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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2월19일 주전 중생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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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23021901(베드로전서2장1-3절)제목: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1절에 그러므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것은 1장 20절로 내리 보면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영과 마음과 몸 이것이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생겨 나왔습니다. 이랬는데 우리의 시조인 아담 화와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아야 될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중심 위주의 그 위치에서 살다가 그만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타락하기 전 인류의 위치는 모든 피조물 위에 천상천하에 제일 높은 지위입니다. 이 지위가 인류의 지위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천상천하의 제일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피동이 되어 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피동 되어 사는 그런 걸음을 걸어가면 천상천하에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이 지위를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우리들이 모든 사람이 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인생이 되어 버렸는데 우리를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이렇게 인생이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이런 존재로 살았으나 뱀의 유혹으로 내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 것이 아니고 네 중심 위주로 살면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인데 내가 하나님 같이 될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지 말고 네 중심으로만 살면 하나님 같이 된다. 그렇게 살아 봐라 어리석게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라 하는 이 미혹을 받고 아담과 하와가 인간 중심으로 살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인간 중심으로 살려고 하니까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보고 너희들이 저 선악과를 먹어봐라 그러면 너희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니까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 인생이 타락하게 되고 본 지위는 다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이제 아담 하와가 인간 자기중심으로 그렇게 하니까 하담 하와는 완전 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하면 모든 것이 완전을 중심으로 완전을 위주로 하는 것이라 옳고 바르게 되겠지만 불완전하고 무지 무능한 인생이 자기중심으로 하니까 그 모든 것이 삐뚤어지고 죄가 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인간이 인간 중심의 위주로 시발됨으로 원죄라 하는 것이 생겨지게 된 것입니다. 원죄라 하는 것은 우리가 평생 동안 짓는 죄인데 인간 중심 인간 위주로 사는 이것이 자기 위주로 사는 이것이 원죄인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원죄라 하고 본죄는 무엇을 두고 본죄라고 하는고 하니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던 자가자기 중심 위주로 사는 요 원죄로 자기 중심 위주로 언행 심사하는 그것이 다 본죄가 되는 것입니다.원죄라는 것은 자기가 인간 중심 위주로 생각하고 알고 이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 원죄요 요 원죄로 실상 행동하는 이 행동하는 이것이 본죄가 되어줍니다. 그러면 인생은 원죄와 본죄로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우리의 영도 마음도 몸도 완전히 죽어서 영원히 멸망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것을 두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연결이 끊어진 그게 뭐가 큰 문제인가 나는 살아있는데 이렇게 생각하지만은 이렇게 죽은 것이 이제 완전히 죽어서 영원히 죽어가는 것이 영원히 죽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삶으로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죄를 범할 때에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는데 영이 그 죄를 범했는가 영은 직접적으로 선악과를 먹을 때에 자기도 동참해서 먹은 것이 아니고 심신이 영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심신 자기 단독으로 선악과를 따먹는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영은 그때에 선악과를 먹는 그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그 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왜 죽었느냐 영이 죽은 것은 영은 심신에 대한 주격이요 주인입니다. 우리 사람의 주인이요 사람의 생명이 되는 것이 영인 것입니다.  그 영이 책임을 지고 심신이 범죄했지만은 그 심신의 범죄의 책임을 주격 위치에서 책임을 졌기 때문에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게 된 것은 심신이 죄를 범했고 영은 죄를 지을 수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없도록 된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영입니다. 그러기에 영은 죄를 지을 수 없지만은 영이 정죄를 받게 된 것이 자기가 책임 맡고 있는 마음과 몸이 범죄했기 때문에 책임 맡고 있는 마음과 몸의 범죄로 인해서 영도 죽게 됐습니다. 이래서 이제 인생은 나자마자 이 정죄가 와서 이제 하나 죽고 둘 죽고 죽어서 완전히 죽어 영원히 죽는 길을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죽은 영육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셔서 사활 대속 공로를 베풀어 우리에게 영육을 살리려고 하신 것입니다.