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1월5일 주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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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502(마태복음 5장 14-16절)
제목: 세상의 빛이라
본문: 마태복음 5장 14-16절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의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은밀히 말하면 우리는 빛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빛을 받아서 빛을 반사하는 그런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이 볼 때는 우리가 빛으로 보입니다. 빛은 빛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이지. 빛을 잃어버리면 빛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빛은 빛으로만 가치가 있고 빛이 나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전구를 사다가 불을 켤 때 불이 안켜지면 그것을 집에 간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다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전구가 빛을 발하기 때문에 돈을 주고 사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세상에 빛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이 빛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폐물이 됩니다.
빛은  뭣이 빛인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오 영감의 빛이오 진리가 빛이오 말씀이 빛이오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빛이 되겠습니다. 다른 것은 빛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빛이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좋다고 옳다 바르다 깨끗하다 덕이 있다.
많은 사람이 감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행위를 두고 빛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기독교에도 빛을 이렇게 생각해 하므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걸음을 바로 걷기보다는 도덕주의의 기독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이요. 못 쓰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다 좋아하니까 불우한 이웃을 도우면 좋다고 어디 가면 봉사를 하면 다 좋아하고 희생하면 좋아한다고 그것을 밑으로 느껴서 거기에 주력을 하는 오늘 기독교들이 다 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잘못 깨달으면 그 깨달음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허송세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 너희들이 스승되기를 원치 말아라 스승 될 사람이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 좋지만은 스승 노릇을 바로 하면 굉장히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만 잘못 깨닫고 잘못 가르치면 스승됨으로 받을 심판이 크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가 선지자 노릇했지 않습니까?
했을 때 이 악한 자들아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봉사를 하고 했는데, 왜 주님은 이 악한 자들아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나를 떠나가라 하고 쫓아내 버렸겠습니까? 그것이 거짓 선지자 노릇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는 이 하나님의 도는 순전히 객관의 것입니다.
땅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세상에 없는 하늘의 것을 주님이 가져오셨고 주님이 우리를 하늘의 것과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에게 속한 완전에 속하고 영원에 속하고 불변에 속하고 영생에 속한 것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연결되어서 이런 완전에 속한 것을 우리가 알고 받고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고 가리워져서 진리에 속하고 영감에 속하고 영원에 속하고 불변에 속하고 생명에 속하고 완전에 속한 이 모든 것이 다 끊어져서 우리에게 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끊어진 것은 뱀이 마귀가 뱀의 형상을 입고 와서 유혹할 때에 그 유혹에 끌려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하나님과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끊어진 것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친히 사람 되어 오셔서 마귀로 더불어 전투 해서 마귀를 이긴 것입니다.
마귀를 이긴 것은 마귀는 어떤 역할을 하는고 하니 하나님과 삐뚤어지게 하라고 자기중심 위주로 살라고 하나님을 배반하라고 미혹을 합니다. 그럴 때 하와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삐뚤어져서 제 중심 제 위주로 살면 잘 될 줄 알고 그래 살다가 망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중심 위주로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어 죽기까지 복종했다. 했습니다. 그는 말 한마디도 생각 하나도 당신의 능동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대속한 대속이 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지식이 와야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오고 생명이 와야 되고 평강이 와야 되고 영광이 와야 우리 구원이 됩니다. 이것은 다 인간에게 속한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님에게 속한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자가 받은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완전한 기쁨이요. 불변의 기쁨이요. 기독자가 받은 지식도 그러합니다. 영원한 지식이요. 불변의 지식요 영원한 완전의 그런 지식인 것입니다.
이런 지식은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라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의 구원은 하나님의 새 은혜가 자기에게 와서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커져 나가는 것입니다. 한 번 은혜 받았다고 그 은혜로 커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받고 그 은혜만 가지고 영원히 커져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또 받고 또 받고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받아야 우리는 커져갑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계속해서 받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느냐 우리에게 오는 그것이 앞서 빛노릇 하는 이 빛노릇 하는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건너오게 됩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말씀한 대로 우리 자체가 빛이 아니지마는 하나님에게서 건너온 예수님의 대속에 공로로 하나님에게 있는 완전의 것 불변의 것 전능의 것 단일성의 것 이런 은혜가 빛으로 사는 빛으로 사는 이 빛의 빛이 삐칠 때에 이 빛을 받아서 자기도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자신이 빛노릇을 해야 되지만은 우리는 빛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빛을 받는 빛을 받으면 우리는 밝아지게 됩니다. 빛을 받으면 빛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빛을 받다가 빛을 받지 아니하면 빛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빛을  받아서 환하게 밝은 사람이 되었는데 전에는 참 신앙생활 잘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빛을 받지 아니하니까 그만 어두워져서 깜깜한 사람이 되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빛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빛을 비출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빛이라 하는 것은 역사 세계에 살면서 이 세계에 있는 도덕이나 그 지역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그런 선이라고 하는 것이나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동받고 감화받고 인정받는 것을 빛이라 생각하지만은 성경의 가르치는 빛은 그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이 세상은 캄깜 어두운 세상입니다.
