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9월24일 주후 참사랑

페이지 정보

본문

본문: 고린도전서13장 1절-8절
23092402(고린도 전서 13장 1-8절)
제목: 사랑 있는 네 가지
본문:고린도 전서 13장 1-8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오. 내가 또 내가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네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거치고 지식도 패하리라

세상에 살아갈려고 하면, 우리가 말을 잘해야 되겠고 또 많은 지식을 가져야 되겠고 또 믿음이 있어야 되겠고 구제가 있는 이런 것이 있을 때 세상에서 능력 있게 이렇게 살 수 있는 줄로 알고 사람들은 이것을 다 마련하려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삽니다.
이래서 이것을 아무리 마련해 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결국에 이것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이렇게 되고 만다 또 모든 지식을 가지고 믿음이 있어도 아무 효력이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구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다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높이고 이렇게 하지마는 내게는 유익이 없다. 아무 유익이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언변이 있어도 소리 나는 꽹과리 같다 꽹과리 같이 뭐 아무 효력이 없는 거예요. 그런 지식을 가지고 또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했을 때 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게 것만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 여기에 네가지 면에 대해서  다만 사랑이 있으면 실제 큰 효력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만 있으면 사랑만 있으면 그러면 여기에 모든 언변에도 사랑이 있으면 효력이 나타난다 사랑이 있으면 효력이 나타난다 말을 좀 못해도 모든 방언의 말에 사랑이 있으면 큰 효력이 나타나게 된다. 또 모든 지식이나 믿음에 사랑이 있으면 그것은 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사랑이 있는 구제는 굉장한 유익을 끼쳐다 준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하나는 인간 사랑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 인간 사랑을 몇 가지로 말했지요 주성이 몇 가지 이헌기 인간 사랑 몇 가지로 말했어. 성훈아 자 인간 사랑을 몇 가지 자 세 가지로 말했어요. 인간 사랑은 세 가지 하나님의 사랑은 몇 가지로 말했습니까? 오전에 이헌기 하나님의 사랑 몇 가지로 말했어.
이 몰라 자 하나님의 사랑 네 가지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요한 일서 4장 10절로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죄로 아들을 보내셨습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러니까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참사랑은 하나뿐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참 사랑이오 인간은 참 사랑이 없습니다. 왜 사랑이 없을까? 사랑은 뭐라 했지요 첫째로, 사랑은 이헌용 사랑이  죄없는 것, 죄를 사해주시는 죄 없는 자로 사는 것이 사랑이라 그랬어요. 그러면 이것은 사람에게 있을 수가 있어요. 이거는 사람에게 있을 수가 없어요. 사람에게 없는 거예요.
이 사랑이라는 것은 없는 거라 그래서 이 사랑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와서 이 사랑을 창조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없는 사랑인데 이 사랑을 자기가 받으면 자기에게 이 사랑이 있는 자기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이 사랑을 받아 가졌으니까. 자기에게 사랑이 있는 거지요 있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이제 사랑이 그에게 가는 것입니다.
자 그럴 때 사랑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게 되겠죠. 자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서 죄를 멸해준 것이 사랑입니다. 죄를 멸해준 것이 왜 사랑이냐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멸망을 당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멸망을 당할 사람을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게 해주니까 사랑이죠. 그보다 더 좋은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이게 참 사랑이라 죽고 망할 수밖에 없는데 망하지 않게 해줬으니까.
사랑이지요 또 그에게 네 자기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자기 것이 없어요. 없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것을 줬는데 마귀에게 빼앗겨서 하나도 자기 것이 없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빈손 들고 왔다 빈손 들고 간다 아무것도 자기 것이 없는 인생이란 말이여 그런 인생에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우리에게 상속시켜 주시니까 그게 사랑이죠. 그게 사랑이다.
