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2월18일 주후 중생된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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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802(베드로전서 2장1-3절)
제목: 중생된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본문: 베드로전서 2장1-3절
 그러므로, 모든 악덕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나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 하라

그러므로 하는 것은 10절로 내리 보면 우리가 죽은 가운데서 주님이 우리를 살리신 것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된 이것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생겨 나왔습니다. 우리의 시조인 아담 하와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아야 될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또 그 위치에서 살았는데 그만 악령의 미혹으로 이 위치에 살지 못하고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 인류의 위치 지위는 천상천하에 제일 높은 지위입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하나님에게 완전히 피동되어 살도록 이렇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사는 이런 존재로 인해서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 높은 지위를 사람에게 주었고 이런 지위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데 뱀이 와서 내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 것이 뭐이냐 내 중심 내 위주로 살면 내가 하나님같이 될 것인데 내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 같이 될 것인데 하나님 같이 될까 해서 언제나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라고 했는데 어리석게 그래 하지 말고 내 중심 내 위주로 살아라고 미혹을 한 것입니다.
그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은 요것은 선이다. 악이라 선과 악의 결과를 자기를 중심해서 선과 악의 중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너를 중심해서 선과 악을 규정 짓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내가 선악간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서 너희가 하나님 같이 되어진다 했습니다.
그래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가까우면 선이요.
당신을 배반하면 악인데 아담 하와가 자기에게 가까우면 선 자기를 배반하면 악 이렇게 규정 지으면 어떤 결과를 맺게 되는가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당신을 중심하면선 당신을 배반하면 악 이렇게 해도 이것이 옳고 바른 일이 되지만은 사람이 자기를 중심으로 선과 악을 규정 지으면 이것은 전부 틀려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중심 인간 위주로 사는 이것을 가리켜서 원죄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람 속에는 다 자기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이런 요소가 다 있습니다. 그것이 원죄인 것입니다. 본죄라 하는 것은 평생 또한 짓는 죄인데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자기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것이 원죄입니다.
이제 자기가 현실에서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행동하는 그것은 다 본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 원죄와 본죄로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우리 모든 사람은 다 죽고 만 것입니다.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은 원죄와 본죄로 완전히 죽어서 영원히 멸망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은 어떤 죄를 범했는가 영이 직접적으로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했는가 여기 직접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한 것이 아니고 심신이 영에게 복종하지 않고 심신 단독 행위가 나와서 범죄하게 됐는데 영은 그때 선악과를 먹는 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참가하지 않았는데 영은 왜 죽었는가 영이 죽게 된 것은 영은 심신을 책임지고 있는 주격위치에 있습니다. 주격 위치에 있는 영이 소유격 위치에 있는 심신이 범죄한 고로 주격 위치의 책임에서 영이 정죄받아서 죽게 된 것입니다.
이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와 의의 문제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는 이 문제를 다 해결 지우신 것이 십자가 대속의 죽음인 것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다 해결 지워서 우리를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하나 된 자로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 자신이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 있는 자요 우리는 불의한 자요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는 자입니다.
죽어 있는 영이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에게 예수님이 대속하신 세 가지 대속의 구원을 우리에게 입혀 주어서 실제로 우리에게 이 대속을 입고 있는 이런 우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 가지 대속을 완성하시고 신인양성 일위로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과 부활하심의 대속이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의 대속은 크게 여기고 부활의 대속을 아직까지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키고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시고 불목을 해결하여 화목을 이루었지만 우리 속에는 여전히 죄를 벗지 못하고 있고 불의를 벗지 못하고 있고 불목을 벗지 못하고 있는 그런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 심신을 주님 왜 죽으심의 대속을 실제로 입혀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인성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부활하셔서 성령과 진리로 우리 속에 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내주하시는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속에는 택함받고 부르심 받아 예수 믿는 우리 안에는 주님이 항상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어디에 내주하시는고 하면 중생된 영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죽은 우리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완전히 살렸는데 이것은 우리가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죽은 영을 영 자체가 스스로 살아날 수가 없는 이 영인데 이 영을 살린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합니다.
영은 단일체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단일체이기 때문에 영이 살아날 때는 단번에 살아나게 됐습니다. 또 영이 죽으려고 하면 단번에 다 죽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은 종합체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수많은 요소가 있고 몸에도 수많은 세포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심신이 살아났는데도 하나하나 살아나야 되니까. 많은 시간과 많은 현실을 통해서 우리의 심신이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심신이 단일성이라고 하면 단번에 다 살아날 수가 있지만은 우리의 심신의 요소도 수억만의 요소가 합해져서 마음이 되고 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한현실 한현실을 통과하면서 살아납니다. 첫째, 아담의 영은 선악과 먹는 즉시로 영이 죽었습니다.
그 영이 죽었는데 심신은 죽는데도 아담은 950년을 넘게 930년 살았죠 900년을 넘게 이렇게 살다가 완전히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은 930년 동안 죽었단 말이오 머두셀라 같은 사람은 969세를 살았는데 969세를
죽은 죽어가는 그런 모두셀라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영은 단번에 살아나고 영이 살아나는 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중생에 대해서 사람들이 깨닫는 듯이 여러 가지입니다. 성결교에서나 성결교에서 나온 그런 이단은  한 번 크게 중생하면 다시는 죄 있는 자가 아니고 완전히 구원 얻는 자가 된다.