왜 어두운 세상인가 세상은 타락한 인간과 악령과 악습이 들어서 건설한 이것을 두고 어둠이라 말하는데 이것뿐인 세상인 것입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빛이 오는데 예수 그리도를 통해서 빛이 우리에게 왔지 다른 길로는 우리에게 빛이 오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보다 문제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식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예수님의 공로가 깨달아지는 이것이 오기 전에 사람에게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수많은 지식이 와 있었는데, 이 지식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온 지식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빛이라 하는 것은 어두움에 속한 마귀에게 속한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 속한 그런 사람들이 찬성할 수 있는 이것은 빛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 멸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죄와 사망과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죄와 사망과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왔지 죄와 사망과 마귀에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역사를 이해하고 감동받으려고 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보고 안 믿는 사람들을 보고 감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행위가 있으니까. 이것이 빛이다. 생각하나 그것은 세상 빛입니다.
세상빛은 불교인에게 가가지고는 불교인이 감동받아야 되고 유교인에게 가가지고는 유교인이 감동받아야 되고 이런 이종교 저런 종교라도 어떤 도덕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른 것들이 되어야 빛이라 이렇게 하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빛이 아니오.
어두움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빛이 오면 그것을 멸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에 대한 정의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빛은 도덕을 멸하는 것이 빛이오 인간의 윤리나 도덕을 멸하는 것이 빛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워놓은 제도를 주를 위해서 복종하여 살 수 있지만은 주님과 배치되는 일이 되면은 끝까지 세상 제도에 복종하면 사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말씀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인 진리와 그 안에 은밀히 역사하시는 영감과 그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활대속을 가리켜 빛이라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이 신구약 성경 가운데는 빛이 나타났으니 예수 그리스도요 진리요 영감입니다. 이 빛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빛을 맡은 이런 우리지만은 우리에게서 빛이 나타나지 아니하면 우리는 폐기물로서 쓰레기통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우지 못할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을라고.
숨을라 해도 숨지 못한다.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이라고 산 위에 등대로 세워 놓았다고 말씀했으니 기독자는 기독자로서의 증거할 수 있는 이것을 피하지 못하고 언제든지 증거할 수밖에 없는 자기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자는 불로 증거하며 사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  법도대로 믿지 않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진노하시는 멸하심을 받아서 이렇게 삐뚤어진 자는 이렇게 저주를 받는다. 하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삐뚤어진 데 대해서는 진노의 하나님이요. 저주의 하나님이요. 멸망시키는 하나님이로구나 하는 것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기독자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예수를 믿는데 왜 저렇게 멸망받고 저주받고 망했느냐 아 그 사람은 이런 말씀을 어기고 이 계약을 믿지 않고 이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살더니, 그렇게 저주받고 망해버렸다 하는 이것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산 위에 세운 등대와 같은 기독자라 하는 것입니다.
더욱 기독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약을 믿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을 베푸셔서 영육이 잘 되는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기독자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오늘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빛입니다. 빛으로 세운 것입니다.
산 위의 등대로 우리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렇게 섬기더니 망했구나 저렇게 말씀을 어기는 사람은 망치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증거하든지 어렵고 힘들어도 계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증거할 수밖에 없는 사리의 등대로 세운 우리 기독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이렇게 효력을 보지마는 못 믿어도 잘 믿는 사람처럼 그렇게 되면 좋겠다. 하고 싶지만은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잘못 믿으면 망칩니다. 바로 믿으면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축복이냐 저주냐 우리는 이것을 벗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는 빛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산 위의 등대로 세움을 받은 자입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하고 빛으로 세움을 받은 자입니다. 빛으로 세움을 받은 자가 빛을 버렸으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멸망받을 것으로 되고 맙니다. 빛을 받은 자가 빛을 나타내면 보물로 하나님의 안보로 존영한 자가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을 받은 잡니다.
예수 잘못 믿어 망하는 것을 드러내든지 예수 바로 믿어 하나님의 축복을 드러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드러내고야 말지 어디로 숨는다고 도망친다고 도망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망하든지 흥하든지 둘 중에 하나지 망하지도 않고 흥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여기에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덮어 가루려고 한다고 해서 덮어 가리워지는 것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빛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천물이 되고, 맙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타내고 영감을 나타내고 진리를 나타내는 말씀을 나타내고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을 증거하는 이 길이 옳은 길인 것을 나타내는 이 증거를 하는 사람이면 하나님은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그에게 다 주어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한다. 해서 영광과 존귀와 빛으로 보이게 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지만은 택한 사람이 중생된 사람이 빛노릇하지 아니할 때는 그래도 하나님의 간섭이 없으면 좋겠다. 싶지만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바다 깊은 곳에 가도 하나님이 먼저 거기 가 계시고 택한 자가 광선의 속도로 도망쳐서 간다 할지라도 내가 먼저 거기에 가 있겠다고 말씀했으니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를 빛으로 세웠기 때문에 어디에서든지 빛만 나타내면 우리는 평안합니다. 온갖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정도에서 자기 정도에서 우리는 빛을 나타낼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는 빛을 나타내도록 하나님과 연결되어지도록 주님이 만들어 주셨고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주시기 때에 그 말씀을 받아서 고 말씀을 버리지 않고 말씀을 나타내고 진리를 나타내고 영감을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런 우리 생활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이렇게만하면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자가 빛노릇하지 않는 거기에서 모든 실패가 되고 맙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자기 가정 식구들에게 자기 반 학생에게 자기 반 자기 구역 식구에게 자기 교회 모든 성도에게 빛을 비추는 빛을 비출 수 있는 그 빛이 무엇이냐 착한 행실이라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걸음을 걸어가면 그로 인해서 모든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을 수 있는 결과가 맺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결실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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