이런 부자가 되게 해 주시니까 이게 참 사랑이죠. 우리는 무능한 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피조물이요. 무능한 자입니다. 우리에게는 주권이 없는 것이요.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은 사실은 하나님의 예정에 없는 일은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일은 조금도 할 수가 없는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그런 무능한 자요 그런 우리가 전능자가 되게 해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능력 주권 능력을 어떻게 받느냐 나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와서 생명으로 역사하고 나는 주님의 지체로 주님에 것되어서 주님의 지체로 사니까 껍데기를 보면 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내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는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의 사람이 되어서 이렇게 살 수 있는 우리인데 이렇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어떻게 했느냐 그냥 우리가 그러면 살려고 하면, 살 수 있느냐 못 삽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사죄의 은혜를 입혀 주시고 칭의의 은혜를 입혀 주시고 화친의 은혜를 입혀주셔서 대속의 공로를 입혀줘서 이런 은혜를 입고 살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줘도 우리는 이것을 하나도 누리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 누리느냐 하면 이것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셔서 이제 영감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진리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과 진리로 살기만 하면 이 대속으로 살 수 있는 이 사랑으로 살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자기가 어디든지 영감을 받고 진리를 받아서 영감과 진리를 받아서 영감과 진리를 따라 살기만 하면 그 사람은 대속으로 살 수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사람에게는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길이 없고 온 세상을 자기 것 삼아 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인 세상에 왔다가도 자기 것이 생겨졌으면 가지고 갈 것인데 빈손으로 가게 된단 말이야. 그  길이 뭐냐 영감으로 진리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영감으로 진리로 어떻게 삽니까 영감으로 진리로 산다고 하지만은 영감으로 진리로 사는 그 길을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으로 살 수 있도록 이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읽고 듣고 이 성경을 따라 살려고 애를 써보면 거기에서 말씀이 깨달아지는 겁니다. 그래 성훈이도 봐라 말씀이 들려졌을 때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어야 된다. 성경을 쓰라 그래가 성경을 쓰니까 차차차차로 나아져 가는 거예요.
그 갑자기 다 되지는 안하지만은 차츰차츰 나아져서 그래 지금 비교를 해보면 성훈이하고 똑같은 정도의 사람하고 처음 비교해 보면 완전히 달라 그 사람들과 달라 완전히 틀려야 같은 사람 아니야. 굉장히 바뀌어져 있는 거예요. 저 거창 집회 가서 판넬 또 밟을 발로 밟아가 다 뿔라 버리고 야단을 지겠지 요새는 안 그래도 되잖아. 다 고쳐진 거야.
굉장히 많이 고쳐졌다고 그게 뭐냐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을 듣고 신구의 성경을 말씀을 읽고 듣고 그 안에 말씀을 깨달아서 말씀대로 살면 이제 그 사람은 진리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진리로 사는 사람이 되면 영감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왔다는 증거는 자기가 내가 이걸 잘못했구나 내가 이거 잘못했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어지고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잘못한 것이 생각도 나지 않고 말하면 내가 뭐 잘못했노 내가 무슨 죄가 있는데,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지 자기 죄를 인정하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기의 죄를 느끼고 죄의 사함을 받은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자리로 나아가게 되느냐 신구약 성경을 읽어 읽고 설교 말씀을 듣고 그런 가운데서 말씀이 깨달아지고 깨달으신 말씀을 따라서 순종해 보고 나니까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따라 살고 보니까, 영감으로 살 수 있는 자기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자기를 돌아보면 아 내가 이것을 잘못했는데 주님이 이 죄를 사죄해 주셨구나 이것을 느껴서 그만 앉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죄를 사하여 주셔서 이 죄로 인해서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까? 이러면서 감사의 눈물이 나오고 찬송이 나오는 이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건 성령을 받지 않고는 그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하는 것은 가짜 배기요 가짜란 말이에요. 참 자기가 앉아서 가만 생각하니까 주님의 사죄의 은혜가 감사가 나오고 칭의의 은혜가 감사가 되어서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옳은 이치를 깨닫게 해 주십니까 이런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해 주십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참 무능한 사람인데 이제 영감으로 살아서 능력 있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무능한 사람인데도 이런 실력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셔서 세상에서 이런 일도 감당하고 저런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이런 내가 되도록 해 주시는 은혜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돼요. 그런 감사가 나와요.
이러니까 사람은 교회에 오면 찬송화하자 하면 기뻐서 찬송이 나오는 그저 할 수 없이가 입만 딸싹딸삭하는 사람은 벌써 세상 생활에서  성경으로 살지 않았고 자기의 삶은 말씀을 따라 살지를 안 했습니다. 성경으로 살고 말씀을 따라 살아본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영감을 받아서 영감과 진리로 사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니까.
여기서 이 이치를 깨달아서 감사와 찬송을 돌리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늘 집에서 벌써 사람이 성경으로 살고 말씀으로 살던 사람은 그 사람은 영감으로 사는 사람이 되니까. 교회 올 때는 벌써 기분이 좋아서 기쁨이 자기 속에 가득 차고 좋고 교회 오고 싶고  찬송을 부르니까 기뻐서 즐거워서 찬송이 불러지고  그런 역사가 자기 속에 생겨진단 말이에요. 자 세상에 살려고 하면, 말을 잘해야 됩니다. 참 말을 잘해야 돼요.
