리고 귀가 귀머거리고 손이 장애가 되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데, 마음의 생각을 나타낼 수가 없는 것이라 말입니다.
이와 같이 그사람의 영이 마음에 역사 해서 마음을 아무리 잘 다스릴려고 해도 마음의 제일 선구자인 양심이 있는데, 양심을 통하지 아니하면 중생된 영은 마음을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능력이 있지만은 사람에게 와서 어떻게 역사하려고 애를 써도 심판적인 주권의 능력을 가지고 이렇게 하지만은 그것은 하나님의 계약에 위반했기 때문에 이래 하나 성령님이 와서 역사할려고 해도 중생된 영이 아니면은 역사할 수 없고 증생된 영과 양심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와서 우리를 살리려고 할 때 먼저 영을 살렸습니다. 먼저 영을 살려서 영으로 도구로 연결해서 우리의 심신일 심신을 구원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영을 중간에 두지 않고 우리 심신에게 막바로 와서 역사할 수 있는가 전능자라서 할 수 있는 것 같지마는 그것은 불법이요. 월권이기 때문에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막바로 와서 역사하려고 하면, 우리의 마음이 절단 나고 우리의 몸이 다 멸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곱 가지가 연결되는 순서가 있어서 아래 위를 바로 연결해 가지고 이것이 이루어져 가는 것인데 그중에 한 가지라도 끊어져 버리면 하나님의 역사가 건너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십리 밖에 물을 수도관을 통해서 가져온다고 해도 중간에 한 덩가리가 끊어지면 거기에 물이 다 새버리고 그물은 우리 집으로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사람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양심이 있고 중생된 영이 있어도 이 단계를 바로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성령님과 직접 연결하는 것 같이 그렇게 말도 해 놓았고 이렇게 했지마는 성령님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우리의 마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준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했지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 양심이 다 죽어 있으면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생된 영도 단식을 하고 성령님도 탄식을 한다고 로마스 8장의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성령님과 중생된 영이 우리 마음과 몸을 거룩한 마음과 몸으로 변화시켜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 중간에 한 동아리가 끊어져서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양심이 죽어서 아무리 알려줘도 알 수 없고 연결할려고 해도 연결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받을 수 없는 것은 연결이 끊어져서 그러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이루고 온전를 이룰려고 해도 인적인 요소를 가지고는 영생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에게서 신적인 요소가 우리에게 건너와야 그것으로 우리는 온전자가 되어지고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너오는 데는 우리의 양심이 살아서 양심이 힘 있고 양심이 강건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있어도 그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깨달아 알고 그대로 살려고 하는 것은 성경대로 고대로 성경이 가르쳐주는 대로 제일 옳고 바른 그대로 살려고 하는 그것은 양심의 활동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성경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려고 요. 말씀대로 지켜 살았다고 해도 그것은 구원이 안 됩니다.
그것은 내 인적 요소 유한한 요소가 나서서 순종을 아무리 해도 그것은 영원의 것을 완전의 것을 온전의 것을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고 양심이 있어서 내가 요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요 말씀대로 내가 걸어가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먹고 그대로 살 때 고 양심은 중생된 영과 연결이 됩니다. 중생된 영과 연결이 되어서 중생된 영의 뜻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생된 명의 뜻이 양심을 통해서 내 마음에 건너오고 내 마음에 인정되고 소원되고 그대로 믿고 살려고 해도 내 몸이 말을 안 들으면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저 생각만 했지 작정만 했지 손도 말을 안 듣고 눈도 말을 안 듣고 귀도 말을 안 듣고 다 제 멋대로 움직이니 어떻게 구원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하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손도 입도 귀도 눈도 발도 다 말을 안 듣고 제대로 움직이고 나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데 무슨 구원이 됩니까? 그러기에 이제 내 마음이 몸을 설득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는데 그 마음의 인도를 몸이 듣고 순종하는 연습을 해서 요것이 되어질 때에 이 구원이 우리 몸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데는 우리 몸이 이제 마음의 지도대로 모든 사물들을 성령의 인도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기가 될 때 이 구원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이것은 법적 구원만 받았지 실질적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이 연결이 바로 돼야 되는데 중간에 제일 중요한 것이 신앙 양심입니다.
요 양심이 자라고 장성하고 요 양심이 인도하는 대로 마음이 순종하고 마음의 몸이 순종할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하는 여기에서 우리는 온전할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게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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