이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는 우리의 죄의 문제나 의의 문제나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그 문제를 다 해결 지운 것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시고 의를 입혀주시고 하나님과 화목을 가지고 살도록 이렇게 해주셨지만은 실제로 우리는 죄 없는 자가 아니고 있는 자기요 불의한 자기요 불목되어 있는 우리의 영육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대속을 입어 이런 구원을 얻었어도 실제는 우리가 죄 속에 살고 불이 불목 속에 살고 있는 이런 자인데 이런 우리를 이제 실제로 죄가 없는 우리가 되고 도로 우리가 되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이런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신인 양성 일위로 다시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과 진리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주님의 죽으심의 대속과 부활하심의 대속 이 두 가지입니다. 죽으심도 대속이요 부활하심도 대속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참 감사하게 여기고 부활하심에 대해서 이제 승리하고 죽음을 이겼으니까 감사하고 찬송을 돌리는 그런 일을 하지만은 이것이 우리 대신에 당신이 신인 양성 일위로 부활하셨다는 이것을 모르고 부활절을 기념하는 일을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도 대속이오 신인 양성 일위의 부활도 대속인 것입니다. 이 대속은 우리가 영원히 죽는 여기에서 살리기 위해서 죽으심의 대속을 하셨고 부활하심의 대속으로 이것을 실상 우리가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죽으심의 대속과 부활하심의 대속을 같이 합해서 사활의 대속이라 말합니다. 이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구원을 얻어서 이제 영은 다시 살아나게 됐는데 영이 살아날 때 영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죽어 있는 영은 이 대속을 주님이 입혀줘야 살아날 수 있지 입혀주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은 주님이 이 구원을 입혀주어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영은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어서 사활의 대속 공로를 입어 살아났으니까 이제 완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그런 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영은 단일체기 때문에 단 번에 다 살아났습니다. 죽을 때도 단번에 죽었고 살아날 때도 단번에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은 종합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죽는 것도 여러 차례에 걸쳐 죽고 사는 것도 여러 차례 걸쳐서 살게 되어집니다.  영은 수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단일체입니다. 이 단일체를 이해하기가 사실은 좀 어려운 그런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사랑인데 또 미움도 됩니다. 또 시기도 됩니다. 시기를 보면 사랑도 되고 이와 같이 말이죠.이게 다 하나로 되어 있단 말이죠. 그러나 심신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감정이 따로 놉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또 좋아하는 것 중에도 이런 것은 좋아하고 저런 것은 좋아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따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종합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과 몸은 마음도 수많은 것이 합해져 되어 있지만은 우리 몸도 수많은 세포로 되어 있는 그런 우리들입니다.
이러니까 죽는 것도 우리의 마음과 몸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하나 죽고 둘 죽고 셋 죽고 냇 죽고 자꾸 죽어서 원뿌리는 영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건 죽은 겁니다. 죽은 것이지만 이것이 이제 하나 죽고 둘 죽고 이렇게 죽어서 완전히 죽으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하와가 아담이 930년 아마 살았을 겁니다. 930년 동안 살면서 930년 동안 죽었단 말이야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어서 930년 만에 다 죽었습니다. 960몇살 산 모두셀라는 참 오래 살았지 그래도 960년을 죽은 거예요. 그렇게 많이 세월이 걸쳐서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것은 단번에 살아난 그것을 중생이라 하지 그래 우리는 이 중생이 언제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그것을 잘 모르지만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니까 내가 살았구나 그것을 느끼는 것은 요한복음 3장에 중생된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니까 바람이 불지만은 눈에 바람이 보이지 아니하나 바람이 부는 그것을 느끼지 않느냐 그와 같이 이 바람은 서풍이다.  동풍이다. 이건 강풍이다. 바람이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은 그 바람이 움직이는 그것을 보고 아 바람이 분다. 이렇게 알게 되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중생이 됐는지 안 됐는지 본인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르는데 중생한 이후에 그 사람의 행동이 믿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중생한 사람이 되어 졌으면 어떤 사람은 그래 말합니다. 야 너 교회를 와야 구원을 얻는다 예수 믿어야 내가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예수 믿어야지 말을 한번 듣고는 자기는 나 예수 안 믿는데 예수님 믿기는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 안 보이는데 나 예수 안 믿어 그러면서 절에 다녔어 난 절에가 그래도 자기 속에 자꾸 그 고민이 생겨집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게 되지 하나님이 진짜 있을까 하나님 어디 있어 하나님이 보이다 안 하는데 이렇게 자꾸 고민이 돼요. 그래 그건 자기 고민인 것 같아요. 영이 살아나서 영이 니 살았다. 하나님을 믿어 너 하나님을 믿어야 돼
