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설교 입니다 재독으로 많은 은혜 받도록 합시다. 

23년8월6일 주전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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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4장 23절-23080601(요한복음 4장 23-24절)
제목: 예배시간의 중요성
본문:요한복음 4장 23-24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원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은 주일 날이요.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이 제일 귀중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날 중에 귀한 날로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으로 진실되이 그대로 알고 사는 사람이 되어지면 우리가 기독자로서의 큰 은혜를 입을 것이고.
이것을 무시하고 살면 우리는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마는 진리를 아는 것은 그대로 행하기 위해서 아는 것인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진리는 우리를 정죄해서 멸망시키기 때문에 아는 것이 해가 되지 유익이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알고 믿고 순종함으로 진리를 암으로 말미암아 오는 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드릴 때에 그저 하나의 형식으로 찬송 한 장 두 장하고 기도하고, 성경 이렇고 성경 해석하면 설교를 잘한다. 못한다.
논평이나 하고 설교에 대해서 듣고 깨달아 이시간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도 하고, 하면, 좋지만은 그만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읽고 듣고 그것으로 끝나는 그때 들은 말씀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이렇게 산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드리는 이시간에 우리의 할 일은 어떤 사람을 세우든지 하나님이 인도자를 세워서 말씀을 전하게 할 때에 마태복음 23장 1절 이하의 하신 말씀대로 너희들은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의 말을 들어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세 위치에 앉히셨으니 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통솔하고 인도하는 그런 위치에 하나님이 앉혀 섰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너희들이 듣고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종들이 볼품이 없던지 참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에 종으로 세웠다고 하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이 세워서 이 강단에서 증거하는 말씀인 줄로 알고 심각히 듣고 이 지식과 하나가 되고 이 말씀이 자기의 욕망과 하나가 되고 이 말씀과 내 행위가 하나가 되어져 가도록 우리는 힘써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말씀대로 행동하는 그 소망은 우리가 말씀하신 대로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한 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어떤 사람은 자기가 지식적으로 가지기 위해서 듣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가져 그대로 언행 심사 행동을 할려고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지식이 소원하라는 대로 소원을 하고 희노애락을 가지라는 대로 지식이 가르쳐주는 대로 내 마음도 생각도 몸도 움직여서 지식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식대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생각도 하고, 모든 언행 심사를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진리를 따라서 지식대로 행했으면 다한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고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이 변화되는 일이 없다고 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아무 소용없는 외식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이 지식을 가지고 이 지식이 자기가 통달되어서 이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그 지식대로 행동하지 아니하면 그 지식은 그 사람에게 정죄의 율법이 되지 하나도 은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 잘못된 습관을 완전히 고쳐야 하겠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알려주는 말씀을 하나 듣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 되지 말고 구경하는 사람 되지 말고 지식만 가지는 사람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식하고 그대로 행동하고 말씀대로 사람이 되어 가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 말씀을 했습니다. 기뻐할 수 없는 일인데도 기뻐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우리이기 때문에 죽음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환란 가운데도 기뻐할 수 있고 감옥 속에도 기뻐할 수 있는 어떤 병 중에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이것이 기독자의 생활입니다.
또 우리 기독자는 어떤 형편 처지에서도 항상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이고 어떤 형편에 서든지 청청하고 인생으로서의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그러면 이런 결실을 이룰 수 있는 그 길은 무엇인고 하면,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고 깨닫고 이것을 증거해주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서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지는 여기에서 그런 인생의 결실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 은혜를 바로 받지 못하고 바로 믿지 못하고 나면은 우리는 어떻게 되어지는가?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과 마찰되는 이런 일을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별하고 나온 사람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을 세상에서 불러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나오지 않고 세상에 속해 있으면 세상이 저의 것이기 때문에 너희를 사랑하고 기뻐하지만은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불러냈기 때문에 세상은 너희를 미워하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너희들만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불러낸 나를 미워하므로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너희를 불러낸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함으로 나를 미워하고 너희를 불러낸 나를 미워하므로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아서 이렇게 살면 미움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담대하고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복 있는 걸음을 걸어갈 수 있지마는 여기에서 말씀을 따라 순종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듣고 깨달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사는 데서 기독자가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많은 고난 속에 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할 어려움을 내가 당하는 어려움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함으로 나를 미워해서 이런 어려움을 주는 어려움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우리는 그로 인해서 영광이 되어질 수 있는 큰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어려움 당하면 주님이 그 모든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이런 은혜를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움 당하는 마찰 있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이 속에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평안하고 이런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지상의 최고의 행복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우리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초월해서 세상을 발 아래 밟고 세상이 따라오지 못하는 세상이 우리를 상관하지 못하는 그런 영원한 행복과 평안하고 살 수 있는 그런 우리들이란 말입니다.
