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5월17일 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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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3장1-10절
23051733(사도행전 3장1-10절)
제목: 불쌍한 사람과 복된 사람
본문:사도행전 3장1-10절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여기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 사람이 병나은 이것을 기록해서 우리가 신앙 걸음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느냐 하는 그 이치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뭐 때문에 신앙생활을 이렇게 해야 되느냐 하는 신앙의 그런 종자 신앙의 첫발자국을 어떻게 해서 이렇게 떼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여기에 가르쳐 주고 있는 그런 말씀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왜 이렇게 안전뱅이 있는 데서 거기서 머물러 있지 말고 치료 받아서 성전 출입하기까지 이런 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것은 여기에 중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기독자들이 신앙의 방향이 바로 되지 않고 신앙의 지조가 없는 그저 이렇게 신앙걸음 걷다가 저렇게 걸음 걷다가 그렇게 살게 됩니다.
그 신앙생활에 그런 능력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니까 생명 없는 것이 물결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에 맞추어서 이렇게 움직여 가지 세상을 역항해서 나가는 그런 힘이 없는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신앙생활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바로 깨달아잡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세상을 따라서 민주주의에 맞추고 공산주의에 맞추고 또 이런 정권에 맞추고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물길을 따라서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실제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과 연결로 사는 그런 은혜를 힘입지 못하고 있는 그런 우리들입니다.
그 여기에서 인생이 나면서 어떤 자가 되어 있는 것이냐 인생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향방을 향하여 자라가야 되느냐 이것을 좀 깨달아서 내가 세상을 이제는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이기 우리 속에 있어져야 된다. 말입니까?
사람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 아니고 다 세상을 어떻게 살았든지 보응을 받게 되고 우리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구원받아서 하늘나라 갈 것 아니냐 이제 예수를 믿었으니까. 구원받아서 하늘 날아갈 것이니까. 아무 걱정이 없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믿음 생활하기가 쉽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무엇 때문에 해야 되느냐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서 깨달아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너머 하나님의 심판은 공심판은 받지 아니하지마는 사심판에서 우리는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생활들을 정죄받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생활로 우리가 할 수 있도록 그렇게 걸어가야 합니다. 현재도 정죄 받지 않고 영원히 가도 정죄받지 않을 수 있는 칭찬받을 수 있고 환영받을 수 있는 삶의 걸음을 우리가 걸어가야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런 걸음이 있을 수 있느냐 그 걸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 진리가 보장하고 성령이 보장하고 주님의 피가 보증하는 그 길을 걸어가면 우리는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됩니다. 이런 일인데 우리가 그런 길을 왜 걸어가야만 하는가?
이 본문에는 불쌍한 사람 세 사람이 나옵니다. 첫째로, 불쌍한 사람은 나면서 안전뱅이 된 사람입니다. 날 때부터 장애자가 되기 때문에 제 힘으로 먹고 살 수 없어서 늘 구걸하여 사니까 불쌍한 자이죠. 이러니까 이런 사람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이런 장애가 없으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면서 안전뱅이 병은 어떤 병이냐 이 병은 날 때부터 참 사람으로서의 걸음을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요 병인 것입니다. 그건 참 사람을 참사람으로서의 걸음을 걸으면 어떻게 되느냐 참 사람으로서의 걸음을 걸어가면 하나님에게 무한한 은혜를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는 우리가 은혜만 베풀어주고 모든 피조물에게 은혜를 끼치고 유익을 끼치는 자기가 되고 자기는 필요한 것은 모두 하나님에게 받는 이런 자기가 되어집니다.
결국에 모든 피조물은 자기를 따르고 환영하고 자기에게 속한 자가 되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받고 하나님에게 받아서 모든 만물에게 주는 생활로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집니다. 얼마든지 이렇게 살 수 있는 우리가 병이 들어서 변질이 되어져서 이 걸음을 걸어가지 못하는 인생이 됐기 때문에 불쌍한 자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변질되어지게 된 것은 아담 하와의 타락으로 원죄가 생겨졌고 이 원죄가 우리에게 다 같이 또 있게 되고 이 원죄로 인해서 자신이 또 본죄를 범하는 자기가 죄를 범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못하고 있는 그런 우리들이라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 병을 치료를 받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주고 줄 수 있는 자가 되고 모든 피조물에게 환영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우리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전적 하나님에게만 받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나누어 주는 일만 했습니다.