하나님 없어 그래서 교회에 가가지고 목사님한테 하나님이 있는지 하나님이 정말 있는지 내게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예수님겠습니다. 아무리 물어봐도 똑똑히 답을 못하더라도 아무리 말을 해도 자기는 그것이 믿어지지 아니해서 그렇지 말을 해주지 아니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게 하도 답답하니까 야 너는 그래 하면 안 된다 무조건 예수 믿어라 교회 나와 다니고 있어 봐라 나중에 알게 될 기다 그러니까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냐 난 예수 안 믿는다 집어 던져버리고 가버리는데 예수 안 믿고 그렇게 살다가 오래 있다가 갑자기 또 잊어버렸는데 또 생각이 나 예수 믿어야 된다 하나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시면 하나님이 있다. 그러면 하나님 소리 한번 들려줘 보소 그러면 예수 믿죠 그게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자기에게 소리가 들립니다.  아무도 없는데 하나님 이구나 하나님이 내게 말해주셔도 그때부터 예수 믿게 됐다. 그래요 이렇게 중생이 되었으면 자기 안에 더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그영이 살아남고 행위를 합니다. 살아난 그 역사가 있단 말이요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교회를 나오지만 말씀을 듣고 있다가 오면 목사님 정말로 나도 하나님이 나를 택해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이것이 확실하다고 하면 내 세상에 이 여기에 소망 두고 살지 않겠습니까 내가 진짜 이 구원을 이루는 데 있는 힘을 다 기울이겠습니다. 나는 구원받아서 택함 받은 자라고 생각이 안 됩니다. 이게 못 안 느껴진다. 이거 그러다가 교회를 오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속에 자기가 택함 받은 자요. 그이기 때문에 자기 안에 영이 역사하는 것을 느꼈단 말이야 아 이게 내 영의 역사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그만 좋아서 참 나는 이런 구원을 얻었다. 내가 이렇게 천국 가서 살 수 있는 이런 구원을 얻었다. 좋아서 그만 교회 와서 예배만 부를 때는 막 기뻐서 찬송을 하는 여러분들은 뭐 찬송 부르라고 해도 다 죽어 가는 소리로 뭐 찬송이야 소리도 안 납니다. 뭐 기쁜 마음이 있어서 부르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억지로 그저 입만 딸삭 딸삭 참 이 구원에 대한 기쁨이 자기에서 솟아나는 이게 있어야 할 건데 찬송을 불러줘서 그게 무조건 소리를 지르니까 저거 미친다 전 뭐 저혼자 고함지르나 하지만은 참 구원에 대해서 확신되고 이 구원이 기쁘고 좋으면 과음을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안겠소 이렇게 보배로운 구원을 우리가 받았는데 뭐 더 소망을 가지고 뭐 땅에 잠깐 있다가 없어지면 거기에 붙들려 살 이유가 뭐 있겠어 이렇게 이제 우리의 영을 하나님이 전적 당신의 주권으로 우리의 영을 살리신 것입니다. 죽은 영은 제 힘으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와서 내 영을 살려주셨다. 내 영에게 이 대속의 은혜를 입혀 살려주셨어 이것이 깨달아지면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찬송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니겠소 영원히 인생이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영멸당할 인생인데 우리를 구원해서 모든 피조물 위에 존귀한 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이 길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러면 이 실상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우리의 영은 하나님이 직접 살려서 직접 살리고 난 다음에는 우리의 심신을 살릴 때는 직접 하지 않습니다.성령과 진리가 와서 돕지만은 직접 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영을 통해서 하는 것이 주인이 살아났으니까 우리의 생명 되는 주인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영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몸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제 하나님은 성령과 진리로 우리의 영에게 와서 우리 영을 도와서 자기가 자기의 마음과 몸이 자기 중심위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이런 마음이 되고 이런 몸이 되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인도를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순종하면 살아나고 몸의 요소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 살 때에 심신은 수많은 요소로 종합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심신에 그 모든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닥쳐오는 수많은 변동되어지는 현실로 우리에게 조성해 주시고 거기에서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기만 하면 자기의 중심된 영을 따라서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생각이 되고 이성이 되고 감정이 되고 그런 입이 되고 눈이 되고 수족이 되어지면 이게 살아난 여러분들 이거 이게 굉장한 겁니다. 우리 마음과 몸이 이 생명으로 움직여지는 자기가 되도록 만들어서 생명으로 움직여지는 마음의 병이 치료가 되고 몸의 병이 치료가 다 됩니다. 이건 대번에 돼요. 그러나 내 마음의 요소나 몸의 요소가 다 병들어서 죽고 병이 들어도 큰 병이 들어서 다 절단 났는데 단번에 어떻게 살아납니까 단번에 다 고쳐지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말고 한 현실을 조성해 주셨을 때 그 한 현실 한 현실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기만 되면 그 마음의 요소가 살아나고 몸의 요소가 살아나게 되는 그러면 이렇게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과 진리로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과 진리가 우리 영 안에 와서 영어로 더불어 내 마음에 가르쳐 줍니다. 알려줘요. 이래라 이래라 이게 옳다.  이렇게 생각해라 자기 마음에 알려주고 마음에 알려준 대로 자기 몸이 움직거리면 몸도 살아나고 마음도 살아나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온 수많은 현실에 불편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현실에서 마음과 몸을 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만 살리면 자기의 현실로 통해서 자기는 심신이 큰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이러니까 큰 환란을 만났지만 그 사람에게는 환란이 환란되지 않고 환란이 큰 축복으로 그 환란으로 인해서 자기의 심신이 살아나는 큰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그때가 천국 생활이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기의 말씀이 뭐냐 하면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가 이런 계속의 은혜를 입어서 영이 살아나고 심신이 살아나는 이런 은혜를 입은 것을 우리가 알았으면 내 현실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마음을 살리는 일을 하고 몸을 살리는 일에 있는 힘을 다 기울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세만 유익한 것이 아니고 금생도 자기 마음과 몸이 살아나기 때문에 거기에 모든 만물이 모여들고 모든 만물이 다 환영하는 세상 모든 일이 형통한 일이 여기에서 이루어져 갑니다. 이루어 가나 늘 그런 것만 있으면 우리 구원이 안 되기 때문에 세상 사는 기간 동안은 자기의 심신을 살릴 수 있는 기회로 자꾸만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니 우리에게 이런 현실을 저런 현실로 찾아온다는 말이야 그러므로 대속의 공로를 입은 줄로 알았으면 심신을 다시 살리는 이 일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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