이런데 이것은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면 한없는 행복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우리로 살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미움받는 핍박받는 세상에 우리는 괴로운 시간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까.
온갖 불평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이런 사람이 되겠고 원망하는 사람이 되겠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했기 때문에 세상이 저의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이런 질병으로 이런 환란으로 이런 핍박으로 이런 어려움으로 우리를 어려움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런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믿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행복된 삶을 살 수 있는가 이것을 바로 깨달아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온갖 은내가 있고 영생의 길이 있고 부활의 길이 있고 생명과 평강에 이런 길이 있는 이 길을 하나님과 동행하면 이런 길이 이루어져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누가 봐도 사람은 예수 믿기 때문에 망한다.
예수 믿기 때문에 손해 본다 예수 믿기 때문에 실패다 이렇게 하고 조롱하면서 보지마는 기독자가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 은혜로 사는 사람이 되면 이상하게도 애의 속에서 행복을 가질 수 있고 기쁨을 가질 수 있고 건강을 가질 수 있고 생명과 평강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행복되게 살려고 하면, 담대하게 강건하게 살려고 하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능력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느냐?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 휴일 날이오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그 능력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은혜를 받는 것은 이 능력을 받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깨달음이 와서 내가 이제는 이 말씀을 따라서 이대로 살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각오하고 작정하고 이대로 살려고 할 때에 그 말씀이 깨달음이 막바로 은혜요 그 깨달음이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은혜를 바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에서 기쁨으로 살 수 있고 세상에서 누를 끼치지 않고 세상에게 영원히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고 평안히 살고 담대히 살 수 있는 건강함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알려주시는 그 말씀을 깨달아 믿고 그대로 순종하고 이렇게 걸어가는 데서 실제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중에 사도 바울은 이런 은혜를 입어서 그는 항상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했지만은 그는 기뻤습니다.
빌리보 감옥 깊숙이 갇혀 있어도 기뻐 찬송했습니다. 그는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기쁨을 모릅니다.
성경의 수많은 성도들이 그런 역경 속에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기쁘게 살고 갔는가?  우리는 돈이 좀 벌리면 기뻐하고 건강해지면 기뻐하고 그러하지요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잡아 죽이려고 많은 핍박하는 앞장선 자기가 그렇게 삶으로 영멸될 자기였는데.
주님이 자기를 주님은 벌써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부활하셨는데 그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오셔서 자기를 불러 멸망당하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이 구원을 자기에게 입혀준 것을 깨닫고 나도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이것을 느껴서 자기가 주를 위해서 수고하니까 고생이 되니까. 기쁜 겁니다.
주를 위해서 사니까 기뻐요 세상에 주님으로 인해서 순교의 그런 걸음을 걸어간 사람들도 보면 정말 너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속에 있었지마는 저 사람들은 예수 믿다가 저렇게 고통을 당했다.
이렇게 보여지나 그 본인은 기뻐서 그러니까 순교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기뻐하는 기쁨을 아무도 꺾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소문이 있습니다. 이북에서 예수 믿다가 박해를 하니까 굴을 파고 굴 속에서 몇 10년을 그 속에 살았는데 그 위로 고속도로가 나게 되었습니다.
 고속도로를 파니까 고속도로를 설치하니까 도로가 꺼져버린단 말이야. 이거 왜 그러냐고 보니까, 거기에 있는 사람이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지금이라도 예수 믿지 않겠다고 하면, 살려주겠다. 해도 끝까지 예수를 믿겠다고 하니까 그들을 땅바닥에 눕혀놓고 하나씩 이 도로 닦는 다지는 그것 가지고 로라를 가지고 밀어붙여부니까 그냥 박살이 나서 죽고 오징어 같이 절단 날 거 아닙니까 하나씩 죽이면서 항복하면 너희는 살려주겠다. 해도 거기에서 전부 찬송을 부릅니다.