말만 잘하면 장사도 잘할 수 있고 말을 잘하면 사업도 잘 할 수 있고 말 잘하면 이 헌용 얼마나 많은 빚을 갚는다 그랬지 말 잘하면 천냥 빚도 갚는다 그런 얘기가 있죠. 그렇게 말 잘하는 데서 온갖 수입이 있단 말이에요.
있지만은 사랑 없는 말하는 수입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렇게 천냥 빚도 갚는 그런 말을 잘하는 기술이지만은 사랑이 없으면 헛 일인 것은 그래서 사람이 말을 하잖아요.
말을 잘한다고 이랬는데 말하는 데서 죄를 멸하지 못합니다. 죄를 멸하지 못하니까 말로써 요래 피하고 저래 피하고 그만 듣고 가르고 설득시키고 이랬는데 그 말 때문에 자기에게 큰 해가 또 돌아오는 거야. 그러니까 그 방언에 그 말에 사랑이 없는 사랑을 받아가지고. 사랑있는 말이 되면 되는데 사랑 있는 말이 되지 못하고 사랑이 없으니까.
말로 인해서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유익을 보는 게 아니라, 이거는 소리 나는 구리나 꽹과리 같다 꽹과리 같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또 사람들은 지식이 많으면 돈벌이 다 되는 겁니다. 지식이 많으면 요직에 들어갈 수 있고 지식이 많으면 이기기도 하고, 이 지식으로 인해서 큰 성공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식을 구비하려고 여기 가서 공부하고 저기 가서 공부하고 공부하는 데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그렇게 공부하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실은 사랑 없는 지식을 가지다가 보니까, 사랑이 없으니까. 어찌 됩니까?
그러면 사랑이 없다는 말은 뭐냐 죄를 멸하는 것이 없고 죄를 사하는 사함을 받는 것이 없고 의를 이루는 것이 없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움직이는 것이 없는 그런 지식이라 이 말이오 이러니까 그 지식으로 인해서 자기를 망치고 절단 내는 그런 일만 하게 되는 겁니다.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것을 적게 하지만은 알기 때문에 자기를 더 크게 망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차라리 모르면 그렇게 해를 끼치지는 아니하지만은 많이 아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를 망치는 것이 더 큰 것입니다. 이러니까  많이 아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가 해도 그게 하나도 자기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지식이 되지를 못하고 만단 말이에요. 또 믿음은 굉장한 능력의 역사를 합니다.
그래도 사랑 없는 믿음 사랑 없는 믿음은 헛일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우리 믿고 살자 서로 믿지 않고 어떻게 지나가겠나 우리 믿고 살자 이래서 믿고 살자고 믿음으로 살자고 이렇게 다 주장하고 말을 하지만은 믿었다가 주성아 뭘 깬다 그랬지 그렇게 믿었다가 발등 깬다고 했잖아.
믿었다가 그만 발등 깨는 거야. 그와 같이 믿고 살자 해 놔 놓고 날 다 속여서 내꺼 다 빼앗아 간 거야. 믿고 했더니, 큰 손해를 끼친 거야. 믿음이 굉장한 능력의 역사를 하지마는 믿었다가 손해를 다 보고 말았단 말이야. 그러나 믿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받는 믿음으로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으로 우리는 자타가 큰 수익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죄를 사해주신 그것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에 안심이 됩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담대하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주님의 사죄를 믿고 다니엘은 주님이 죄를 사해주신 이 사죄를 알고 이 사죄를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나라에 포로되어 간 것은 이방신을 섬겨서 바벨론 나라의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그 죄를 알려주시고 하나님께 다시 회개하고 제사드리므로 사함을 받은 요것을 확실히 믿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이것이 사죄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사죄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 가지고.
이 사랑을 가진 자로 사니까 사자굴에 들어가도 사자가 잡아먹지 않는 이런 자기가 된 것입니다. . 이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은 주권자시다 하나님께 잘못을 고하고 사함 받으면 죄 없는 자가 되어져 있다. 죄로 인하여 오는 멸망은 없다. 요것을 확실히 믿고 있으니까.