요셉이 애국의 종으로 팔려갔지만은 그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은혜를 받아서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모든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에게 주는 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모두가 아버지라 참 부모처럼 요셉을 그렇게 섬기게 되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이런 병을 치료를 받아서 전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받으니까. 가나안 땅이 별간 자산이지마는 가축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고 그들이 먹고 또 거기에 속한 목자들도 얼마든지 부유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이런 걸음을 걸어가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윗도 이것을 회개하고 연습해서 전적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걸음을 걸어가니까 그는 능력 있는 걸음 그에게 속해야 살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모두가 다윗에게 다 속하는 이웃 나라들도 다윗을 섬기는 그런 나라가 다 되어지는 이런 역사가 다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이 왜 비겁하고 비굴하고 왜 이렇게 되어졌느냐 사람이 그에게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그가 좌지우지하는 주권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에 머리 숙이지 아니할 수 없고 거기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는 우리가 되어져 갑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은 이렇게 좌파 운동하는 사람들은 이북에 돈을 받아서 공부했다.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것도 하니까 결국에 그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돈을 줘서 매수한 사람도 있고 어떤 재미를 느끼게 만들어서 끌고 간 사람도 있고 그 모든 좋은 것이 거기에서 나온다 생각이 되어져서 거기에 종이 되어져서 사람들이 끌려가죠 게 우리가 세상 사는 데는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온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을려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우리는 세상의 종이 되지 않고 세상을 이기고 통치하며 승리할 수 있는 이런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지만은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장사하고 사업하고 농사짓고 이렇게 하나 거기에서 자기가 돈을 벌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시키시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고 계명 따라 살려고만 애를 써서 거기에서 하고만 있으면 그는 사람의 종이 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다 점령할 수 있는 그 모든 그것이 다  자기에게 복종하게 되어지는 그런 결과를 맺게 될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가 맡은 일은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여기에 살게 했으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려고 작정하고 그 길 걸어가면 되어져 갑니다. 그러나 이 길을 걸어가기에는 우리가 병이 들어 있어서 이 병을 치료하지 않고는 그런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 병든 것을 두고 나면서 안전뱅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는 어째서 그렇게 되어졌느냐?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서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날 때부터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다 하는 말입니다. 오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로 자기가 생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잉태되자마자 원죄의 정죄를 받아 다 죽은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시 살아난 자가 되었으니 이제 산 자로 살 수 있는 실력을 길러가고 죽은 병든 이것을 치료를 받아가야 하는 것이 세상 생활이오 우리의 신앙걸음이라 하는 이것을 바로 확고히 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내가 신앙생활하는 것은 요 병을 고치는 것이다.
요 병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아야 할 자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지 않고 인간 중심 피조물 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여기에서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으니까. 이것을 다시 하나님이 연결 시켜 주셔서 이제 이 연결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 사는 삶이 하나님과 연결로 살도록 하나님과 연결로 사는 이런 우리가 되어지려고 애를 써 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내가 돈벌이는 어떻게 하고 먹고 사는 거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얼마든지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부족함이 없도록 다 채워주십니다. 그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의 그런 경험을 통해서 다 알 수 있게 됩니다.
첫째, 불쌍한 사람은 이렇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라 우리 모든 사람은 나면서 안전뱅이 된 이런 병이 있는 자기라 그 이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우리가 돼야 되겠고 둘째로, 불쌍한 사람은 안전뱅이를 메고 온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 안전뱅이를 메고 온 사람이 왜 불쌍한 사람이냐 안전뱅이를 메고 온 사람은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는고 하니 안 믿는 사람을 병든 사람을 교회로 인도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요 장로요 집사요 반사요 권찰요 모든 성도가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모든 사람이 이 메고온 사람과 꼭 같습니다.
이런데 한 사람을 전도했는데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일인데 그래 한 사람이 왜 불쌍한 사람이냐 자기는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전도할려고 하니까 교회로 인도하려고 온갖 맛 있는 거 하면 다 갖다주고 그 집 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가서 다 도와주고 온갖 거 희생 다하고 수고 다하고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을 전도했는데  전도해서 이제 자기에게 속한 사람이 되도록 하려고 했지만은 결국에 사람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을 빼앗겼기 때문에 불쌍한 자라 하는 것입니다.
나면서 안전뱅이 된 사람을 늘 메고 와서 성전 미문에 둬서 구걸해서 먹고 살도록 이렇게 도와줬는데 나중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따라가 버립니다. 자기는 그를 위해서 그렇게 수고하고 희생을 했지마은 사람을 빼앗겨 버렸단 말입니다.
자기는 그를 위해서 먹고 살도록 어쨌든지 구걸을 잘하도록 구걸 잘하는 것을 가르치고 도와주고 이래서 자 어떤 교회는 교회 나오면 사업이 잘 되지도록 광고를 해서 그 집에 고객이 많아지도록 또 해주고 식당 하는 사람은 집에 가서 다 밥을 먹어서 돈벌이가 되도록도 해주고 뭐 이렇게 하는 그런 교회 그런 목사님 그런 장로님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시대에 많은 교회가 다 이렇게 해서 누가 그냥 교회 오는 사람 어딨더노 한 사람 전도 할라 하니까 감주를 만들어서 한 열 병 이래 만들어 가지고 뚝 다니면 또 나눠주고 떡을 해서 또 나눠주고 계속 그래 하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교회 오지 않던가 그 물질 공쇠를 해야 그렇게 교회 오지 그래서 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그렇게 공을 다 들여놨는데 결국 사람을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누구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이름을 주어서 병 고쳐 준 사람을 보고 따라가 버리기 때문이 그 자기가 자녀를 낳아서 열심히 자녀 위해서 온갖 희생하고 봉사하고 다 했지만은 그 자녀가 이제 내 자식이 안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는 그 종을 따라가 버리고 그에게 속하지 사람을 붙잡을 수가 없는 거요 돌아 보도 안 한다.