그렇게 해서 이분들은 한 번 구원 얻었으면 중생 됐으면 그다음에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 중생한 사람은 상관없다. 그렇게 얘기하나 지금은 이 교리가 폐지가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중생되기를 성령과 물로 이렇게 중생된다고 했는데 마치 바람이 불면 바람이 동풍인지 수풍인지 눈에 보이지는 안하지만은 그 바람이 부는 역사하는 그것을 보고 이것은 동풍이다. 서풍이다. 이렇게 아는 거와 같이 사람이 중생이 됐는지 안 됐는지 본인은 모르지만은 다른 사람도 모릅니다.
모르나 중생한 이후에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 중생된 것이 나타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는 차차 성경을 믿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것을 보고 이 사람은 중생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여기 중생하는 것은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려야지 죽은 것이 아무리 살아나려고 해도 살아날 수 없고 살리는 힘이 와야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단독의 힘이 역사해서 우리 영을 살렸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진 것이 사람인데 영이 살아났으니까 사람은 영이 살아났다는 것은 주격인 주인이 살아났단 말입니다.
사람의 주격은 영인데 영이 주인이오 하나님이 그 영을 살린 이후에는 그 영에게 속한 마음이나 육에 대해서는 직접 관리하지 아니하십니다.
그 사람의 주인이 영이기 때문에 영이 살아났으니까 이제 영과 의논해 가지고 영이 마음을 관리하지 영의 소유인 마음과 몸을 하나님이 영 너 지켜라 하고 하나님이 직접 와서 우리 마음을 관리하고 몸을 관리하는 그런 역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은 당신이 강제로 하면 다 할 수가 있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성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의 주격인 영을 무시하고 우리의 마음과 몸을 구원할 수가 없고 구원하는 이 역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신을 구원하는 데는 영을 통해서 만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에게 직접 와서 역사하신 것은 우리의 영에게 직접 와서 살리는 일을 역사를 했고 우리 심신에게는 직접 와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중생된 영에게 직접 역사하시고 그  역사를 힘입어서 우리의 영이 우리의 마음과 몸에 역사에서 살리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이 무엇으로 살아났느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났는데 생명이라는 것은 힘입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쇠해지지 않는 영원히 계속되어지는 힘이라 말입니다.
어떤 힘센 장사가 있는데, 그  장사에게 생명이 있을 때에는 그 지체가 가지고 있는 힘 가지고 이렇게 움직이지만은 생명이 딱 떠나면 조그만한 개미가 와서 파먹어도 꼼짝 못합니다. 아무리 용감한 사자라도 생명이 떠나면 그것은 개미 한 마리에게도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이라는 것이 뭔가 우리 영이 살아났는데 중생한 힘 생명의 힘은 요 생명의 힘으로 살아났는데 생명의 힘 이것이 무엇인가 생명의 힘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 공로요 영감이요. 진리가 생명의 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대형으로 사죄를 베풀어 주셨고 대행으로 칭의를 베풀어 주셨고 대화친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완성해서 입혀주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과 모든 인류와 모든 만물을 향하여 사는 모든 언행 심사의 행동에 대해서 대신 완전 행위를 한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이제 이 대속을 우리가 입고 벗지만 안 하면 우리는 완전자입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을 하나님이 능력으로 객관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영에게 입히니까 영은 그 대속을 다시는 벗지 못하고 입게 된 것입니다.
이런 영이 우리의 심신에게 이 대속을 입히는 이 역사를 하려고 두 가지 능력의 역사가 왔습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인 역사와 진리의 역사가 우리에게 와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살도록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영이 살아난 것과 영의 힘은 세 가지 대속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세 가지 힘이 무엇이나 예수님의 사활 대속의 힘과 성령의 감화 감동의 역사와 이 진리의 힘을 입은 이 세 가지 힘으로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영이 몇 가지 힘을 합해서 살아났는가 세 가지 힘을 합해서 중생된 영의 힘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이 영생하는 데는 무슨 힘으로 영생하느냐 세 가지 능력으로 영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에 공로의 힘으로 영생하는 데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의 힘도 이것은 늙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은 영원불멸의 완성인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도 이 영감이 없어지거나 변해지거나 그럴 수가 없고 영원 불멸의 영감이 됩니다.
또 진리도 영원히 변동되지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난 이 세 가지 힘은 우리가 다 영원을 가졌고 완전을 가졌고 불변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 영이 중생된 힘 중생된 성령이 무슨 생명으로 살고 있느냐 영원불변에 완전의 힘으로 생명의 힘으로 살아났으나 그 생명의 힘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의 완전 대속과 영감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세 가지가 중생된 생명의 힘입니다.
이래서 영은 단번에 살아났는데 단번에 살아난 영이 심신의 기능을 살려낼려고 하고 있습니다. 중생된 영을 통해서 심신의 기능 작용을 하므로 우리 심신이 살아나는 역사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나는 심신은 영을 통해서 살아나는데 영을 통해서 심신이 살아나는 것은 우리 기능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심신의 기능이 영감으로 진리로 성경으로 살도록 할 때에 우리는 영감으로 진리로 성경으로 사는 거기에서 우리에게 이런 세 가지 능력이 와서 역사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 형제를 채율하며 사랑하며 형제에 대해서 겸손해라고 말한 대로 우리는 영이 이렇게 우리의 심신을 살릴려고 할 때에 어떤 역사로 살릴 수 있게 되어졌는지 이것을 바로 깨달아서 우리의 심신을 살리는 이것이 우리 구원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힘을 다 기울여 살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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