안 그러면 사자굴에 들어갈 때 두려워서 벌벌 떨 건데 그렇지는 안 하고 나는 죄 없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죄 없는 자를 누가 해친단 말이에요. 배고픈 사자라도 죄 없는 자를 잡아먹지도 못한다. 해서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믿음을 가지니까 사자가 조금도 해하지 못하는 그런 다니엘이 되어 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얼마든지 믿음을 가지는데 사랑 있는 믿음 사랑있는 믿음을 가지면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되어집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제한다고 구제할 때에 기분도 좋고. 기쁘고 그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그런 일들을 많이 합니다.
거기에서 참 쾌락을 느끼기 때문에 그리하지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딴 목적을 가지고 구제를 한단 말이오 그러면 그 구제로 인해서 오히려 큰 문제가 생겨집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도와주니까 그 사람은 고맙습니다.
하고 나에게 나를 좋아하고 환영하고 이렇게 할 것이지만은 그 사람이 나를 도와줄 때에 그런 사랑이 없는 구제니까 그것이 들어서 자기를 완전히 망치는 것이 되었으면 거기에 대해서 감사할 이유가 만무한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하면, 내가 이런 실력을 길러갈 수 있었을 것인데 도움을 준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원수같이 미워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아무 유익이 없다.
이 말입니다. 내 몸을 불르게 내어줄지라도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자기가 희생함으로 그를 구원하고 오늘날 교회에서도 우리가 이웃 돕기 해야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서 도와주는데 거기에 사랑 없이 도와주는 것이 많습니다.
사랑 없이 도와주는 것은 그를 회개케 하는 것이 아니고 도로 죄악 속에 더 깊이 빠지게 만드는 그런 도움이 되어져서 이런토록 원망할 수밖에 없는 당신 때문에 내가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제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도와줄라고 해도 그냥 쉽게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살펴봐라 살펴봐라 도와주면 더 타락되고 도와주면 더 깨을러지고 도와주면 더 탈선해질 그런 사람이 아닌가 한번 살펴봐라 그거 없이 무조건 도와주니까 그 사람은 더 깨을어지고 그의 어떤 나라는 미국에서 도와줬습니다.
도와주니까 저 아프간 나라는 가서 미군이 가서 많이 도와주니까 가만히 있으면 미군이 와서 저거를 해치는 저걸 무찔러도 주고 그러니까 미군이 들어오는 거 요래 빼먹고 저래 빼먹고 뭐 그래만 하면 우리 사는 건 별 문제가 없으니까. 자기들이 자기 힘으로 이길라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기서 도와줄 필요가 없다. 가자 해봐야 손해가 되니까. 나가자 하고 그만 철수해버리니까 다시 거기 사는 사람이 어려움에 빠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렇게 도와주는데도 사랑 없이 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이런 걸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사랑을 완성해서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우리는 이 사랑을 받고 이 사랑으로 살고 이 사랑을 주는 이 걸음을 걷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상 성공이 되고, 내세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 주고받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주고받고 해야 됩니다.
사랑은 인간 사랑을 주고받고 하는 것 아닙니다. 여기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하는 이 말씀은 사랑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지. 이것이 사랑이다. 하는 말이 아니오. 사랑은 오래 찾는 것이 사랑인 것이 아니라 사랑은 사죄가 사랑이오 칭의가 사랑이요. 화친이 사랑이요. 소망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주는 자는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천년이 하루같이 빨리 지나감을 느끼는 느낌으로 우리가 이 구원 준비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하루에 490번 실수를 해도 또 주님 앞에 와서 용서를 구하면 사해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오 이러니까 이 말씀을 보면서 하 주님의 사활의 사랑은 오래 참는 역사가 여기에 있구나 이것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단 말이에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이 사랑이 사죄의 사랑이요. 칭의 사랑이요. 화친의 사랑이요. 소망의 사랑인 사랑이면 그렇게 놀래서 갑자기 그렇게 움직이는 그런 것이 아니고 온유함을 느끼게 되고 우리가 잘되는  그것을 당신이 좋아하지 그걸 싫어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을 받아서 이 사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을 받아 가지고.
사는 사람이면 점점 부유해지고, 점점 건강해지고, 점점 형통해지고, 이런 은혜를 입을 때 세상에서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사촌 논 사면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 그런 것처럼 잘 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사는 사람을 보면 같이 좋아하고 같이 환영하고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그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지식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믿음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구제 희생 이것은 거기에 투기가 있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마지막 주님의 재림의 때에 불타지 않을 수 있는 이것을 마련하는 것은 사랑 있는 것으로 마련해야 된다. 사랑 있는 것으로만 마련하면 여기에서 불타지 않을 수 있는 이것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Note: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무분별한 댓글, 욕설, 비방 등을 삼가하여 주세요.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