말이요 그러니까 죽자껏 노력했는데 결국 사람을 잊어버리고 마는 이런 결과를 맺게 되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자녀 위해서 그렇게 희생하고 수고하고 이렇게 했는데 결국 자식이 잘 먹고 살도록 하려고 돈을 잘 벌도록 할려고 출세하도록 하려고 이렇게 애를 썼지만은 결국 사람을 빼앗겨 버리는 거야. 이런 결과를 맺게 되니까. 불쌍한 사람이란 말이야.
셋째로, 불쌍한 사람은 자기의 인간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그런 귀한 종을 만났는데 그런 종을 만났어도 여전히 구걸 하는 사람이 되어 있으니까. 불쌍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또 참 하나님의 종을 찾아서 자기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그런 종을 만나 놓고 자기 병 치료 받는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 치료를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비유를 좀 잘 맞춰줄 수 없는가 자기를 기쁘게 할 수 없는가 이래서 자기 좋게 해주는 그런 교회를 찾고 그런 종을 찾아가는 이런 사람이 되니까.
불쌍한 자라 말이요 교회를 알았고 예수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알았고 이제 예수 믿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그 종이 인도하는 데로 따라가려고 순종해 보려고 이런 마음을 가지면 복 있는 자가 되겠지마는 그렇지 안하고 이제 자기를 좋게 하는 자기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종을 찾아가는 그런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불쌍한 사람이야 자 우리는 이런 불쌍한 사람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복 된 사람 두 사람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복 된 사람이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충만해서 이름으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 주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걷게도 하고, 뛰게도 하고, 하나님을 찬성하게 하고 성전 출입을 하게 하니까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또 복 있는 사람 하나는 베드로와 요한 같은 이런 하나님의 종을 만났을 때에 낫기를 소원하는 나도 병이 치료 되기를 소원합니다. 병 치료 받기를 소원 하는 요 소원을 가지고 얼토당토 않은 얘기지만은 일어서라 나면서 부터 일어나 보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일어서서 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일어나라 하니까 일어났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니까 걸어가버렸습니다. 시키는 대로 순종하니까 다 인간병이 치료가 되어진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합리적이요. 자기 생각에 옳은 이치처럼 느껴져서 깨달아져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이지만은 나를 치료하려고 하는 종이 시키는 것이니까.
예 하고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자기를 치료하는 자기가 치료 받는 이자 되어진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에서 불쌍한 사람 세 사람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해야 되겠고 이 불쌍한 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가 되려고 하고 복 있는 사람 두 사람과 같은 이런 사람이 되고자 우리는 힘을 기울이라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하여 성경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모르면 안 됩니다. 나는 날 때부터 안전뱅이 된 불쌍한 자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날 때부터 자기 중심의 사람으로 삐뚤어진 이런 자기로 이렇게 실수 많고 잘못 맞은 삐뚤어진 것이 많은 그런 자기라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자기가 된 여기에서 낙망하거나 포기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가끔 가다가 그럴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범하고 또 회개하고 잘못을 범하고 또 회개하고 한 몇 번 이래 하다가 보면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 같은 자가 뭐 잘못했다고 말하고 또 죄 짓고 잘못했다고 하고 또 죄 짓고 참 안면이 서지 않는다. 그냥 모른 척하고 무시하고 가자 그렇게 하기 쉽습니다.
또 낙망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공로를 완성해서 입혀 주시고 내가 하루에 490번 잘못하고도 또 와서 잘못했습니다. 하면 내가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돌아보면 내가 잘못하는 것도 하나님이 영원전 예정하신 잘못이요.
그렇게 걸어갈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그런 길로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의을 행해서 의인이 된 것 아닙니다. 주님이 대신형을 받았고 대신 순종해서 우리가 죄 없는 자 되고 의인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또 자꾸 죄를 지어야 죄를 알고 자꾸 짓고 자 해야 되느냐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죄를 짓고 저런 죄를 지을 때마다 보면 자기 속 깊이 삐뚤어진 요소가 감추어져 있는데, 그것이 자꾸 드러나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에 고해서 다 사함만 받으면 됩니다.
고하면, 사하여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죄가 있었지마은 이렇게 고해서 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과 그렇게 고해서 사함받지 못한 사람과는 하늘나라에서  자기의 행위에 대한 보응 차이가 너무나 크게 차이 납니다. 사유함을 못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주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의 은혜를 누리는 이것이 다 감해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세상에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꾸 찾아서 회개를 해요 자꾸 회개를 해요  그것을 알려줄 때 고맙게 생각하고 자기에게 있는 잘못된 것을 자꾸 정리해 가는 거기에서 1차 불쌍한 자를 면하게 되어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자꾸 깊이 연구해 가려고 하면, 여러 시간 같은 말을 또 듣고 하면서 조금씩 깊이 들어가게 되어져 갈 것입니다. 같은 말이라 생각하지 말고 듣고 실행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이 길을 걷도록 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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