너무 기뻐서 찬송할 때 아무도 기쁨을 꺾지를 못했어요. 어째서 그랬어요. 이렇게 수많은 선지자들이 걸어간 순교자의 그런 걸음의 전기를 보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담대함을 가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도 불에 태워 죽일라고 불 앞에 서 놓고 항복하면 우상에게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해도 왕이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담대하게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고 순종하는 여기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므로 참된 기독자 쳐놓고 다 하나님이여 죽음이 와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경제의 어려움이 와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내 몸이 어떻게 고문과 고행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애매하게 매장되는 가운데도 주님을 사랑함이 변치 않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을 다 원하고 있습니다. 참된 성도는 이런 소원을 다 가지고 주님이여.
내게 그런 어려움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런 입장에서도 주님을 높이는 것을 변동되지 아니하고 주님을 사랑함이 변동되지 않고 주님에게 순종함이 변동되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그런 믿음을 간구하는 것이 참된 성도들인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 어려움이 왔는데도 담대의 복음을 전하는가?  변판원선생은 엎드려 놓고 도끼를 가지고 찍었는데도 말씀을 믿고 증거하고 도끼로 온몸을 다 찍어서 죽이는데도 공산당 앞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믿음으로 기쁨으로 순교의 걸음을 걸었습니다.
이분들이 이렇게 믿음의 성공을 이룬 것이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공을 이루어 이루게 되었을까?
우리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올 때도 있고 신체적 어려움이 올 때도 있고 사업적 어려움이 올 때도 있고 출세적 어려움이 올 때도 명예적 어려움이 올 때도 향락 면이나 안일면이나 가정면이나 사회면이나 여러 가지 이런 면에 주님을 믿기 때문에 오는 그런 어려움이 있는 이런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주님에 대한 소망이나 믿음이나 사랑이나 섬김이나 사모함이나 기쁨이 변동되지 않는 이런 자기가 되려고 하면, 그런 내가 되려고 해도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그것을 못하니 주여 내가 참 어려움을 당하면 이런 미혹이 오면 가는 유다와 같이 주님을 배반하는 그런 자가 될런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 나도 반석 같은 믿음을 주옵소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다니엘 같은 믿음 요셉 같은 믿음 아브라함 같은 믿음 사도바울 같은 믿음 엘리아와 같은 믿음 다니엘 같은 믿음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와 같은 이런 믿음을 가지기를 다 우리가 소원하고 또 그런 믿음을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소원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 이런 능력을 어디에서 받을 수 있느냐 이것은 예배 시간 말씀을 듣는 데서 자기가 깨달아지고 인정되고 그대로 행하는 여기에서 이런 능력의 사람으로 우리는 자라가고 변동되어져 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됩니다.
그런 능력 있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고 세상에게 끌려가지 않고 담대히 세상을 다스리고 점령하고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은 예배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을 접선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에 영감으로 가까이 오시고 진리로 가까이 오시고 그 진리가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 그 말씀이 성경으로 문서 계시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읽고 듣고 이것을 해석해 줄 때 이 속에서 이 문서 계시 속에서 말씀을 잡고 이 말씀 안에 진리가 있는 줄 알고 안에 영감이 있는 줄 알고 이 말씀을 잡고 요대로 살리기로 작정하고 요것을 믿고 요대로 살려고 하나님 앞에 말씀을 듣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요대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여 내가 이제는 예배 시간을 통해서 알려주는 말씀을 잡고 요대로 살 수 있는 내가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그 기도를 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이 되어서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 담대하게 살 수 있는 사람 생명과 평광을 누릴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우리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삶의 걸음을 걸어갈 수 있도록 예배 시간을 잘 지켜서 예배 시간을 통해서 주는 은혜를 힘입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 시간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 변화받을 수 있는 이런 자기가 되어져 가도록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다 같이 동통성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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